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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만담배우 리순홍
《통일신보》주체110(2021)년 5월 24일
타고난 만담배우 리순홍
웃음이 없는 생활에 대해 생각할수 있을가?
누구나 자기의 생활에 기쁨과 즐거움만이 있기를 바랄것이다.
하기에 사람들은 익살과 기지, 해학으로 생활에 웃음을 더해주는 희극배우들을 사랑하며 존경한다.
그들가운데는 타고난 만담배우로 불리우는 리순홍선생도 있다.
어느 누구라 할것없이 만담이라고 하면 리순홍을 떠올리고 리순홍하면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 그는 공화국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유명한 만담배우이다.
얼마전 《통일신보》 기자는 중앙예술경제선전대에서 일하는 공훈배우 리순홍선생(63살)을 만났다.
펜대를 총대로 바꾸어쥐고
리순홍선생에 대한 취재는 참으로 수월하지가 않았다.
여느때는 작품창작을 위해 현실속에서 살다싶이 하는지라 만나기가 어려웠고 그 이후에는 여러 단위들의 화술소품들을 보아주고 의견을 주느라 좀처럼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던것이다.
한주일만에야 어느 한 예술극장에서 리순홍선생에 대한 취재를 할수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안경너머로 보이는 익살기넘친 눈빛, 얘기할 때마다 다양하게 변하는 표정이며 손짓, 몸짓…
무대에서 만담을 할 때의 모습이나 평상시의 모습이 전혀 다를바가 없었다.
첫인상은 말그대로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모습이였다.
《기자동무뿐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나만 보면 그렇게들 웃습니다. 내가 모두에게 웃음을 준다는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나는 내 직업을 제일 사랑합니다.》
《다들 리순홍선생을 두고 타고난 만담배우라고 하는데 부모형제중에 그런 소질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까?》
《웬걸요, 단 한명도 없습니다.》
리순홍선생의 고향은 황해남도 해주이다. 그의 아버지는 량정사업소에서, 어머니는 편직물공장에서 로동자로 일하였다. 부모는 물론이고 7남매나 되는 그의 형제들가운데서 예술부문에 종사하는 사람은 리순홍선생뿐이라고 한다.
《내 희망은 의사가 되는것이였습니다. 굳이 예술과의 인연을 꼽자면 중학교를 다닐 때 성대가 좋아 성악소조에 한 1년정도 다닌것뿐이라 할가…》
그가 18살 나던 해인 1976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판문점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황해남도의학전문학교에서 공부하던 리순홍선생은 펜대를 총대로 바꾸어쥐고 용약 조국보위의 성스러운 길에 탄원해나섰다.
《사실 나의 재능은 보람찬 군사복무의 나날에 꽃피여났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병사생활을 그대로 담은 그의 소박한 재담은 중대병사들의 인기를 끌었고 군무자예술축전에까지 당선되였다.
이후 그는 조선인민군의 어느 한 예술선전대에 소환되여 이때부터 전문적인 화술배우로 성장하게 되였다.
고난의 행군을 웃음과 함께
공화국이 어려움을 겪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리순홍선생은 국립희극단으로 소환되게 되였다.
온 나라 인민이 허리띠를 조이며 혹심한 고난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때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웃음을 전문적으로 꽃피우는 국립희극단을 조직해주시고 각 예술단체들에서 웃음창조에 기질을 가지고있는 예술인들을 한사람한사람 골라 그곳에 보내주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던것이다.
《그때 최광호, 함영신, 박찬수, 최경희동무들을 비롯하여 재능있는 화술배우들이 국립희극단으로 오게 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여러차례나 우리들이 창조한 화술소품들을 보아주시면서 인민들이 좋아하는가도 물어보시고 잘한다고 치하해주시였으며 우리 식 웃음창조에서 나서는 많은 문제들도 가르쳐주시였습니다.》
리순홍선생은 온 나라 방방곡곡에 웃음을 싣고다니던 국립희극단시절 자신들도 미처 몰랐던 웃음의 힘, 웃음의 참의미를 느낄수 있었다고 한다.
또 그 나날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미래를 락관하며 만난을 웃음으로 헤쳐나가고있는 공화국인민의 랑만과 불굴의 의지도 체험하게 되였다고 한다.
《그때 나의 가슴속에는 겨울이 아무리 사나와도 봄을 이기지 못하는것처럼 시련의 광풍이 몰아쳐도 아름답고 고상한 우리 인민의 세계에서 웃음을 거둘수 없다는 확신이 세차게 자리잡았습니다. 추위와 굶주림, 언제 왜놈들이 달려들지 모르는 정황속에서도 흥겨운 씨름판을 벌리며 웃고 떠들었던 항일혁명투사들, 불타는 전호가에서 화선악기를 만들어 승리의 노래를 불렀던 전승세대들, 약동하는 희열의 노래를 부르며 벽돌 한장 성한것 없던 빈터우에 락원을 일떠세운 천리마시대의 주인공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신념의 구호를 높이 든 인민들… 바로 이것이 우리 인민의 모습이다, 이런 인민들에게 더 좋은 화술소품들을 창작하여 웃음을 더해주자, 이런 생각으로 밤낮이 따로 없는 창작전투를 벌렸습니다.》
리순홍선생은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구호가 안겨주었던 감동을 잊을수가 없다고, 지금도 그때의 정신세계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있다고 말하였다.
