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日本朝鮮人文学芸術家同盟

불후의 고전적로작 《주체문학론》

김  정  일

주 체 문 학 론

1992년 1월 20일

오늘 우리 인민은 격동하는 력사의 흐름속에서 주체의 조종간을 억세게 틀어잡고 희망찬 21세기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고있다. 력사가 전진하는 과정에는 일시적인 난관과 우여곡절이 있을수 있으나 인류가 자주의 길, 사회주의길로 나아가는것은 막을수 없는 시대의 추세이다. 문학은 마땅히 이 위대한 시대와 발걸음을 같이하여야 하며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에 적극 이바지하여야 한다.
 문학이 시대와 인민앞에 지닌 영예로운 사명을 다하려면 자주의 길로 나아가는 인민대중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근본적인 변혁을 일으켜야 한다. 문학분야에서의 변혁은 문학예술혁명을 통하여서만 실현된다. 혁명은 그 앞길을 밝혀주는 심오한 사상과 리론을 요구한다. 옳바른 지도사상과 리론, 방법을 가지지 못한 혁명은 라침판없는 배와 같이 향방을 잃고 방황하기 마련이다. 우리 시대 문학의 향로를 밝혀주는 등불은 위대한 주체사상이다.
 우리는 주체사상의 기치를 높이 들고 문학예술혁명을 선포하던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기간 문학분야에 남아있는 온갖 낡은것을 쓸어버리고 주체의 신념과 의지에 따라 우리 식의 문학창작원리와 형상구성법칙을 정립하여 실천에 철저히 구현하였다. 우리의 문학예술혁명의 력사는 새로운 주체적문학예술창조와 건설의 력사였으며 주체적문학예술의 대전성기를 마련한 자랑찬 승리의 력사였다. 그 력사의 나날에 우리 당이 내놓은 주체의 문학리론의 정당성과 생활력은 창작실천의 빛나는 성과에 의하여 확증되였다.

주체의 문학리론은 오늘 인류의 리상인 자주위업을 끝까지 수행하려는 인민대중의 지향과 요구를 정확히 반영하고있는 새로운 리론이다. 주체의 문학리론을 고수하여야만 우리의 사회주의민족문학은 순결성과 혁명성을 튼튼히 지켜나갈수 있으며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에 힘있게 이바지하는 강유력한 사상적무기로서의 전투적기능과 역할을 끊임없이 높여나갈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문학창작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기의 신념과 의지에 따라 독창적으로 풀어나감으로써 주체의 문학리론을 가일층 발전시키고 문학창작사업을 옳바로 이끌어 주체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끊임없이 개척해나가야 한다. 시대의 발전을 추동하고 인민대중을 사회주의, 공산주의위업에로 선도하는 주체문학의 전진은 력사와 더불어 영원할것이다.

1. 시대와 문예관

1) 새시대는 주체의 문예관을 요구한다

 당의 령도밑에 1970년대에 대전성기를 맞이한 우리 문학예술은 80년대를 거쳐 90년대에도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사상예술성이 높은 작품을 수많이 내놓음으로써 사회주의완전승리와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우리 인민의 혁명위업수행에 적극 이바지하고있다. 오늘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이 사회주의문학예술을 말살하고 부르죠아문학예술을 퍼뜨리기 위하여 그 어느때보다 악랄하게 책동하고있지만 우리의 문학예술은 추호의 동요없이 혁명적원칙성과 사상적순결성을 확고히 고수해나가고있다.

시대는 끊임없이 전진하고있으며 문학예술에 대한 인민의 요구도 날을 따라 더욱 높아지고있다. 문학예술은 마땅히 시대와 함께 전진하여야 하며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을 선도하여야 한다. 시대의 전진에 앞장서나가며 자주적으로 살려는 인민대중의 투쟁을 선도하는 문학예술이라야 생활의 참다운 교과서로, 인민대중을 혁명과 건설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는 사상적무기로서의 역할을 원만히 수행할수 있다. 우리 문학예술은 격동하는 시대의 력사적흐름을 힘있게 선도함으로써 혁명앞에 지닌 자기의 사명을 다하여야 한다.

문학예술이 자기의 본분을 다하기 위하여서는 작가, 예술인들이 우리 시대 인간과 생활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고 그려내야 한다. 새시대는 그에 맞는 새로운 문학예술을 요구하며 새로운 문학예술은 새로운 문예관에 기초할 때에만 창조될수 있다.
 우리 시대는 지난날 착취받고 억압받던 인민대중이 력사의 주인으로 등장하여 세계를 자기의 의사와 요구에 맞게 개조하며 자기의 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나가고있는 력사의 새시대이다. 오늘 그 어느 나라, 그 어느 민족도 남의 예속과 지배를 받으며 살기를 원치 않는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문제를 자기의 신념에 따라 자체의 힘으로 풀어나가는것은 그 어떤 힘으로도 막을수 없는 력사발전의 기본추세이다.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 위대한 당의 령도밑에 한 세대에 두 제국주의를 타승한 영웅적인민이며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을 발휘하여 조국땅우에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여온 혁명적인민이다. 우리 인민의 사상의식과 정신도덕적풍모에서는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났다. 당과 수령에 대한 끝없는 신뢰와 불타는 충성심,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헌신적인 복무정신, 공산주의위업을 끝까지 완성하려는 불굴의 의지와 혁명적락관주의, 수령과 혁명전사사이에 발양되는 고결한 혁명적의리와 뜨거운 동지애는 우리 인민이 지니고있는 가장 고상한 정신도덕적풍모이다. 오늘 우리 인민은 우리 수령이 제일이고 우리 당이 제일이며 우리 나라가 제일이라는 높은 긍지를 안고 그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드팀없이 주체사상의 혁명적기치를 높이 추켜들고 사회주의완전승리와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앞당기려는 불타는 열의에 넘쳐있다.

우리 시대의 이러한 세기적인 전변과 우리 인민의 지향을 결코 지난날의 문예관을 가지고서는 작품에 옳게 반영할수 없다. 력사의 새시대는 새로운 문예관을 요구한다.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문예관은 주체의 문예관이다. 주체의 문예관은 한마디로 말하여 사람을 중심에 놓고 문학예술을 대하는 관점과 립장이다. 주체의 문예관은 주체사상을 기초로 하고있다.
 일반적으로 문예관이라고 할 때 문학예술을 어떤 견해와 관점을 가지고 어떤 립장에서 보고 대하는가 하는것을 말한다. 문예관은 문학예술의 본성과 사명, 작품창작의 원칙과 방도, 작품의 사회적가치를 밝히는데서 출발점으로 된다. 문예관은 문학예술작품의 종자를 잡는데로부터 그것을 형상하는 창작의 전과정에 구체적으로 구현된다. 같은 시기의 같은 생활소재를 다루는 경우에도 작가, 예술인들이 어떤 문예관을 지녔는가 하는데 따라 형상의 결과가 달라진다.
 주체의 문예관은 사람을 가장 진실하게 그리며 인민대중을 세계와 자기운명의 주인으로 내세우고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진실로 사실주의적인 문학예술을 창조하기 위한 우리 시대의 가장 옳바른 문예관이다.
 주체의 문예관은 자주시대 인민대중의 지향과 요구를 체현하고있다.
 력사발전의 매 시대는 문학예술앞에 그 시대에 상응한 요구를 제기한다. 따라서 력사적시대를 옳게 평가하는것과 함께 시대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는것은 시대를 대표하는 계급의 문예관을 세우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시대의 요구는 다름아닌 시대의 중심에서 사회력사발전을 떠밀고나가는 선진계급의 요구이며 인민대중의 요구이다. 자본주의시대에는 자본의 철쇄와 예속에서 해방되는것이 인민대중의 기본요구로 나섰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지난 시대와 다른 새로운 력사적과제를 제기하고있다. 오늘 우리 시대의 요구는 세계와 자기운명의 주인으로 된 인민대중의 요구이다. 자주시대앞에는 민족해방, 계급해방, 인간해방을 이룩하고 세계적범위에서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여야 할 력사적과제가 전면에 나서고있다. 오늘의 문학예술은 현시대가 제기하는 새로운 요구에 응당 옳바른 해답을 주어야 한다.
 새시대의 문학예술앞에 나선 과업은 작가, 예술인들이 주체의 세계관에 기초한 문예관을 튼튼히 세워야만 원만히 해결될수 있다. 주체의 문예관을 튼튼히 세워야 수천년세월을 두고 착취계급에 의하여 부식된 온갖 반동적인 문학예술과 그 잔재를 말끔히 가셔내고 진실로 인민대중을 위한 참다운 문학예술을 건설할수 있다. 또한 주체의 문예관을 튼튼히 세워야 지난 시기의 문학예술이 창조해본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인간전형, 자주적인 인간의 전형을 창조하여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힘있고 존엄있는 사회적존재로서의 인간의 참된 가치를 깨우쳐 줄수 있으며 자주성을 위한 투쟁에 일떠선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 혁명적 신념과 용기를 안겨줄수 있다.
 주체의 문예관은 문학예술에 대한 관점과 립장에서 로동계급적성격을 체현하고있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계급적처지에 따라 인간과 생활을 서로 다르게 대하는것만큼 문예관에는 이런 또는 저런 계급의 요구와 리해관계가 담겨지지 않을수 없다. 로동계급에게는 자기의 력사적사명을 수행하는데 복무하는 혁명적인 문예관이 있다. 로동계급의 문예관은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에 적극 이바지하는데 문학예술의 참다운 본성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부르죠아문예관은 착취와 억압, 예속과 지배의 낡은 사회관계를 유지하려는 착취계급의 리해관계를 반영하고있는것만큼 문학예술의 본성을 외곡하고 문학예술을 부르죠아계급의 향락과 리윤추구의 수단으로 본다. 부르죠아문예관은 문학예술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일신의 안일과 향락을 위하여서는 그 무엇도 가리지 않는 극단한 개인주의와 패륜패덕을 고취함으로써 사람들을 황금의 노예로 전락시키며 인민대중의 혁명의식과 계급의식을 마비시키는 반동적작용을 한다.
 주체의 문예관은 문학예술에서 민족적특성을 구현할것을 요구하는 문예관이다.
 매개 민족에게는 력사적으로 이루어진 민족성과 그에 따르는 고유한 미감과 정서가 있다. 다른 민족에게는 없거나 있어도 서로 독특하게 구별되는 민족성은 매개 나라 인민의 생활양식과 언어, 관습, 세태풍속 같은데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민족성은 사람의 문화정서생활에서의 차이를 낳게 하며 자기 민족의 특성에 맞는 미관을 형성하게 한다. 문학예술작품의 가치는 그 나라 인민의 민족성과 민족생활을 옳게 반영하였는가, 형상에 민족적인 맛이 있는가 하는것과 많이 관련된다고 볼수 있다. 우리 인민에게는 자기의 고유한 민족적특성이 있다. 아무리 종자가 좋고 사회적문제성이 있는 작품이라 하여도 그것이 우리 인민의 구미에 맞게 형상되지 못한것이라면 쓸모가 없다.
 주체의 문예관에서 근본핵을 이루는것은 인간학으로서의 문학예술의 본성에 대한 주체적인 견해와 관점이다.
 문학을 무엇으로 보는가 하는 문제는 문예관의 근본문제로서 문학의 모든 문제에 대한 견해와 립장을 밝히는 기초로 된다.
 주체의 문예관에서는 우리 시대의 참다운 문학을 주체의 인간학으로 본다. 주체의 인간학은 자주성에 대한 문제, 자주적인 인간에 대한 문제를 내세우고 주체형의 인간전형을 창조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에 이바지하는 새형의 문학이다.
 주체의 인간학은 인간을 사회적관계속에서 보면서도 그에 머물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자주성의 요구에 맞게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변혁하는 주체로 형상한다. 그러한 인간의 전형은 바로 자주적인 인간,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이다.
 문학은 의의있는 인간문제를 내세우고 그것을 사람의 본성적요구에 맞게 해결하여야 인간학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의의있는 인간문제는 사람의 삶의 목적은 무엇이며 어떤 삶, 어떤 생활이 가장 보람차고 가치있는것이며 거기에 이르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주체의 인간학은 자주성에 대한 문제를 가장 의의있는 인간문제로 보고 작품에 내세우며 거기에 심오한 예술적해답을 준다.
 주체의 문예관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아름다운것에 대한 주체적인 견해와 관점이다.
 문예관은 문학의 본성에 대한 견해와 관점을 줄뿐아니라 미의 본질에 대한 견해와 관점을 준다. 문학예술작품은 인간과 생활의 전형적인 모습을 통하여 어떤것이 아름답고 숭고하며 비극적인것인가, 어떤것이 추악하고 저속하며 희극적인것인가 하는데 대하여 해답을 준다. 문학예술작품치고 아름다운것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은것이란 없다.
 주체의 문예관은 아름다운것에 대하여 주체적인 관점과 립장에서 보고 대하며 그릴것을 요구한다. 주체의 문예관의 견지에서 볼 때 아름다운것이란 자주적인간의 생활과 투쟁이다. 사회적존재인 인간에게 있어서 자주성이 생명인것만큼 그것을 위하여 살며 투쟁하는 자주적인 인간의 생활보다 더 아름다운것은 없다. 우리는 문학예술작품에서 어느 시대, 어느 사회의 인간을 그리든지 자주성을 위하여 살며 투쟁하는 인간의 생활속에서 아름다운것을 찾고 그것을 진실하게 그려야 한다. 물론 착취사회에서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은 간고하고 시련에 찬 피어린 투쟁이다. 자주성을 위한 투쟁과정에는 가슴아픈 희생과 실패도 있을수 있고 참을수 없는 고통과 불행도 있을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에서 겪게 되는 불행과 고통, 실패와 희생을 헛된것으로, 순전히 비극적인것으로만 보고 그린다면 그러한 작품은 인생의 참된 아름다움을 보여줄수 없게 되며 사람에게 미의 참다운 의미를 깨우쳐주지 못하게 될것이다. 문학예술은 응당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시대의 영웅으로 내세우며 곡절많은 그들의 생활로정을 혁명적랑만에 넘친 보람찬 인생행로로 밝고 값높게 형상하여야 한다.
 주체의 문예관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창작에 대한 주체적인 견해와 관점이다.
 문학예술작품창작에 대하여 어떤 관점과 립장으로 대하는가 하는것은 작품의 사상예술적높이를 보장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문학예술작품을 창작하는데서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누구를 위하여 어떤 작품을 창작하는가 하는데 대한 관점과 립장을 바로가지는것이다. 주체의 문예관은 창작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인민대중을 중심으로 하여 보고 사색하며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게 하는 원칙에서 풀어나갈것을 요구한다. 인민대중은 문학예술의 주인이며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데 문학예술의 영원한 생명력이 있다. 작가, 예술인들은 언제나 인민대중의 리해관계를 첫자리에 놓고 혁명의 자주적인 주체를 강화하는데 이바지하는 훌륭한 문학예술작품을 창작하기 위하여 온갖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문학예술작품을 창작하는데서 창작의 주체에 대한 옳은 견해와 관점을 가지는것이 중요하다. 주체의 문예관은 작가, 예술인을 창작의 주인으로 보고있으며 창작의 성과를 결정하는 근본요인도 그들의 사상의식에서 찾고있다. 우리는 문학예술창작에서도 사상론을 주장하고있다. 다른 모든 사업에서와 마찬가지로 문학예술창작에서도 사상이 모든것을 결정한다. 주체의 문예관은 창작을 단순한 직업으로가 아니라 혁명사업으로 보며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한 참다운 혁명가, 조국과 인민에게 끝없이 충실한 열렬한 애국자만이 진실로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우수한 문학예술작품을 창작할수 있다고 본다. 사상적으로 수양되지 않고 창작을 단순한 직업으로 여기는 작가,예술인이 창조한 작품에서는 심장에서 끓어넘치는 혁명적열정을 느낄수 없다. 주체의 세계관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창작을 혁명사업으로 여기는 작가, 예술인이라야 혁명적인 문학예술작품을 창작할수 있다. 작가,예술인들은 창작에 대한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만대에 길이 빛날 기념비적명작을 창작해내야 한다.
 창작의 주인은 작가, 예술인들인것만큼 그들자신이 문예관을 바로세워야 당이 바라고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을 반영한 사상예술성이 높은 문학예술작품을 성과적으로 창작해낼수 있다.
 주체의 문예관을 바로세우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주체적문예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여야 한다. 주체적문예사상에는 주체사상의 요구가 전면적으로 구현되여있다. 따라서 주체적문예사상으로 무장하기만 하면 문학예술창조와 건설에서 제기되는 그 어떤 문제도 원만히 풀어나갈수 있다. 작가, 예술인들이 주체적문예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면 창작에서 주체를 세우고 문학예술의 인간학적본성을 옳게 구현해나갈수 있으며 당성, 로동계급성, 인민성의 원칙을 고수하고 사상성과 예술성을 조화롭게 결합시켜나갈수 있다.
 주체의 문예관을 바로세우기 위하여서는 주체적문예리론으로 철저히 무장하여야 한다. 주체적문예리론에는 자주시대 문학예술창조와 건설에서 제기되는 원칙적인 문제뿐아니라 작품의 핵으로 되는 종자와 주제, 인물의 성격창조와 생활묘사를 비롯한 구체적인 형상요소와 창작방법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문제가 다 밝혀져있다. 주체적문예리론으로 무장하여야 창작에서 종래의 낡은 틀과 기성관념에서 벗어나 자주시대 문학예술창조와 건설에서 제기되는 모든 실천적문제를 우리 식으로 풀어나갈수 있다. 주체적문예리론으로 무장하여야 우리 당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계승발전시키며  민족문화유산을 비판적으로 이어받는 문제도, 광범한 근로대중을 문학예술의 진정한 창조자, 향유자로 되게 하는 문제도 성과적으로 풀수 있으며 감정조직을 기본으로 하는 극조직의 새로운 원리도, 사회주의현실주제작품에서의 갈등의 특성도, 생활의 본색을 정서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작품의 양상도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현대적미감에 맞게 풀수 있다.
 주체의 문예관을 바로세우기 위하여서는 주체적문예활동방법의 본질과 요구를 잘 알고 그에 맞게 사업하고 창작하여야 한다.
 주체적문예활동방법이란 한마디로 말하여 문학예술창작과 지도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주체적립장에서 우리 식으로 풀어나가는것을 말한다. 자주시대의 요구에 맞는 문학예술을 창조하고 건설하자면 문학예술에 대한 사상과 리론을 가져야 하며 문학예술에 대한 당의 지도리론과 방법론을 세워야 한다. 혁명과 건설의 다른 모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문학예술도 당의 지도를 떠나서는 한걸음도 전진할수 없다. 문학예술에 대한 당의 지도를 강화하고 작가, 예술인들이 당의 지도를 성실히 받아야만 문학예술을 당의 유일사상, 수령의 혁명사상이 구현된 주체적인 문학예술로 찬란히 개화발전시킬수 있다. 당사상사업의 한 부분을 이루는 문학예술창작은 사람의 사상을 다루며 그들의 생활에 심각한 정치사상적영향을 주는 중요한 사업인것만큼 오직 당의 유일적령도밑에 진행되여야 한다. 문학예술창작에서 당의 유일적령도를 보장하여야 어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당의 주체적문예사상과 리론을 견결히 옹호관철할수 있고 우리의 문학예술을 당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받들어나가는 명실공히 주체가 선 문학예술로, 사회주의, 공산주의문학예술의 본보기로 개화발전시켜나갈수 있다.
 문학예술에 대한 당적지도를 강화하는데서 창작지도체계와 지도방법, 창조체계와 창조방법을 똑바로 세우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당은 지난 1960년대에 영화혁명을 지도하면서 작가, 예술인들이 창작활동에서 주인다운 태도를 가지고 창발성과 집체적지혜를 남김없이 발양할수 있도록 창작지도체계와 지도방법, 창조체계와 창조방법을 우리 식으로 새롭게 세웠다. 문학예술부문일군들과 작가, 예술인들은 문학예술창조와 건설에서 위대한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과 대안의 사업체계를 구현한 우리 식의 창작지도체계와 지도방법, 창조체계와 창조방법의 요구를 철저히 관철하여야 한다.
 주체의 문예관을 세우기 위한 사업은 주체의 혁명적세계관을 세우기 위한 사업과 뗄수 없이 련관되여있다. 문예관은 세계관에 의하여 제약되고 규정되는것만큼 주체의 혁명적세계관을 튼튼히 세워야 주체의 문예관을 바로세울수 있다. 사람들의 혁명적세계관이 서나가는 과정이 단순하지 않은것만큼 주체의 문예관을 세우는 사업도 한두차례의 학습이나 그와 관련된 리론을 터득하는것으로써 쉽게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다. 주체의 문예관은 꾸준한 사상수양과 끊임없는 창작실천을 통하여 확고한 신념으로 만들어야만 공고한것으로 될수 있다.
 주체의 문예관을 튼튼히 세우기 위한 사업은 붓을 놓는 마지막순간까지 한생을 두고 꾸준히 진행되여야 한다. 작가, 예술인들은 주체의 문예관을 세우기 위한 사업을 실속있게 벌림으로써 시대의 기수, 인간정신의 기사답게 자신을 열렬한 애국자, 공산주의혁명가로 튼튼히 준비해나가야 한다.

