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日本朝鮮人文学芸術家同盟

민족적풍습을 통해 본 조선민족의 심리적특성​

민족적풍습을 통해 본 조선민족의 심리적특성

주체112(2023)년 3월 16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민족적풍습에는 우리 인민의 아름답고 다양한 지난날의 생활이 집중적으로 반영되여있다.》

민족적풍습은 민족성원들에게 공통적이며 공고한 생활방식이다.

민족적풍습은 민족성원들이 민족이라는 사회적집단에 결합되여 생활하는 력사적과정을 거쳐오면서 형성되고 계승발전된다.

민족성원들은 공동생활과정에 공통된 리해를 가지게 되며 그에 기초하여 행동방식에서의 일치를 보장하게 된다. 이러한 일치한 행동방식이 집단적인 평가를 받고 그 실행이 사회적으로, 민족적으로 의무화되면 민족적풍습으로 된다. 민족성원들의 공동생활은 민족심리의 작용밑에 진행되게 되며 그런것으로 하여 민족적풍습에는 해당 민족의 심리적특성들이 담겨지게 된다.

조선민족은 장구한 력사발전과정에서 우수한 민족적풍습을 창조하고 발전시켜왔다.

조선민족의 민족적풍습에는 그 창조자인 조선민족의 심리가 반영되여있다.

조선민족의 풍습에서 찾아볼수 있는 심리적특성의 하나는 뛰여난 슬기와 재능이다.

매 민족은 자기의 능력, 자기의 슬기와 재능에 따르는 활동방식을 택하고 그에 따라 활동하게 된다. 조선민족의 고유한 활동방식은 조선민족의 슬기와 재능에 따라 취해지게 되였으며 그것이 공고화되여 민족적풍습으로 되였다.

이로부터 조선민족의 풍습에는 그들의 뛰여난 슬기와 재능이 풍부하게 담겨지게 되였다.

조선민족의 슬기와 재능은 우선 농업생산활동풍습에서 찾아볼수 있다.

농사차비를 착실히 하여야 농사에서 좋은 결실을 거둘수 있다는것을 일찍부터 잘 알고있은 문명한 조선사람들은 농사차비를 잘하는것을 매우 중시하였다. 이러한 농사차비와 관련된 풍습이 조선사람들에게서 창조되고 계승되여왔다.

조선사람들은 좋은 씨앗을 마련하고 잘 보관하는것과 관련된 풍습을 가지고있다.

조선사람들은 가을을 할 때 이삭이 크고 잘 여문것들로 씨앗을 골라 따로 건사하였다가 종자로 쓰군 하였다. 조선속담에 있는 《종자는 신랑색시 고르듯 하라》는 말은 바로 농사에서 종자가 제일 중요하므로 잘 여문것으로 장만해야 한다는것을 지혜로운 조선민족의 선조들이 일찍부터 터득하고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농사는 토지를 기본생산수단으로 하여 진행되는것만큼 논밭을 잘 걸구어야만 농사에서 큰 소출을 낼수 있다. 지혜로운 조선사람들은 일찍부터 이러한 리치를 터득한데 기초하여 논밭을 걸구는 여러가지 방법들을 탐구해내고 농사에 리용하여왔다.

조선사람들은 거름을 장만하여 논밭에 내며 논밭을 갈아엎는 등의 여러가지 논밭걸구기방법들을 창안리용하였다.

조선사람들은 농사에서 거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질좋은 거름을 장만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가을철에는 짚과 북데기를 모으고 여름철에는 연한 나무가지와 풀을 베여다가 웅뎅이에 쌓아두거나 집짐승우리에 넣어 걸군 다음 쳐내여 쌓아두었다가 거름으로 쓰기도 하고 진거름과 오줌을 섞거나 인분과 재를 섞어서 썼으며 구들재를 그대로 쓰는 등 거름원천을 최대한으로 리용하였다.

논밭갈이를 통해 땅을 걸구는 방법에는 여러벌갈이와 몇가지 작물을 미리 심어 일정하게 자랐을 때 갈아엎어 썩이는 방법, 연한 개버들가지나 풀을 베여다 펴놓아 그것이 마른 다음 불태우고 갈아엎는 방법 그리고 유기질이 많이 들어있는 흙을 깔아주는 흙깔이법 등 여러가지가 있다.

농사차비와 관련된 이러한 풍습들은 모두 오랜 기간에 걸치는 농사과정에 창안도입된것으로서 자연의 리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실천활동에 적용해나가는 조선민족의 지혜와 재능을 잘 보여준다.

조선민족의 슬기와 재능은 또한 살림집풍습에서 찾아볼수 있다.

집터를 닦고 집을 지으며 온돌을 놓고 생활하는 풍습에서 조선민족의 지혜와 재능을 잘 엿볼수 있다.

집터닦기는 집터를 평지보다 높이 돋구고 그것을 잘 다지는것으로서 고대시기부터 전해오는 조상전래의 풍습이였다.

