在日本朝鮮人文学芸術家同盟

【부고】문예동중앙 리인재위원

(조선신보)2012.11.8

문예동중앙위원인 리인재동지가 10월 31일 92세를 일기로 애석하게도 세상을 떠났다.

조국이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통치하에 있던 1920년 5월 3일, 함경북도 부령군 석만면 사하동의 빈농의 가정에서 태여난 고인은 부령보통학교, 청진보습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불타는 향학심을 안고 1940년에 일본에 건너와 갖은 민족적천대와 멸시속에서도 신문배달을 하면서 일본고등음악학교를 졸업하였다.

조국해방을 맞은 감격과 기쁨속에 동포들의 가슴가슴에 민족의 존엄과 긍지를 심어주자고 1947년에 도꾜제3조련소학교 교원으로 애국운동의 첫걸음을 내디딘 고인은 도꾜조선제4초급학교 교장, 도꾜조선제3초급학교 교장, 도꾜조선제1초중급학교 교장, 교직동도꾜 위원장, 교직동중앙 위원장의 중책을 지니고 동포들을 계몽하고 후대들을 민족의 유능한 인재로 키우기 위한 민족교육사업의 강화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였다.

고인은 1967년부터 근 10년동안 총련중앙 문화국장의 중책을 맡으면서 재일조선문학예술운동의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그후 조선레코드사 사장, 고문, 문예동중앙위원으로서 활동하였으며 생의 마지막까지 동포사회의 민족성고수와 조국통일위업실현을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이였다.

고인은 1972년에 주석님의 접견을 받는 최상의 영광을 지니였으며 생전에 존함시계, 국기훈장 제1급, 공화국로력훈장을 비롯한 갖가지 국가수훈의 영예를 지니였다.

고 리인재동지의 고별식은 5일 문예동중앙과 총련도꾜 이따바시지부의 합동장으로 戸田葬祭場에서 엄숙히 거행되였다.(상주는 차녀인 리금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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