2)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에 이바지하는것은

문학의 근본사명이다


 문학은 사람의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수단이다. 사람은 혁명적인 문학을 통하여 생활을 더 잘 알게 되고 사회적으로 의의있는 문제에 대하여 여러 측면에서 배우게 되며 세계에 대한 옳은 견해와 관점을 가지고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을 더욱 힘있게 다그쳐나가게 된다. 사회가 발전하고 생활이 유족해질수록, 인민대중의 자주성이 높아질수록 문학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성은 끊임없이 높아지며 문학이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도 더욱 커지게 된다. 작가는 시대와 혁명앞에 지닌 자신의 숭고한 사명을 깊이 자작하고 인간학의 체모를 갖춘 혁명적인 문학작품을 많이 창작하여야 한다.
 인간과 생활을 그리며 인민대중을 위하여 참답게 복무하는데 인간학으로서의 문학의 본성이 있다. 비록 인간과 생활을 생동하게 그린 작품이라고 하여도 그것이 사람을 선진사상으로 무장시키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생활에 대한 폭넓고 깊은 지식을 주지 못하며 고상한 륜리와 아름다운 정서를 안겨주지 못하면 쓸모가 없다.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옹호하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주체혁명위업수행에 적극 복무하는것은 우리 문학의 기본사명이다.
 주체혁명위업은 위대한 주체사상의 기치밑에 인류의 최고리상인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고 완성하기 위한 영광스러운 사업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시원을 열어놓으신 주체혁명위업은 이미 두단계의 사회혁명,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을 빛나게 수행하고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는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전진하고있다. 문학은 마땅히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하기 위한 투쟁,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수행을 위한 투쟁에서 발양되는 영웅적위훈과 아름다운 소행을 높은 사상예술적수준에서 진실하게 그려냄으로써 사람은 어떻게 살며 일하며 투쟁하여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옳바른 해답을 주어야 한다. 시대의 물음에 옳바른 해답을 주는 문학만이 사상교양의 힘있는 무기로, 생활인식의 믿음직한 수단으로, 문화정서적수양의 친근한 벗으로 될수 있다.
 문학이 주체혁명위업에 이바지한다는것은 결국 혁명의 자주적주체를 강화하는데 이바지한다는것을 말한다.
 우리의 문학은 사회정치적생명체인 수령, 당, 대중의 통일단결을 강화하며 우리 인민이 영생하는 사회정치적생명을 빛내이도록 하는데 적극 복무하여야 한다.
 특히 로동계급의 수령의 형상을 창조하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시기에는 사회주의문학이 자기의 사명을 다하자면 무엇보다도 공산주의혁명가의 전형을 창조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물론 공산주의자의 전형을 창조하는것은 사회주의문학의 필수적요구이다. 공산주의자의 전형을 창조하여야 사람들을 로동계급의 혁명사상으로 무장시킬수 있으며 혁명투쟁에 적극 떨쳐나서게 할수 있다. 이런데로부터 지난 시기 문학분야에서는 공산주의자의 전형창조를 사회주의문학의 기본과제로 보고 이것을 푸는데 주되는 관심을 돌려왔다. 그러나 사회주의문학은 공산주의자의 전형을 창조하는것만으로는 자기의 임무를 다할수 없다. 수령의 혁명활동을 깊이있게 형상하여야만 로동계급의 혁명위업의 본질과 그 승리의 합법칙적과정을 전면적으로 심오하게 그릴수 있으며 사람들을 수령에게 끝없이 충직한 공산주의혁명가로 키우는데 이바지할수 있다.
 사회주의문학은 수령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의 전일체를 이루고있는 수령, 당, 대중의 호상관계를 잘 그려야 한다.
 문학이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에 적극 이바지하기 위하여서는 정치사상교양적기능, 생활인식적기능, 문화정서교양적기능을 높여야 한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것은 사상교양의 기능이다.
 우리의 문학은 당의 수중에 장악되여있는 사상적무기이며 사람들의 사상교양, 사상개조에 복무하는 힘있는 수단이다. 문학의 사상교양적기능을 높여야 그것이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위업에 참답게 이바지하는 사상적무기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다할수 있다.
 문학은 주체사상과 그 구현인 당의 로선과 정책을 정확히 반영하여야 한다. 주체사상과 그 구현인 당의 로선과 정책은 혁명과 건설의 유일한 지도적지침이며 우리의 모든 사고와 행동의 출발점이다. 우리의 장엄한 현실과 현시대가 제기하는 새로운 문제를 작품에 진실하게 묘사하자고 하여도  주체사상과 당정책에 철저히 의거하여야 한다. 주체사상과 당정책을 모르고서는 조선혁명의 발전과정과 우리 인민의 전진운동, 오늘의 자랑찬 성과와 래일의 밝은 전망에 대하여 정확히 파악할수 없으며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작품에 진실하게 그려낼수 없다. 문학이 당과 수령의 령도밑에 힘차게 전진하여온 우리 혁명의 발전과정과 약동하는 현실을 정확히 묘사하여 인민대중을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자면 위대한 주체사상과 그 구현인 당정책을 옳게 반영하여야 한다. 주체사상과 그 구현인 당정책을 철저히 반영한 문학만이 사람들을 주체혁명위업의 완성과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위하여 끝까지 싸워나가는 주체형의 혁명가, 공산주의자로 교양하는 힘있는 수단으로 될수 있다.
 우리의 문학은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을 높이 발양시키는데도 적극 기여하여야 한다. 문학이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을 높이 발양시키는데 이바지하게 하는것은 그 사상교양적기능을 높이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문학은 조선민족의 위대성을 실감있게 형상하여 우리 인민으로 하여금 조선사람으로 태여난 긍지와 자부심, 자기 민족의 훌륭한 창조물과 자기 민족의 힘과 지혜에 대한 긍지와 믿음, 민족의 장래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가지고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을 더 잘해나가도록 하여야 한다.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으로 교양하는것은 오늘 제국주의자들이 사회주의제도를 내부로부터 와해시키려고 더욱 악랄하게 책동하며 사회주의를 건설하던 일부 나라들에서 혁명에 대한 신심을 잃고 사회주의를 자본주의로 되돌려세우고있는 조건에서 더욱 절실하게 제기된다.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이 없이는 제정신을 가지고 자주적으로 살아갈수 없고 혁명의 전취물을 지켜낼수 없으며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끝까지 싸워나갈수 없다. 문학작품에서는 우리 인민이 위대한 사상과 우수한 전통,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있는 존엄있는 민족이라는것을 깊이있게 그려내야 한다. 다시말하여 우리 민족은 인류력사상 처음으로 자주시대의 지도사상인 위대한 주체사상을 가지고있는 민족이며 한 세대에 두 제국주의를 타승한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가지고있는 민족이며 반만년의 오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슬기로운 민족이라는것을 생동하게 밝혀내야 한다. 특히 문학작품에서 우리 수령이 제일이며 우리 당이 제일이라는 사상이 격조높이 울려나와야 한다. 이러한 문학작품만이 사람들을 우리 민족의 위대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가슴부풀게 할수 있으며 그것을 더욱 빛내이려는 높은 자각과 신념을 가지고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한 사회주의대건설전투에서 무비의 영웅성과 혁명적락관주의를 발휘하게 할수 있다.
 문학이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에 적극 이바지하기 위하여서는 생활인식적기능을 높여야 한다. 문학은 생활인식적기능을 높여야 사람들로 하여금 생활을 더욱 깊이 리해하고 보다 훌륭한 생활을 창조하기 위한 투쟁에 더욱 적극적으로 떨쳐나서게 할수 있다.
 문학은 인간생활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준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를 통하여 사람들은 1930년대 우리 나라의 사회현실을 실지 체험한것처럼 알게 되며 풍부한 지식을 얻게 된다. 작품은 일제놈들이 왜 우리 나라에 쳐들어왔으며 혁명이란 무엇이고 왜 혁명을 하여야 하는지조차 모르던 어머니가 남편과 아들딸의 영향밑에 점차 혁명을 인식하고 투쟁에로 나가게 되는 생활과정에 대한 폭넓은 묘사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모순과 악덕으로 가득찬 당대의 사회현실에 대한 깊은 인식을 준다. 일찌기 엥겔스는 발자끄의 《인간희극》을 두고 프랑스사회의 력사를 집약하고있는 이 작품은 경제학적인 세부라는 의미에서조차 이 시기의 력사학자, 경제학자, 통계학자를 다 합친 모든 전문가들의 저서에서보다 더 많은것을 밝혔다고 썼는데 이것은 문학의 인식적기능에 대한 좋은 례증으로 된다.
 작가는 한편의 작품을 써도 그것이 생활인식의 힘있는 수단으로 될수 있게 여러모로 심사숙고하고 품을 들여 써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것은 생활을 여러 측면에서 다양하고 풍부하게 보여주는것이다. 형상이 외곬으로 단조롭게 되여서는 생활을 본래의 모습대로 다양하고 풍부하게 보여줄수 없다. 문학의 묘사대상에는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뿐아니라 생활의 모든 분야, 모든 령역이 다 포괄되며 한 작품안에서도 생활분야가 국한되거나 한정되여있지 않고 여러 갈래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문학은 복잡한 인간생활을 그 본래의 모습 그대로 묘사하여야 생활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보여줄수 있다.
 문학이 생활인식의 힘있는 수단으로 되자면 생활의 본질과 그 발전의 합법칙성을 진실하게 반영하여야 한다. 생활을 진실하게 그리는것은 문학의 본성적요구이다. 진실성을 떠나서는 생활의 본질을 밝힐수 없으며 인식적목적을 달성할수 없다. 가령 제철소 로동계급의 생활을 그린다면 로동계급의 혁명적열정과 전투적기백이 나래치는 철의 도시의 생활전경을 현실 그대로의 화폭으로 펼쳐놓아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제철소에 직접 가보지 못하였지만 제철소에 사는 로동계급과 조금도 다름없는 생활감정에서 그것을 산 체험으로 받아들이게 하여야 한다.
 문학이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에 이바지하기 위하여서는 문화정서교양적기능도 높여야 한다.
 문학은 사람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양과 생활인식의 힘있는 무기로 될뿐아니라 문화정서교양의 좋은 수단으로 된다.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목적은 사람들에게 세계에 대한 옳바른 인식을 주며 건전한 사상을 주는데만 있는것이 아니라 그들을 정서적으로 키우는데도 있다. 우리의 문화정서교양은 자주시대의 미감에 맞는 혁명적생활감정과 민족적정서를 키우는 사업이다. 문학은 사람들에게 아름답고 고상한 생활정서를 안겨주며 그들의 문화성과 인간성을 높여주는데 이바지하여야 한다. 문화정서교양을 잘하는것은 사람들에게 생활에서 아름답고 고상한것을 긍정하고 추악하고 저렬한것을 부정하는 생활감정과 정서를 키워주는데서 큰 의의를 가진다. 우리 시대의 공산주의자인 주체형의 인간은 사상적으로 건전할뿐아니라 문화성이 높고 정서가 가장 풍부한 사람이다. 생활에서 시도 모르고 소설도 읽지 않고 지내는 목석같은 사람은 심장이 뜨거울수 없다. 목석과 같이 딱딱하고 심장이 뜨겁지 못한 사람은 사업과 생활에서 군중성이 있을수 없으며 인간성을 발휘할수 없다.
 우리 시대 인간의 높은 혁명성과 뜨거운 인간성을 심오하게 그려내여 사람의 문화정서교양에 도움을 주자면 작품에서 딱딱한 정치적인 술어나 구호 같은것을 라렬하지 말고 현실에 있는 산 사람의 사상과 감정, 생활을 구체적인 화폭으로 생동하게 그려야 한다.
 작가는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에 적극 이바지하는 사상예술성이 높은 문학작품을 더 많이 창작함으로써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억세게 싸워나가는 우리 인민의 투쟁을 힘있게 고무하여야 한다.


3) 자주시대의 문학은 주체의 인간학으로 되여야 한다


 우리는 오래전에 자주시대의 문학은 주체의 인간학으로 되여야 한다는 새로운 사상을 내놓았다.
 주체의 인간학에 대한 사상이 나온 다음 작가들속에서는 문학에 대한 인식이 새로와지고 창작에서도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게 되였다. 적지 않은 작가들이 문학에 대한 옳은 리해를 가지고 새시대의 요구에 맞는 훌륭한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혁명의 려명》, 《고난의 행군》, 《준엄한 전구》, 영화문학 《조선의 별》, 《민족의 태양》, 《보증》, 장막희곡 《승리의 기치따라》, 서정시 《나의 조국》,《어머니》와 같은 작품들은 다 우리 시대의 요구와 우리 인민의 지향을 반영한 사상예술성이 높은 성과작이다. 이 작품들은 종자도 다르고 형태도 다르지만 다같이 주체의 인간학의 요구를 잘 구현하고있다.
 새시대의 새로운 문학을 창조하면서 지난날의 고전문학의 본을 따려고 하여서는 안된다. 고전문학에서 좋은 점은 따라배워야 한다. 그러나 고전문학이 결코 우리 시대 문학의 본보기로 될수는 없다. 고전문학은 당시 사회현실을 반영하여 나온것이다. 그 어떤 문학도 자기 시대를 뛰여넘을수는 없다.
 새시대는 새로운 문학을 요구하며 우리 시대의 문학은 주체의 인간학으로 되여야 한다.
 주체의 인간학은 자주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 새로운 문학이다. 물론 문학을 인간학으로 보는 견해는 우리가 처음으로 내놓은것이 아니다. 지난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문학의 특성을 밝히면서 그것이 인간학이라는데 대하여 강조하여왔다. 그러나 그 어느 시대, 그 어느 나라의 작가나 문예리론가도 인간학으로서의 문학의 본성이 무엇인가 하는데 대하여서는 밝히지 못하였다. 인간학으로서의 문학의 본성은 우리 시대에 와서 주체사상이 창시됨으로써만 비로소 옳바르게 해명될수 있었다. 우리는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인간학으로서의 문학의 본성은 인간과 생활을 그리며 인간에게 복무한다는데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자주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 새로운 문학인 주체의 인간학이 지난날의 문학과 구별되는 본질적인 특성은 그 철학적기초가 다르다는데 있다. 주체의 인간학은 주체의 철학적원리에 기초하여 자주성을 생명으로 하는 사람의 본성과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인간문제를 밝힘으로써 사람을 세계와 자기운명의 주인으로 내세우며 사람이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도록 하는데 이바지한다.
 문학이 주체의 인간학으로 되기 위하여서는 사람을 옳게 보고 그려야 한다.
 문학은 인간형상을 창조하는 예술이며 인간형상은 문학의 얼굴이다.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리는가 하는데 따라 인간학으로서의 문학의 면모가 규정되며 그 사상예술적가치가 결정된다. 문학이 각이한 사조로 갈라지게 되는것도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리는가 하는데 기인된다. 세계를 다같이 객관적시점에서 반영하는 사실주의와 자연주의가 상반되는 갈래를 이루는것도 사람을 보고 그리는 관점과 원칙이 서로 다른데 있다. 사실주의는 사람을 사회적존재로 보고 그의 사회적성격을 진실하게 그려낸다면 자연주의는 사람을 순전히 자연적존재로 보고 그의 동물적본능을 그려낸다. 우리의 문학은 주체사상에 기초함으로써 사람을 그 본성에 맞게 자주적이며 창조적이며 의식적인 사회적존재로 보고 그리는 문제를 가장 옳바르게 풀수 있게 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일부 작가들은 사람을 여전히 낡은 관점에서 그리고있다. 그들은 사람을 그저 사회적관계의 총체로 내세우면서 그의 성격에 체현되여있는 시대적요구와 계급의 본질, 개인적특징을 드러내는데만 머물고있다. 그런데로부터 일부 작품에서 인물들은 이름도 다르고 얼굴도 다르지만 새로운 인간형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지난날의 작품에서 나온 인물과 같은 인상을 준다. 지난 시대의 문학이 창조한 고전형의 인간전형이 언제까지나 성격창조의 본보기로 될수는 없다. 우리 시대 인민은 문학에서 새형의 인간, 세계와 자기운명의 주인된 자각을 가지고 자연과 사회를 자기 의사와 요구에 맞게 창조적으로 개척해나가는 자주적인간의 전형을 보려고 한다. 지난 시기에 고전작품에서 나오는 인간형보다 높은 경지에 이른 새형의 인간전형을 창조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람을 주체사상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눈으로 보고 새로운 원칙에서 그려내는가 그려내지 못하는가 하는데 달려있다.
 주체의 인간학은 사람을 그리는데서 그의 본성을 바탕으로 하여 전형화할것을 요구한다.
 물론 지난날의 사실주의문학에서도 사람을 그리는데서 전형화를 필수적요구로 제기하였지만 그때에는 사람의 본성이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못하였던것만큼 이 요구를 옳게 해결할수 없었다. 전형화는 사람을 계급과 계층의 본보기로 얼마나 깊이있고 진실하게 그려내는가 하는 문제이므로 사람의 본성을 깊이 파고들지 않고서는 전형화의 요구를 완전히 실현하였다고 할수 없다. 

사회적존재로서의 사람의 정신도덕적풍모와 자질은 그의 본성에 기초하고있으며 그에 의하여 규제된다. 문학은 사람의 본성을 깊이있게 그려내며 그에 기초하여 일반화와 개성화의 통일을 실현하는 새로운 성격창조의 길로 나가야 한다.
 문학에서 어떤 인물을 하나의 전형으로 내세우려면 일반화의 요구를 옳게 실현하여야 한다.
 성격창조에서 일반화는 사람의 본성에 기초하여 진행되여야 한다. 사람의 본성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그의 사업과 생활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된다. 혁명과 건설에 대한 주인다운 태도도 사람의 본성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구체적인 표현이다. 육체적생명보다 사회정치적생명을 더 귀중히 여기고 당과 수령, 사회와 집단에 충성다하는 정신, 사대주의를 반대하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정신, 자기운명을 자기 힘으로 개척해나가는 정신, 기존공식과 낡은 틀에 매이지 않고 모든 문제를 자체의 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풀어나가는 정신, 집단과 개인의 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혁명적의리와 동지애의 원리에 기초하여 풀어나가는 정신도 다 사람의 본성이 구체적으로 발현된것이다. 문학은 사람의 본성이 가장 집중적으로 보다 명확히 드러날수 있는 고리를 찾아내여 파고듦으로써 자주적이며 창조적이며 의식적인 사회적존재로서의 사람의 진면모를 깊이있게 일반화하여야 한다.
 긍정인물이나 부정인물의 성격을 그리는데서 그의 계급적처지와 요구를 밝혀내기만 하면 일반화가 다 되는것처럼 생각하는것은 하나의 편향이다. 물론 계급적처지와 요구를 밝혀내는것은 인물을 그리는데서 기본요구의 하나로 된다. 그렇다고 하여 인물을 순전히 계급적리해관계의 견지에서만 그리게 되면 그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정신도덕적풍모를 온전히 갖추지 못한 기형적인 존재로 될수 있다. 일부 작품에서 이따금 인정미와 정서가 없고 생활도 모르는 메마르고 딱딱한 인물이 나오는것도 결국 따져놓고보면 그의 계급적처지와 요구를 밝히는데만 치우치고있는것과 적지 않게 관련되여있다. 사회적존재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원만히 보여주려면 그의 계급적요구와 함께 정신도덕적풍모를 깊이있게 그려내야 한다. 사람의 정신도덕적풍모는 자주적인 사상의식에 의하여 규제된다. 사람의 정신도덕적풍모에서 중요한 측면을 이루는 계급성과 민족성도 바로 그의 자주적인 사상의식의 발현이다. 인물의 자주적인 사상의식을 폭넓고 깊이있게 그려내면 낼수록 그만큼 그의 계급적성격과 민족적특성이 더욱 뚜렷이 밝혀지게 된다.
 문학에서 어떤 인물을 하나의 전형으로 내세우려면 일반화의 요구와 함께 개성화의 요구도 옳게 실현하여야 한다. 세상에는 얼굴이 같은 사람이 없듯이 개성이 꼭같은 사람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이 사람을 그린다고 하는것은 개성을 그리는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문제는 인물의 개성을 어떻게 그려내는가 하는데 있다.
 지금 일부 작품에 나오는 인물을 보면 그의 정신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개성을 가진 인물도 있고 개성을 가지고있으나 그것이 뚜렷하지 못한 인물도 있으며 개성을 마치 혹처럼 붙이고 다니는 인물도 있고 개성이 조화되지 못하여 한 장면에서는 이런 사람으로 보이고 다른 장면에서는 저런 사람으로 보이는 인물도 있다. 그 주되는 원인은 작가가 사람의 본성과 개성에 대한 옳은 리해를 가지고있지 못한데 있다.
 사람의 개성은 그의 본성이 구체적으로 발현된것이다. 사람의 본성은 그의 준비정도와 사업조건, 생활환경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이 강한 사람은 개성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어떤 정황속에서도 사람의 존엄과 자주적인 요구를 끝까지 고수하고 늘 창조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일수록 개성이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는것은 응당한 일이다. 바로 이런데로부터 인물을 개성화하자면 그의 본성적요구에 맞게 개인적특징을 특색있게 돋구어내야 한다.그래야 인물의 개성은 그의 내면세계와 뗄수 없이 밀착되여 언제 어디서나 일관성을 가지고 인상깊게 안겨올수 있다.
 문학이 주체의 인간학으로 되기 위하여서는 사람과 세계의 관계를 옳게 그려내야 한다.
 문학에서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를 그려야 한다. 문학이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를 그린다는것은 세계의 모든것이 사람을 위하여 복무하는 한에서만 가치를 가진다는것을 보여주며 세계의 변화발전을 사람의 활동을 기본으로 하여 보여준다는것을 말한다.
 문학에서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를 그리려면 무엇보다도 세계를 대하는 사람의 태도를 깊이있게 보여주어야 한다. 다시말하여 세계를 숙명적으로가 아니라 혁명적으로, 수동적으로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대하며 세계를 맹목적으로가 아니라 목적의식적으로 개조하는 사람의 모습을 진실하게 그려내야 한다.
 세계를 대하는 사람의 태도를 진실하게 그리는데서 사람과 환경의 관계를 바로 푸는것이 중요하다. 사람과 환경의 관계문제는 문학창작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미학적문제로 오래동안 론의되여왔다. 지난 시기 사실주의문학에서도 전형적환경에서의 전형적성격의 창조에 대한 문제를 기본요구의 하나로 제기하였다. 그러나 그 요구를 실현하는데서 성격과 환경의 호상관계를 옳게 해결하지 못한 편향도 나타났다. 어떤 사람들은 성격에 대한 환경의 규정적인 역할에 대하여서는 강조하였지만 환경에 대한 성격의 능동적인 반작용과 주동적인 역할에 대하여서는 밝히지 못하였다. 주로 성격이 환경에 의하여 제약되고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사람의 성격과 행동을 규제하는 결정적요인으로 보았다. 한때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성격과 행동도 환경에 의하여 제약되고 좌우된다고 하는 《환경지배설》이 널리 퍼졌다. 그런데로부터 문학창작에서는 환경에 성격을 파묻어버리는 여러가지 편향이 나타났던것이다.
《환경지배설》에 매달려서는 사람의 본성을 옳게 밝힐수 없고 그 지위와 역할을 높이는데 이바지하는 진실로 사실주의적인 문학을 창작할수 없다.
 물론 사람은 세계속에서 살며 활동하는것만큼 문학에서는 자연환경이나 사회적조건이 사람의 생활과 활동에 미치는 이러저러한 영향도 응당한 수준에서 잘 그려야 한다. 그러나 문학에서는 환경이나 조건에 그저 순응하는것이 아니라 자주적이며 창조적이며 의식적인 활동을 통하여 자기의 요구에 맞게 그것을 개조변혁해나가는 사람의 투쟁을 기본으로 그려야 한다. 문학에서 성격과 환경의 통일은 환경을 위주로 해서가 아니라 성격을 위주로 하여 이루어져야 사람의 본성과 지위와 역할에 맞는 진실한것으로 될수 있다.
 사람을 위주로 하여 환경을 그리는데서는 사람의 요구와 함께 환경의 객관적론리를 고려하는것도 중요하다. 자연환경이나 사회적조건이 사람에 의하여 지배되고 개조된다고 하여 그 객관적론리를 무시하여서는 안된다.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는 한가지 생각만 하면서 환경의 객관적론리를 무시하고 주관주의에 빠지게 되면 환경자체는 말할것도 없고 생활도 인물도 진실하게 보여줄수 없으며 결국 형상전체를 말아먹게 된다.
 문학에서 환경은 인물의 내면세계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되기전에 생존을 위한 필수적조건으로, 활동대상으로 되여야 한다. 자연환경과 사회적조건을 사람의 생활상 요구와 지향, 사람이 그것을 개조하는 목적에 맞게 그려야 자연과 사회속에서 살며 활동하는 사람의 모습이 진실하게 보일수 있다.
 문학은 사람에 의하여 자연과 사회가 개조되는 과정을 그리면서 사람의 본질적특성을 뚜렷이 살리고 내면세계를 깊이있게 드러내야 하며 사람의 힘이 더욱 커지고 세계의 지배자, 개조자로서의 지위와 역할이 높아지는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문학에서는 자연환경이나 사회적조건의 변화발전을 세계를 자기의 의사와 요구에 맞게 목적의식적으로 개조해나가는 사람의 주동적인 활동의 견지에서 그려야 한다.
 주체의 인간학은 사람의 본성과 세계의 지배자, 개조자로서의 사람의 지위와 역할을 예술적으로 밝힘으로써 사람의 존엄과 가치를 최상의 경지에서 보여줄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놓았으며 인민대중이 자기운명의 주인, 력사의 주인으로 등장한 우리 시대의 문학적과제를 빛나게 해결하였다. 이것은 그 어떤 문학도 이룩할수 없었던 주체의 인간학의 커다란 공적이다.

4) 주체성은 문학의 생명이다


 우리 문학을 자주시대의 지향과 요구에 맞는 새로운 민족문학으로 건설하기 위하여서는 주체성을 철저히 구현하여야 한다.
  문학에서 주체성은 민족자주정신의 반영이다. 문학에서 민족자주정신을 반영한다는것은 문학창작과 건설에서 자기 나라 인민의 자주적인 지향과 요구를 구현하며 자기 민족의 고유한 생활감정과 미감에 맞게 형상을 창조한다는것을 말한다.
 주체성은 민족문학의 얼굴이며 정신이라고 말할수 있다. 주체성에 의하여 민족문학의 고유한 특성이 살아나며 민족의 정기와 기상이 뚜렷이 표현된다.
 문학에서 주체성을 구현하는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을 그리며 인간에게 복무하는 문학자체의 인간학적인 본성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필수적인 요구이다. 문학은 자기운명의 주인으로서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자기인민의 지향과 요구를 옳게 반영할 때에만 인간과 생활을 현실에서와 같이 진실하게 보여줄수 있으며 인간을 존엄있고 힘있는 존재로 키우는데 참답게 이바지할수 있다. 오늘 세계에 수많은 민족문학이 존재하는것도 매개 나라 민족문학이 자기인민의 민족적 요구와 지향을 반영하고있기때문이다. 매개 나라의 민족문학은 자기인민의 민족적지향과 요구를 반영한 예술적정화이다. 민족자주정신이 개화하는곳에서는 언제나 민족문학이 찬란히 꽃피여난다. 민족자주정신이 없는 민족문학은 마치 넋을 잃은 육체와도 같은것이다. 결국 매개 나라 민족문학의 운명은 주체성을 구현하는가 못하는가 하는데 따라 결정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주체성을 문학의 생명이라고 하는것이다.
 우리 시대는 문학을 시대의 지향과 리념에 맞게 발전시킴으로써 문학이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에 적극 이바지하도록 그 인식교양적역할을 더욱 높일것을 요구하고있다. 주체성을 구현하는것은 문학을 시대의 지향에 맞게 발전시키며 그 전투적역할을 높이기 위한 확고한 담보이다. 주체성을 강화하면 할수록 문학은 인민대중의 지향과 요구에 맞는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문학으로 참답게 발전하게 되며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에 더욱 힘있게 이바지하게 된다.
 문학에서 주체성을 구현하는것은 문학이 나라와 민족을 단위로 하여 건설되는 조건에서 절실한 문제로 제기된다. 민족의 고유한 생활은 민족문학의 토양이며 원천이다. 매개 나라의 민족문학은 민족의 고유한 생활에 토대하여 발전하는것만큼 자기의 민족성과 독자성을 가지게 된다. 매개 나라의 민족문학은 그에 고유한 민족성과 독자성을 가지고 세계문학발전에 이바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주의를 떠벌이는자들은 민족문학의 고유한 민족성과 독자성을 거부하고있다. 민족의 고유한 생활을 떠나 민족문학이 있을수 없듯이 민족문학을 떠난 세계문학도 있을수 없다. 매개 나라의 민족문학이 자체의 발전을 이룩하고 세계문학의 보물고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옳바른 길은 오직 주체성을 철저히 구현해나가는데 있다.
 문학을 주체성있게 발전시키는 문제는 지난날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있던 나라나 큰 나라들사이에 끼여있는 작은 나라인 경우에 더욱 절실하게 제기된다. 이러한 나라들에서는 지난날 제국주의자들이 민족문화발전에 끼친 해독적인 후과를 깨끗이 청산하고 민족허무주의와 사대주의를 단호히 배격하여야 민족문학건설에서 주체성을 구현해나갈수 있다.
 문학에서 주체성을 구현하는것은 문학의 당성, 로동계급성, 인민성을 높이는 기본담보이다. 주체성과 당성, 로동계급성, 인민성은 혁명적문학의 기본특성이며 그 위력의 원천이다. 문학에서 주체성과 당성, 로동계급성, 인민성은 뗄수 없이 밀착되여있다. 주체성과 당성, 로동계급성, 인민성은 다같이 문학의 사회적성격과 가치를 규정하는 기본징표이다. 문학에서 당성, 로동계급성, 인민성은 주체성을 전제로 한다. 주체성을 떠난 문학의 당성, 로동계급성, 인민성이란 있을수 없다. 문학의 당성, 로동계급성, 인민성은 온갖 예속과 구속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인민대중의 지향과 요구를 반영하고있다. 문학의 당성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로동계급의 당의 사상과 의도를 구현하는데 있으며 로동계급성은 자신뿐아니라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온갖 예속과 구속에서 해방하고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려는 로동계급의 근본립장과 혁명적원칙을 구현하는데 있으며 인민성은 인민대중의 자주적지향과 리익을 구현하는데 있다.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주체를 세우는것이 기본으로 되듯이 문학에서 주체성은 당성, 로동계급성, 인민성의 초석으로 된다. 문학에서 주체성은 당성, 로동계급성, 인민성을 특징짓는 기본요인이다. 주체성을 강화할 때 문학은 진실로 자주시대의 요구에 맞는 당적이고 로동계급적이며 인민적인 주체형의 문학으로 개화발전할수 있으며 인민대중을 자주위업수행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로 힘있게 떠밀어주는 고무적기치로 될수 있다.
 우리는 자주시대의 요구에 맞게 문학에서 주체성을 구현하는데 힘을 넣어야 한다.
 주체성을 구현하는데서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민족문학창작과 건설과정에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자기 나라 혁명을 중심에 놓고 대하며 자기 나라의 구체적인 실정에 맞게 자기 힘으로 풀어나가는 관점과 태도를 똑바로 가지는것이다. 문학에서 주체성을 구현하는 목적은 문학이 자기 나라 혁명에 더 잘 복무하도록 하자는데 있다. 문학은 자기 나라 혁명에 이바지할 때에만 생명력을 가진다.주체성을 철저히 구현하는것은 문학을 자기 나라 혁명에 적극 이바지하는 참다운 주체형의 문학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우리 당의 문예로선과 문예정책에 의거하여 문학창작과 건설사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는것은 문학을 주체성있게 발전시켜나가기 위한 기본조건이다. 우리 당의 문예로선과 문예정책에는 문학에 대한 우리 인민의 요구가 집대성되여있으며 문학을 우리 식으로 발전시켜나가는데서 나서는 모든 리론실천적문제에 대한 전면적인 해답이 주어져있다. 문학활동에서 우리 당의 주체적 문예로선과 문예정책을 지침으로 삼고 그것을 철저히 구현해나갈 때에만 문학을 주체성있게 우리 식으로 발전시켜나갈수 있다.
 문학에서 주체성을 구현하기 위하여서는 높은 민족적 자존심과 긍지를 가지고 자기의것에 정통하며 자기의 민족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고 옳게 계승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자기 민족이 남만 못지 않다는 민족적자존심과 긍지를 가져야 문학작품에 민족자주정신을 깊이있게 구현할수 있으며 사회주의, 공산주의문학건설의 길을 승리적으로 개척하여나갈수 있다. 민족적자존심과 긍지가 강할수록 문학의 주체성이 두드러지게 살아나며 그렇지 못하면 문학의 주체성이 살아나지 못한다. 우리는 슬기롭고 용감한 조선민족으로서의 자존심, 특히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혁명하는 인민으로서의 혁명적자부심을 깊이 간직하고 우리의 민족문학을 우리 식대로 발전시켜나가는데 자기의 모든 힘과 재능을 바쳐야 한다. 우리 나라 력사와 우리 민족의 귀중한 유산과 전통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자주시대의 새로운 문학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기인민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자기 나라 혁명의 리익에 맞게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풀어나갈수 있다.
  문학에서 주체성을 구현하기 위하여서는 민족적특성을 잘 살리는것이 중요하다. 문학에서 민족적특성을 살리는것은 자기 나라 인민의 심리와 정서, 언어와 풍습을 비롯하여 생활과정에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고유한 특성을 반영하는것으로서 문학의 주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구로 나선다. 민족적특성을 살리는데서는 력사적으로 이루어진 우리 인민의 고유한 민족적성격을 진실하고 깊이있게 그려내는데 힘을 넣어야 한다. 우리 민족은 오랜 력사를 가진 문명하고 슬기로운 민족이며 하나의 피줄을 이어받은 단일민족이다.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강의한 의지와 뛰여난 재능, 아름다운 정서를 가진 근면하고 용감한 민족으로서 자기의 고상한 정신도덕적풍모를 온 세상에 과시하였다. 우리 인민의 민족적성격은 해방후 당의 끊임없는 교양과 혁명투쟁과정에 더욱 숭고하게 발전하였다. 문학작품에서는 우리 인민이 지니고있는 아름답고 고상한 민족적성격을 깊이있고 풍부하게, 진실하고 생동하게 그려내야 한다. 문학작품에서는 우리 인민의 민족적성격과 함께 오랜 력사적과정에 이루어지고 굳어진 미풍량속과 우리 인민에게 낯익은 아름다운 자연풍경도 실감있게 그려내야 한다. 문학을 민족적바탕에서 발전시키려면 우리 인민의 비위와 정서에 맞는 새롭고 특색있는 민족적형식도 끊임없이 창조하여야 한다.
 문학에서 주체성을 구현하기 위하여서는 사대주의, 교조주의, 민족허무주의를 비롯한 온갖 낡은 사상을 반대하는 투쟁을 힘있게 벌려야 한다. 사대주의, 교조주의, 민족허무주의는 문학의 주체성을 말살하는 가장 위험한 독소이다. 사대주의, 교조주의, 민족허무주의를 배격하고 주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투쟁은 민족문학의 운명을 좌우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는 사대주의를 비롯한 온갖 낡은 사상을 반대하고 문학에서 주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감으로써 주체문학건설의 력사적위업을 빛나게 실현하여야 한다.
 우리는 자기 나라 민족문학의 주체성을 강화한다고 하여 자기의것만 제일이라고 하면서 다른 나라의 민족문학을 부정하거나 배격하는 민족배타주의를 하여서는 안된다. 다른 나라의 문학에서 이룩된 진보적인것가운데서 우리의 문학발전에 도움이 될수 있는것은 주체적인 립장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나라의것을 받아들인다고 하여 그에 대하여 환상을 가져서도 안되며 그에 맹목적으로 추종하여서도 안된다. 다른 나라의것이 아무리 좋은것이라고 하여도 우리의 실정에 맞게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문학창작에서 주체성을 철저히 구현함으로써 우리 문학을 자주시대 새형의 문학의 본보기로, 우리 인민의 민족자주정신의 빛나는 예술적정화로 만들어야 할것이다.