집터를 높이고 든든히 다지는것은 여름철에 비가 많이 내리는 조선의 자연기후적특성과 집자리를 대체로 산기슭에 정하던 관습에 알맞는것이였다. 집터를 일정하게 높이고 잘 다져야 집의 견고성을 보장하며 여름철에 습기를 방지하고 통풍도 잘되게 할수 있었다.

집터를 높이는것은 온돌을 놓아 난방을 보장하는 조선민족의 고유한 풍습에도 부합되는것이였다. 일반적으로 온돌에 불이 잘 들게 하려면 불을 때는 부엌바닥은 낮고 온돌면인 방바닥은 상대적으로 높아야 하기때문에 집터를 높이는것이 합리적이였다.

집터를 높이는것은 살림집에 토방을 쌓아 보다 문화적인 생활을 진행하도록 하는데도 효과적이였다.

지혜로운 조선민족은 이러한 여러가지 측면들을 충분히 타산한데 기초하여 집터를 평지보다 돋구고 다진 다음 그우에 집을 짓는 문명한 풍습을 창조하였다.

조선민족에게 고유한 온돌을 놓고 생활하는 풍습은 건강과 생활상편리를 충분히 고려한 조선민족의 지혜와 재능을 잘 알수 있게 한다.

조선민족이 개발한 구들은 구조가 간편하지만 여름철에는 집안의 습기를 방지하고 겨울에는 뜨거운 열기를 오래 보존할수 있어 추위를 방지하고 집안을 따뜻하게 보존할수 있게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혈액순환이 잘되고 잠을 잔 후 개운해지도록 하며 건강에 좋고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는것으로 하여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고있다.

조선민족의 슬기와 재능은 또한 민족음식풍습에서 찾아볼수 있다.

슬기롭고 재능있는 조선인민은 진지한 탐구심을 가지고 여러가지 음식재료들의 선정과 그 가공에 대하여 연구하는 과정에 새롭고 건강에 좋은 음식들을 창안하였다.

음식을 만들면서 그 맛과 모양, 색뿐아니라 약리적기능까지 생각하는 폭넓은 사고를 진행한데로부터 음식의 고유한 맛을 내면서도 색갈과 모양이 곱고 그러면서도 건강증진에 유익한 음식들을 만들게 되였다.

조선민족음식은 색갈이 아름답고 모양이 고운것이 특징이다.

음식의 색갈과 모양은 사람들의 식욕을 돋구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선음식은 료리하는 과정에 음식감 자체의 자연색을 잘 살리고있을뿐아니라 조선의 자연계에 풍부한 식용식물의 색소물질들을 그대로 리용하여 음식물의 품위를 돋군다.

조선음식은 음식맛이 독특하고 냄새가 향기로와 사람들의 입맛을 당기게 하는것이 특징적이다.

이것은 음식물의 재료들을 고르롭게 쓰는 음식솜씨와 관련된다.

조선사람들은 음식을 만들 때 간장, 된장, 고추장, 소금 등을 잘 배합함으로써 민족음식의 독특한 맛이 나게 하였다. 그리고 파, 고추, 마늘, 생강, 후추, 겨자 등과 같이 자극성과 향이 있는 조미료와 고소한 맛과 향기를 풍기는 참기름 등 여러가지 식물성기름과 맛있는 당분을 합리적으로 배합함으로써 음식맛을 돋구었다.

조선민족음식은 산뜻하고 향기로운 맛, 생큼하고 달콤한 맛, 시원하고 상쾌한 맛, 얼근하고 구수한 맛, 먹을수록 더해지는 감칠맛으로 하여 어떤 음식이나 다 입맛을 돋구고있다.

조선음식은 그 자체가 건강을 증진시키고 병을 예방하거나 낫게 하는 약리적작용을 높은 수준에서 보유하고있는것이 특징적이다.

조선사람들은 주식인 밥을 짓는데서 오랜 옛날부터 쌀에 적당한 량의 물을 두고 처음에는 센불로 가열하다가 밥이 끓으면 약하게 하여 잦히고 다시 불을 잠간 세게 하였다가 뜸을 들여 완성하였다. 이렇게 지은 밥은 영양분의 손실이 없고 찰기가 있으며 부드럽고 기름기가 돌뿐아니라 보기에도 먹음직하고 소화흡수률도 높다.

조선인민은 밥을 맛있고 영양물질의 손실이 없게 지어먹었을뿐아니라 여러가지 영양분을 고루 섭취할수 있도록 잡곡도 섞고 고기, 물고기, 남새 등을 배합하여 지었다. 그리하여 잡곡밥, 나물밥, 비빔밥, 볶음밥 등 여러가지 밥을 만들었는데 그 가지수가 매우 많았다.

