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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권선생을 추모하여/손지원
《조선신보》 2019.04.25
대중가요창작에 공헌한 시인
시인 김두권선생이 애석하게도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
생전에 대중가요창작에 바친 시인의 로고와 널리 알려진 가사를 더듬어보려고 한다.
길동무가 되고저
시인 김두권
기쁠 때, 흥겨울 때 절로 나오는것이 노래이다.
어린이들에게 동요가, 1세들에게는 고향의 노래가 그리고 각계층 동포들에게는 그들의 심리에 맞는 노래가 있다. 결혼식때 부르는 축복의 노래도‚ 한잔 술을 마시면서 회포를 나눌 때 부르는 노래도 있다.
노래는 음악예술가운데서도 가장 작은 형식이지만 그 어느 음악예술도 따를수 없는 큰 힘을 나타낸다. 김두권선생은 아름답고 풍만한 서정, 부드러운 선률과 따뜻하고 다정한 울림으로 사람들속에서 널리 불리우는 대중적인 서정가요창작에서 선구적역할을 한 시인의 한사람이다.
1. 노을이 붉게 피는 저 언덕으로
손잡고 나가자요 발맞춰 나가자요
하늘엔 흰 구름도 손 저어 반겨주고
길가의 꽃들도 춤추며 노래해요
아 우리 앞길엔 행복의 노래가 울려퍼져요
2. 이역의 비바람이 사나울수록
손잡고 나가자요 발맞취 나가자요
오늘의 이 감격과 맹세를 잊지 말고
끝없는 사랑의 샘물을 길러내요
아 우리 앞길엔 사랑의 무지개가 곱게 비껴요
가요 《길동무》(1989. 김두권작사, 최진욱작곡)
이국에서도 서로 힘을 합쳐 애국의 한길을 떳떳이 걸어나갈 뜨거운 마음을 랑만적으로 노래한 이 가요는 새 세대 동포들속에 널리 보급되였다.
시인은 《조선청년사》가 기획한 대중가요의 좌담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노래가 광범한 재일동포들을 조국애, 민족애로 교양하고 조국통일에 대한 념원과 신심을 불러일으키는데서 더욱 힘있는 무기가 되여야 할것입니다. 또 동포생활의 친근한 길동무가 되여야 할것입니다.》 (《조선청년》 1988년 12월 14일호)
1925년 경상북도 영천군에서 출생한 시인은 해방전 일본에 건너왔다.
교또조선중고급학교에서 교편(1958.4)을 잡은 후 문예동 교또지부위원장 (59.10〜65.3)으로 사업하였다. 문예동중앙 사무국장(71.2〜81.3) 의 중책을 지닌 그는 주체적문예사상을 높이 받들고 총련의 문예운동을 한층 발전시키기 위하여 힘썼다.
그는 (81.4〜) 문예동중앙 부위원장‚ 고문으로 사업하면서 민족의 얼이 깃든 우리 말과 글로 시가창작을 줄기차게 벌렸으며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종소리》시인으로서 붓대를 으스러지게 쥐였다.
동포들의 마음을 가사에
60년대초부터 창작활동을 벌린 그는 각계층 동포들의 마음을 가사에 담았다.
가사 《인자하신 그 영상을 우러릅니다》(1977)는 현해탄에 피눈물을 뿌리며 이국에 건너온 재일동포들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주시고 공화국의 해외공민된 영예를 안겨주신 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은덕을 노래한 작품이다.
그는 어머니조국의 고마움을 목청껏 노래하였다. 산 설고 물 설은 이역에 건너와 온갖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외롭게 살아온 재일동포들에게 있어서 조국에 대한 느낌은 뜨겁고 열렬하다.
시인은 조국방문시,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 푸른 물에 배를 띄우면서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긴 감격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강반에 늘어선 수양버들아
겨레의 마음 담아 춤을 추느냐
이역땅 만리에서 꿈속에 그린
인민의 락원을 노래부르자… 》
(가사 《대동강 푸른 물에》1975)
동포들과 함께 숨쉬며 각계층 동포들의 뜨거운 마음을 가사에 담은 시인 – 김두권이 노래한 서정적 주인공은 다양하다. 분회장‚ 동포녀성‚ 애국적상공인‚ 2세, 3세동포청년‚ 출판보도일군, 그리고 문예일군…
《골목마다 통일바람 일으켜가세》 (1976)에서 그는 찬바람 불고 눈서리 내려도 민족의 념원을 안고 억세게 살아가는 분회동포들의 사상감정을 노래하였다.《주체의 체육사상 빛내여가리》(1983)에서 그는 동포체육인의 긍지를‚ 《오늘도 달린다 겨레를 찾아》(1976)에서는 일본땅 방방곡곡, 동포 사는 곳마다에서 주체예술을 펼쳐가는 동포예술인의 한없는 보람을 노래하였다.
가사《향도의 별 우러러》(작곡 리철우, 1985) 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은 조국에서 공연한 재일조선예술인의 꽃무대에도 올랐다.