5) 사상성과 예술성은 통일되여야 한다


 사상성과 예술성을 결합시키는것은 문학창작에서 지켜야 할 기본원칙의 하나이다. 사상성과 예술성을 결합시키는것은 단순히 창작상의 실무적인 요구가 아니라 우리 문학을 명실공히 주체가 선 혁명적인 문학으로 되게 하는데서 나서는 원칙적인 문제이다.
 문학에서 좌우경적편향은 사상성과 예술성의 호상관계를 어떻게 보고 푸는가 하는데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있다.
 문학작품창작에서 예술성을 무시하고 사상성만 강조하는것은 좌경적인 편향이며 사상성을 거세하고 예술성만 내세우는것은 우경적인 편향이다. 문학을 순수 사상을 선전하는 수단으로 만드는 좌경적편향이나 사상과 동떨어진 예술을 위한 예술로 만드는 우경적편향은 다 문학의 인식교양적역할을 거세해버리는 반동적인 경향이다.
 제국주의자들과 그 사환군들이 사회주의문학을 정치에 얽매인 문학이라고 헐뜯고있는데 이것은 부르죠아문학의 반동성을 가리우기 위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일부 작가들처럼 형상에서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정치와 사상에서 손해를 보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작품의 예술성을 높이는데 낯을 돌리지 않으면 그 문학은 문학이 아니다. 형상의 옷을 입지 못한 사상은 문학을 죽음에로 이끌따름이다. 문학에서 작품의 사상성만 내세우면 예술성을 떨구는 결과만이 아니라 사회주의문학을 헐뜯는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비방중상에 부채질하는 후과를 빚어내게 된다.
 문학에서 사상성과 예술성은 결코 서로 배제하는 관계에 있는것이 아니다. 문학에서 사상성이 없으면 예술성도 없고 예술성이 없으면 사상성도 있을수 없다. 어느 하나를 희생시키는 대가로 다른 하나를 살리려고 하는것은 결국 둘 다 죽여버리는것으로 된다.
 사상성과 예술성을 결합시키는것은 문학의 본성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필수적인 요구이다.
 원래 생활을 형상적으로 반영하는 문학은 사상성과 예술성의 통일을 전제로 한다. 사상성과 예술성을 어떻게 결합시키는가 하는데 따라 작품의 가치가 규정된다. 물론 문학작품의 가치를 재는 기준은 민족과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다. 풍습과 전통, 성격과 기호가 다른 민족이 문학을 보는 눈이 같을수 없으며 사람의 의식정도와 문화수준에 따라 문학을 감수하는 높이가 다르고 시대발전단계에서 문학을 대하는 사람들의 수준도 같지 않다. 계급적처지와 사상적리념에 따라 문학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에도 이러저러한 차이점이 있을수 있다. 이러한 차이점은 특히 로동계급과 부르죠아계급, 진정한 혁명가와 기회주의자 사이에서 가장 뚜렷이 나타난다.
 어떤 문학을 가장 훌륭하고 리상적인것으로 보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부르죠아반동문인들속에서 일련의 구구한 견해가 떠돌고있다. 그가운데서 주류를 이루는것은 《순수》 형식적인 미를 추구하는 예술지상주의적인 견해와 사회생활의 본질을 어떻게 반영하고있는가 하는데 관계없이 자연 그대로의 생활을 기계적으로 복사하는 자연주의적인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는 작품의 사상성을 무시하고 예술성만을 작품평가의 기준으로 본다는 점에서 서로 같다. 이것은 문학의 본성에 근본적으로 모순되는 견해이다.
 사상성은 문학의 중요한 속성이며 그 가치를 평가하는 첫째가는 기준이다. 문학에 그려지는 사람은 다름아닌 사상의식을 가진 사회적존재이다.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자주적으로 개척해나가는 사람의 활동은 의식성의 발현이며 세계에서 노는 사람의 역할은 사상의식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활과 투쟁을 그리는 문학에 사상성이 구현되는것은 자연스러운것이다. 생활속에 있는 하나의 현상도 작가에 따라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반영될수도 있고 외곡되게 반영될수도 있으며 좋게 그려질수도 있고 나쁘게 그려질수도 있다. 문학은 바로 작가가 자기의 요구와 지향에 맞는 대상을 선택하고 그것을 자기의 미학적리상에 맞게 형상해낸 창조물이다.
 인간의 다른 모든 의식활동과 마찬가지로 문학창작도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진행된다. 로동계급의 작가는 사람들에게 혁명적인 사상을 심어주고 세계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사회주의, 공산주의위업수행에 더 힘있게 이바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문학작품을 창작한다. 오늘 부르죠아반동작가들이 사람들에게 극단한 개인주의와 말세기적인 퇴페풍조를 퍼뜨리는것은 결국 사람을 정신적불구자로 만들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 창작에서 추구하는 작가의 목적은 작품의 사상적내용에 옮겨지기 마련이다. 문학이 사상적내용을 필수적인 요소로 하고있기때문에 작품의 가치평가에서 사상성이 중요한 기준의 하나로 되는것이다.
 문학에서 사상성은 작가의 세계관에 의하여 결정된다. 작가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작품을 창작하였는가 하는데 따라 그 사상성이 좌우된다. 오늘 우리 작가들은 주체의 세계관에 기초하여 창작활동을 벌리고있다. 가장 과학적이며 혁명적인 주체의 세계관에 기초하여 창작활동을 벌리는것은 작품의 사상적높이를 보장할수 있는 확고한 담보이다.
 예술성은 문학의 고유한 속성이다. 문학에 사상성만 있고 예술성이 없으면 그 작품은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되며 강연제강이나 신문의 사론설과 다름없이 된다.
 고상한 예술성과 결합된 높은 사상성, 이것은 문학작품의 가치를 규정하는데서 유일하게 정당한 기준이다. 사상성과 예술성을 다같이 최상의 수준으로 높이는데 우리 문학작품창작의 목표가 있다.
 우리에게는 당의 정확한 문예정책이 있고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비롯한 훌륭한 본보기작품이 있으며 정치실무적으로 준비된 우수한 창작력량이 있다. 이 모든것은 우리 문학작품의 사상예술성을 높은 경지에로 올려세울수 있는 믿음직한 담보로 된다.
 우리는 사상성과 예술성을 높은 수준에서 결합시키는것이 바로 문학분야에서 좌우경기회주의를 배격하는 투쟁의 한 고리로 되며 주체문학의 풍격을 높이기 위한 기본과제로 된다는것을 명심하고 사상예술적으로 완벽한 작품을 창작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여야 한다.
 문학작품의 내용과 형식의 통일을 보장하는것은 사상성과 예술성을 결합시키는데서 매우 중요하다.

문학에서 사상성은 주로 작품의 내용과 관련되여있으며 예술성은 작품의 형식과 많이 관련되여있다. 작품에서 내용의 경향성은 사상성을 규정하며 형식의 꾸밈새는 예술성을 규정한다.작품은 내용이 심오하고 혁명적일수록 높은 사상성을 가지며 형식이 특색있고 세련되여있을수록 고상한 예술성을 가진다. 사상성과 예술성이 높은 경지에서 결합된 훌륭한 문학작품의 특징은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는 고상한 내용과 세련된 형식의 완벽한 통일에 있다.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영웅적인 생활내용과 아름다운 민족적형식이 조화롭게 결합된 작품만이 우리 시대 사람들을 진실로 공감시킬수 있고 그들을 자주위업수행에로 힘있게 고무할수 있다.
 창작에서는 언제나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잘 풀어야 한다.
 문학작품의 내용과 형식의 관계에서 규정적이며 결정적인것은 내용이다. 작품에는 철학적으로 심오한 종자가 심어져야 하며 사회적으로 의의있는 주제와 사상, 시대가 요구하는 전형적인 인간성격이 그려져야 한다.
 나는 이미 여러 기회에 혁명적대작의 풍격문제를 규모가 아니라 내용에서 해결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대작의 본질적특징은 사상적내용의 철학적인 깊이에 있다. 이것은 다만 대작창작에만 국한되는 요구가 아니다. 대작을 포함한 모든 문학작품은 내용부터 충실하여야 한다. 종자를 똑바로 잡지 않고 이러저러한 일화를 흥미거리로 조립하거나 인간성격은 파지 않고 사건을 아기자기하게 꾸미는데만 신경을 쓰는 현상, 누구나 다 아는 상식적인 인간문제를 제시하는 현상은 다 내용을 무시하는 형식주의적인 창작태도의 표현이다.
 문학작품에서 내용과 형식은 밀접한 련관관계에 있다. 문학에서 내용을 떠난 형식이 있을수 없는것처럼 형식을 갖추지 못한 내용도 있을수 없다. 내용은 형식을 규정하고 제약하며 형식은 내용에 따르면서 그것을 표현한다. 내용은 그에 알맞는 형식을 통해서만 정확하게 표현될수 있다. 잘된 형식은 내용에 적극 반작용하면서 내용을 생동하고 감명깊게 드러낸다. 작가가 좋은 종자를 골라잡고 의의있는 인간문제와 인간성격을 내세우기만 하면 형식문제가 저절로 풀리는것이 아니다. 작품에서는 언어와 구성, 양상과 형태와 같은 일련의 형상수단과 형상수법을 다 동원하여야 내용을 충분히 살려낼수 있다. 창작에서는 형상수단과 수법을 다양하게 쓸수록 내용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작가의 세계관이 바로서고 생활체험이 풍부한 조건에서는 형상수단과 수법에 얼마나 정통하고 그것을 얼마나 효과있게 쓰는가 하는데 따라 작품의 내용을 잘 살려낼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수도 있다.
 일반화와 개성화의 통일을 철저히 보장하는것은 사상성과 예술성을 결합시키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이다.
 일정한 시대와 사회, 계급과 계층의 본질을 드러내고 생활발전의 합법칙성을 밝혀내는 일반화의 결과에 의하여 문학작품에는 일정한 사상적내용이 담겨지게 되며 인간생활을 개별적인것과 구체적인것을 통하여 생동하게 그려보이는 개성화의 결과에 의하여 예술적인 맛이 깃들게 된다. 일반화와 개성화를 통일시키는것은 전형화의 기본요구인 동시에 사상성과 예술성을 결합시키기 위한 원칙적인 요구로 된다.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것과 합법칙적인것을 찾아내여 작품에 구현하는데서 유일한 척도로 되는것은 위대한 주체사상이다. 주체사상에는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의 모든 분야에 대한 가장 과학적인 지침이 밝혀져있다.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예술적일반화를 실현할 때에만 문학작품에서 생활과 투쟁의 정수를 옳게 밝혀낼수 있고 높은 사상성을 보장할수 있다. 시대를 대표하는 인간과 생활에는 사회의 본질이 집중적으로 체현되여있다. 작가는 우리 사회의 고유한 특징과 인연이 없는 우연적인 생활현상에 포로되거나 생활의 사말사에 매달릴것이 아니라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위한 인민대중의 벅찬 투쟁이 벌어지고있는 생활의 한복판을 헤치고 들어가야 한다.
 문학에서 사회생활의 본질과 합법칙성은 개성적인것을 통하여 나타난다. 문학의 예술성은 개성화의 수준에 따라 많이 좌우된다. 작가는 현실에 깊이 들어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상을 줄수 있는 개성적인 현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하여 시대와 사회의 본질을 생동하고 감명깊게 드러내야 한다.
 사상성과 예술성을 결합시키는데서 정치적인것과 형상적인것의 통일을 실현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문학의 사상성은 정치성에서 집중적으로 드러나며 정치성은 사상성의 최고표현이다. 사회적존재인 사람의 사상은 사회정치적문제에 대한 립장과 태도에서 가장 예리하게 드러나며 문학작품의 사상적경향성은 그것을 추구하는 정치적목적에서 가장 뚜렷하게 표현된다. 그러므로 작품의 사상예술성을 높이는데서 정치성을 뚜렷이 살리는 문제가 중요한 요구로 나선다.
 문학은 정치에 복무한다. 문학은 정치와 밀착되여있으며 정치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작가자신도 창작에서 자기가 살고있는 사회의 정치제도, 정치적리념을 반영하며 그것을 긍정하거나 부정한다. 문학을 자기 계급과 자기 제도의 리익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되게 하려는 작가의 지향이 높아지면 질수록 작품의 정치성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다.
 작품의 정치성을 높이려면 작가가 확고한 계급적립장에 서서 생활을 예리하게 분석평가하고 작품에 정책적인 대를 튼튼히 세워야 한다. 당의 사상과 정책을 얼마나 정확하고 깊이있게 반영하는가 하는데 따라 작품의 정치성이 좌우된다. 작가는 생활의 세부를 그려도 그 사상적본질과 정치적의의를 깊이있게 밝혀내야 하며 인간을 그려도 그의 정치적립장이 뚜렷이 나타나게 형상하여야 한다.
 문학이 정치에 복무한다고 하여 정치성 일면에만 치우쳐서는 안된다. 형상이 없이 정치만 있는 작품은 문학이 아니다. 사람들속에서 정치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존재하는것이 아니다. 인간의 정치적립장은 례사롭게 흘러가는 일상생활의 계기마다에서 수시로 나타나며 날마다 진행되는 로동생활속에서도 드러난다. 정치는 매 사람의 운명과 련결되여있고 그들의 실지 생활속에 구체적으로 체현되여있다. 벌써 사람들이 사고하는 품위와 살아가는 본새만 보아도 그 나라의 정치를 넉넉히 짐작할수 있는것이다. 작가는 창작에서 정치라는 추상적인 의미부터 먼저 생각할것이 아니라 사람의 구체적인 성격과 생활에 파고들어가야 하며 그 과정에 정치적내용이 스스로 우러나오게 작품을 써야 한다.
 철학적인것과 생활적인것의 통일을 이룩하는것은 작품의 사상성과 예술성을 결합시키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요구이다. 철학과 문학은 원래 깊이 련관되여있다. 물론 철학과 문학은 서로 다르지만 다같이 사람들에게 세계관과 인생관을 준다는 의미에서 련관성을 가지게 된다.
 문학에서는 세계의 지배자이며 개척자인 인간과 그 활동의 전모를 그려내야 하는것만큼 어차피 인간이 세계를 어떤 눈으로 보는가, 인간과 사회와 자연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문제를 반영하지 않을수 없다. 문학이 세계관적인 문제, 인생관적인 문제를 반영하는 사정으로 하여 그에 철학적인 요소가 필연적으로 담겨지게 된다. 문학에 심오한 철학이 담겨질수록 그 사상적내용이 깊어지고 사람의 세계관과 인생관에 주는 영향력도 커진다.
 문학에서 철학적인것은 생활적인것을 떠나서 존재할수 없다. 문학에 철학적인것을 담는다고 하여 철학에서처럼 론리적인것만 추구한다면 예술성을 살릴수 없는것은 물론, 그 철학성도 옳게 보장할수 없다. 문학작품의 사상예술적수준은 주로 철학이 있는가, 생활이 있는가 하는데 따라 규정된다. 철학이 있고 생활이 있으면 그 작품은 성공한 작품이다.
 최근에 창작된 가사《내 나라 제일로 좋아》는 생활도 있고 철학도 있는 참으로 훌륭한 명가사이다. 지금까지 조국을 노래하고 조선민족제일주의를 노래한 가사가 많이 창작되였지만 《내 나라 제일로 좋아》만큼 생활적이면서도 철학성이 깊은 가사는 많지 않다. 가사에는 그 어떤 요란한 시적표현도 없고 수사학적인 명구도 없다. 여기에는 다만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매일매시각 보고 듣고 느낄수 있는 들과 꽃, 물과 샘, 해와 별과 같은 지극히 평범하고 생활적인 현상에 대한 어휘가 있을뿐이다. 그런데도 이 소박하고 생활적인 시어가 사람의 심금을 그처럼 뜨겁게 울리는것은 이국의 들가에 피여난 한떨기 꽃을 보고도 내 나라 꽃보다 곱지 못함을 느끼고 벗들이 부어준 한모금의 물을 마셔도 내 고향의 샘물보다 달지 못함을 느끼며 노래는 아리랑곡조가 좋아 멀리 이국땅에서도 정답게 부르는 서정적주인공의 체험세계가 깊이있게 담겨져있기때문이다. 이 가사에는 정든 고향을 떠나 오래동안 해외에서 살고있거나 조국을 떠나 한동안 다른 나라를 다녀온 사람만이 느낄수 있는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내 나라가 제일이라는 높은 긍지감이 소박하면서도 생활적인 시어속에 뜨겁게 고동치고있다. 돌아보면 세상은 넓고넓어도 내가 사는 내 나라가 제일로 좋다는 심오한 사상은 비단 해외교포들이나 외국을 다녀온 시람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우리인민모두가 느끼는 한결같은 감정이다. 그렇기때문에 가요 《내나라 제일로 좋아》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그처럼 만사람의 심장을 격동시켰던것이다. 문학작품은 생활속에서 철학을 이야기하고 철학적인 심원한 사상을 꾸밈없는 생활적형상을 통하여 밝혀내야 뜻깊고 가치있는것으로 될수 있다.
 작품에 생활이 있다없다 하는것은 주로 형상이 생활의 론리, 성격의 론리를 타고 전개되는가, 실지 생활을 개성적으로 실감있게 련상시키는 진실한 세부가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되여있다. 어떠한 생활의 흐름, 어떠한 인간의 활동과정에도 자기의 고유한 생활론리, 성격론리가 있기마련이며 그것은 작가의 주관에 관계없는 객관적인것이다. 작가는 오직 인물의 성격과 생활의 흐름에 고유한 객관적인 론리를 성실하게 따라가는 길밖에 없다. 여기에 조금이라도 작가의 주관이 개입되여 억지와 무리가 생겨나면 작품은 생활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
 작가는 작품에서 자기가 말하자고 하는 의도를 지나치게 로출시키지 말아야 한다. 자그마한것도 빤드름하게 드러내고 대사나 주정토로 같은데서 철학적인것을 직선적으로 밝히려 하여서는 작품의 깊이를 보장할수 없다. 형상의 매력은 작가의 의도를 생활속에 깊이 묻어두고 그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하는데 있다. 생동하고 인상깊은 생활속에서 철학적인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형상하는것이 작가의 재간이다.
 철학적인것과 생활적인것의 통일을 보장하는데서 형상보다 결론을 앞세우지 않는것이 중요하다. 형상에 대한 결론은 독자에게 맡겨야지 작가가 나서서 결론할 필요가 없다. 미리 결론을 내린 다음 거기에 생활을 억지로 맞추는 식으로 작품을 쓰는것은 발에 신발을 맞추는것이 아니라 신에 발을 맞추는 격이다.
 문학작품을 이야기가 시작되자 비로소 생활이 시작되고 이야기가 끝나자 생활도 멎어버린듯이 써서는 안된다. 생활은 세상에 사람이 존재하는 한 영원한것이며 방대한 폭을 가지고 펼쳐지고있다. 생활은 작품의 이야기가 시작되기전에도 있었고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도 계속된다. 작가는 다만 그 영원하고 폭넓은 생활의 흐름속에서 어느 한 단면이나 토막을 잘라서 작품에 담을뿐이다. 창작에서는 그 단면을 전후좌우에서 벌어지는 다른 생활세계와의 련관속에서 펼쳐놓아야 한다. 그래야 작품에서는 생활을 진실하고 생동하게 보여줄수 있고 형상의 립체미도 살릴수 있으며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도 여운을 줄수 있다.
 사상성과 예술성을 결합시키자면 사상과 정서의 조화로운 통일에 대하여서도 깊은 관심을 돌려야 한다.
 리성적인것과 감성적인것의 통일은 형상의 기본속성이다. 문학작품에서 형상은 작가의 리성적인 사색과 감성적인 느낌에 기초한 사상과 정서의 통일로 이루어진다. 문학에서 사상을 떠난 정서는 무의미하며 정서를 떠난 사상은 메마른 추상적인 개념에 그치게 된다. 문학에서는 감정의 흐름을 타고 정서적으로 밝혀지는 사상만이 사람의 심금을 울려주며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다. 문학의 위력은 높은 사상이 고상한 정서로 안받침되는데서 생겨난다. 사람은 어떤 사물현상을 보거나 대할 때 일정한 사상적견해와 함께 일정한 감정적태도를 표현하게 된다. 작가는 생활에 대한 인물의 견해와 태도에서 나타나는 긍정과 부정, 사랑과 증오, 옹호와 규탄의 사상감정을 진실하고 섬세하게 그려내야 한다.
 문학작품에서는 인물의 사상감정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와 함께 작가자신의 감성적인 태도를 통하여서도 정서를 앙양시킬수 있다. 작품에 펼쳐지는 생활현상에 대한 작가의 감성적태도가 명백하고 열렬하고 예리할수록 사람의 마음을 크게 움직일수 있다. 물론 그러한 감성적태도는 작가가 직접 토로하는 방법으로도 표현할수 있고 묘사대상속에 굴절시켜 간접적으로 나타낼수도 있다. 어떤 표현방법을 리용하든지 시대에 대한 열렬한 긍정과 혁명위업에 대한 끝없는 헌신성, 아름다운 인간과 고귀한 삶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온갖 낡은것에 대한 비판으로 작가의 심장이 불탈 때만이 작품을 보는 사람의 심장도 뜨겁게 달아오를수 있다.
 사상성과 예술성에 관한 문제는 문학의 내용과 형식전반에 걸치는 방대한 령역을 포괄하고있으므로 론의해야 할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렇지만 내용과 형식의 통일, 일반화와 개성화의 통일, 정치적인것과 형상적인것의 통일, 철학적인것과 생활적인것의 통일, 사상과 정서의 통일을 잘 보장하기만 하면 사상성과 예술성을 높은 수준에서 결합시킬데 대한 요구를 원만히 풀어나갈수 있을것이다.