부식물가공에서는 단순히 볶고 끓이고 지지고 굽는 등 물리적방법뿐아니라 김치, 쉬움떡, 식혜, 두부 등과 같이 삭히고 발효시키는 화학적인 방법도 적용함으로써 약리적작용이 충분하게 하였다.

음식을 통한 조선민족의 지혜는 특히 우리 인민이 즐겨먹은 김치와 장을 통하여 잘 알수 있다.

김치와 장은 조선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즐겨먹는 특색있는 민족음식이다.

김치와 장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할뿐아니라 맛이 좋고 영양가가 높은것이 특징이다.

김치는 얼큰새큼하고 쩡한 맛이 조화를 이루는 아주 상쾌한 맛과 향기로운 냄새, 매우면서도 시원한 감칠맛, 짜면서도 상큼한 맛이 좋아 한번 더 먹고싶게 하는 당길맛이 있으며 달콤하면서도 입맛을 개운하게 해주는 독특한 맛과 발효작용에 의하여 생기는 높은 약리적기능으로 하여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고있으며 조선민족의 자랑으로 되고있다.

김치를 담글 때 배추, 무우, 오이, 미나리, 쑥갓, 가지, 갓 등 신선한 남새와 함께 향긋한 산나물을 기본재료로 하면서 여기에 고추, 파, 마늘, 생강, 소금, 조미료와 과일, 고기나 물고기 또는 젓갈 등을 배합하여 만들었기때문에 김치가 적당한 온도에서 익는 과정에 각이한 재료의 맛들이 서로 잘 조화되여 시원하면서도 쩡한 맛, 향긋하면서도 상쾌한 맛, 달콤하면서도 새큼한 맛을 가지게 된다.

조선사람들속에서는 장을 담그는 풍습이 일찍부터 생겨났다.

조선에서 장을 만들어온 력사는 장의 기본재료인 콩이 원시시기부터 재배된것만큼 매우 오래다.

장은 조선사람들의 창조적인 지혜와 음식가공기술의 발전, 풍부한 경험에 의해 날로 그 질이 개선되고 종류도 늘어났으며 맛도 더 좋아졌는데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이르러 장담그는 법은 크게 발전하였다.

장이 구수하고 시원한 맛과 음식물의 소화 및 영양섭취를 돕고 내장기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것이 알려지면서 장을 담그는 기술은 다른 나라에까지 전해졌다.

조선민족의 슬기와 재능은 또한 지능겨루기놀이풍습에서 찾아볼수 있다.

조선사람들은 일찍부터 사람들의 지혜와 재능을 계발시키는 수많은 지능겨루기놀이들을 창안하고 부단히 발전풍부화시켜왔다.

그중에서 연원이 오랜것은 윷놀이, 바둑, 꼬니 등이다.

윷놀이는 가락을 던져 나오는 수에 따라 말을 움직여 승부를 겨루는 지능놀이이다.

윷놀이에는 여러가지 규칙과 방법들이 적용되는데 승부는 말을 어떻게 쓰며 윷을 어떻게 놓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윷놀이는 정신을 집중하고 머리를 쓰지 않으면 이기기 어려운 놀이이다.

바둑은 바둑돌을 움직여 승부를 겨루는 경기이다.

바둑은 서로 바둑돌을 하나씩 놓아가며 두는 경기로서 그 수가 오묘하고 다양하여 사람들의 사고력을 키우고 지혜와 재능을 계발시키는것으로 하여 일찍부터 군사들이 전술을 익히는 수단의 하나로도 많이 리용되였다. 바둑에는 여러가지 노는 방법과 규칙들이 있는데 대체로 서로 엇바꾸어가며 바둑돌을 하나씩 놓아 상대방의 진지를 포위하는것이 일반적이다.

바둑은 바둑판과 바둑돌이 있으면 쉽게 둘수 있는것으로 하여 사람들속에서 널리 장려되였다.

꼬니는 말을 움직여 노는 지능겨루기놀이의 하나이다.

꼬니는 때와 장소는 물론 아무런 준비없이도 손쉽게 놀수 있는 놀이로서 땅에 판을 그려놓고 노는 경우가 많다. 꼬니는 로동생활과정에 쌓인 피로를 풀며 휴식의 한때를 즐겁게 보내기 위하여 하는 지능겨루기놀이로서 그 종류와 노는 방법에는 수십가지가 있다.

꼬니는 그 수가 깊고 다양하므로 노는 사람들로 하여금 머리를 쓰지 않고서는 이길수 없게 하는 매우 흥미있는 놀이의 하나이다.

조선사람들이 즐겨한 이러한 지능겨루기놀이들은 하나같이 그 수가 깊고 다양한것으로 하여 진지한 사색을 요구하며 단위시간안에 빨리 머리를 써야 하는것으로서 사고의 기민성과 령활성을 보장해야 한다. 조선민족은 뛰여난 슬기와 지혜를 지닌것으로 하여 예로부터 여러가지 지능겨루기놀이들을 즐겨하였으며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왔다.