마를줄 모르는 젊음의 원천
리순홍선생이 가는 곳, 리순홍선생이 있는 곳은 언제나 웃음바다이다.
기자도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것이 취재를 한다는 느낌보다는 마치 한편의 만담을 보고 듣는것만 같았다.
리순홍선생의 말에 의하면 만담은 혼자서 다양한 역형상을 수행해야 하므로 여러명의 목소리를 내는것이 기초로 된다고 한다.
현재 그는 유원준, 전두영, 리상벽, 리동규선생을 비롯한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15명정도의 명배우, 명방송원의 목소리를 낼수 있다고 한다.
익살과 기지와 해학이 배합된 리순홍선생의 독특한 만담술은 그 누구도 따를수 없다.
《생활 그자체를 과장이나 허구가 없이 그대로 담아야 인민들이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작품으로 됩니다. 무작정 웃기겠다고 하다가는 오히려 웃음거리가 되기 쉽습니다.》
그가 다른 화술배우들과 차이나는 점은 모든 작품을 자신이 직접 창작하고 연기한다는것이다.
리순홍선생이 지닌 정열은 참으로 대단했다.
새 작품창작에 들어가면 하루에 보통 3시간정도밖에 자지 않는다고 한다.
그에게는 늘쌍 가지고다니는 수첩이 있는데 현실속에 들어가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나 행동에서 창작소재를 잡으면 그 자리에서 꺼내들고 써넣는 수첩이다. 그런 수첩이 수십여권이나 된다고 한다.
동료들은 그를 가리켜 《독학가》, 《정열가》라고 부른다. 문학작품은 물론 정치, 경제, 군사, 세계유모아에 이르기까지 그가 읽는 책의 주제는 실로 다양하고 그 분량도 방대하다.
그의 나이도 이제는 예순을 넘기였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마를줄 모르는 젊음의 원천이 있다.
그것은 지난 시기 여러차례나 그의 만담작품을 보아주시면서 안겨주신 위대한 장군님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사랑과 믿음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만담배우로서의 기질을 타고났다고, 리순홍동무가 출연한 만담작품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리순홍동무는 우리 인민들의 사랑을 받고있는 명배우라고 과분한 치하를 주시면서 특색있는 만담작품들을 창작할수 있도록 고무해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그의 미숙한 만담들을 여러편이나 보아주시고 잘한다고 평가도 해주시였으며 우리 인민들에게 웃음을 주는 좋은 희극화술소품들을 많이 창작할데 대하여, 후비를 잘 키울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인민사랑에 의하여 지금 온 나라에 얼마나 많은 문화정서생활기지들이 꾸려져있습니까? 가는 곳마다 인민의 웃음이 넘쳐나니 웃음소재가 차고넘칩니다. 그 소재들로 〈일요일〉, 〈명당자리〉, 〈제일이야〉를 창작했습니다. 웃음넘치는 인민의 생활을 그대로 담았더니 모두가 좋아합니다.》
가정에서도 익살군
리순홍선생은 가정에서도 익살군으로 만담배우의 기질을 남김없이 발휘하고있다.
《동네에서는 우리 집을 가리켜 화목한 가정, 우리 부부를 가리켜 〈사슴부부〉라고 한답니다. 그건 내가 〈잘못했수다.〉선수이기때문이지요. 집사람이 뭐라고 잔소리하면 난 무조건 〈잘못했수다.〉, 〈잘못했수다.〉입니다. 이러면 내게 차례지던 호박이 수박으로 변하고 온 집안이 화목해집니다.》
그의 집에서는 항상 웃음꽃이 활짝 피여난다고 한다.
안해인 배춘심녀성(61살)은 홍안의 시절 이름난 무용수였고 안무가였다.
리순홍선생의 딸 리향은 의학을 지망했던 아버지의 꿈을 이루어 평양의학대학을 졸업하고 평양산원에서 의사로 일하고있다. 아버지의 기질을 물려받아서인지 평양산원 응원대장으로 활약하고있는데 지난 시기 보건부문 체육경기대회에서 평양산원이 여러차례 1등하는데 한몫 단단히 했다고 한다.
아들 리원은 성악과 체육에는 소질이 있는데 만담과는 좀 거리가 있다고 한다.
《격세유전이라고 외손주녀석이 날 닮은것 같습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곧잘 할아버지흉내를 내서 사람들을 웃기군 합니다.》
한마디한마디가 다 웃음을 자아내는 리순홍선생의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싫지 않았고 시간이 가도 지루하지 않았다.
아쉬움을 남기며 일어서는 기자에게 리순홍선생은 말하였다.
《내가 만담배우로 이름을 떨칠수 있은것은 천성적인 기질이 있어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씨앗이라도 훌륭한 밭이 없으면 싹틀수 있겠습니까? 우리 인민들에게 영원히 지지 않는 웃음을 안겨주시기 위해 불면불휴의 로고를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사랑과 믿음에 더 좋은 만담작품을 창작하여, 더 많은 후비들을 키워내여 꼭 보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