6) 문학분야에서 이색적인 사상조류의 침습을 막아야 한다


 오늘 제국주의자들은 세계적인 세력균형이 파괴된 복잡한 정세를 기화로《반공》소동을 더욱 미친듯이 벌리고있으며 사회주의나라들에 대한 사상문화적공세를 전례없이 악랄하게 감행하고있다. 이에 보조를 맞추어 혁명의 배신자들이 사회주의문학을 말살하고 반동적인 부르죠아문학을 부활시키려고 책동하고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온갖 이색적인 사상조류의 침습을 막고 우리 문학의 혁명적원칙을 고수하는것은 문학부문앞에 나서는 절박한 과업이다. 조성된 정세는 우리에게 온갖 이색적인 사상조류를 반대하는 투쟁을 그 어느때보다도 견결히 벌릴것을 요구하고있다. 원래 착취사회의 낡은 문화를 반대하여 투쟁하는것은 사회주의적민족문학건설의 합법칙적요구이다. 사회주의문학의 창작과 건설과정은 문학분야에 남아있는 낡은 사상요소를 뿌리빼고 밖으로부터 침투하는 온갖 이색적인 사상조류를 반대하는 심각한 계급투쟁을 동반하게 된다. 사회주의문학은 안팎의 계급적원쑤들의 사상문화적공세를 짓부셔야만 로동계급의 본성에 맞게 건설될수 있으며 인민대중의 리익을 철저히 옹호할수 있다.
 부르죠아문예사조는 착취계급의 반동적인 사상조류이다. 부르죠아문예사조는 착취계급의 반동사상을 퍼뜨리는데 주되는 목적을 두고 인간과 생활에 대한 진실한 반영을 거부한다. 지금 세계적으로 류포되고있는 부르죠아문예사조는 각양각색이지만 그것은 례외없이 착취계급의 반동적세계관에 기초하고있으며 생활에서 본질적인것을 외면하거나 외곡하며 비본질적인것을 과장하고 미화분식하는데 열을 올리고있다.
 자연주의는 부르죠아문예사조의 주되는 조류이다.
 자연주의는 우연적이며 비본질적인것을 기계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생활의 본질과 진실을 외곡한다. 자연주의가 추구하는 목적은 생활을 외곡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착취사회의 모순을 보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며 자본주의의 《영원성》을 설교하려는데 있다.
 부르죠아문예리론가들은 사실주의와 자연주의가 다같이 현실을 객관적으로 그리는것만큼 창작방법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고있다. 오늘 자본주의나라들에서는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를 마구 뒤섞어놓은 범벅식문학작품이 많이 창작되고있으며 그런 작품이 혁명하는 나라들에 이러저리한 탈을 쓰고 흘러들어가고있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높은 경각성을 가지고 대하여야 한다.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는 객관적으로 생활을 반영한다는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고 볼수 있겠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완전히 다른것이다. 창작방법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표징은 세계관적기초와 사상미학적원칙이다. 사실주의가 선진적이고 혁명적인 세계관에 기초한것이라면 자연주의는 실증주의와 사회다윈주의를 비롯한 비과학적이며 반동적인 세계관에 기초를 두고있다. 사실주의는 본질적이며 의의있는 생활과 인간의 사회적본성을 개성적으로 그려내지만 자연주의는 부차적이며 비본질적인 생활과 인간의 생물학적본능을 절대화하고있다.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는 그 세계관적기초는 물론, 현실을 반영하는 근본원칙과 인식교양적기능도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르죠아문예리론가들이 두 창작방법의 계선을 모호하게 만들고 한데 섞어놓으려고 책동하는것은 사람의 혁명의식을 마비시키고 부르죠아생활양식을 퍼뜨리며 자본주의사회를 미화분식하고 례찬하려는데 그 진의도가 있다.
 우리는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본질적차이를 똑똑히 가려보아야 한다. 우리 작가들이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에 대하여 리론적으로는 알고있다 하여도 창작실천에서는 이러저러한 자연주의적인 오유를 범할수 있다. 작품에서 적들의 만행을 보여준다고 하여 사람을 마구 고문하거나 학살하는 류혈적인 장면을 무의미하게 라렬하거나 진실하지 못한 비유를 망탕 써서 대상의 본질을 외곡하는 현상, 작품의 서정성을 돋군다고 하여 우리의 혁명적인 현실을 애상적이며 목가적인것으로 그리려 하거나 순수 사랑관계와 혈육관계를 흥미본위적으로 파고드는 현상, 시대와 사회의 전형으로 될수 없는 비본질적인 생활의 사말사를 파거나 아무런 사상적내용도 없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감상적으로 펼쳐놓는것과 같은 현상은 다 자연주의적수법으로밖에 달리 볼수 없다.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를 가르는 기준은 생활의 본질을 진실하게 일반화하였는가 아니면 외곡하여 반영하였는가 하는데 있다. 지난 기간 형상적비유를 잘못하였거나 적들의 피비린내나는 만행을 공포감이 나게 그리는것을 비롯하여 이러저러한 작품의 과오를 자연주의적경향으로 규정하고 비판한것도 이러한 기준에 의한것이다.
 물론 사회주의문학에서 자연주의적경향은 부르죠아문학에서처럼 의도적으로 현실의 본질을 외곡하거나 인간의 생물학적본능을 그리는 식으로 하여 나타나는것은 아니다. 작가가 좋은 의도에서 출발하면서도 자연주의적인 과오를 저지르게 되는것은 세계관이 확고하지 못하고 생활에 대한 철학적사색이 부족하며 특히는 사실주의의 외피를 쓴 자연주의에 대한 각성이 무딘것과 관련되여있다. 작품에서 비록 부분적으로 나타난것이라하여도 그 하나의 자연주의적요소가 작품전체를 본래의 창작의도에 배치되게 만든다는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부르죠아문학에서 나타나는 자연주의와 사회주의문학에서 나타나고있는 자연주의적요소는 그 형태와 정도에서 차이가 있을뿐이지 본질적으로는 서로 같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의 사회주의문학에서는 자연주의의 자그마한 요소도 절대로 용납하여서는 안된다.
 형식주의도 부르죠아문예사조의 주되는 조류의 하나이다.

형식주의는 형식을 내용과 분리시키고 내용을 형식에 복종시킴으로써 문학작품의 사상성을 떨어뜨릴뿐아니라 예술성자체도 손상시킨다. 현대부르죠아문학에서 형식주의는 형식을 내용으로부터 떼내여 절대화함으로써 형식자체를 기형화하고 파괴하는데 이르고있다. 문학분야에서 형식주의의 최첨단이라고 할수 있는 모더니즘만 하여도 형형색색의 류파를 이루고있지만 그것은 다 사람이 리해할수 없는 주관의 세계를 추상적형식에 담아 제멋대로 그려냄으로써 문학의 사상적내용을 흐리게 하고 인식교양적기능을 마비시키고있다. 형식주의자들은 무의미하고 까다로운 말마디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 시아닌 시를 《시의 극치》로 내세우고있지만 사실상 그것은 형식을 위한 형식, 기교를 위한 기교의 추구에 지나지 않는다. 부르죠아문학에서 형식주의가 형식을 절대화하고 내용을 무시하는것은 악덕과 모순에 찬 자본주의사회의 현실을 가리우고 사람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려는데 주되는 목적이 있다.
 우리의 문학분야에 문학조류로서의 형식주의는 없지만 창작실천에서 형식주의적요소가 이러저러한 형태로 나타날수 있다. 창작실천에서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생활의 법칙에 맞게 풀지 못하고 작품의 내용보다 형식부터 먼저 생각하면서 틀거리를 크게하여 규모로 한몫 보려는 대작주의경향도  형식주의의 한 표현이다. 내용이 공허한 작품은 아무리 형식이 요란하여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작품의 종자와 주제, 사상, 인간성격을 깊이있게 파고들 생각은 하지 않고 재치있는 구상과 미사려구로 형상을 굼때려는 현상, 현실을 미화분식하고 주인공을 리상화하는 현상은 다 형식주의적인 창작경향의 표현이다.
 우리는 창작실천에서 형식주의적경향이 머리를 쳐들지 못하도록 그 자그마한 표현에 대하여서도 절대로 융화묵과하지 말고 투쟁을 벌려야 한다.
 문학분야에서 이색적인 사상조류의 침습을 반대하는 투쟁의 예봉은 무엇보다도 제국주의의 사상문화적침투를 짓부시는데 돌려져야 한다.
 사상문화적침투는 제국주의의 해외침략을 위한 주되는 수법의 하나이다. 제국주의자들은 해외침략에서 의연히 군사적힘에 매달리는 한편 이른바 《문화계몽》의 허울좋은 간판밑에 사상문화적침투를 강화하고있다. 제국주의자들이 사상문화적침투에서 문학예술을 중요한 수단으로 삼는것은 그 특성과 관련된다. 문학예술은 사람의 세계관형성에 큰 작용을 한다. 문학예술은 리성뿐아니라 감성에도 적극 작용하기때문에 사람의 사상문화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세계관형성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문학예술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제국주의자들은 이러한 문학예술의 특성을 리용하여 자기의 침략적본성을 가리우고 사람들속에 저들에 대한 환상을 퍼뜨리며 인민의 민족자주의식과 혁명정신을 마비시키고 민족문화발전을 억제하려고 교활하게 책동하고있다. 이것은 썩고 병든 양키문화가 판을 치고있는 남조선의 실태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말미암아 유구한 민족문화는 여지없이 짓밟히고 썩어빠진 양키문화가 차고넘쳐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병들게 하고있다.
 오늘 제국주의자들은 사기와 협잡, 살인과 강탈, 패륜패덕을 례찬하며 인종주의와 인간증오사상을 고취하는 반동적인 부르죠아문학예술을 공화국북반부에까지 침투시키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하고있다.
 제국주의자들의 사상문화적침투를 철저히 막아내지 않는다면 혁명과 건설에서 엄중한 후과를 가져올수 있다. 제국주의자들의 사상문화적침투를 막아내지 않을 때에는 사회주의민족문학예술을 건전하게 발전시킬수 없을뿐아니라 피로써 쟁취한 사회주의전취물마저 위험에 빠뜨릴수 있다. 이것은 국제공산주의운동의 력사적경험이 보여주는 심각한 교훈이다. 오늘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반혁명적공세앞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당하고있는것은 부르죠아《자유화》의 미끼에 걸려든 불순한 작가, 예술인들에 의하여 반동적인 부르죠아문학예술이 부식되고 서방문화가 급속히 침투된것과 관련되여있다. 사상문야분야에서 제국주의자들에게 문을 열어주는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우리는 약초밭의 독초와 같은 부르죠아사상문화가 뿌리내릴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부르죠아사상문화의 자그마한 요소도 제때에 밑뿌리채 들어내야 한다.
 문학부문에서 수정주의를 반대하는 투쟁도 강하게 벌려야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바와 같이 수정주의와 양풍은 사촌간이라고 말할수 있다. 수정주의를 하면 양풍을 끌어들이고 양풍에 물젖으면 수정주의를 하기 마련이다. 오늘 수정주의가 각양각색의 탈을 쓰고있지만 그것은 다 부르죠아사상의 변종에 지나지 않으며 제국주의의 머슴군으로서 사상문화적침투의 길을 열어주고 그 대변자노릇을 한다는 점에서는 조금도 다를것이 없다. 이것은 혁명의 배신자들이 사람들의 혁명의식을 마비시키고 그들을 정신적불구자로 만드는 썩어빠진 반동적문학예술과 자본주의적생활양식을 마구 끌어들이고 《자유화》의 간판밑에 문학예술을 급속히 부르죠아화,《서양화》하고있는데서도 명백히 찾아볼수 있다. 혁명의 배신자들은 반동적인 부르죠아사상문화를 끌어들이는것이 그 무슨 사상해방이나 되는듯이 떠들어대고있다.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것을 례찬하며 사람을 정신적불구자로 만드는 부르죠아사상문화를 끌어들이는것이 결코 사상해방으로 될수는 없다.
 수정주의문학의 반동성은 당성, 로동계급성, 인민성을 거부하는데서도 표현된다.
 현대수정주의자들은 문학분야에서도 로동계급의 혁명적문학과 부르죠아지의 반동적문학을 가리지 않고있으며 계급을 떠난 전인류적인 문학을 주장하고있다. 그들은 도대체 문학에 계급성이 필요없다고 하고있다.
 수정주의문학의 사상적온상은 부르죠아사상이다. 수정주의문학은 부르죠아사상에 바탕을 두고있기때문에 부르죠아문학과 본질상 다를것이 없다. 지난날의 수정주의나 현대수정주의나 다 로동계급의 문학을 변질시켜 부르죠아문학으로 만들려고 책동하고있다. 지난날의 수정주의자들이 사회주의의 외피를 쓰고 은페된 형태로 부르죠아문학을 끌어들이는 길잡이의 역할을 하였다면 현대수정주의자들은 그 외피마저 벗어던지고 공공연히 부르죠아복귀를 떠벌이며 제국주의자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고있다.
 계급투쟁의 무기로서의 문학의 사회적기능을 마비시키려고 시도하는 수정주의자들이 들고나온 《초계급적문학》,《전인류적문학》은 바로 로동계급의 계급적리익을 배반한 저들의 반동적정체를 가리우기 위한 연막에 지나지 않는다. 계급을 떠난 인간일반이 있을수 없는것과 같이 계급을 떠난 《전인류적문학》도 있을수 없다. 로동계급은 자기의 계급적령도를 약화시키거나 자신을 다른 계급과 계층속에 용해시키는 방법으로 사회의 계급적차이를 없애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계급적립장을 확고히 견지하고 다른 계급과 계층을 자기의 모양대로 개조하는 방법으로 계급적차이를 점차 없애는 가장 선진적인 계급이다. 사회주의사회의 계급적성격을 부인하고 《전인류적문학》에 대하여 부르짖는것은 결국 현시대는 계급이 없는 시대라는 기만적인 간판밑에 초계급적인 《순수 문학》을 제창하는 제국주의자들의 리해관계를 옹호하고 대변하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수정주의문학의 반동성은 문학에 대한 당과 수령의 령도를 거부하고 《창작의 자유》를 떠벌이는데서도 표현된다.
 수정주의문학의 반동적본질에서 기본으로 되는것은 로동계급의 수령의 역할을 거부하고 수령에 의하여 이룩된 혁명전통을 거세하는것이다. 로동계급의 수령의 권위와 업적을 헐뜯는것은 원래 수정주의의 반동적본질에서 핵을 이룬다. 오늘 현대수정주의자들이 지난 시기 사회주의건설과정에 나타난 과오의 원인을 맑스-레닌주의와 결부시키면서 그 창시자들을 헐뜯고있는것은 인민들속에서 수령이 개척한 사회주의위업에 대한 신념을 허물어버리고 사회주의길에서 벗어나 자본주의길로 되돌아가려는 저들의 반혁명적책동을 합리화하자는데 있다. 이러한 반동적인 목적으로부터 수정주의자들은 문학에 대한 당의 령도를 《행정적간섭》이라느니, 창작과정에 대한 《가혹한 통제》라느니 하면서 《예술의 자치》와 《창작의 자유》를 들고나오고있으며 문학에 대한 당의 령도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있다. 그들은 프로레타리아독재기구인 국가문학예술행정기관들의 통제적기능을 약화시키고 작가, 예술인들의 조직체인 문학예술동맹을 구락부화하는 한편 작가,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에 대한 정치적지도를 거부하며 문학사업을 완전히 《자유화》하고있다.
 수정주의자들은 문학예술에 대한 당의 령도를 거부하고 제국주의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면서 그와의 친선과 타협을 설교하고있으며 작품들에서 전쟁에 대한 공포증과 염전사상, 평화주의를 고취하며 개인리기주의와 자유주의를 조장하고 일하기 싫어하고 투쟁하기 싫어하며 혁명하기 싫어하는 안일부화한 사상을 퍼뜨리고있다. 수정주의문학은 지금 일부 나라들에서 근로자들과 청소년들을 타락시키고있으며 사회에 각종 범죄가 성행하게 만들고 썩어빠진 부르죠아생활양식과 패륜패덕이 판을 치게 하고있다. 이것이 현대수정주의자들이 《개편》놀음을 벌려놓고 부르죠아반동문화를 마구  끌어들인 결과에 빚어진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는 이것을 남의 일로만 여기면서 결코 강건너 불보듯하고만 있을수 없다. 우리 나라에서는 당과 수령의 옳바른 령도가 있음으로 하여 사소한 수정주의요소도 머리를 쳐들지 못하고있다. 그러나 수정주의가 침습할수 있는 틈이 전혀 없다고 단언할수는 없다. 우리는 앞으로도 수정주의의 침습을 경계하고 반수정주의투쟁을 한순간도 늦추지 말아야 한다.
 문학예술분야에서 이색적인 사상조류의 침습을 성과적으로 막아내자면 사대주의와 교조주의, 민족허무주의를 반대하는 투쟁도 힘있게 벌려야 한다.
 우리는 문학분야에서 온갖 이색적인 사상조류의 침습을 철저히 막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림으로써 우리 문학의 혁명적원칙을 확고히 고수해나가야 한다.

2. 유산과 전통

1) 유산이 있고 전통이 있다

 민족문화유산을 옳게 계승발전시키는것은 주체적문학예술건설에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의 하나이다. 어느 시대의 문학예술이든지 빈터에서 발생발전할수 없다. 선행세대가 이룩하여놓은 민족문화유산을 디딤돌로 삼고 그 진보적이고 인민적인 내용과 형식을 옳게 이어받을 때에만 문학예술을 자기 민족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발전시킬수 있다.
 민족문화유산을 옳게 계승하는것은 우리 시대의 더욱 절실한 문제로 나선다. 사람들의 공고한 집단, 사회생활의 기본단위는 나라와 민족이며 인민대중의 생존과 발전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과 뗄수 없이 련결되여있다.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이 민족국가를 단위로 하여 그 어느때보다도 세차게 벌어지고있는 오늘 민족문제는 혁명과 건설의 승패, 인민대중의 운명을 좌우하는 근본문제로 제기되고있다. 민족에 대한 립장은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태도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된다.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허무주의는 사대주의를 낳으며 사대주의를 하면 민족이 망한다.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은 곧 민족적자존심과 민족제일주의의 중요한 표현이다. 민족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고 옳게 계승할 때에만 문학예술을 자기 민족의 지향에 맞게 주체적으로 발전시킬수 있으며 그 민족성을 견결히 지켜나갈수 있다.
 민족문화유산을 옳게 계승발전시키는 문제는 외세에 의하여 국토와 민족이 둘로 갈라진 우리 나라에서 보다 심각하게 제기된다. 민족문화유산은 나라가 분렬되였다고 하여 둘로 갈라지는것이 아니며 그 누가 제멋대로 가른다고 하여 갈라지는것도 아니다. 우리 인민이 한강토에서 한피줄을 이어가며 공동으로 자기의 운명을 개척하여나가는 한 민족도 하나이며 민족문화도 하나이다. 사람들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며 민족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는것은 민족의 성원으로서 가지게 되는 공통적인 사상감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팎의 분렬주의자들은 나라와 민족이 일시적으로 둘로 갈라진것을 기화로 우리의 슬기롭고 유구한 민족문화유산을 영원히 둘로 갈라놓으려고 책동하고있다. 우리는 분렬주의자들의 반통일적이며 반민족적인 범죄적책동을 짓부시고 조상대대로 물려오는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옳게 계승발전시켜야 한다.
 민족문화유산문제를 옳게 풀어나가는것은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고 조국통일의 유리한 국면을 열어놓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갈라진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자면 북과 남이 다같이 민족자주의 리념에 기초하여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오늘 남조선인민들과 해외동포들속에서 공화국북반부를 동경하고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우리가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 민족자주의 리념을 빛나게 구현하고있는데 대하여 매우 좋은 감정을 품고 돌아가고있다. 남조선인민들과 해외동포들이 우리의 통일의지에 더욱 공감하면서 우리가 내놓은 통일방안을 적극 지지성원하고있는것은 우리가 민족문화유산을 옳게 평가하고 잘 계승해나가고있는것과도 많이 관련된다.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적지 않은 남조선인민들과 해외동포들이 공산주의자들은 민족문화유산을 낡은 사회의 유물이라고 하면서 청산해버리는 편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던 그들이 찬란히 개화발전하는 공화국북반부의 민족문화예술을 보고서는 감탄을 금치 못해하고있다. 우리가 민족문화유산을 옳게 계승발전시켜나갈수록 문학예술의 주체성이 더욱 강화되는것은 두말할것도 없고 더 많은 남조선인민들과 해외동포들에게 민족적긍지와 통일열망을 안겨줄수 있다.
 우리는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문제가 단순히 문학예술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자주시대의 기본요구와 우리 당의 민족자주로선과 관련된 중요한 정치적문제로 된다는것을 깊이 명심하고 그 계승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당의 의도에 맞게 풀어나가야 한다.
 민족문화유산이란 민족의 선행세대들이 력사적으로 내려오면서 창조하여 후세에 물려주는 정신적 및 물질적 재부이다.
 민족문화유산에는 후대들이 계속 이어받아야 할것과 보존해두기만 할것이 있으며 없애버려야 할것도 있다. 여기서 이어받아야 할 유산이 바로 전통을 이룬다.
 민족문화유산에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위한 혁명투쟁속에서 창조된 혁명적문화유산도 있고 그 이전시기 선조들이 이룩한 고전문화유산도 있다. 고전문화유산만 민족문화유산으로 보고 혁명적문화유산을 민족문화유산으로 보지 않는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혁명적문화유산이 중요하다고 하여 그것을 민족문화유산의 범주에서 벗어난 다른 개념으로 취급한다면 그것은 리치에도 맞지 않는다. 선조들이 이룩한 재부이든 혁명가들이 이룩한 재부이든 자기 민족에 의하여 마련되여 후대에 전해지는것이라면 다 민족문화유산으로 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민족문화유산과 계선짓는다고 하면서 유산과 전통을 아무런 련관이 없는것으로 갈라놓고있다. 우리가 혁명적문학예술전통과 민족문화유산의 계선을 똑똑히 그을데 대하여 강조하는것은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민족고전문화유산과 뒤섞어놓지 말고 그 순결성을 튼튼히 고수하기 위해서이다. 지난 시기 일부 사람들은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상하좌우로 넓힌다고 하면서 과거 애국전통을 혁명전통으로 취급하고 실학파문학이나 《카프》문학도 우리 문학의 혁명전통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혁명전통이 무엇인지 그 개념조차 모르는 몰상식한 견해이며 혁명전통을 오가잡탕으로 만들고 혁명전통을 이룩한 수령의 업적을 말아먹으려는 반동적인 궤변이다.
 혁명적문학예술전통도 민족문화유산속에서 보아야 한다.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민족문화유산속에서 보는것은 과학적으로도 옳고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의 지위를 높이는 의미에서도 합리적이다.
 로동계급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결코 하늘에서 떨어졌거나 그 어떤 다른 민족에 의하여 이루어진것이 아니다. 우리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다름아닌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마련되였다. 우리의 혁명선렬들은 공산주의자이기전에 조선민족의 우수한 아들딸들이다. 공산주의리념은 결코 민족적리념을 배제하지 않으며 민족적리념을 떠난 공산주의리념이란 있을수 없다. 사회주의, 공산주의건설은 민족국가를 단위로 하여 진행되며 앞으로 공산주의사회에 가서도 사람들의 생활은 어디까지나 나라와 민족을 단위로 하여 이루어지게 된다.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창조되지만 공산주의자들에게만 필요한 재부가 아니다. 우리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조선민족모두에게 필요한 재부이며 전체 조선민족이 대를 이어가며 계승발전시켜나가야 할 전민족적인 유산이다.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이 조선민족의 우수한 아들딸들에 의하여 마련된 전통이라는 의미에서 보나 민족공동의 재부이라는 의미에서 보나 그것은 반드시 민족문화유산속에 포함되여야 한다.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민족문화유산속에 포함시켜본다고하여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의 가치와 의의가 왜소화되는것이 아니다.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민족문화유산의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보아야 그 전통의 력사적지위와 가치를 전민족사적인 견지에서 옳게 평가할수 있으며 민족문화유산의 격도 높일수 있다. 사실 우리 민족문화유산속에 항일혁명문학예술과 같은 영광스러운 전통이 있다는것은 참으로 긍지높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민족문화유산을 고전문화유산으로만 보아도 안되지만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과거의 민족문화유산과 뒤섞어놓거나 민족문화유산에서 차지하는 그 위치를 다른 유산과 평균주의적으로 대하여서도 안된다.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민족문화유산의 핵이며 중추이다.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질적내용에서 민족문화유산의 최고봉을 이룬다. 우리 당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수천년 민족사를 통하여 선조들이 마련해놓은 민족문화유산을 전면적으로 검토총화하고 자주시대의 새로운 문학예술을 창조하는 과정에 이룩되였다. 그러므로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조상대대로 창조하여 온 민족문화유산의 진보적이고 인민적인 모든 우수한 내용을 집대성하고있을뿐아니라 종래의 유산이 도달할수 없었던 문학예술의 높은 경지를 개척한것이다. 우리 당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에는 주체적문예사상과 리론, 혁명적인 문학예술창조경험과 업적, 혁명적인 문학예술창조기풍을 비롯하여 비상히 심오한 내용이 담겨져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시하신 주체적문예사상과 리론은 인류문예사상사의 가장 높은 단계를 열어놓은 위대한 사상리론이며 자주시대의 민족문학예술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에 과학적해명을 주는 옳바른 지도적지침이다. 일제침략자들을 격멸소탕하는 류례없이 간고한 환경에서 문학예술을 혁명의 무기로, 문학예술창작을 혁명사업의 한 부분으로 삼고 손에 총을 잡은 투사들자신이 노래를 짓고 연극을 창조한 그 전투적인 창작기풍은 오늘 자주적인 민족문학예술을 건설하는 모든 창작가들의 귀중한 본보기로 된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비롯한 항일혁명문학예술작품과 우리 당의 지도밑에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옮긴 혁명영화와 혁명가극, 혁명소설은 그 사상예술성에 있어서나 인식교양적가치에 있어서 종래의 민족문화유산이 미칠수 없는 최상의 높이에 이르렀으며 세계적으로 커다란 경탄을 자아내고있다.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그 가치와 생활력에서도 민족문화유산의 최고봉을 이룬다. 민족고전문화유산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통하여 형성된것이기는 하지만 계급적제한성과 시대적제한성을 가지고있기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이어받을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민족고전이라 하여도 오늘의 시대적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게 비판적으로 계승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명실공히 모든 내용을 전면적으로 다 계승발전시켜야 한다. 우리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주체적인 민족문학예술의 원형이며 그 명맥을 이어주는 피줄기이며 만년초석이다.
 우리는 당의 의도대로 민족문화유산과 혁명적문학예술전통에 대한 옳은 견해를 가지고 우리의 민족문화예술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끊임없이 개화발전시켜나가야 한다.