민족의 슬기와 재능을 떼여놓고서는 사물발전의 리치에 대한 파악도, 자기에게 필요한 행동방식의 선택도 옳게 진행할수 없다.

조선민족은 뛰여난 슬기와 재능을 지닌것으로 하여 리치에 맞고 필요한 생활과 활동방식을 선택하였으며 그것이 공고화된 고유한 민족적풍습을 지니게 되였다.

조선민족의 풍습에서 찾아볼수 있는 다른 하나의 심리적특성은 자기 민족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다.

조선민족은 한피줄을 잇고 한강토에서 유구한 력사를 창조해오는 과정에 자기 민족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지니게 되였다.

조선민족은 한피줄을 잇고 조상대대로 자기의 령토에서 살아오면서 같이 생활하는 마을사람들, 이웃들과의 긴밀한 뉴대를 이룩하였다. 소꿉시절부터 함께 자라며 꿈을 키우고 생활해온 자기의 이웃들에 대한 고마움과 귀중함에 대한 체험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의 고향, 자기의 이웃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지니게 하였다.

이것은 단순히 고향에 대한 사랑, 이웃들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민족에 대한 사랑과 잇닿아있는것이였다.

자기 민족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민족의 령토, 력사와 문화, 조상대대로 살아온 나서자란 고향과 고향사람들에 대한 애착심, 그것을 해치려는 원쑤들에 대한 증오심 등으로 표현된다.

조선민족의 풍습에는 자기 민족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보여주는 이러한 특성이 담겨져있다. 그것은 조선사람들의 민속놀이풍습을 통하여 잘 알수 있다.

조선의 민속놀이에는 체력단련놀이, 가무놀이를 비롯하여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모든것에 공통적인것은 조국과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담겨져있는것이다.

조선사람들이 예로부터 즐겨한 체력단련놀이들에는 활쏘기, 말타기놀이, 수박, 씨름 등이 있으며 가무놀이로서는 《강강수월래》 등이 있다.

대표적인 무술련마놀이인 활쏘기는 활에다 화살을 메워 목표물을 쏘아맞히는것을 겨루면서 노는 무술련마놀이로서 오랜 력사적연원을 두고있다.

말타기놀이는 말을 타고 달리면서 여러가지 기교를 부리는 무술련마놀이이다.

지난날의 말타기에는 말을 탄 상태에서 활쏘기, 창던지기, 칼쓰기 등과 같은 무술을 익히는것과 달리는 말우에서 다양한 재주를 보여주는 마상재, 룡마회와 같은 놀이들이 있다.

맨손으로 상대방을 치거나 때리며 상대방의 공격을 막는 손치기놀이인 수박은 전투적이고 실용적이였기때문에 오래전부터 존재하였으며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중요한 무술훈련종목의 하나로 되여있었다.

가무놀이 《강강수월래》는 지난날 반침략조국방위를 위한 조선인민의 투쟁을 반영한 가무놀이의 하나이다.

《강강수월래》라는 말에는 크게 두가지 뜻이 담겨져있다. 그것은 포악한 오랑캐 왜놈들이 강(바다)을 건너 침략해오는데 따라 수군들은 응당 경각성을 높여 놈들을 일격에 물리쳐 없애달라는 인민들의 절절한 념원과 주위를 경계하라는 뜻을 담고있다.

이러한 민속놀이들은 다 자기 고향,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이 맥박치는것이다.

조선사람들은 이러한 민속놀이들의 목적을 사랑하는 고향, 조국과 민족을 지키는데 두었으며 민속놀이들을 하는 과정에 자기 조국과 고향, 이웃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더욱 굳게 하였다.

그들은 무술놀이나 말타기와 같은 민속놀이들을 하는 과정에 자기 고향산천의 아름다움과 귀중함을 체험하게 되였다.

그리고 전장에서 그 위력을 과시하게 되면서 그로부터 긍지와 보람을 느끼게 되였으며 더욱 분발할 각오를 가지게 되고 조국의 귀중한 모든것을 지키려는 강의한 의지, 원쑤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을 키우게 되였던것이다.

조선민족의 풍습에서 찾아볼수 있는 다른 하나의 심리적특성은 열렬한 정의감이다.

조선민족은 자기의 성실한 노력으로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투쟁을 벌려오는 과정에 정직성과 근면성, 성실성을 중요한 품성으로 체현하게 되였으며 언제나 옳바른것을 지향하며 그것을 적극 실현해나가는 정의감을 지니게 되였다. 때문에 조선민족은 그 어떤 특세나 특권을 바라지 않고 자기의 노력에 해당한 보수를 받는것을 응당한것으로 여기며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적극 떨쳐나선다.

조선민족의 풍습에는 그들의 정의감이 잘 반영되여있다.

조선민족의 정의감은 무엇보다먼저 도덕생활풍습에서 찾아볼수 있다.