청년시절 민족교실의 아동들에게 말과 글을 가르치고 조선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시인은 교가《우리 글 읽는 소리 울리는 요람 (이다미조선초급학교의 노래)》를 비롯한 학교 교가도 짓고 아이들의 동심을 그린 작품도 남기였다. 아동가사 《설눈아》(1987)는 재일조선학생예술단의 설맞이 공연대본에 수록된 명가사이다.
그의 작품들은 김두권작사가요집《백두산의 쌍무지개》(2001), 개인시집《아침노을 타오른다》 (1977)‚ 《조국‚ 그 이름 부를 때마다》(1985)‚ 《운주산》(2004)‚ 《자호천》 (2014), 《내고향》(2014), 가사집 《길동무》(2017)등에 수록되였다.
겨레의 념원 시줄에 담아
시인은 붓대를 쥔 그때로부터 겨레의 한결같은 지향과 의지를 시줄에 담았다.
그는 70년대에 《락동장강 굽이친다》(73)‚ 《이 땅에 새 아침이 오기전에는》(76)‚ 80년대에 《통일의 새날 앞당겨 오리라》(81), 《하나의 삼천리 꽃으로 덮자》(83), 《3자회담 실현시켜 조국통일 앞당기자》(84)를 비롯한 많은 가사를 발표하였다.
시인은 민족의 념원을 담은 가사들에서 예로부터 하나의 강토, 하나의 언어, 하나의 피줄을 이어온 우리 겨레는 결코 헤여져 살수 없으니 분렬의 비극을 하루 바삐 끝장내자고 하였다. 붓 한자루에 홰불을 켜들고 써낸 그의 시가는 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헌신하는 우리 동포들의 뜨거운 마음의 분출이다.
시인의 시상에 샘처럼 넘쳐흐르는것은 또한 두고 온 고향생각이다.
그는 생전에 옛추억을 작품에 수많이 담았다. 구순이 넘도록 읊은 망향가는 수십편을 헤아린다.
《3년이면 돌아오마 맹세 다지고
떠나온 고향아 나의 고향아
30여년 긴긴 세월 한날한때도
못 잊어 그려온 아 나의 고향아
봄이 오면 살구꽃이 마을을 덮고
종다리 보리밭에 울던 고향아
어린시절 어깨동무 어델 갔느냐
푸른 하늘 끝없던 아 나의 고향아》
(가사《아‚ 나의 고향아》1985)
3년이면 돌아온다고 굳게 맹세 다졌건만 고향을 떠난지 반백년이 훨씬 넘어 벌써 환갑을 맞게 되였다. 그러나 고향길은 아직도 멀고 아득하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해지는 그리움. 두고 온 고향산천‚ 눈 감으면 삼삼한 자호천의 푸른 물‚ 어린시절 물장구 치던 그 나날… 자나 깨나 한시도 못 잊는 고향의 노래는 그가 평생 쓰고 또 쓴 주제이다.
고향에 정들고 고향을 사랑한 그의 시가에 《꽃》을 노래한 작품은 적지 않다.
가사《70만 송이송이 꽃이 되여서》(1982)‚ 《충성의 꽃으로 붉게 피리》(1989)‚ 《단발머리 꽃이여》 (1988)‚ 《하나의 삼천리 꽃으로 덮자》(2002) 등은 꽃을 노래한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동서고금 작가, 시인들은 미의 상징인 꽃을 즐겨 노래하였건만 그가 늘 가슴에 안고 노래한것은 과연 어떤 꽃이였던것인가.
시인 김두권이 늘 가슴에 안고 노래한것은 시들던 꽃잎이 생기를 얻어 함초롬히 이슬을 머금고 곱게 피여난 재생의 꽃, 은혜로운 해빛을 받아안고 향기를 뿜으며 활짝 피여난 애국의 붉은 꽃이다.
그가 언제나 가슴에 고이 안고 노래한것은 칼바람 휘몰아치는 이역땅에서 눈서리 이겨내면서 이국의 들가에 피여난 억센 마음의 꽃이다.
붓 한자루에 홰불을 켜들고 세세년년 시인이 노래한것은 금수강산 삼천리에 피여날 온 겨레의 소원의 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하나의 삼천리 꽃으로 덮자
아름다운 꿈을 안고 나가는 이 길
달리는 배길에 파도는 사나와도
우리는 우리의 길 가고가리라
(가사《하나의 삼천리 꽃으로 덮자》)
이국에 찬바람 그 아무리 모질어도 봄바람을 늘 가슴에 안고 글을 쓰고 또 쓴 애국시인.
모란봉‚ 송도원‚ 팔공산, 무등산… 그리고 그의 고향땅에 보란듯이 피여날 아름다운 꽃을 고이 품고 살아온 시인 김두권.
8천만겨레의 가슴을 쾅쾅 울린 력사적인 4.27판문점선언 발표 1돐을 맞이한다.
하나된 삼천리에 평화와 번영, 통일의 꽃보라 흩날릴 그날은 멀지 않으리.
재일동포들뿐아니라 북과 남‚ 해외의 교포들도 그가 지은 노래를 잊지 않으리.
(조선대학교 비상근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