2)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빛나게 계승발전시켜야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 이룩하신 빛나는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옹호고수하고 대를 이어 계승발전시키는것은 우리 당의 일관한 방침이다.
 우리의 작가, 예술인들은 당의 령도밑에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민족문화말살정책과 해방후 일부 일군들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오래동안 묻혀있었거나 인멸되였던 수많은 항일혁명문학예술작품을 찾아내여 인민들속에 널리 보급하였다. 오늘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비롯한 항일혁명문학예술작품은 우리 인민에게 백절불굴의 혁명적신념과 강의한 의지를 안겨주고 그들을 영웅적위훈에로 불러일으키는 힘있는 고무적기치로 되고있다.
 우리 당은 항일혁명문학예술전통을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문학예술혁명과 밀접히 결합시켜 진행하였다. 문학예술혁명은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이룩된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계승하여 주체사상이 구현된 새로운 문학예술을 건설하기 위한 사업이다. 우리는 문학예술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에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영화로 옮기는 사업을 힘있게 벌려 혁명적영화예술의 빛나는 전통을 이룩하였다. 우리는 문학예술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에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소설과 가극, 연극으로 옮기는 사업을 줄기차게 밀고나감으로써 혁명소설의 본보기를 창조하고 《피바다》식가극과 《성황당》식연극의 새 기원을 열어놓았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옮긴 혁명소설, 혁명영화의 출현과 《피바다》식가극, 《성황당》식연극의 탄생은 항일혁명문학예술전통의 빛나는 계승이였으며 문학예술혁명의 고귀한 결실이였다.
 영광스러운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속에서 우리 문학예술은 주체의 혈통을 순결하게 이어받은 참말로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문학예술로 개화발전되여 일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였다. 우리는 이미 이룩한 성과를 공고히 하면서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계속 줄기차게 밀고나가야 한다.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키는것은 주체적문학예술의 운명을 좌우하는 근본문제이다.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계승발전시켜야 주체적인 민족문학예술건설위업을 대를 이어 고수하고 빛나게 계승완성하여나갈수 있다.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주체적인 민족문학예술건설위업의 력사적뿌리이다.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끝까지 계승발전시키는가 못시키는가 하는데 따라 주체적인 민족문학예술건설위업을 계속 완성해나가는가 중도반단하는가 하는 문제가 좌우된다. 우리 문학예술은 영광스러운 항일의 혁명전통을 이어나갈 때만이 주체의 한길로 끊임없이 개화발전해나갈수 있다.
 오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계승발전시킬데 대한 문제는 문학예술부문에서 세대교체가 일어나고있는 실정과 관련하여 더욱 절박하게 제기되고있다. 주체의 문학예술을 건설하기 위한 사업은 대를 이어 계속되는 력사적인 위업이다. 문학예술부문에서는 세대가 바뀌여 해방후에 자라난 혁명의 2세대와 영화혁명, 가극혁명을 하던 때에 태여난 혁명의 3세대가 주체문학예술을 떠메고나가는 주인으로 등장하였다. 혁명의 3세대는 아직 우리 당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이 얼마나 간고하고 시련에 찬 투쟁속에서 이루어지고 발전하여왔는가 하는데 대하여 잘 모르고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데 대하여서도 깊이 느끼지 못하고있다. 영화혁명, 가극혁명을 하던 혁명의 2세대들속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지난 시기 무대와 창작실에서 밥을 날라다 먹으면서 밤을 지새우던 그 전투적 패기와 열정이 점점 희박해지고있다. 혁명의 대가 바뀌는 시기에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계승하기 위한 사업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후퇴하면 문학예술건설에서 돌이킬수 없는 후과를 빚어낼뿐아니라 혁명의 대가 끊어질수도 있다. 이것은 력사적경험과 오늘의 현실이 말하여주는 엄연한 진리이다. 우리는 력사적교훈을 잊지 말고 우리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계승발전시키는 사업을 계속 힘있게 밀고나가야 한다.
 우리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시하신 영광스러운 전통이다. 로동계급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혁명의 길을 처음으로 개척한 로동계급의 수령에 의하여 새로운 력사적전환기에 이룩된다. 수령님께서는 주체시대가 도래하던 력사적전환기에 시대의 요구와 인민대중의 지향에 맞는 새로운 문예사상을 창시하시고 그것을 혁명적인 문학예술창조와 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철저히 구현하여 우리 당의 영광스러운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이룩하시였다.
 우리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자주시대의 개척기에 종래의 문학예술과 구별되는 주체의 문학예술을 창조하는 과정에 이룩된 새형의 전통, 주체의 전통이다. 력사상 처음으로 자주시대의 요구를 빛나게 구현한 혁명적문학예술전통에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문학예술건설의 전력사적행정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문예사상과 리론, 창조체계와 창조방법이 전면적으로 구현되여있으며 풍부한 경험과 고귀한 업적이 집대성되여있다. 우리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그 사상적내용의 독창성과 진리성, 창조체계와 창조방법의 혁명성과 우월성, 경험의 풍부성과 업적의 위대성으로 하여 주체문학예술건설의 전행정을 방향지어주고 떠밀어주는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있다.
 우리 당의 빛나는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친히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창작하시는 과정에 이룩된 가장 영광스러운 문학예술전통이다. 일반적으로 로동계급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수령의 혁명사상을 지침으로 삼고 수령의 령도를 받으면서 수령이 개척한 혁명위업수행에 이바지하는 새로운 문학예술작품을 창조하는 과정에 이룩된다. 이것은 로동계급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형성의 합법칙적과정이다.
 어떤 사람들은 로동계급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이 수령에 의하여 창작된 본보기작품이 있어야 이룩될수 있는것처럼 말하는데 반드시 그런것은 아니다. 로동계급의 혁명적문학예술력사에 수령이 본보기작품을 직접 창작한 실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수령이 문학예술작품을 직접 창작하지 않아도 수령의 사상을 구현한 본보기작품이 있으면 로동계급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이 이룩될수 있다. 그러나 수령의 독창적인 문예사상과 고전적명작에 의하여 이룩된 로동계급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그 어떤 혁명적문학예술전통보다 더 위대하다고 말할수 있다. 수령이 창작한 고전적명작은 아무 나라에나 있는것이 아니다. 비범한 사상리론적예지와 뛰여난 예술적천품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창작하시는 과정에 주체적문예사상과 리론, 방법, 업적이 전면적으로 구현된 새형의 문학예술전통이 이룩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은 우리 혁명적문학예술의 정수이며 주체의 문학예술을 대를 이어 끊임없이 떠밀어주는 영원한 생명선이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가진것은 우리 인민만이 누릴수 있는 더없는 영광이고 행복이다.
 우리 당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그 내용의 심오성과 혁명성으로 하여 로동계급이 이룩한 혁명적문학예술전통에서 가장 높고 빛나는 자리를 차지한다.
 우리 당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의 내용의 심오성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시하신 주체적문예사상에서부터 찾아볼수 있다.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주체적문예사상은 사람중심의 세계관에 기초한 문예학설로서 문학예술창조와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인민대중을 중심으로 하여 보고 대하며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게 하는 가장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문예학설이다.
 우리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의 위대성은 수령님께서 항일혁명문학예술을 창조하고 건설하는 과정에 쌓아올리신 불멸의 업적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의 업적에서 중요한것은 자주시대 문학예술의 본보기로 되는 빛나는 문학예술작품이 창작된것이다.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의 가치는 그것이 어떤 문학예술작품을 가지고있는가 하는데 의하여서도 규정된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은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인간과 생활을 보고 그린 참다운 문학예술이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은 인류문예사상 처음으로 인민대중을 력사의 주체로 내세우고 사회발전과 인간의 운명개척에서 인민대중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높은 경지에서 그려냄으로써 자기운명의 주인은 다름아닌 인민대중자신이며 사회력사적운동을 떠미는 힘도 인민대중의 자주적인 사상의식과 창조적활동에 있다는 진리를 밝히였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이 인간의 운명문제, 혁명의 운명문제를 얼마나 심오하게 밝혀주고있는가 하는것은 《성황당》과 《꽃파는 처녀》, 《피바다》와 《한 자위단원의 운명》을 비롯한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보면 잘 알수 있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은 처음부터 혁명적수령관에 기초하여 혁명의 수령을 칭송한 훌륭한작품을 내놓았다. 혁명송가 《조선의 별》은 우리 인민이 김일성동지의 위대성을 높이 칭송하고있는 기념비적작품이다.
당시 혁명적수령관을 구현한 명작이 창작될수 있은것은 비범한 예지와 탁월한 령도력, 고매한 공산주의적덕성을 지니시고 수난많던 조선혁명을 승리의 한길로 이끄시는 경애하는 수령님의 절대적권위와 인민에 대한 한없는 사랑이 있었기때문이며 수령님을 혁명의 위대한 령도자로, 민족의 태양으로, 통일단결의 중심으로 우러러 받들고 수령님을 위하여서는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쳐싸운 김혁,차광수와 같은 청년공산주의자들과 우리 인민의 끝없이 맑고 깨끗한 충성심이 있었기때문이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은 세상에 태여난 첫날부터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철저히 구현하고 혁명적수령관으로 사람들을 교양하는것을 첫째가는 사명으로 삼았다. 주체혁명위업이 개척되던 첫 시기부터 바로 이러한 혁명적인 문학예술작품이 있었기에 우리 작가, 예술인들은 해방직후에 광복의 대업을 이룩하고 조국에 개선하신 수령님을 절세의 애국자로, 전설적영웅으로,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우러러 칭송하면서 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창작할수 있었고 장편서사시 《백두산》과 같은 훌륭한 작품을 내놓을수 있었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의 업적에서 중요한것은 사실주의의 높은 단계인 우리 식의 사회주의적사실주의창작방법이 창조된것이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서 문학예술이 노는 역할에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고 몸소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창작하시며 청년공산주의자들과 항일유격대원들의 문학예술활동을 정력적으로 지도하시는 과정에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창작방법을 옹호고수하고 새롭게 발전풍부화시키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주체사상을 문학예술의 모든 분야에 철저히 구현하여 새로운 창작방법인 우리 식의 사회주의적사실주의창작방법을 창조하시였다. 우리 식의 사회주의적사실주의창작방법이 창조된것으로 하여 우리 문학예술은 항일혁명투쟁시기부터 독창적인 길을 개척할수 있었으며 해방후에도 주체의 문학예술로 줄기차게 발전할수 있었다.
 우리 당의 혁명문학예술전통은 위대한 수령님에 의하여 이룩되고 당의 령도밑에 빛나게 계승되고 발전풍부화되였다. 수령님께서는 해방후 새로운 민주주의민족문화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과 조국해방전쟁시기 혁명적이며 전투적인 문학예술을 창조하기 위한 투쟁, 전후 사회주의문학예술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시는 과정에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더욱 발전풍부화시키시였다. 우리 당은 영화혁명, 가극혁명, 연극혁명을 비롯한 거창한 문학예술혁명을 령도하면서 항일혁명문학예술전통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의 요구에 맞게 더욱 심화발전시키시였다. 항일혁명문학예술전통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속에서 우리 당의 주체적문예사상과 리론이 더욱 심화발전되고 우리 식의 혁명소설과 혁명영화, 《피바다》식가극과 《성황당》식연극이 태여나 우리 문학예술의 혁명전통이 풍부화되였으며 주체의 인간학의 원리에 기초한 공산주의문학예술창조와 건설의 새로운 경험과 업적이 이룩되였다. 수령님께서 해방후 새로운 사회주의적민족문학예술창조와 건설에서 이룩하신 고귀한 업적과 주체문학예술건설에서 우리 당이 쌓아올린 업적과 경험은 다 우리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의 빛나는 계승발전이다.
 깊고 억센 력사적뿌리에서 자라나 승리의 한길을 걸어온 주체문학예술의 력사적경험과 조성된 안팎의 복잡한 정세는 그 어느때보다도 당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더욱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발전시켜나갈것을 요구하고있다. 우리 당의 빛나는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계승발전시켜나가는데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이룩하신 불멸의 혁명업적과 함께 당이 문학예술부문사업을 지도하는 과정에 쌓아올린 업적과 경험을 옹호고수하고 창작실천에 철저히 구현하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당의 사상리론적업적을 옹호고수하고 창작실천에 철저히 구현하여야 한다. 우리 당의 주체적문예사상과 리론에는 주체의 인간학에 관한 사상,작품의 종자에 관한 리론을 비롯하여 주체문학예술창조와 건설에서 나서는 리론실천적문제가 전면적으로 밝혀져있다. 우리 문학예술은 주체적문예사상과 리론을 유일한 지도적지침으로 삼고 우리 당의 빛나는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순결하게 이어나가야만 영원히 변함없이 주체의 문학예술로 개화발전할수 있다.
 당의 지도밑에 문학예술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에 세워진 주체적인 창작지도체계와 창조체계를 철저히 고수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주체적인 창작지도체계와 창조체계는 문학예술사업에 대한 당의 유일적령도를 실현하기 위한 체계이며 작가, 예술인들이 창작에서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며 집체성의 원칙을 구현하기 위한 체계이다. 작가, 예술인들은 주체적인 창작지도체계와 창조체계를 창작실천에 철저히 구현함으로써 그것이 실지로 은을 내도록 하여야 한다.
 영화혁명, 가극혁명, 연극혁명의 나날에 높이 발양된 혁명적창작기풍과 생활기풍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 문학예술혁명의 거세찬 불길속에서 창조된 혁명적창작기풍과 생활기풍은 항일유격대식창작기풍, 생활기풍의 빛나는 계승이다. 작가, 예술인들은 당과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성심과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자체의 힘으로 뚫고나감으로써 창작에서 끊임없는 앙양을 일으켜나가야 한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문학예술의 여러 형태로 옮겨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는 사업과 당의 령도밑에 창작된 혁명적문학예술작품의 높은 사상예술적수준을 고수하는 사업을 계속 힘있게 밀고나가야 한다. 작가, 예술인들은 당의 령도밑에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옮긴 혁명소설과 혁명영화, 《피바다》식가극과 《성황당》식연극을 대를 이어 보급하고 공연하는 한편 새로 발굴고증하고 재창조하는 사업을 잘하여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자라나는 새 세대뿐아니라 먼 앞날의 후손들에게까지 물려줌으로써 우리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만대에 길이 빛내여나가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 당의 빛나는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옹호고수하고 대를 이어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서는 작가, 예술인들속에서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하여야 한다.
 혁명전통교양에서는 당과 수령의 위대성교양과 업적교양을 기본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작가, 예술인들이 로동계급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에서 가장 높고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우리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이룩하고 계승발전시킨 당과 수령이 얼마나 위대하며 당과 수령이 쌓아올린 혁명업적이 얼마나 귀중한것인가 하는것을 잘 알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주체의 문학예술전통을 가진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의 문학예술을 주체의 혈통만을 순결하게 이어받은 혁명적인 문학예술로 찬란히 개화발전시켜나가야 한다.

3) 민족문학예술유산을 주체적립장에서 바로 평가하여야 한다


 우리 인민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통하여 세상에 널리 자랑할만한 문화적재부를 창조하였다. 찬란한 문학예술유산을 가지고있는것은 우리 민족의 크나큰 긍지이며 민족문학예술을 끊임없이 개화발전시켜나갈수 있게 하는 귀중한 밑천으로 된다. 작가, 예술인들은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빛나게 계승발전시켜나가는것과 함께 지난날의 민족문학예술유산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더욱 꽃피워나가야 한다.
 민족문학예술유산은 그 평가와 계승에서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가 제기되고있다. 고전문학예술유산가운데는 고대로부터 시작하여 중세기와 근대의 사회현실을 반영한것도 있고 일제식민지통치시기를 반영한것도 있으며 인민대중이 창조한것도 있고 착취계급이 창조한것도 있다. 각이한 시대, 각이한 사회발전단계를 반영하고있고 진보적인것과 보수적인것, 인민적인것과 반동적인것이 뒤섞여있는 민족고전문학예술유산에 대하여 다같이 평균주의적으로 대할수 없으며 그대로 이어받을수도 없다. 우리는 민족고전문학예술유산에서 진보적이며 인민적인것을 현대적미감에 맞게 비판적으로  계승발전시켜야 한다.
 지난날의 민족문학예술유산을 옳게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서는 력사주의적원칙과 현대성의 원칙을 확고히 견지하여야 한다.
 지난날의 민족문학예술유산 계승에서 력사주의적원칙을 지킨다는것은 개개의 유산을 해당 시기의 사회력사적조건과의 련관속에서 공정하게 분석평가하고 다룬다는것을 말하며 현대성의 원칙을 지킨다는것은 유산계승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시대적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게 풀어나간다는것을 말한다. 오랜 세월을 내려오면서 이룩된 민족문학예술유산의 력사적인 특성을 무시하여도 안되며 그것을 계승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현대적요구를 외면하여도 안된다.
  지난날의 민족문학예술유산을 계승발전시키는데서 복고주의와 민족허무주의를 철저히 경계하여야 한다.
 복고주의는 민족문학예술유산을 계승한다는 구실밑에 시대의 요구와 계급적원칙을 저버리고 지난날의것을 덮어놓고 되살리며 미화분식하는 반동적인 사상조류이다. 복고주의가 조장되면 문학예술창조와 건설에서 로동계급적선이 흐리게 되고 착취사회가 남겨놓은 진부하고 불건전한 사상요소가 머리를 쳐들게 되며 봉건유교사상과 부르죠아사상이 되살아나게 된다. 우리는 복고주의적경향을 철저히 막고 민족문화유산을 시대와 혁명발전의 요구, 인민대중의 사상감정과 정서에 맞게 비판적으로 계승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우리는 민족허무주의에 대하여서도 경각성을 높여야 한다.
 지난날 문학예술부문의 일부 사람들은 복고주의를 반대한다고 하면서 실학파나 《카프》문학을 비롯하여 우리 인민의 우수한 민족문학예술유산을 보잘것없는것으로 여기면서 고전문학예술작품에 대한 연구와 출판보급사업까지 가로막으려고 하였다. 이런 영향으로 하여 한때 일부 문예학자들은 봉건유교사상을 반대한다고 하면서 우리 나라의 민족고전문학예술을 제대로 취급하지 않았으며 문학사와 예술사나 출판보도물에서 고전문학예술작품을 취급하는 경우에도 그 긍정적측면은 간단히 언급하고 부정적측면에 대하여서는 지나치게 많이 언급하였다. 고전문학예술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할바에야 구태여 문학사와 예술사나 출판보도물에서 민족문학예술유산을 취급할 필요가 없을것이다. 봉건유교사상과 부르죠아사상을 반대한다고 하여 근로자들과 청소년들에게 우리 나라의 문학예술력사와 민족고전작품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그들이 우리 나라 력사에 어떤 고전작품이 있었는지 또 어떤 유명한 작가가 있었는지 잘 모르게 된다. 우리는 민족허무주의적경향에 대하여 제때에 타격을 주고 민족고전문학예술작품을 주체적립장에서 공정하게 평가하고 처리하도록 하였다.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의 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길줄 모르고 내세울줄 모르는 사람은 례외없이 민족허무주의자이다. 우리 나라에서 민족허무주의는 매우 뿌리깊은것이다. 지난날 나라가 망한것도 민족허무주의와 사대주의때문이였으며 해방후 혁명과 건설에서 가장 해독적인 작용을 한것도 민족허무주의와 사대주의였다. 민족허무주의는 뿌리가 깊고 집요한것만큼 그것을 반대하는 투쟁에서는 자그마한 양보도 있어서는 안된다.
 일부 사람들속에서 우리 나라 민족문학예술유산을 보잘것없는것으로 보고 과소평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던것은 그들이 구라파중심주의사상에 빠져있은것과도 많이 관련되여있었다. 구라파중심주의는 인류의 력사와 문화발전에서 구라파가 주도적역할을 한다고 하면서 저의것은 다 우월하다고 하고 남의것은 덮어놓고 렬등하다고 깔보는 비과학적이며 인종주의적인 부르죠아사상관점이다.한때 구라파중심주의는 세상에 널리 류포되여 매개 나라의 민족문화발전에 막대한 후과를 미치였다.
우리 나라에도 지난날 그 여파가 밀려들어 우리의 유구한 민족문화유산을 보잘것없는것으로 여기면서 《서방문화이식설》을 내돌린 민족허무주의자들과 사대주의자들이 나타났었다. 해방후 우리 당이 민족문화건설에서 주체를 세우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린 결과 구라파중심주의적관점이 적지 않게 극복되였다.
 그러나 아직 일부 사람들속에서는 구라파의것이면 무엇이나 다 좋다는 전제밑에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우리의것을 재여보고 평가하려는 민족허무주의적이며 사대주의적인 관점이 나타나고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나라 력사에서 근세를 언제부터로 보는가 하는 문제, 근대문학의 성격과 그 지위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많은 사회력사적 및 문화적현상을 고찰하는데서 우리 나라 력사와 문화발전의 특수성을 고려함이 없이 지난날의 같은 시대, 같은 시기의 구라파력사나 문화와 기계적으로 대비해보면서 우리의것은 다 뒤떨어지고 보잘것없는것으로 깎아내리려 하고있다. 사실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슬기로운 단일민족으로서 고상한 문학예술을 찬란히 발전시켜왔다. 우리 나라 문학은 구라파문학과 비교해보아도 우수한 민족적특성을 가지고있다. 우리 나라 고전문학작품은 일찍부터 가난하고 천대받는 근로인민을 등장시키고 그들에 대한 뜨거운 동정과 사랑을 표시하였으며 반침략애국주의정신을 강하게 반영하였다. 우리 문학의 이러한 좋은 점을 보려 하지 않고 구라파문학과 기계적으로 대비하면서 우리의것을 보잘것없는것으로 여기는것은 민족허무주의적표현이다. 일부 창작가들이 우리 나라 고전문학예술에 대하여 별로 아는것이 없으면서도 다른 나라 작품만 읽으려 하고 다른 나라 문학예술을 많이 알아야 유식한것처럼 생각하는것도 구라파중심주의적관점에 사로잡혀있는 표현의 하나이다. 구라파문화에 환장이 된 사람은 애국심도 없고 민족적자존심도 없는 사람이다. 구라파중심주의의 자막대기를 가지고서는 결코 우리의 민족문화유산을 정확하게 평가할수 없을뿐아니라 구라파고전문학작품도 정당하게 평가할수 없다.
 우리는 지난날의 민족문학예술유산에 대한 평가에서도 주체적립장을 확고히 견지하여야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선 첫 시기부터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주체적립장에서 풀어나가시였으며 우리 나라의 력사와 문화도 주체적립장에서 평가하고 그 계승에서 나서는 문제를 바로잡아주는 실천적모범을 보여주시였다. 우리는 지난날의 민족문학예술작품을 구라파의 문학예술작품과 덮어놓고 기계적으로 대비해보려는 그릇된 경향을 철저히 없애고 주체적립장에서 옳게 평가하고 계승발전시켜야 한다.
 《카프》문학에 대한 평가와 처리를 공정하게 하여야 한다.
 지금 문학분야에서는 《카프》문학에 대한 평가를 매우 어정쩡하게 하고있다. 어떤 사람들은 《카프》문학을 비판적사실주의문학의 계렬에도 넣지 않고 사회주의적사실주의문학의 계렬에도 넣지 않고 그저 프로레타리아문학이라고 막연하게 규정하고있다. 이것은 《카프》문학에 대한 공정하지 못한 평가이다. 《카프》의 작품에는 비판적사실주의작품도 있고 사회주의적사실주의작품도 있다. 특히 《카프》가 새로운 강령을 내놓은 이후시기에 나온 작품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적사실주의작품이라고 보아야 한다. 조명희, 송영, 리기영, 한설야, 류완희, 김창술, 박세영, 박팔양을 비롯한 《카프》에 망라된 많은 작가들이 맑스주의를 신봉하고 무산계급의 계급적해방을 지향하였으며 그들이 1927년 이후에 내놓은 작품은 대체로 내용에서 사회주의적이였다.
 그들이 창작한 장편소설《고향》,《황혼》, 단편소설《락동강》, 희곡 《일체 면회를 거절하라》, 시《민중의 행렬》,《앗을대로 앗으라》,《산제비》,《진달래》와 그밖의 많은 작품에는 로동계급을 비롯한 무산대중의 사회적해방을 위한 지향이 반영되여있다.
 《카프》작가들은 작품에서 당대 사회제도를 비판하고 우리 인민의 민족적 및 계급적해방을 주장하였으며 무산계급의 선각자를 전형으로 내세우고 사회주의적리상을 표현하였다. 물론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검열제도로 말미암아 작품에서 혁명적인것이 적지 않게 삭제되거나 뚜렷이 강조되지 못한 점은 있으나 총제적으로 보아 그 내용은 사회주의적이였다. 《카프》문학은 민족문학의 고유한 특성을 살리여 우리 인민의 민족적감정과 지향에 맞는 우수한 형식을 창조하였으며 우리 나라의 선행한 사실주의문학의 제한성에서 벗어나 사상예술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이것은《카프》문학이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적사실주의사조를 이루었다는것을 말하여준다. 물론《카프》는 로동계급의 혁명적당의 령도를 받지 못하였으며 작가의 세계관적제한성으로 하여 창작활동에서 이러저러한 제약을 받게 되였다. 그러나 로동계급의 당의 령도를 받지 못하였다고 하여《카프》문학을 사회주의적사실주의가 아니라고 할수없다. 사회주의적사실주의의 발생발전과정은 매개 나라의 력사적인 조건과 구체적인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르다. 《카프》작가들은 비록 로동계급의 당의 지도를 받지 못하였지만 로동계급적립장에서 조직의 강령을 내걸고 투쟁하였으며 작품창작에서도 로동계급의 혁명적립장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명하였다. 더우기 1930년대 《카프》문학은 항일혁명투쟁의 영향밑에 그에 대한 인민의 뜨거운 공감과 지지성원을 반영하는데로 지향하였다. 어떤 문학작품이 사회주의적사실주의문학인가 아닌가 하는것은 사상예술적으로 완벽한가 완벽하지 못한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같은 창작방법에 기초한 작품가운데는 사상예술적으로 완벽한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것도 있다. 문제는 그 창작원칙과 사상적경향이 어떠한가 하는데 있다. 《카프》재조직 이후의 문학은 비록 이러저러한 약점을 가지고있지만 기본창작경향이 로동계급적인 세계관을 반영하고있는것으로 하여 사회주의적사실주의문학계렬에 속할수 있다. 《카프》작가들과 함께 그 조직밖에서 같은 시기에 활동한 개별적작가들속에서도 강경애의 장편소설 《인간문제》와 같은 사회주의적사실주의작품이 적지 않게 창작되였다.
 《카프》문학을 사회주의적사실주의로 규정하면 우리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에 대한 해석에서 혼란이 생길수 있다고 생각하는것은 잘못이다. 우리 나라 혁명적문학예술의 시원으로 되는 항일혁명문학예술은 처음부터 주체사상을 세계관적기초로 하여 우리 식의 새로운 사회주의적사실주의문학으로 발생발전하였다. 오늘 우리 문학예술은 우리 식의 사회주의적사실주의문학예술이며 그 력사적뿌리도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마련된 우리 식의 새로운 사회주의적사실주의로부터 내리기 시작하였다.새로운 우리 식의 사회주의적사실주의가 우리 나라 혁명적문학예술의 시원으로 되는 조건에서는 《카프》문학의 사회주의적사실주의경향을 인정한다고 하여 유산과 전통의 계선이 모호해지는것도 아니며 혁명적문학예술전통에 《카프》문학이 포함되는것도 아니다. 《카프》문학은 선행한 사회주의적사실주의의 창작방법에 기초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연히 우리 나라의 우수한 과거문학유산에 속한다.