례의도덕은 인간생활에서 지켜야 할 행동규범으로서 정의감을 보여주는 기준으로 된다.

정의감이 강한 조선민족은 인간생활의 리치에 맞게 생활하는것을 지향하고 그것을 반영한 례의도덕을 지니고 생활하였다.

사람은 사회적존재로서 사회적집단속에서만 살수 있으며 집단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과의 공동활동속에서 자기의 요구와 리익을 실현해나가게 된다.

총명한 조선민족은 일찍부터 자기자신보다도 다른 사람을 위해주고 나라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것을 정의로운것으로 여기게 되였다. 나라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과정을 통하여 조선민족은 자기의 고유한 행동규범, 례의도덕을 지니게 되였으며 그와 관련된 풍습들을 형성발전시키였다.

우선 일상생활풍습을 들수 있다.

조선사람들은 나이많은 웃사람을 존경하고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풍습을 가지고있다.

그것은 웃어른들에게 음식을 먼저 대접하는 풍습에서 잘 나타난다. 예로부터 조선사람들은 밥을 푸거나 국을 뜨고 반찬을 담을 때 먼저 웃어른들의것부터 담았으며 상을 차릴 때에도 될수록 웃어른들에게는 좋은 음식을 보장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특히 로인들에게는 음식을 천천히 들면서 식사하도록 독상을 차려서 대접하였으며 웃어른들이 먼저 수저를 든 다음에야 아래사람들이 수저를 들군 하였다. 그리고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의례히 먼저 로인들에게 대접하는것을 례의로 삼아왔다.

가정의 주부들은 나이많은 웃어른들의 식성과 건강상태를 고려하여 그에 맞는 음식을 특별히 만들어 대접하기에 힘썼다.

늙은 소경어머니를 부양한 온달이나 효녀 지은에 대한 력사기록자료들은 비록 어려운 생활형편에서도 부모에게 음식을 정성껏 대접하기 위하여 노력한 조선인민의 아름다운 풍습을 잘 보여주고있다.

조선사람들은 손님을 성의있게 대접하는 풍습을 가지고있다.

손님이 오면 반갑게 대해주고 정성껏 대접하는것은 예로부터 지녀온 조선인민의 고유한 미풍이다.

그것은 13세기 기록인 《제왕운기》에서 려행자가 량식없이도 려행할수 있고 그곳 사람들은 집을 비우면서도 문을 닫아거는 법이 전혀 없다고 한것을 보아도 잘 알수 있다.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여 성의껏 대접하는것은 조선인민의 미풍량속으로서 지난날 조선을 찾아왔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잊을수 없는 인상을 주었다. 19세기말에 조선을 려행한 한 외국인은 《조선지》라는 책에 《나는 많이 려행하였다. 그러나 나는 아무데서도 조선사람들에게서와 같이 이렇게도 친절한 접대를 받아본적이 없다. 조선사람들은 려행자들이 머무는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친절하게 접대해줌으로써 려행자들을 반하게 한다. 세상에서 이렇게도 성격상 사람의 마음을 끄는 특성을 가진 인민들을 발견하기는 힘들것이다.》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조선사람들은 이웃간에 음식을 나누어먹으며 화목하게 생활하는 풍습을 가지고있다.

조선사람들은 색다른 음식을 만들었을 때에는 그것이 비록 적은것이라 하더라도 이웃집에 조금씩 돌려서 맛을 보게 하였고 손님들을 청하여 나누어먹기도 하였다. 이웃에서 잔치를 하면 온 동네가 도와주며 잔치음식을 서로 나누어먹었다. 명절때에도 이웃들과 음식을 나누어먹으면서 함께 즐기는것을 풍습으로 여겨왔다. 뿐만아니라 어려울 때나 불상사가 나면 음식을 만들어가지고가서 이웃을 도와주었다.

이처럼 조선민족은 웃사람을 존경하고 서로 도우면서 화목하게 사는 생활풍습들을 지니고있다. 이러한 풍습들은 조선민족의 선량한 마음과 정의감을 보여주는 전통적인 미풍량속이다.

또한 살림집생활풍습을 들수 있다.

례의도덕이 바른 조선사람들은 살림집을 짓고 쓰고사는데서 사람들사이에 고상한 례의범절을 지켜왔으며 그것을 반영한 풍습을 지니게 되였다.

조선사람들은 예로부터 이웃에서 집을 짓거나 집들이를 할 때 온 마을이 떨쳐나서 자기 일처럼 돕는 풍습을 지니고있었다.

지난날 가난한 인민들이 살림집을 하나 장만한다는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였다. 더우기 가정의 몇몇 식구들의 힘으로 집을 짓는다는것은 매우 힘겨운 일이였다. 이웃간에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것을 인간생활의 마땅한 도리로 여기는 조선사람들은 집짓는 일을 서로 도와 진행하는 아름다운 풍습을 창조하였다. 집을 지을 때 서로 돕는 일은 그 누구의 초청이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진행되였으며 자기의 일로 여기면서 성의껏 진행되였다. 이웃에서 집들이를 하게 되면 마을사람들이 떨쳐나서 이사짐을 날라다주거나 새살림에 도움이 될수 있는 간단한 일용품을 기념으로 가져다주는것을 하나의 례의로 여겼으며 주인은 그에 대한 답례로서 간단한 음식을 대접하였다.