《카프》문학과 함께 《신경향파》문학에 대하여서도 응당한 위치에서 옳게 평가하여야 한다. 1920년대 전반기 우리 나라에서 프로레타리아문학의 기치를 들고 새로운 경향으로 나타난 최서해, 리상화, 리익상의 초기작품을 비롯하여 《신경향파》문학은 비판적사실주의로부터 사회주의적사실주의에로 넘어가는 길을 열어놓았다.
 우리 나라에서 비판적사실주의문학의 발생발전문제도 주체적립장에서 바로 풀어야 한다.
 지금 일부 사람들속에서는 우리 나라에서의 비판적사실주의발생시기문제에 대하여서도 우리 나라 력사발전의 특수성과 문학발전의 구체적인 환경을 깊이 연구하지 않고 남이 이미 만들어놓은 기존개념을 가지고 재여보려는 경향이 있다. 지금까지 문예리론에서는 비판적사실주의가 부르죠아사회의 모순과 부패상이 드러나고 그것을 반대하는 인민들의 투쟁이 일정에 오른 력사적시기에 진보적인 작가들에 의하여 발생발전하였으며 따라서 그것은 부르죠아사회를 예리하게 해부하고 그 모순과 불합리성을 비판폭로하는데 선차적인 관심을 돌린다고 하였다. 이것은 물론 비판적사실주의가 발전된 자본주의나라들에서 먼저 발생하였던것만큼 력사적사실에도 맞고 과학적으로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가 세계의 모든 지역, 모든 나라의 문학발전실태에 다 맞는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같은 구라파에 위치한 나라라 하더라도 뒤늦게야 자본주의길에 들어선 나라의 작가들인 경우에는 발전된 자본주의나라의 작가들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비판적사실주의를 지향하였다.
그들은 자기 나라 부르죠아사회의 모순과 부패상이 아직 정면에 드러나지 않은 조건에서 비판의 예봉을 봉건적인 사회관계와 그 사회악을 들추어내는데 선차적으로 돌리였다. 실제로 세계문학사에는 봉건적전제제도의 반동성과 부패성, 봉건귀족들과 관리들의 착취적본성과 비인간성, 사회적모순과 불합리성을 예리하게 비판한 비판적사실주의작품이 적지 않다. 이런 작품을 자본주의사회의 모순과 부패상을 비판폭로하지 않은것이라고 하여 비판적사실주의작품이 아니라고 할수는 없는것이다. 문제는 근대사회의 일정한 단계에서 발생한 비판적사실주의가 자본주의적인 사회관계를 비판하건 봉건적인 사회관계를 비판하건 관계없이 자기 나라의 구체적현실에서 드러나는 사회적관계의 모순과 불합리성을 얼마나 예리하게 해부하고 비판하였는가, 얼마나 진실하게 반영하였는가 하는데 있다. 비록 자본주의사회에서 발생한 비판적사실주의라 하여도 자본주의의 모순과 불합리성이 로골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낡고 썩어빠진 봉건적인 질곡이 인민대중의 자주적인 지향을 억제하는 주되는 장애로 될 때에는 그에 혐오감과 증오심을 가진 사실주의작가라면 어차피 타락한 봉건사회의 모순과 부패성, 봉건귀족과 봉건관리들의 착취적본성과 비인간성을 폭로하는데 비판의 화살을 돌리기마련이다. 그렇다고 하여 작품에 비판성이 강하게 반영되면 다 비판적사실주의작품으로 된다고 볼수 없다. 착취사회의 현실을 사실주의적으로 반영하는 작품이라면 이렇게나 저렇게나 비판이 주어지게 된다.그러나 사조적인 경향성을 띠지 못한 개별적인 작품은 아무리 비판성이 강하다고 하여도 비판적사실주의작품으로 될수 없으며 또 창작방법의 발생을 거기에서 찾을수 없다. 비판적사실주의에서의 비판은 봉건사회이건, 자본주의사회이건간에 사회악에 대한 날카로운 부정이여야 하며 종자와 주제, 사상으로부터 시작하여 형상과제와 형상구성에 이르기까지 생활반영의 예술적원칙에서 진실성과 비판성이 일관되여야 한다. 비판적사실주의문학은 선행한 사실주의문학보다 높은 전형화의 수준에서 현실을 진실하게 반영하지만 사회악을 예리하게 폭로비판하는데 그치고 그 사회적근원과 그것을 없애기 위한 옳바른 출로를 제시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과 립장에서 우리 나라에서의 비판적사실주의창작방법의 발생발전문제를 고찰하고 옳바로 해명하여야 한다.
 20세기초엽의 우리 나라 문학작품을 더 많이 찾아내고 옳게 평가하여야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우리 나라에는 1910년대와 1920년대의 문학예술작품이 얼마 없다고 하시면서 그 당시의 작품을 적극 찾아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하는 과정에 20세기초엽의 문학예술작품을 적지 않게 찾아내여 문학사와 예술사에서도 취급하고 필요한것은 출판하기도 하였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말미암아 인멸되였거나 파묻혀있는 문학작품을 더 많이 찾아내야 하며 작가와 작품을 우리 나라 문학사와 예술사발전의 견지에서 정확히 평가하여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립장으로부터 출발하여 오래전에 리해조와 같은 작가뿐아니라 20세기초에 신소설을 개척하는데서 선구자적역할을 한 작가 리인직을 문학사에서 취급하며 그의 작품을 조선문학선집에도 넣도록 하였다. 리인직은 20세기초에 중편소설 《혈의 루》,《귀의 성》,《치악산》과 같은 여러편의 신소설을 창작하였으며 극장 《원각사》를 창립하고 신극운동을 벌리였다. 이 시기에 그가 현대적인 신소설을 창작한것은 문학발전에 일정하게 기여한것으로 된다.
 작가와 문학작품을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하여서는 작가의 출신성분이나 가정환경, 사회정치생활경위를 문제시하면서 편견을 가지고 대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작가의 출신과 사회생활경위가 복잡하다 하여도 우리 나라 문학예술발전과 인민의 문화정서생활에 이바지한 좋은 작품을 썼다면 그 작가와 작품을 아끼고 대담하게 내세워주어야 한다.
 우리는 리광수의 소설과 최남선의 시도 문학사에서 응당한 수준에서 취급하여야 한다. 장편소설 《개척자》를 비롯한 리광수의 초기소설들은 1910년대의 우리 나라 소설문학의 대표작으로서 당대의 사회악에 대한 불만이 일정하게 반영되여있다. 언제인가 수령님께서는 길림육문중학교에서 청년운동을 할 때 리광수의 소설 《개척자》를 읽어보았는데 그 작품에는 당대 사회에 대한 불만이 표현되여있었다고 하시면서 리광수는 그후에 《혁명가의 안해》라는 소설에서 자기가 변절하였다는것을 드러내놓았다고 교시하시였다. 리광수가 초기에 쓴 장편소설이 당대 사회현실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고 1910년대 우리 나라 소설문학의 대표작으로 되고있는것만큼 그의 초기작품의 긍정적측면을 문학사에서 취급하는것이 나쁘지 않다. 최남선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가 초기에 우리 나라 민족시가발전에 기여한 새로운 형식의 시를 창작한 사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여야 한다. 최남선의 시는 새로운 시대사조를 받아들여 사람의 눈을 틔워주고 새 시가형식을 개척하는데 일정한 기여를 한것만큼 그의 초기작품에 대하여 문학사에서 취급하는것이 옳다.
 우리는 이밖에도 일제시기에 진보적인 작품을 창작한 신채호, 한룡운, 김억, 김소월, 정지용과 《카프》의 《동반자》라고 불리운 소설가 심훈, 리효석, 근대아동문학을 개척하고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한 작가 방정환, 《노들강변》을 비롯하여 민요풍의 노래를 많이 창작한 문호월, 《아리랑》을 비롯하여 여러편의 경향이 좋은 예술영화를 만든 라운규와 같은 작가, 예술인들을 문학사와 예술사에서 공정하게 평가하도록 하였다.
 지난 시대의 작가와 작품을 문학사나 예술사에서 취급하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작가, 예술인들과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우리 문학사와 예술사에도 당대 문학예술발전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 작가와 작품이 있었다는것을 알려줌으로써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는 동시에 지난날의 력사에서 경험과 교훈을 찾게 하자는데 있다. 문학작품은 비록 개인의 창작물이지만 일단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는 훌륭한 작품으로 창작되여 인민의 사랑을 받게 되면 그것은 인민의 소유물로, 민족의 귀중한 재부로 된다. 작가의 생활에서 후에 이러저러한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그가 이미 창작한 작품의 사상예술적가치는 력사에 남는다. 그런것만큼 지난 시대의 작가, 예술인들을 문학사나 예술사에서 취급할 때에는 응당 주체사상의 사회력사원리와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에 기초하여 작품에 반영된 긍정적인 측면을 많이 이야기하면서 부정적인 측면에 대하여서도 사리에 맞게 잘 분석하여야 한다.
  계몽기문학을 포함한 근대문학에 대한 평가와 처리도 잘 하여야 한다.
 계몽기문학을 포함한 근대문학은 우리 나라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계몽기문학을 포함한 근대문학은 반봉건적 및 반침략적성격이 강한 애국적인 문학이다. 계몽기문학작품에는 일제를 비롯하여 외래침략자에게 빼앗긴 국권을 되찾고 우리 나라를 《독립자주》적이고 《문명개화》된 나라로 발전시키려는 애국적인 지향과 봉건의 질곡으로부터 인민의 권리를 옹호하고 그들을 계몽하여 각성시키려는 개화사상이 반영되여있다. 계몽기문학을 포함한 근대문학에는 시대적 및 계급적 제한성이 적지 않으나 총체적으로 볼 때 진보적이며 애국적인 요소가 많았다.
 우리는 계몽기문학을 포함한 근대문학의 발생발전과 시기구분, 형상적특징과 창작방법, 문학사적위치와 그 의의같은 문제를 우리 나라 문학발전의 특수성과 결부시켜 과학성있게 해명하여야 한다.
 실학파문학에 대한 평가와 처리도 공정하게 하여야 한다.
 실학파는 량반사대부들의 부패성과 공리공담, 무너져가는 봉건국가의 후진성을 개탄하고 《실사구시》의 구호밑에 사회적진보와 문명발전을 위하여 투쟁하였으며 우수한 문학예술작품을 창작하여 우리 나라 근대문학의 려명기를 개척하는데 기여하였다. 박연암과 정다산의 사회개혁리론과 문학작품은 지금으로부터 200년전에 나온것이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것이며 세상에 자랑할만한것이다.
 물론 실학파작가들은 량반계급출신으로서의 계급적제한성으로 말미암아 주로 부패무능한 개별적인 량반과 악질관료를 비판하는데 머물고 근로인민대중의 근본적인 리해관계를 대변하지 못하였으며 철저한 개혁사상을 주장하지 못하였다. 지난 시기 일부 사람들속에서는 실학파문학의 제한성은 보지 않고 긍정적인 측면만 평가하고 과장하는것과 같은 편향이 나타났다.
 실학파문학을 외면하거나 부정하고 그 공적을 응당한 높이에서 평가하려 하지 않는것은 민족허무주의의 표현이다. 우리는 자기 민족이 낳은 재능있는 작가, 예술인들을 내세우고 자랑할줄 알아야 한다.
 문학예술부문에서는 실학파의 문학작품을 출판하고 세계에 널리 소개하며 그에 대한 연구모임같은것도 가질수 있다.
 실학파작가뿐아니라 최치원, 리규보, 김시습, 정철, 허균, 김만중을 비롯하여 고대와 중세, 근대와 현대의 이름있는 작가, 예술인들과 그들의 우수한 작품과 《춘향전》,《흥부전》, 《심청전》 같이 작가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도 많이 찾아내여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널리 소개하여야 한다. 특히 19세기에 창작되였으나 인멸되여 전해지지 않고있는 많은 작품을 적극 찾아내야 한다. 우리 나라에 이름있는 작가나 작곡가, 화가도 있고 인류문화의 보물고에 기여한 명작도 있다는것을 세상사람들이 알게 하여야 한다. 그래야 자라나는 새세대들에게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줄수 있고 민족문학예술유산을 귀중히 여기고 옳게 계승발전시킬수 있다.
 우리 인민이 전통적으로 창조해온 민요에 대한 옳바른 견해를 가지고 그 유산을 공정하게 처리하여야 한다.
 민요는 우리 민족의 음악유산에서 기본을 이루고있다. 민요는 우리 인민의 고유한 민족적정서를 집중적으로 반영하고있는것으로 하여 오늘은 물론, 먼 후날에 가서도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음악으로 널리 불리우게 될것이다.
 우리 나라 민요에는 오래전에 창작되여 고투가 나는것도 있다. 일부 민요가 고투가 난다고 하여 그것을 덮어놓고 외면하거나 버리지 말아야 한다. 고투가 나는 민요가운데는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 인민의 사랑속에 널리 불리워진 노래도 있다. 이러한 민요는 인민의 지향과 현대적미감에 맞게 재창조하여야 한다. 고투가 나는 민요를 재창조하는데서는 가사를 잘 고치는것이 중요하다. 민요의 가사를 고치란다고 하여 현대가요처럼 만들어놓아서는 안된다. 가사는 원작의 종자를 살리면서 주로 자연풍경과 생활적인것을 반영하는 방향에서 고쳐야 한다. 원가사를 다 새 가사로 바꿀수도 있다. 민요의 발전력사를 보아도 하나의 민요곡조에 시대에 따라, 지방에 따라 서로 다른 가사를 붙여 부른 실례가 얼마든지 있다. 민요 《신고산타령》은 1930년대와 1940년대의 가사가 다르고 해방직후의 가사가 다르며 조국해방전쟁시기의 가사가 다르다. 유명한 민요는 시대와 지방에 따라 가사를 달리하면서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며 불리워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널리 알려진 오랜 민요에 우리 시대 인민의 고상한 정신도덕적풍모와 뜨거운 숨결을 담은 가사를 붙여 현대적미감에 맞게 불러야 한다.
 지난날의 시조형식을 정확히 평가하고 처리하여야 한다.
 시조는 고려시기에 발생하여 오랜 세기에 걸쳐 각이한 계층속에서 창작되여온 고유한 민족시가형식의 하나이다. 사대주의사상으로 한시만을 숭상하던 봉건시기에 우리 말로 읊어진 새롭고 독특한 민족시조형식이 나온것은 우리 나라 문학발전에서 큰 의의를 가지였다. 그러나 시조는 발생한 처음 한동안은 거의나 봉건량반들의 독점물로 되여 건전하게 발전하지 못하였다. 대부분의 시조는 봉건유교교리를 로골적으로 설교하거나 봉건적인 도덕적관념을 주입시키는것이 아니면 봉건량반들의 신변잡사나 순수 자연풍경을 노래하는 내용으로 엮어졌다. 지난날의 시조작품에 이런 내용이 강하게 반영되였다고 하여 시조형식일반을 배척하여서는 안된다. 시조형식이 널리 퍼지는 가운데 선진적이며 애국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진보적인 내용을 담은 시조작품도 창작되였다. 김종서와 남이의 시조작품이라든가 리순신의 시조작품에는 반침략애국주의사상감정이 강하게 반영되여있다. 그런가 하면 서민출신의 문인들이 쓴 시조작품에는 비록 유흥기분이 풍기기는 하지만 인간의 아름다운 도덕적풍모를 노래한것도 있다.
 한때 복고주의자들은 시조의 긍정적인 면을 연구하여 참고할 생각은 하지 않고 봉건량반들의 부화타락한 생활을 반영한 시조노래를 찬양하면서 사람들속에 봉건유교사상을 고취하려고 하였다. 시조형식이 오래동안 나쁜것으로 버림을 받게 된데는 그들의 죄과가 크다.
 시조는 처음부터 노래를 동반하였다. 대부분의 시조노래는 봉건량반들이 갓쓰고 술이나 마시면서 흥얼거리던 노래였다. 오늘의 현실에는 옛날 선비들이 사랑방에 앉아서 시조를 읊던 식의 노래는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조노래를 그대로 되살릴 필요는 없다.
 시조는 격식화된 운률구조로 하여 내용표현에서 구속이 많은 약점은 있지만 간결하고 함축된 시구에 깊은 뜻을 담을수 있는 우점도 있다.
 우리는 문학예술부문에 뿌려놓은 복고주의자들의 사상여독이 철저히 극복되고 사람들속에 당의 유일사상체계가 확고히 선 조건에서 문학으로서의 시조형식의 긍정면을 깊이 연구하여 시문학을 가일층 발전시키는데서 참고로 하여야 한다. 이와 함께 시조의 형상적특징을 살린 우리 시대의 새로운 단시와 서정시를 창조하여야 한다.
 지난날의 궁중예술에 대한 평가와 처리도 바로하여야 한다.
 우리는 계급적원칙에서 봉건제왕과 량반에게 복무하던 궁중예술의 반인민성을 폭로비판하여야 하며 궁중예술형식을 그대로 되살리는 경향에 대하여서는 조금도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궁중예술가운데서도 음악이나 무용의 가락에 대하여서는 덮어놓고 봉건적이며 반인민적인것이라고 속단하지 말아야 한다. 궁중음악이나 무용의 가락도 원천은 어디까지나 인민음악과 민족무용에 있다. 인민적이며 진보적인 민족문학예술유산은 봉건제왕과 귀족의 비위에 맞게 개악된다 하더라도 인민적인 본색을 완전히 잃지 않는다. 그 무엇으로써도 지워버릴수 없는 인민적인 가락과 률동은 오늘 우리 문학예술이 이어받고 시대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켜야 할 귀중한 요소이다. 우리는 궁중음악, 궁중무용에서 진보적이며 인민적인 알맹이를 찾아내여 우리의 문학예술을 민족적바탕우에서 풍만하게 발전시키는데 살려써야 한다.
 해방후 창작된 문학작품에 대하여서는 우리 당의 계급로선과 군중로선에 기초하여 정확히 평가하여야 한다.
 우리 당은 그 어떤 작가라 하여도 의식적으로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배반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의 작품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건져주는 원칙을 일관하게 견지하고있다. 해방후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자라난 작가들은 우리 혁명의 귀중한 보배들이다. 작가의 가정환경과 사회정치생활경위가 복잡하고 그가 일시적인 과오를 범하였다 하여도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에게 이바지하는 훌륭한 작품을 창작하였을 때에는 그를 내세워주고 작품을 건져주어야 한다. 우리는 절대로 작가가 과오를 범하면 그의 작품까지 타도하는 식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 영광스러운 로동당시대의 문학예술사에 훌륭한 작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이지 이러저러한 리유로 훌륭한 작품을 거세해버려서는 리로울것이 없다. 사상예술적으로 우수한 작품이 많을수록 우리의 문학예술의 보물고가 풍만해지고 더욱 빛날것이다.

3. 세계관과 창작방법


1) 우리의 혁명적문학예술의 력사는 주체사실주의의 력사이다


 지금 문예리론가들과 창작가들속에서는 우리의 문학예술이 의거하고있는 창작방법에 대한 문제가 론의되고있다.
 우리 문학예술의 창작방법을 주체적립장에서 옳바로 규정하는것은 매우 의의있고 절실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 문학예술이 의거하고있는 창작방법과 선행한 사회주의적사실주의창작방법의 관계를 옳게 규명하고 우리 문학예술의 본성과 특징을 밝히는것과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인것만큼 신중하게 론의하여야 한다. 더우기 오늘 제국주의자들과 혁명의 배신자들이 사회주의적사실주의를 그 누구의 강요에 의하여 꾸며진것이라느니, 도식과 류형,리상화를 낳는 온상이라느니,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유물이라느니 뭐니 하면서 악랄하게 비방중상하고있는 조건에서 우리 문학예술의 창작방법문제를 잘못 다루면 우리 나라에서도 마치 사회주의적사실주의를 반대하는것과 같은 인상을 줄수 있다.
 원래 사회주의적사실주의창작방법은 로동계급의 혁명투쟁의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 혁명적이며 전투적인 창작방법이다.

20세기초에 출현한 사회주의적사실주의는 맑스-레닌주의에 기초하여 혁명적랑만주의, 비판적사실주의를 비롯한 종래의 진보적인 창작방법을 비판적으로 총화하고 한계단 발전시킨 사실주의창작방법이다.
 로동계급을 비롯한 인민대중의 생활과 투쟁을 혁명적발전속에서, 력사적구체성속에서 진실하게 그리는것을 기본요구로 하는 사회주의적사실주의창작방법은 과학적이고 정당한 창작방법이다. 사회주의적사실주의에 기초하여 수많은 혁명적문학예술작품이 창작되였으며 그것은 착취받고 압박받는 무산계급을 해방하기 위한 로동계급의 혁명위업수행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인민대중이 력사의 주인으로 등장한 새시대는 인민대중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과 투쟁을 인간의 자주적본성에 맞게 더욱 원만히 형상할수 있는 창작방법을 요구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에 벌써 자주시대의 요구를 명철하게 통찰하고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였으며 그에 기초하여 선행한 사회주의적사실주의창작방법을 우리 식으로 새롭게 발전시키고 혁명적문학예술의 빛나는 전통을 마련하시였다. 항일혁명문학예술과 그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은 우리의 혁명적문학예술이 의거하고있는 창작방법은 선행한 사회주의적사실주의창작방법과 질적으로 구별되는 새로운 창작방법이다. 우리 문학예술이 의거하고있는 우리 식의 사회주의적사실주의창작방법은 로동계급을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의 생활과 투쟁을 진실하게 형상하여 그들을 혁명과 건설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한다는 면에서는 선행한 사회주의적사실주의창작방법과 같은 계렬에 속한다고 볼수 있지만 시대적요구와 세계관적기초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 문학예술이 의거하고있는 우리 식의 사회주의적사실주의창작방법은 그 형성의 사회력사적경위에 있어서나 철학적기초와 미학적원칙에 있어서 선행한 사회주의적사실주의와 구별되는 새로운 창작방법이다. 우리 문학예술이 의거하고있는 우리 식의 사회주의적사실주의창작방법은 주체사실주의, 주체사실주의창작방법이다.
 창작방법은 시대의 산물이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창작방법을 요구한다. 시대가 달라지면 창작방법도 달라지기마련이다. 일정한 력사적시기에 같은 미학적원칙에 의거하여 활동한 창작가들의 창작경향은 하나의 공통된 문예사조를 이루며 그에 기초하여 창작방법이 생겨난다. 창작방법은 시대의 발전과 함께 발전하며 완성되여나간다.
 창작방법문제를 고찰할 때에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어떤 사회력사적환경에서 어떤 시대적요구를 반영하여 나왔는가 하는것부터 따져보아야 한다.
 사회주의적사실주의는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단계에 들어서고 사회주의혁명이 일정에 오른 력사적시기에 자본주의제도를 때려부시고 착취와 압박이 없는 새 사회를 건설하려는 로동계급의 요구를 반영하여 나왔다. 인류문예사에 처음으로 출현한 사회주의적사실주의가 제기하였던 력사적과제는 자본의 철쇄와 제국주의예속에서 근로인민대중을 해방하는데 복무하는것이였다. 선행한 사실주의를 비판적으로 총화한데 기초하여 나온 사회주의적사실주의는 맑스-레닌주의세계관에 기초하여 생활의 본질과 력사발전의 합법칙성을 진실하게 반영함으로써 로동계급의 혁명위업수행에 적극 이바지하였다. 사회주의적사실주의의 출현은 로동계급의 혁명적문학예술, 인류의 진보적문학예술발전에서 획기적의의를 가지는 력사적사변이였다.
  우리 나라에서의 주체사실주의는 선행한 시대와 구별되는 새로운 력사적시대, 억압받고 착취받던 인민대중이 력사의 주인으로 등장하여 자기운명을 자주적으로 개척해나가는 자주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나왔다. 
새로운 자주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 주체사실주의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데 복무하는것을 력사적과제로 제기하였다.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데 복무하는 새로운 문학예술은 문학예술창조와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주인다운 립장과 태도를 가지고 자체의 실정에 맞게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풀어나갈것을 요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일찌기 조선혁명의 진두에 나서신 첫 시기부터 새시대의 문학예술실천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를 확고한 주체적립장에서 독창적으로 풀어나가심으로써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적사실주의는 처음으로 우리 식의 사회주의적사실주의, 주체사실주의로 발전하게 되였다.
 창작방법은 세계관과 뗄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창작방법은 창작가가 생활을 인식하고 평가하며 예술로 반영하는데서 의거하는 미학적원칙이다. 생활을 재현하는것이 문학예술이지만 문학예술에서 생활은 단순히 복사되는것이 아니라 창작가의 정치적견해와 미학적리상에 따르는 일정한 창작원칙에 기초하여 그려지게 된다. 생활을 인식하고 평가하며 형상하는데서 중요한것은 창작가의 세계관이다. 세계관은 생활을 대하는 창작가의 립장과 태도를 규정하고 그의 창작활동을 제약하며 형상창조의 원칙과 방법을 규제한다. 세계관은 창작방법의 기초이며 그것을 규제하는 근본요인이다.
 작가가 어떤 견해와 립장에서 현실을 보고 대하며 어떻게 예술적형상으로 일반화하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그의 세계관에 달려있다. 인류문예사를 놓고보더라도 일반적으로 진보적인 세계관을 가진 작가는 진보적인 창작방법에 의거하였으며 반동적인 세계관을 가진 작가는 반동적인 창작방법에 의거하였다.
 진보적인 창작방법은 선진적인 세계관에 기초를 두고있다. 시대의 발전과 함께 세계관도 발전하고 그에 따라 창작방법도 보다 높은 단계에로 발전하였다.창작방법이 세계관에 기초하는것만큼 창작방법의 본질과 그것이 문학예술발전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은 세계관의 과학성과 혁명성에 의하여 규제된다.
 사회주의적사실주의는 유물변증법적세계관에 기초하고있지만 주체사실주의는 사람중심의 세계관, 주체의 세계관에 기초하고있다. 주체사상은 세계의 시원문제가 유물론적으로 해명된 조건에서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새롭게 제기하고 사람이 모든것의 주인이며 모든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원리를 밝힘으로써 사람중심의 철학적세계관을 확립하였다. 사람을 위주로 하여 세계에 대한 견해를 세우고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에 대하는 관점과 립장을 새롭게 밝힌 주체의 세계관은 세계관발전의 가장 높은 단계를 이룬다. 주체사실주의가 세계관발전의 가장 높은 단계를 이룬 사람중심의 철학적세계관에 기초하고있다는 여기에 선행한 사회주의적사실주의와 질적으로 다른 근본특징이 있다.
 주체사실주의가 선행한 사회주의적사실주의와 질적으로 구별되는 독창적인 창작방법이라고 하여 선행한 사회주의적사실주의와 아무런 련관이 없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은 아니다. 주체사실주의는 그 계급적리념과 사실주의적형상방법의 공통성으로 하여 선행한 사회주의적사실주의와 깊은 련관을 가지고있다. 주체사실주의는 선행한 사회주의적사실주의와 같이 관념론적이며 형이상학적인 부르죠아문예리론과 자연주의, 예술지상주의를 비롯한 온갖 반동적인 문예조류를 반대하는 첨예한 투쟁속에서 발생발전하였다. 주체사실주의와 선행한 사회주의적사실주의는 다 같이 착취없고 압박없는 새 사회를 건설하려는 근로인민대중의 혁명위업에 복무하는 문학예술의 창작방법이다. 주체사실주의와 선행한 사회주의적사실주의는 다같이 현실을 사실주의적원칙에서 반영하고있으며 진실성을 생명으로 하고있다.
 주체사실주의의 발생발전은 지난날의 사회주의적사실주의가 이룩한 성과와 경험을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그렇다고하여 주체사실주의를 지난날의 사회주의적사실주의의 단순한 계승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계승은 혁신과 발전의 전제로 된다. 주체사실주의는 종래의 사회주의적사실주의의 귀중한 경험을 계승한 그자체보다 문학예술창작방법을 자주시대의 요구에 맞게 혁신하고 더욱 발전시키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주체사실주의는 지난날의 모든 사실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과 체모를 갖춘 새로운 사실주의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 식의 사회주의적사실주의, 주체사실주의의 독창성과 혁신적의의가 있다. 주체사실주의와 선행한 사회주의적사실주의의 관계에서는 독창성을 기본으로 보면서 계승성을 결부시켜 보는것이 중요하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항일혁명투쟁시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반세기가 넘는 오랜 기간 우리 문학예술이 걸어온 력사는 우리 식의 사회주의적사실주의창작방법, 주체사실주의창작방법을 창시하고 끊임없이 발전시켜온 자랑찬 로정이였다. 이 자랑찬 길에서 주체의 철학적세계관에 기초한 우리 식의 새롭고 독창적인 주체사실주의창작방법의 진리성과 우월성이 남김없이 과시되였다. 우리 문학예술은 주체사실주의창작방법에 의거함으로써 혁명적이며 인민적인문학예술의 본보기로 활짝 꽃펴나고 인류문예사발전에서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일대 전성기를 펼쳐놓게 되였다.
 우리는 벌써 오래전에 우리 문학예술이 의거하고있는 창작방법을 새롭게 규정하고 정식화하여야 하였을것이다. 그러나 창작방법에 대한 새로운 정식화는 그 누가 주장한다고 하여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다. 새로운 창작방법이 창작실천에서 구현되는것과 그것을 정식화하여 선포하는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새로운 창작방법에 대한 정식화는 그것을 안받침할수 있는 사상리론적기초가 마련되여야 할뿐아니라 그것을 특징지을수 있는 작품이 창작되는 과정에 뜻을 같이하는 작가들의 오랜 기간에 걸친 공동의 노력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시대를 풍미하는 본보기작품이 나와야 인정을 받게 된다.
 주체사실주의의 사상리론적기초는 이미 항일혁명투쟁의 첫 시기에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과 그것을 진수로 하는 주체적문예사상에 의하여 마련되였다. 주체사실주의를 특징짓는 선구자적작품도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친히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에 의하여 마련되였다.
 우리 나라에서 주체사실주의는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마련된 주체적인 문예사상과 리론, 불후의 고전적명작에 토대하여 해방후 매우 어렵고 복잡한 환경속에서도 굳건히 고수되고 발전풍부화되였다. 수령님께서는 해방후 주체적인 사회주의적민족문학예술건설로선을 제시하시고 혁명발전의 매 단계마다에서 우리 문학예술이 나아갈 앞길을 밝혀주시였으며 작가,예술인들이 창작한 문예작품을 친히 보아주시면서 작품창작에서 견지하여야 할 원칙과 방도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문학예술창조와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리론실천적문제에 심오하고도 전면적인 해답을 준 수령님의 주체적문예사상과 리론이 있음으로 하여 우리 문학예술은 우리 식의 사회주의적사실주의, 주체사실주의의 길을 개척할수 있었고 그 길에서 빛나는 성과를 이룩할수 있었다.
 주체사실주의창작방법을 공고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것은 당의 령도밑에 문학예술혁명을 성과적으로 수행한것이다. 우리 식의 창작방법은 처음부터 위대한 주체사상을 세계관적기초로, 주체적문예사상을 사상미학적기초로 하여 발생하였지만 해방후 우리 문학예술전반에서 주체사실주의창작방법이 철저히 구현된것은 아니다. 해방후 우리 문학예술분야에는 복고주의적이며 자본주의적인 요소도 적지 않았으며 사대주의적이며 교조주의적인 경향도 심하였다.
 이러한 이색적인 문예조류와 창작경향을 철저히 뿌리빼지 않고서는 주체적인 창작방법을 구현해나갈수 없었다. 우리 당은 내용과 형식, 창조체계와 방법의 모든 령역에서 착취사회가 남겨놓은 온갖 낡은것을 쓸어버리기 위한 문학예술혁명을 힘있게 벌림으로써 주체사실주의창작방법을 더욱 완성하는 사업에서 커다란 성과를 이룩하였다. 우리는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여러 형태의 문학예술작품에 옮기는 사업을 통하여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철저히 계승하고 주체사실주의창작방법을 더욱 완성하였으며 우리 문학예술을 주체사실주의창작방법이 철저히 구현된 새형의 문학예술로 발전시켰다. 1970년대에 이르러 우리 문학예술은 선행한 사회주의적사실주의와 확연히 구별되는 주체적문학예술로서의 새로운 성격과 체모를 완전히 갖추게 되였으며 그 독창성과 위력을 온 세상에 남김없이 과시하게 되였다.
 수령, 당, 대중이 하나의 사회정치적생명체로 일심단결을 이룬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이 전면적으로 발양되고있는 우리의 위대한 현실과 창작실천은 우리 식의 창작방법을 주체적립장에 튼튼히 서서 새롭게 규정하고 그 본질과 특성을 전면적으로 밝힐것을 미룰수 없는 절박한 과제로 제기하고있다.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위업이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심화발전되고있는 현실의 요구에 맞게 우리 문학예술의 사상예술적수준을 더욱 높이며 인식교양적역할을 더 한층 강화하기 위하여서는 작가, 예술인들이 주체사실주의창작방법의 본질을 똑바로 알고 그것을 창작실천에 철저히 구현해나가야 한다. 오직 우리 식의 사회주의적사실주의, 주체사실주의창작방법에 정통한 작가, 예술인만이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는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문학예술작품을 창작할수 있다.