집짓기와 집들이를 도와주는 이러한 아름다운 풍습은 이웃간에 화목하게 사는것을 사회도덕적인 생활준칙으로, 정의로운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전통적으로 지켜오는 조선민족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조선사람들은 방안출입과 리용에서도 아름다운 풍습을 지니고있었다.

방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반드시 신발을 밖에 벗어놓고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며 밖으로 나올 때에도 역시 지게문을 큰 소리가 나지 않게 여닫는것은 조선사람들이 예로부터 지켜온 례절이였다.

조선사람들은 가정에서 방의 아래목은 로인이나 웃어른들에게 권하고 젊은이들은 웃목이나 웃방에 자리를 차지하는것을 례절로 지켜왔다. 이것은 따뜻한 아래목이 늙은이들에게 차례지게 함으로써 웃어른들을 존경하며 그들에게 보다 좋은 생활조건을 마련해주려는 조선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그대로 반영한 미풍이였다. 이로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겨울철에는 물론 다른 계절에도 로인들은 주로 온돌방 아래목에서 생활하는것이 하나의 풍습으로 굳어지게 되였다.

조선사람들은 이웃집을 방문하거나 손님을 맞이하는데서도 아름다운 풍습을 지니고있다.

조선사람들은 반드시 밖에서 주인을 찾고 응답이 있을 때에만 집안으로 들어가 공손히 인사를 하며 주인이 권하는데 따라 자리에 앉아서 용무를 보는것을 례절로 지켜왔다.

이것은 이웃간에 서로 존중하며 신의를 두텁게 하는것을 고상한 품성으로 여기는 조선인민의 전통적인 례절이였다.

조선사람들은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반드시 일어서서 반가이 맞이하며 방안에 들어오면 방아래목으로 자리를 권하는것을 례절로 여겼다. 특히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에는 방석을 권하였다. 이것은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는 조선민족의 전통적인 미풍의 하나였다.

이처럼 조선인민은 례의도덕을 장려하는 고상한 살림집생활풍습을 창조하고 지켜왔다.

조선민족에게서 찾아볼수 있는 례의도덕을 장려하는 이러한 풍습들은 인간생활의 리치에 맞는 옳바른것을 지향하는 조선민족의 정의감을 잘 보여주는것이다.

조선민족의 정의감은 다음으로 부정적인것을 비판하고 긍정을 지향하는 민속놀이풍습에서 찾아볼수 있다.

조선의 민속놀이의 하나인 탈놀이에는 옳바른것을 지향하는 조선인민의 정의감이 잘 반영되여있다.

탈놀이는 지난날 조선인민의 반봉건적지향을 담은 대표적인 민속놀이였다.

지방적특색을 띤 지난날의 탈놀이에는 봉산탈놀이, 양주산대놀이, 통영오광대놀이 등이 있었다.

봉산탈놀이는 봉산을 중심으로 황해도일대에 널리 퍼져있었다. 봉산탈놀이는 크게 춤과 극의 두 부분으로 나뉘여있었는데 주로 음력 4월과 5월사이에 놀았다.

봉산탈놀이외에 양주산대놀이, 통영오광대놀이 등 탈놀이들이 많았는데 다만 등장인물과 춤가락, 시설 등이 지방에 따라 약간씩 달랐을뿐이였다. 

조선민족의 풍습에서 찾아볼수 있는 심리적특성의 다른 하나는 협조정신이 강한것이다.

조선민족은 하나의 피줄을 잇고 유구한 력사적기간 한강토안에서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면서 민족의 력사를 창조해오는 과정에 강한 협조정신을 지니게 되였다.

세계에는 수백개의 민족이 있으며 그 발생과 발전에서 각이한 력사를 가지고있지만 조선민족처럼 단일민족으로서 수천년의 력사를 창조해온 민족은 드물다.

세계의 많은 민족들은 여러 인종과 종족의 사람들로 형성되였다. 이러한 민족들과는 달리 조선민족은 혈통의 단일성을 보장하면서 이 땅에서 유구한 력사를 창조해왔다. 조선민족에게 체현되여있는 혈통의 단일성과 유구한 력사는 민족성원들이 서로의 지지와 협조를 이룩하는 특성을 지니게 하였다.

조선민족의 생활과 활동과정에는 협조정신이 높이 발휘되였고 그것을 반영한 여러가지 민족적풍습들이 형성되였다.

조선민족의 강한 협조정신은 공동로동조직을 무어 서로 도우면서 농사일을 하는 풍습에서 찾아볼수 있다.