2) 주체사실주의는 사람중심의 세계관에 기초한 창작방법이다


 주체사실주의는 위대한 주체사상의 원리를 문학예술창작에 구현하는 과정에 형성된 우리 시대의 가장 옳바른 창작방법이다.
 주체사실주의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현실을 보고 그리는 창작방법이다.
 우리 식의 사회주의적사실주의창작방법인 주체사실주의는 주체의 철학적세계관에 기초하여 인간과 생활을 보고 진실하게 그려냄으로써 문학예술로 하여금 인민대중에게 참답게 복무할수 있게 한다.
 주체사실주의와 선행한 사회주의적사실주의의 근본적인 차이는 사람을 어떤 견지에서 보고 그리는가 하는데 있다. 선행한 사회주의적사실주의에서는 주로 인간을 사회적관계의 총체로 보고 그리였다면 주체사실주의에서는 인간을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존재로 보고 그린다. 관점상의 이러한 차이로 하여 두 창작방법에는 인간을 보고 그리는데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게 된다.
 인간과 생활을 어떻게 보고 그리는가 하는것은 창작방법을 규정하는 기본요인이다. 인간과 생활을 어떤 관점과 립장에서 보고 그리는가 하는데 따라 취사선택되는 소재와 작품에 담겨지는 내용이 달라지며 형상구성의 원리가 달라진다.
 물론 지난날의 사실주의창작방법에서도 사람을 사회적관계의 총체로 보고 형상의 중심에 내세워야 한다고 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사람을 형상의 중심에 내세워야 한다고 하는 경우에도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기초하여 현실을 보고 그릴데 대한 요구를 전면에 제기하지 못하였다.
 지난날의 사실주의창작방법의 이러한 제한성은 그것이 기초하고있는 세계관적제한성과 관련되여있었다.
 인간과 생활을 어떻게 보고 그려야 하는가 하는 문학예술의 근본문제는 사람중심의 철학적세계관에 기초하고있는 주체사실주의에 의하여 비로소 완벽하게 해결될수 있었다.
 주체사실주의는 주체사상이 밝힌 사람이 모든것의 주인이며 모든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원리에 기초함으로써 사람을 세계의 지배자, 개조자로 내세우고 세계의 모든 변화발전과정을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가장 정확히 그리며 사람의 존엄과 가치를 최상의 경지에서 빛나게 형상할수 있게 하였다. 바로 여기에 주체사실주의의 본질적우월성과 혁신적의의가 있다.
  현실을 보고 평가하는데서 사람을 중심에 놓는가, 물질을 중심에 놓는가 하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상반되는 관점과 립장에 대한 문제이다.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현실을 보고 그린다는것은 현실을 사람의 리익을 기준으로 하여 보고 그린다는것이며 현실의 변화발전과정을 사람의 활동을 기본으로 하여 보고 그린다는것을 말한다.
 주체사실주의는 현실에 있는 모든것을 사람의 자주적인 요구와 리익의 견지에서 보고 그릴것을 요구하며 자연과 사회의 변화발전과정도 사람의 주동적인 활동의 견지에서 보고 그릴것을 요구한다.
 현실에 대한 사람중심의 관점과 립장은 주체사실주의창작방법이 확고히 견지하고있는 근본원칙이다.
 사람중심의 견지에서 현실을 보고 그린다고 하여 작품에서 사람의 능동적인 역할만 강조하고 객관적인 물질적조건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것이 아니다. 사람이 모든것을 결정한다고 하여 물질적조건의 역할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면 관념론과 형이상학에 빠지는 결과에 떨어진다. 주체사실주의는 반드시 현실을 사람중심의 견지에서 보고 그리면서도 물질적조건의 역할에 응당한 의의를 부여하고 사람을 둘러싼 주위환경을 진실하고 생동하게 그리는데 깊은 관심을 돌린다.
 주체사실주의는 인민대중을 중심으로 하여 사회와 력사를 보고 그리는 창작방법이다.
 인민대중을 중심에 놓고 사회력사발전을 그린다는것은 인민대중을 사회력사발전의 주체로, 사회력사적운동을 인민대중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이며 의식적인 운동으로 보고 그린다는것을 말한다.
 물론 선행한 사회주의적사실주의문학에서도 인민대중을 형상의 중심에 내세우고 그리지 않았거나 력사발전에서 그들이 노는 역할을 그리지 않은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민대중을 력사발전의 주체로, 자기운명의 주인으로 그리지는 못하였다.
 사회력사운동의 주체는 인민대중이며 인민대중의 역할을 떠나서는 사회적운동도 력사발전도 생각할수 없다. 주체사실주의는 인민대중을 사회력사의 주체로 형상의 중심에 내세우고 그들의 자주적요구와 창조적능력에 의하여 자연이 개조되고 사회가 발전하며 인류력사가 전진한다는 위대한 진리를 깊이있게 형상할것을 요구한다.
 그전에 국립연극극장에서 연극《리순신장군》을 무대에 올린적이 있는데 그 작품에서는 임진조국전쟁시기 해전에서의 승리가 마치도 리순신장군 개인에 의하여 이루어진것으로 그려져있었다. 물론 리순신장군이 애국명장으로서 해전에서 큰 공을 세운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독불장군이라고 인민대중이 그를 따라 조국을 지켜 영용하게 싸우지 않았더라면 그가 해전에서 승리할수 없었을것이다. 임진조국전쟁승리에서 결정적역할을 한것은 외래침략자들로부터 사랑하는 조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목숨도 서슴없이 바쳐 싸운 인민대중이였다. 력사물에서는 영웅호걸이나 뛰여난 인물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민대중에 의하여 력사가 창조되고 사회가 발전한다는 사상을 두드러지게 그려야 한다.
 인민대중은 력사의 주체이지만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그의 지위와 역할이 같은것이 아니다. 지난날 착취사회에서 근로인민대중은 자기의 힘으로 물질적재부와 정신적재부를 창조하여왔지만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착취계급에 의하여 갖은 천대와 멸시, 착취와 압박을 받아왔다. 근로인민대중은 국가주권과 생산수단을 자기 손에 틀어쥐고 사회주의제도를 세움으로써만 비로소 사회의 참다운 주인, 력사의 자주적인 주체로 될수 있었다. 근로인민대중의 지위와 역할은 같은 착취제도에서라 하더라도 같은것이 아니다. 근로인민대중의 처지는 노예사회와 봉건사회에서 다르고 자본주의사회에서 다르다. 문학예술은 언제나 주체의 사회력사원리에 철저히 의거하여 각이한 시대, 각이한 사회제도하에서의 근로인민대중의 지위와 역할을 그들의 자주적요구와 창조적역할의 높이에 맞게 정확히 반영함으로써 노예사회가 봉건사회에로, 봉건사회가 자본주의사회에로, 자본주의사회가 사회주의사회에로 교체되는 력사발전의 합법칙적과정을 력사의 주체인 인민대중을 중심으로 하여 정확히 보여주어야 한다.
 주체사실주의창작방법은 특히 위대한 주체사상이 철저히 구현된 우리 식의 사회주의사회에서 우리 인민이 사회력사의 주체로서 누리고있는 긍지높고 보람찬 생활을 깊이있게 그려낼것을 요구한다. 우리 식 사회주의제도야말로 누구나 다 사회적인간의 본성적요구와 사회주의적리념에 맞는 정치생활,경제생활, 사상문화생활을 마음껏 누릴수 있게 하는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이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하여주는 사람중심의 사회주의이다. 문학예술에서는 마땅히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의 본질적특성을 전면적으로 깊이있게 그려냄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우리 식 사회주의제도에서 혁명의 자주적인 주체로 성장한 우리 인민의 긍지높고 보람찬 생활을 생동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주체사실주의는 사람중심의 세계관에 기초하여 생활을 전형화하여 진실하게 그리는 창작방법이다. 주체사실주의는 사실주의문학이 전통적으로 고수하고 발전시켜온 전형화와 진실성의 원칙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견지하고있다.
 오늘 부르죠아반동작가들이 사회주의적사실주의를 헐뜯는 중요한 내용의 하나가 바로 사실주의적전형화와 생활반영의 진실성에 대한 문제이다. 수정주의작가들도 생활을 현실 그대로 진실하게 전형화하는 사회주의적사실주의창작방법이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것이기때문에 그것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있다. 사실주의적 전형화와 진실성의 원칙을 고수하는 문제는 진보적문학예술이 오랜 력사를 통하여 발전시켜온 사실주의의 자랑스러운 전통, 특히 로동계급의 문학예술이 개척한 사회주의적사실주의의 전통을 고수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로 된다.
 인간과 생활을 전형화하여 진실하게 보여주는것은 사실주의문학의 본성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기본요구이다. 문학작품에 그려지는 모든 인물은 당대사회의 계급과 계층을 대표하는 전형적인물로 되여야 하며 생활도 어느것이나 시대의 특징과 력사발전의 합법칙성을 체현한 전형적인것으로 되여야 한다.
 인간과 생활을 전형화하여 진실하게 보여주는 문제는 사회주의적사실주의문학에 와서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이전의 그 어느 문학도 사회주의적사실주의문학에서처럼 인간을 력사의 창조자, 시대정신의 체현자로 전형화하지 못하였으며 사회적존재로서의 인간과 생활의 본질을 깊이있게 밝혀내지 못하였다. 사회주의적사실주의가 전형화문제를 높은 수준에서 해결할수 있은것은 객관적현실과 인간의 사회계급적성격을 옳바로 보고 그릴수 있게 하는 유물변증법적세계관에 의거하였기때문이다.
 주체사실주의는 주체적인 관점에서 인간과 생활을 보고 그림으로써 전형화의 요구를 가장 철저히 실현할수 있게 한다. 주체사실주의는 인간을 위주로 하여 현실에 있는 모든 사물현상과 그 변화발전과정을 보고 대하며 자주성을 기본척도로 하여 인간과 생활을 보고 대한다. 주체사실주의는 자주성을 지향하는 인민대중의 요구에 맞는것이면 긍정적이고 본질적인것으로 보고 그리며 그에 맞지 않는것이면 부정적이고 비본질적인것으로 보고 그린다. 주체사실주의는 인간의 성격을 전형화하는데서 자주성을 기본으로 하여 일반화와 개성화의 통일을 실현할것을 요구한다. 인간의 계급적성격이라는것도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과정에 사람들사이에서 맺어지는 사회적관계의 반영인것이다. 로동자,농민을 비롯한 근로하는 사람들은 자주성을 가장 귀중히 여기고 그것을 옹호하여 투쟁하는 인간의 전형으로 되며 지주, 자본가를 비롯한 착취자들은 자주성을 무시하고 짓밟는 반동의 전형으로 된다. 주체사실주의는 자주성을 기본척도로 하여 인간을 전형화하는것만큼 비록 부유한 가정의 출신이라 하더라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사회적진보와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몸바쳐 싸운 사람이라면 그를 애국자로. 혁명가로 내세운다. 우리의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오랜 인테리들은 다름아닌 자주성을 척도로 하여 그려낸 주체형의 인간전형인것이다. 인간만 아니라 생활도 자주성을 척도로 하여 보고 그릴것을 요구하는 주체사실주의는 대중의 자주적인 지향과 요구에 맞는 생활을 시대의 본질과 력사발전의 합법칙성을 체현한 전형적인것으로 보고 그린다.
 사람, 인민대중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와 현실, 사회와 력사를 보고 자주성을 기본척도로 하여 전형화와 진실성의 원칙을 고수하는 여기에 주체사실주의의 본질적특징이 있다.

3) 주체사실주의는 사회주의적내용을 민족적형식에 담을것을 요구한다


 모든 사물현상과 마찬가지로 문학작품도 내용과 형식의 통일로 이루어진다. 문학작품을 어떤 원칙에서 어떻게 창작하는가 하는 문제는 어떤 내용을 어떤 형식에 담는가 하는 문제에 귀착되며 그에 따라 문학예술의 성격과 사회적역할이 규제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70년대초에 우리 나라를 방문한 일본정치리론잡지 《세까이》편집국장과 하신 담화에서 사회주의적사실주의문제와 관련하여 자신께서 직접 체험한 하나의 일화를 들려주시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부상병들을 위안하기 위하여 어느 지방에 있는 인민군병원을 찾으신 수령님께서는 그 병원에 붙여놓은 한폭의 그림을 보시게 되였다. 그 그림은 큰 나무밑에 흰눈이 깔려있고 그우로 곰이 기여다니는것을 그린 씨비리풍경화였다. 수령님께서는 전사들을 보고 그 그림이 좋은가 그렇지 않으면 우리 나라의 금강산을 멋들어지게 그린것이 좋겠는가고 물으시였다. 전사들은 우리 나라의 금강산을 그린 그림이 더 좋겠다고 대답을 올렸다. 그래서 수령님께서 부대정치부장에서 왜 우리 나라의 금강산을 그려붙이지 않고 씨비리풍경을 그린 그림을 붙였는가고 물으시니 정치부장이 그림을 파는데 가보니 그런 그림밖에 없기때문에 할수없이 그것을 사왔다고 한심한 대답을 올리였다.
 수령님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편집국장에게 우리 예술인들이 《레알리즘》이요, 사회주의적사실주의요 하고 말은 많이 하지만 실제로는 그 내용을 모르고있다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적사실주의라고 하면 민족적인 형식에 사회주의적인 내용을 담는것을 말한다는 정의를 주었다고 교시하시였다. 이 정의는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사회주의적사실주의를 새롭게 정식화한것으로서 그때까지 작가나 문예리론가들이 알고있던 종래의 명제와 전혀 다른것이였다. 민족적인 형식에 사회주의적인 내용을 담는것이 사회주의적사실주의라는 이 정식화는 사실에 있어서 오늘 우리가 말하는 주체사실주의에 대한 정식화이다. 이 명제에서 사회주의적인 내용이란 주체사상을 구현한 혁명적내용을 념두에 둔것이다.
 주체사상을 구현한 혁명적내용에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옹호하고 모든 문제를 주인다운 립장에서 창조적으로 풀어나가는 내용, 인간의 제일생명은 정치적생명이며 사람의 사상이 모든것을 결정한다는 내용, 주체의 혁명관과 인생관, 집단주의적생명관을 세워나가는 내용을 비롯하여 사회적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성을 발양시키고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높이는데서 나서는 모든 내용이 포괄되여있다. 주체사상을 구현한 혁명적내용에는 새것과 낡은것의 투쟁내용이 포함되여있다.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력사는 낡은것을 없애고 새것을 창조하기 위한 투쟁의 력사이다. 이 투쟁에서 새것이 승리하고 낡은것이 멸망하는것은 력사의 어길수 없는 법칙이다. 문제는 새것과 낡은것을 어떤 관점과 립장에서 보는가 하는데 있다.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새것이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는데 이바지하는것이며 낡은것이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는것을 억제하는것이다. 이렇게 보는것이 새것과 낡은것에 대한 주체적관점이며 립장이다.
 주체사실주의는 주체사상에 기초하고있는 혁명적내용, 사회주의적내용을 담는것으로 하여 문학의 인간학적인 요구를 전면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할수 있는 가장 혁명적이며 과학적인 창작방법으로 된다.
 문학예술작품에 담아야 할 사회주의적내용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자주성에 관한 문제이다.
 인간과 생활을 그리는 문학에서는 인간의 운명개척과 관련되는 많은 사회적문제가 제기되기 마련이다. 인민대중의 정치생활, 경제생활, 문화생활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비롯하여 모든 사회적문제, 인간문제는 문학예술작품이 내세운 사상주제적과제에 따라 다 의의있고 절실한 문제로 취급될수 있다. 그 가운데서 인간과 생활의 본성이 무엇인가 하는것은 문학이 발생한 때로부터 론의된 력사적인 과제이다.
 주체사실주의는 자주성을 인간과 생활의 본성으로 내세움으로써 우리 시대의 문학예술앞에 나선 력사적과제를 빛나게 해결하였으며 문학예술이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에 참답게 복무할수 있는 길을 뚜렷이 밝혀주었다.
 자주성에 관한 문제는 인간학으로서의 문학의 본성적요구에 전적으로 부합되는 인간문제이다. 자주성은 사회적인간의 생명이며 인간을 다른 생명물질과 구별되게 하는 근본속성이다. 비록 목숨이 붙어있어도 자기운명을 자주적으로 개척해나가지 못하고 주위세계에 순응하거나 남에게 얽매여 살아간다면 그러한 사람은 사회적인간으로서는 죽은 몸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문학예술은 인간의 운명개척의 길을 밝혀주는데서 사람의 자주성에 관한 문제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내세워야 한다.
 자주성은 사람의 생명인 동시에 나라와 민족의 생명이다.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은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근본담보이며 사람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자주성을 위한 사람의 투쟁은 나라와 민족을 단위로 하여 벌어지며 사람의 사회정치적생명과 운명도 나라와 민족의 운명과 하나로 련결되여있다. 나라와 민족이 남에게 예속되면 사람도 노예의 처지를 면할수 없고 자주성을 실현할수 없다. 문학예술이 인간학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자면 자주적인 인간에 대한 문제와 함께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에 대한 문제에 응당한 주의를 돌려야 한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혈분만국회》는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에 대한 문제를 잘 반영한 본보기작품이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혈분만국회》가 취급하고있는 반일렬사 리준의 애국적장거는 실재한 하나의 력사적사실이다. 이 하나의 력사적사실을 가지고 어떤 창작방법에 의거하여 형상하는가 하는데 따라 작품의 사상적내용이 달라지게 된다. 만일 력사적사실을 비판적사실주의의 견지에서 형상한다면 작품에서 일제의 조선강점과 그와 결탁한 국제반동세력의 책동을 폭로비판하고 그에 대한 주인공의 치솟는 민족적울분과 항거의 정신을 표현하는데 그치였을것이며 사회주의적사실주의의 견지에서 형상한다면 그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리준의 사상적제약성과 투쟁방법의 소극성의 원인을 계급적처지와 세계관에서 찾으면서 민족의 자유와 독립은 로동계급이 령도하는 인민대중의 조직적인 투쟁에 의해서만 쟁취할수 있다는 사상을 표현하였을것이다. 불후의 고전적명작《혈분만국회》는 주체사실주의에 의거하여 창작하였기때문에 외세의존은 망국의 길이라는 사상적내용을 작품의 중심에 제기하고 리준의 애국적장거를 자주성의 견지에서 보다 깊이있고 훌륭하게 형상할수 있게 되였다.

주체사실주의가 자주성의 견지에서 문제를 밝힌다고 하여 작품에 담아야 할 내용의 범위가 한정되는것으로 생각하거나 반드시 자주성에 대한 문제만 취급할것을 요구한다고 생각하여서는 안된다. 사람의 자주성,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에 관한 문제는 그 포괄범위가 헤아릴수 없이 넓으며 작품에서 자주성에 대한 문제를 반드시 직접적인 주제로 제기하여야만 하는것도 아니다. 사회생활에서 제기되는 그 어떤 인간문제도 그것이 사회적으로 의의있고 절실한 문제일 때에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임의로 선택하여 그릴수 있다. 그 어떤 인간문제를 제기한다하여도 그것이 자주성에 관한 문제에 귀결될수 있게 형상하면 되는것이다. 작가는 사람의 자주성,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해명하는 시점에서 사회생활의 모든 인간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반드시 자주성에 관한 주제가 아니라 하여도 사람의 자주성을 높이는데 작용하는 의의있는것이라면 어떤 문제든지 작품에서 취급할수 있다.
 작가들은 이미 주체의 철학적원리에 기초하여 밝혀진 혁명과 건설의 진리를 깊이있게 형상하는것과 함께 주체사상의 심오한 원리에 기초한 인간생활의 다양한 진리를 끊임없이 새로 탐구하여 작품에 담아야 한다.
 문학예술작품이 담아야 할 자주성에 대한 문제는 자주적인 인간, 자주성을 지향하는 인간의 전형을 통하여 실현된다.