조선사람들은 예로부터 공동로동조직을 뭇고 어렵고 품이 많이 들며 시기성을 띠는 농사일들을 힘을 합쳐 해나가는 풍습을 가지고있었다.

예로부터 전해져온 농사일과 관련한 공동로동조직으로서는 소겨리, 품앗이, 보계, 황두, 두레, 울력 등이였다.

조선의 농민들이 자체로 무어 운영해온 소겨리와 품앗이는 조선민족이 지니고있는 아름다운 호상협조정신의 발현이였다.

소겨리는 두마리의 소를 중심으로 무어진 로력협조조직이였다.

소겨리는 보습(쟁기)에 소를 메우는 거의 모든 농촌에서 운영되였다. 소겨리풍습은 밭농사를 많이 짓던 중부이북지대에 널리 보급되여있었으며 중부이남의 산간지대에도 부분적으로 있었다.

소겨리는 소를 가지고있는 두집을 중심으로 로력수와 논밭의 넓이 등을 고려하여 한마을 이웃에 살면서 인간적으로 가깝거나 인척관계에 있는 4~6호단위로 무었다. 소겨리는 새해 농사일이 시작되기 전인 년초에 서로 의논하여 약속하는것으로 이루어졌는데 대체로 한번 무으면 큰 변동이 없는 이상 해마다 그대로 운영되였다.

소겨리에서 공동로동의 대상은 주로 품이 많이 드는 밭갈이, 씨붙임 등이였다.

공동로력협조형태로서의 소겨리는 소가 부족하였던 어려운 조건에서도 여러 집이 한데 모여 서로 도우며 소품을 합리적으로 리용함으로써 공동로동의 우월성을 발양시켜 힘든 농사일을 제철에 성과적으로 해제끼게 하였다.

같은 소겨리집들은 일상생활에서도 매우 친근하게 지냈다.

혼인, 상사, 제사, 집짓기 등 무슨 일이나 어려운 일이 제기되면 서로 발벗고 도와주었고 별식이 생겨도 서로 청하거나 가져다주었다.

《겨리사촌》이라는 말은 겨리집들사이의 이러한 친밀한 관계를 반영한것이였다.

이처럼 소겨리는 소가 부족한 조건에서도 어렵고 힘든 밭갈이와 씨붙임을 호상협조하여 성과적으로 보장할수 있게 하고 이웃간의 화목을 두텁게 해준 아름다운 로동생활풍습으로서 조선민족의 협조정신을 잘 보여준다.

품앗이는 농민들이 서로 도우면서 공동으로 농사일을 해나가는 로력협조형태였다.

품앗이의 《품》은 로동력을, 《앗이》는 지고갚는것을 의미하였다. 소겨리와의 차이점은 소품과 일군의 공수를 계산하여 로력으로 보상해주는 원칙에서 로력협조를 한것이였다.

품앗이약속은 농사일이 시작되기 전에 하였고 품앗이일은 주로 시간을 다투는 봄철씨붙임, 모내기때에 가장 많이 하였는데 김매기와 풀베기때에도 하였다. 추수와 탈곡때는 그때에 가서 다시 무었다.

품앗이에서 공수계산은 소를 빌려썼을 경우에는 대체로 소 한공수에 사람품으로는 두 공수로, 사람의 품인 경우에는 성별, 년령을 가리지 않고 같은 공수로 보상해주면 되였다.

이것은 품앗이 역시 서로 도우면서 농사일을 제철에 끝내려는 조선민족의 협조정신을 반영한것이라는것을 알수 있게 한다.

보계는 지난날 농민들이 힘을 합쳐 물을 공동으로 리용하여 소출을 더 내기 위하여 무은 공동로동조직이였다.

보는 작은 강과 시내(개울)에 뚝을 쌓고 물을 저장하였다가 필요할 때 주로 모내기철에 빼서 쓰는 매우 단순한 수리시설이기는 하지만 한두 농가의 힘으로는 만들수 없었고 관리할수도 없었다.

강이나 시내에 뚝을 막는 일이며 넓은 들판에 펼쳐진 논들에 물을 대기 위한 인수로를 만드는 일 등에는 많은 로력이 필요되였다. 그리고 물의 리용은 한두사람만이 아니고 마을의 모든 농가의 리해관계와 직접 련결되여있었다. 이로부터 보에 대해서 리해관계를 가지는 마을의 모든 농가들을 망라하는 조직을 무었는데 이것이 보계였다.

지난날 벼농사를 하는 마을들에는 보계가 보급되여있었다.

황두는 김매기를 제철에 하기 위한 공동로동풍습이였다.

황두는 조선의 청천강하류지역을 중심으로 한 서북부일대의 마른갈이지대의 마을들에 조직된 공동로동조직이였다. 마른갈이농사는 물원천이 없는 곳에서 하는데 논을 갈고 벼씨를 뿌린 다음 비가 오기 전에는 논에 물을 대지 못하므로 김이 많이 나게 된다. 그러므로 김을 제철에 잘 매는것은 특히 마른갈이농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황두는 흔히 부락단위로 김매기철에 20~30명의 장정로력으로 무어졌으며 그 가운데서 신망이 있고 농사경험이 많은 사람이 계수(책임자), 부계수로 선출되였으며 그들의 지휘밑에 운영되였다. 황두가 활동한 계절은 그것이 주로 김매기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인것만큼 보통 하지(6월 21일~22일)로부터 김매기가 끝날 때까지였다.

황두에 의한 김매기에 대하여 《천일록》산천풍토조에는 《평안도에서는 봄과 여름에 농사터에 일찍 나가고 늦게 돌아오며 평평한 전야와 넓은 들판에 남녀가 밭에 가득차서 서로 힘을 합쳐 김을 매고 흙덩이를 부스러뜨리며 함께 농부가를 부르는것이 보기에 황홀하다.》고 하였다.

두레는 부락단위로 조직하였는데 주로 모내기와 김매기를 집단적으로 진행하기 위하여 무어졌다.

모내기나 김매기철에 마을에서 두레의 활동은 눈에 띄게 나타났다. 두레는 마을안의 건장한 청장년들로 조직되였는데 그들은 두레에 참가하는것을 의무로 여겼다.

울력은 황두나 두레와 구별되는 공동로동조직이였다.

울력은 조선의 강원도일대에 널리 보급되여있었는데 주로 마을에서 공동으로 진행해야 할 일들을 집단적으로 하는 조직이였다.

이곳 인민들은 이웃에 집을 짓거나 로력이 부족해서 씨붙임, 김매기, 가을걷이 등 농사일을 제철에 하지 못하는 농가가 있는 경우에 울력을 무어 집단적으로 도와주었다. 이밖에 우물파기, 길닦기, 보막이 등도 울력으로 하였다.

울력은 계절과 작업대상에 구애됨이 없이 마을에서 집체적으로 해야 할 일이 제기되였을 때에는 임의의 시기에 무어지고 활동하였는데 이것이 두레나 황두와 구별되는 점이였다.

울력의 활동에서 특이한 점은 우선 마을청장년들이 의무적으로 울력에 참가하는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며 낮에는 자기 집의 일을 하고 달밤이나 새벽에 울력에 의한 공동로동에 참가한것이다.

울력의 특이한 점은 또한 모든 성원들이 자기 일을 하고난 다음 여가에 집단로동에 참가하는것만큼 울력에 참가한 로력공수가 많고적은데 대해서는 고려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로력수에 의한 보상이 따로 계산되지 않은것이다.

다만 모임에서 좌상이 울력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한 우수한 청년들에 대한 도덕적인 높은 평가를 하였을뿐이다.

울력에 의하여 도움을 받은 집주인은 울력성원들에게 막걸리나 떡을 대접하는것으로써 사례를 하였다.

울력의 이러한 특징은 협조조직가운데서 울력이 미풍적인 요소들을 가장 많이 가지고있는 공동로동조직이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예로부터 전해져온 조선민족의 로동활동풍습에는 힘을 합쳐 서로 도우면서 일하고 생활하는것과 관련된것들이 많다.

분산적인 소농경리와 공동로동, 공동활동이 서로 모순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공동로동조직을 뭇고 활동하게 된것은 바로 서로 도우면서 일하고 생활해나가는 조선민족의 심리적특성, 협조정신이 작용했기때문이다.

조선민족의 강한 협조정신은 오늘 사회주의조국과 민족의 부강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에서 서로 돕고 이끌며 기적과 혁신을 창조해나가는데서 더 높이 발휘되고있다.

오늘 우리 인민은 하나의 화목한 대가정을 이루고 서로 돕고 이끌면서 민족의 부강번영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을 벌리고있다. 자기자신보다도 다른 사람들과 집단을 더 귀중히 여기고 그를 위해서는 자기 한몸도 서슴없이 바치는 고상한 미풍이 이르는 곳마다에서 활짝 꽃펴나고있으며 부강조국건설을 위한 투쟁에서 지혜와 열정을 합쳐 힘찬 전진을 이룩하고있다.

사회주의조선에서 이룩되고있는 모든 자랑찬 승리와 성과들은 위대한 수령, 위대한 당의 두리에 굳게 뭉쳐 나아가는 전체 인민의 단합된 힘, 서로 돕고 이끌며 전진해나가는 집단주의정신을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는것이다.

조선민족의 우수한 심리적특성은 민족적풍습을 비롯하여 민족성원들에 의해 창조된 여러가지 문화재부들에 반영되여있다.

공화국의 인민들은 이렇듯 우수한 심리적특성을 가진 조선민족된 긍지와 자부심을 깊이 간직하고 나라와 민족의 부강번영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전개해나갈것이다.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박사 안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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