주체사실주의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인간인 주체형의 공산주의자의 전형을 창조함으로써 새로운 력사적시대의 전형창조문제를 빛나게 해결할수 있게 하는 창작방법이다. 자주적인간의 전형이란 사회정치적자주성을 생명으로 여기고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는 인간이다. 견결한 자주정신과 높은 혁명의식을 지니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을 위하여 완강하게 투쟁하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존엄있고 아름다운 인간이며 인류가 리상하는 참된 인간의 귀감이다. 자주성을 위하여 투쟁하는 인간보다 더 존엄있고 값높은 인간은 없다.
 자주성을 옹호하며 자주성을 지향하는 인간의 전형을 창조하는 문제는 오늘의 현실을 그리는 작품에만 해당되는 요구가 아니다. 자주성을 옹호하며 자주성을 지향하는 인간의 전형은 지난날의 력사에도 있었다. 인류사회의 오랜 발전과정에 사람들은 사회적예속에서 자신을 해방하기 위한 투쟁을 끊임없이 벌려왔다. 고대사회에는 노예주의 비인간적인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전형이 있었고 중세기에는 봉건령주의 가혹한 압박에서 해방되여 자주적으로 살려는 인간의 전형이 있었으며 외래침략자들이 쳐들어왔을 때에는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을 옹호고수하기 위하여 투쟁한 인간의 전형이 있었다. 물론 시대에 따라 자주의식이 높은가 낮은가 하는데서 차이가 있을수 있지만 지난 어느 시대에든지 자주성을 지향하는 인간의 전형이 있었다. 문학은 지나온 력사를 그리는 경우에도 반드시 그 시대를 대표할수 있는 전형을 자주성을 위하여 투쟁하는 인간속에서 찾아야 한다.
 자주적인간의 성격을 창조하는데서 중요한것은 그가 지니고있는 자주적인 사상의식을 깊이있게 그리는것이다. 사상은 인간의 풍격을 특징짓는 근본요인이며 자주적인 인간의 풍모는 자주적인 사상의식에 의하여 담보된다. 우리는 언제나 자주적인 인간의 전형을 창조하는데서 그의 자주적인 사상의식을 깊이있게 그리는데 선차적인 관심을 돌려야 한다. 혁명적인 사상의식과 함께 고상한 정신도덕적풍모는 사회적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특징짓는 중요한 척도이다.
 자주적인 인간의 사상의식과 정신도덕적풍모를 가장 원만히 체현하고있는 사람은 주체형의 공산주의자이다. 주체형의 공산주의자는 위대한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제일생명으로 여기는 참된 인간이며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바쳐 투쟁하는 견결한 혁명가이다.
 우리 나라에서 주체형의 공산주의자들은 일찌기 조선혁명의 려명기에 태여났다. 조선혁명의 개척기에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혁명의 최고뇌수로, 통일단결의 중심으로 높이 우러러 받들고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 싸운 청년공산주의자들은 주체형의 공산주의자의 전형이였다. 조선혁명의 개척기에 청년공산주의자들이 지녔던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과 숭고한 혁명적의리와 동지애는 항일유격대원들에 의하여 빛나게 이어졌으며 항일혁명선렬들의 투철한 혁명적수령관과 백절불굴의 혁명정신, 드팀없는 혁명적신념은 해방후 우리 인민들속에서 대를 이어 계승되고있다. 오늘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위업이 높은 단계에서 심화발전되고있는 우리 나라에서는 수천수만의 주체형의 공산주의자들이 당과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성심을 간직하고 혁명의 주체를 더욱 강화하며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고있다. 간고하고도 장구한 조선혁명의 로정은 주체형의 공산주의자들이 대를 이어 태여나고 성장하여온 자랑찬 력사이다. 우리 문학예술은 대를 이어 계승되고있는 주체형의 공산주의자들의 빛나는 전형을 창조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여야 한다.
 주체사실주의는 문학예술작품에 민족적형식을 구현할것을 요구한다.
 문학예술의 민족적형식은 자기 민족의 미감과 요구에 맞고 자기 민족이 좋아하는 형상수단과 수법, 형상기교를 말한다.
 문학예술은 본래 민족적인것이다. 매개 나라의 문학예술은 그 나라 민족이 창조하고 향유하는것만큼 그 나라의 고유한 민족언어와 예술언어를 표현수단으로 삼는다. 사실주의문학예술인 경우에는 두말할것도 없고 사실주의문학예술이 아닌 경우에도 그 형식은 이렇게나 저렇게나 민족적형식을 띠게 된다.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에 이바지하는 주체사실주의문학예술도 응당 민족적형식을 표현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민족적형식은 력사적으로 형성된것으로서 상대적인 공고성을 가진다. 민족적형식은 시대가 달라지고 사회제도가 바뀌여도 오래동안 거의 그대로 남아있으며 점차적으로 변화발전한다. 따라서 거기에는 현대적미감에 맞지 않는 낡고 진부한것도 남아있게 되며 지난날에는 긍정적인것으로 평가되던것이 오늘에 와서는 부정적인것으로 평가되는것도 있게 된다. 물론 사회주의적사실주의창작방법이 나오면서부터 로동계급의 사상감정과 미학적요구에 맞는 새로운 민족적형식이 창조되기 시작하였지만 아직 세계적으로 볼 때 종래의 형식이 거의 그대로 쓰이고있다.
 사회주의혁명시기에 와서도 문학예술이 현대적미감에서 뒤떨어진 민족적형식을 답습하게 된것은 사대주의, 교조주의가 뿌리깊이 남아있는 사정과 관련된다. 교조주의와 사대주의에 의하여 아리아와 대화창을 기본으로 하는 가극형식과 19세기연극형식을 비롯하여 진부하고 고식적인 형식이 사회주의문학예술에서도 오래동안 남아있게 되였다. 우리는 문학예술분야에서 사대주의와 교조주의를 철저히 극복하고 민족적형식을 인민대중의 자주적인 요구와 지향에 맞게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켜야 한다. 민족적형식가운데서 낡고 진부한것을 버리고 진보적이며 인민적인것을 현대적미감에 맞게 끊임없이 발전시키면서 새시대, 새 생활이 요구하는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여 나가는것은 우리 당이 시종일관하게 견지하고있는 원칙적립장이다.
 우리는 이러한 립장으로부터 출발하여 오래전에 이미 가극분야에서는 《피바다》식가극형식, 연극분야에서는 《성황당》식연극형식을 창조하였으며 음악분야에서는 민족적선률을 바탕으로 한 작곡법과 우리 식의 창법, 민족악기의 고유한 특성을 살린 연주법을 창조하였다. 미술분야에서는 조선화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사실주의적화법을 개척하고 무용분야에서도 전통적인 조선식 춤가락과 률동을 현대미감에 맞게 발전시킨 우리 식 무용형식을 창조하였다. 문학분야에서도 언어를 구사하는데서 외래어와 한자말을 없애고 고유한 조선말을 기본으로 하여 인민이 리해하기 쉽고 늘 쓰는 생활언어를 더욱 아름답게 다듬어 쓰고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발전할수록 문학예술에 담아야 할 내용이 더욱 풍부해지고 새로와지는것만큼 그에 상응하게 끊임없이 새로운 민족적형식이 탐구되여야 한다. 작가, 예술인들은 이미 창조되여 은을 내고있는 우리 식의 새로운 민족적형식에 만족하지 말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시대의 요구에 맞게 보다 새로운 민족적형식을 탐구하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여야 한다.
 주체사실주의는 사람중심, 인민대중중심의 창작방법인것으로 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에 가장 철저히, 가장 훌륭히 이바지하는 참다운 문학예술을 창조할수 있게 하는 위력한 사상적 및 방법론적 무기로 된다. 주체시대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구현하고있는 새롭고 위력한 창작방법이 출현한것은 인류문예사적사변이며 우리 인민과 작가, 예술인들의 크나큰 자랑이다.

4. 사회정치적생명체와 문학


1) 사회정치적생명체는 우리 문학의 형상원천이다


 문학은 예로부터 인간과 생활을 자기의 형상원천으로 삼아왔다. 문학은 인간과 생활을 반영하며 바로 그것을 통하여 인간에게 복무한다. 문학은 력사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이끌어나가는 계급의 생활을 기본으로 반영하였으며 그 계급에게 복무하였다. 시대를 대표하는 새로운 계급이 출현할 때마다 문학의 기본형상대상은 바뀌여지군하였다. 자주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문학은 영원히 변함없는 형상대상과 복무대상을 찾게 되였다. 그것은 력사의 자주적인 주체인 사회정치적생명체이다.
 사회정치적생명체는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오랜 투쟁과정에 형성되였다. 인류의 발전력사는 인간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력사인 동시에 력사의 주체인 인민대중의 단결의 힘이 끊임없이 장성하여온 력사이다. 우리 인민은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속에서 가장 공고한 력사의 자주적주체인 사회정치적생명체를 이루었다. 사회정치적생명체는 사회적집단의 발전력사에서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른 집단이다.
 집단이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그의 통일과 단결에 달려있다. 사회적집단은 다 통일과 단결을 지향하지만 지난날 그 어떤 집단도 그것을 완전히 실현할수는 없었다. 완전한 통일과 단결을 이룩하려는 사람들의 념원은 사회정치적생명체의 형성을 통하여 비로소 완벽하게 실현될수 있었다.
 사회적집단의 진보성과 우월성을 재는 중요한 척도는 그 집단이 인민대중의 자주적인 리해관계에 얼마나 부합되는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할수 있는 힘이 얼마나 큰가 하는데 있다. 지금까지의 력사에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할 높은 목표를 내세우고 조직된 집단이 있어본적이 없으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할만한 힘을 가진 집단도 없었다.
 오늘 우리 나라에 이룩된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는 일심단결의 완벽성과 공고성,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할수 있는 힘을 가진것으로 하여 사회정치적집단의 최고의 전형으로 되고있다. 사회정치적생명체는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오랜 투쟁과정에 이룩된 가장 귀중하고 자랑스러운 전취물인것만큼 그것을 견결히 옹호고수하는것은 우리 문학의 신성한 의무로 된다.
 우리 나라에서 사회정치적생명체가 형성된것은 생활과 문학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하게 하였다. 오늘에 와서 우리의 문학은 이때까지의 인류문학이 대상하지 못하였던 전혀 새로운 세계, 온 사회가 수령을 어버이로 모신 하나의 대가정을 이룬 위대한 현실을 형상원천으로 하게 되였다. 우리의 현실에서 수령과 인민의 관계는 령도자와 전사의 관계를 넘어서서 어버이와 자식의 관계로, 하나의 사고, 하나의 호흡, 하나의 행동으로 이어진 혈연적뉴대로 되고있으며 수령을 어버이로 모신 모든 사회성원들의 관계는 혁명적의리와 동지애에 기초한 관계로 되고있다. 수령을 어버이로 모시고 일심단결된 이 위대한 사회적대가정속에서 새로운 인간전형,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이 끊임없이 태여나고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밑에 공산주의적인 새로운 인간관계가 활짝 꽃피여나고있다. 바로 이러한 현실은 문학앞에 지난날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요구를 제기한다.
 사회정치적생명체의 형성은 문학의 형상원천을 새롭게 규정할뿐아니라 그 사명과 역할을 새롭게 밝힐것을 요구하며 현실을 새롭게 보고 그리는 새로운 창작방법을 요구한다. 우리는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사회정치적생명체의 존재와 활동원리에 맞게 문학의 모든 문제를 새롭게 풀어나가야만 공산주의문학건설의 력사적위업을 빛나게 실현해나갈수 있다.
 우리 문학에서 사회정치적생명체는 영원한 형상원천으로 된다.
 사회정치적생명체는 우리 문학이 오늘은 물론, 미래에도 영원히 형상의 원천으로 삼고 시종일관 옹호하고 복무하여야 할 항구적인 대상이다.
 문학의 형상원천에 관한 문제는 그 복무대상과 관련되는 문제이다.작가는 원래 자기가 복무하는 계급의 리해관계와 요구에 따라 형상대상을 설정한다.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는데 복무하는 작가는 혁명의 자주적주체인 사회정치적생명체를 형상의 기본원천으로 삼게 된다.
 오늘 우리 나라에서 사회관계의 기본을 이루는것은 수령, 당, 대중의 관계이다. 수령, 당, 대중의 관계를 떠나서는 우리 나라의 현실을 리해할수 없고 그 본질을 밝혀낼수 없다. 문학이 우리 나라의 현실을 진실하게 보여주기 위하여서는 마땅히 수령, 당, 대중의 일심단결의 관계를 화폭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사회정치적생명체를 형상하는데서 중요한것은 수령, 당, 대중의 3위1체의 원칙을 구현하는것이다.
 작품에서 수령, 당, 대중의 3위1체의 원칙을 구현하는것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위업수행에 이바지하여야 할 주체문학의 사명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근본요구이다.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위업은 당의 령도밑에 온 사회에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사상을 전면적으로 빛나게 구현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기 위한 사업이며 수령, 당, 대중의 일심단결의 위력에 의하여 전진하며 승리하는 위업이다.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는 과정은 곧 사회정치적생명체를 끊임없이 공고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이다.
 문학이 사회정치적생명체를 강화발전시키는데 적극 이바지하기 위하여서는 사람들에게 사회정치적생명체의 존재와 위력을 담보하는 근본요인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것을 생활적으로 깊이있게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의 사회정치적생명체는 위대한 수령님과 당의 령도밑에 인민대중이 하나로 굳게 뭉쳐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 이룩된 가장 고귀한 결실이며 력사의 온갖 시련을 이겨내면서 형성되고 공고화된 불패의 생명체이다. 우리의 사회정치적생명체는 수령님께서 지니신 인민에 대한 끝없는 사랑에 원천을 두고있으며 그 근저에는 당과 수령은 인민을 믿고 끝없이 사랑하며 인민은 당과 수령을 어버이로 모시고 충성과 효성으로 받들어나가는 혈연적인 관계가 놓여있다. 수령, 당, 대중이 가장 숭고한 혁명적의리와 동지적사랑에 기초하여 혼연일체를 이룬 일심단결, 여기에 바로 우리 사회정치적생명체의 본질과 비할바없는 우월성이 있다.
 우리 문학은 하나의 생명체로 결합된 수령, 당, 대중의 혈연적인 관계를 깊이있고 진실하게 형상하여야 한다.

작품에서는 수령, 당, 대중을 전일적인 화폭속에서 통일적으로 형상할수도 있고 따로따로 형상할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나 수령, 당, 대중의 3위1체의 관계를 철저히 구현하여야 한다. 비록 작품에서 수령을 직접 형상하고 당조직선을 설정하였다고 하여도 운명을 같이하는 수령, 당, 대중의 관계를 진실하고 깊이있게 그려내지 못하면 3위1체의 원칙을 구현하였다고 할수 없다. 수령이 등장하지 않고 당조직선을 직접 형상하지 않고 대중의 형상만 그리는 작품인 경우에도 당과 수령이 심려하는 문제를 풀기 위하여 당정책을 무조건 철저히 관철해나가는 인민대중의 투쟁모습을 진실하고 깊이있게 그려내면 수령의 위대성과 당의 령도적역할을 감명깊게 보여줄수 있다. 작품에서 수령, 당, 대중의 3위1체를 구현하는 문제는 수령, 당, 대중을 다같이 형상하는가 따로따로 형상하는가 하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혼연일체를 이룬 수령, 당, 대중의 혈연적인 관계를 진실하고 깊이있게 그려내는데 있다.
 문학이 사회정치적생명체를 형상하는데서 기본은 그 지향과 요구를 잘 그려내는 문제이다.
 사회정치적생명체의 지향과 요구는 수령의 사상에 전면적으로 집대성되여있다. 사상의 유일성과 목적의 공통성, 행동과 의지의 통일성에 의하여 하나의 생명체를 이룬 사회정치적집단에서는 수령의 사상이 곧 당의 의지로 되며 인민의 신념으로 된다. 사회정치적생명체의 지향과 요구를 파악하기 위한 작가의 탐구는 응당 수령의 사상을 깊이 연구하는데로부터 시작하여야 하며 그에 기초하여 매 시기 당이 바라고있는 문제가 무엇이며 인민이 념원하는 문제가 무엇인가 하는것을 깊이 파악하여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 당과 수령의 사상과 의도, 인민의 지향은 당의 선전수단과 교양망을 통하여 정확히 대중속에 전달된다.

작가가 날마다 보고 듣고 읽고 배우는것만 가지고서도 우리 수령님께서 지금 무엇을 바라고계시며 우리 당과 인민이 지금 어떤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는가 하는것을 알수 있다. 작가는 사회정치적집단의 지향과 요구가 무엇이고 그 실현방도가 무엇인가 하는것을 리론적으로뿐아니라 미학적으로도 파악하여야 한다. 수령의 의도와 당의 정책적요구, 대중의 지향을 미학적으로 깊이 파악하여야 거기에서 풍만한 예술적환상이 계발되고 형상적인 착상이 떠오를수 있다. 작가가 자기 식으로 시대를 감수할만한 능력이 없으면 수령, 당, 대중의 지향과 요구를 아무리 리론적으로 심도있게 체득하고있다 하여도 그에 민감하지 못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감수력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것은 아니다. 작가에게 절실히 필요한것은 사회정치적생명체와 운명을 같이하려는 투철한 각오와 사회정치적생명체의 지향과 요구를 자신의 사활적인 요구로 받아들여 기어이 관철해나가려는 비상한 헌신성과 열정이다.
 우리 작가들은 당이 인민앞에 새로운 요구와 과업을 제시할 때마다 당의 기대에 훌륭히 보답해왔다.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속도전을 벌릴데 대한 요구를 제기하였을 때에는 새로운 속도창조운동의 선구자를 형상한 작품을 내놓았고 모두다 영웅적으로 살며 투쟁할데 대한 요구를 제기하였을 때에는 우리 시대의 참된 영웅을 형상한 대작을 많이 창작해내였다.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을 벌릴데 대한 요구가 제기되였을 때에나 당의 군중로선을 철저히 구현할데 대한 요구가 나섰을 때에도 그에 훌륭한 대답을 주는 작품을 써냈다. 우리 작가들은 1990년대에도 2000년대에도 계속 당과 수령의 의도와 요구, 우리 인민의 지향에 대답하는 훌륭한 작품을 많이 창작하여야 한다.
 문학이 사회정치적생명체를 영원한 형상원천으로 삼기 위하여서는 그에 맞게 창작방향을 정확히 규정하여야 한다.

우리 문학창작의 총적인 방향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세계의 자주화를 위한 우리 당의 성스러운 위업을 형상하는데 있다. 모든 작품의 주제는 다 이 총적방향으로부터 나오는 구체적인 문제들이여야 한다.
 우리 문학은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중요한 주제적과제로 내세워야 한다.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기 위한 근본방도이다. 문학은 3대혁명수행에서 절박하고 의의있는 문제를 포착하고 그에 심오한 해답을 주어야 한다.
 문학은 수령, 당, 대중의 혁명력사와 그 투쟁로정에서 마련된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형상하여야 한다. 수령이 이룩한 혁명전통은 사회정치적집단의 력사적뿌리이며 그 운명을 담보하는 초석이다. 우리 문학은 위대한 수령님의 빛나는 혁명력사와 수령님의 령도를 받들고 싸워온 우리 인민의 혁명투쟁력사를 형상하는데 커다란 힘을 넣어야 한다.
 우리 문학은 조국통일위업을 중요한 주제적과제로 내세워야 한다.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은 오늘 전례없이 고조되고있다. 북과 남, 해외의 전체 조선동포들은 1990년대에 기어이 조국을 통일할 불타는 념원과 확고한 신심을 안고 그 실현을 위한 거족적인 투쟁에 일떠섰다. 작가들은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투쟁에서 한몫 단단히 하여야 한다.
 우리 문학은 세계의 자주화위업을 위한 우리 인민과 세계혁명적인민들의 투쟁에 대하여서도 깊이있게 형상하여야 한다.
 문학이 사회정치적생명체를 영원한 형상원천으로 삼기 위하여서는 작가가 사회정치적생명체를 옹호하는 립장에 튼튼히 서있어야 한다.
 작가는 사회정치적생명체를 모든 사회성원들의 정치적생명의 모체로, 나라의 번영과 민족의 장래운명을 결정하는 불패의 힘의 원천으로 여기고 견결히 옹호하여야 하며 그 강화발전을 위하여 적극 투쟁하여야 한다. 사회정치적생명체를 옹호하는 작가의 립장과 자세는 작품창작에서 표현되여야 한다. 창작에서 사회정치적생명체를 긍정하고 옹호한다는것은 문학작품에서 로동계급의 수령을 절대화하고 높이 내세우며 로동계급의 당을 칭송하고 당과 수령의 두리에 뭉친 인민대중을 찬양하는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문학은 현실긍정의 문학으로 되여야 한다.
 작품에서 무엇인가 부정하고 비판하여야 사람들의 흥미를 끌수 있는듯이 생각하는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 그릇된 관점이며 낡은 사고방식이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벌써 오래전부터 긍정이 지배적인것으로 되고 부정이 부차적인것으로 되여있는것만큼 긍정을 전형화하고 옹호하는 내용으로 얼마든지 좋은 작품을 만들수 있다. 우리 나라에 형성된 순결하고 공고한 통일체인 사회정치적생명체를 형상할 때에는 그 본성에 맞게 긍정적인것을 주선으로 확고히 틀어쥐고나가야 한다. 우리 문학에서도 물론 현실에 있는 부정적현상을 내놓고 비판할수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이 적대적성격을 띠지 않는 한 부정을 타도하거나 매장하는 식으로 되여서는 안된다. 어디까지나 부정이 극복되고 동지적협조와 단결이 더욱 강화되는것으로 처리되여야 한다.
 영화문학 《보증》은 우리 당 군중로선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힘있게 확증한 작품이다. 작품에서는 부정을 비판하였으며 일부 당일군에 대하여서도 비판하였다. 당일군이라고 하여 다 완성된 인간일수는 없다. 영화문학에서 보는바와 같이 우리 당의 군중로선에 맞지 않게 복잡한 군중과의 사업을 잘하지 못하는 당일군도 있을수 있고 사람들의 우점보다 결함을 파기 좋아하는 당일군도 있을수 있으며 문건놀음에 파묻혀 사람들의 진속과 현실을 잘 모르는 당일군도 있을수 있다. 물론 이런 당일군은 비판을 받아야 하지만 작품에 결함있는 당일군만 등장시켜서는 안된다. 만일 작품에 결함있는 당일군만 등장시키면 우리 당조직들이 부정으로 가득찬것처럼 현실을 외곡하게 될것이며 나중에는 개별적일군에 대한 비판의 범위를 벗어나 당자체를 헐뜯는것으로 되고말것이다. 영화문학 《보증》에서와 같이 일단 작품의 중심에 우리 시대의 참다운 당일군의 전형을 내세운 조건에서는 어느 개별적당일군을 비판하여도 큰 물의가 일어나지 않는다.
 현실주제작품에서 긍정적주인공을 잘 살리면 된다고 하여 주위인물을 다 부정적인 인간으로 그려서는 안된다. 현실주제의 작품에서 주위인물을 다 부정적인 인간으로 그려 주인공을 간고분투하는 인물로 형상하는것은 현실을 외곡하는 그릇된 경향이다. 현실주제작품에서는 긍정적주인공의 주동적인 노력에 의하여 부정이 극복개조되여가는 과정을 깊이있게 그려야 한다.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으로 맥박치고있으며 혁명적의리와 동지애로 일심단결된 우리의 사회정치적생명체는 불패이며 주체혁명위업과 더불어 영생한다. 우리 문학은 자주시대의 력사적흐름과 더불어 끊임없이 공고발전하는 우리 나라 사회정치적집단의 힘찬 진군과 걸음을 같이 하여야 한다.
 사회정치적생명체가 영원한것처럼 그에 원천을 둔 우리의 주체문학도 영원할것이다.

2) 수령의 형상을 창조하는것은 우리 문학의 지상의 과업이다
  

수령의 형상을 창조하는것은 주체문학건설의 기본의 기본이다. 우리의 문학에서는 수령의 형상을 창조하는것을 주선으로 확고히 틀어쥐고나가야 한다.
 우리의 문학은 주체혁명위업수행에 복무하는 사상적무기인것만큼 온 사회를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 주체사상으로 일색화하기 위한 사업을 총적목표로 들고나가야 한다. 문학은 수령의 형상을 창조하는것을 첫째가는 과업으로 틀어쥐고나가야 온 사회를 주체사상의 요구대로 개조하는 성스러운 위업에 적극 이바지할수 있다.
 수령은 시대와 인민대중을 대표하는 주체형의 공산주의혁명가의 최고전형이다. 수령은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의 풍모와 자질을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체현하고있는 위대한 인간인것으로 하여 주체문학에서 높이 내세워져야 한다. 수령의 빛나는 예술적형상을 통하여 사람들은 혁명가의 가장 숭고한 정신세계를 알게 되고 그 위대한 풍모를 크나큰 감동속에 따라배우게 된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숭고한 형상을 창조하는것은 우리 인민과 세계 혁명적인민의 절절한 념원이며 최대의 희망이다.
 우리 나라에서 수령을 형상하는 문학은 송가문학과 백두산전설에서부터 시작되였다. 혁명송가《조선의 별》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로동계급의 수령을 노래한 혁명적인 가요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동지들이 이 노래를 짓고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토록 사양하고 막으시였으나 청년공산주의자들은 끝끝내 이 노래를 완성하여 널리 보급하였다.
 혁명송가《조선의 별》이 청년공산주의자들의 스스로의 충동과 념원에 의하여 창작되였다면 백두산전설은 인민들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창작되였다. 백두산전설은 항일혁명투쟁시기 인민들속에서 창작되고 전해진 위대한 장군님과 항일유격대에 대한 구전작품이다. 수령님을 형상한 수많은 전설이 창조되여 백두산전설군을 이룬 사실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당시 인민들의 존경과 흠모의 마음이 얼마나 진정에 넘치고 열광적이였는가 하는것을 가슴뜨겁게 보여준다.
 수령을 형상하는 문학은 해방후 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와 장편서사시 《백두산》의 창작을 계기로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김일성장군의 노래》나 《백두산》은 수령님께 충직한 혁명동지들과 인민의 절절한 소원, 시인의 가슴속에서 스스로 우러나온 충동과 열망에 의하여 창작된 작품이다.
 오늘 세계 여러 나라 수반들과 인사들속에서도 위대한 수령님을 칭송하는 시와 노래가 수많이 창작되고있다. 언어와 민족적선률은 서로 달라도 그 모든 시와 노래속에는 우리 수령님을 우러르는 진정어린 감정이 넘쳐 흐르고있다. 문학창작은 고도의 자각적이며 창조적인 사업이다. 지시나 의무감에 의해서는 수령을 진정으로 우러르는 좋은 작품을 쓸수 없다.
 수령의 형상을 창조하는 문제가 인민의 념원과 요구로 제기된다고 하여 투쟁과 노력이 없이 저절로 원만히 해결되는것이 아니다. 로동계급의 수령을 형상하는 사업을 자각성과 자연발생성에 내맡겨서는 목적의식적으로 폭넓고 통이 크게 벌려나갈수 없다.
 수령의 형상을 창조하는 사업도 로동계급의 당의 유일적인 지도에 의하여서만 목적의식적이며 조직적인 사업으로 될수 있으며 확고한 목표와 전망을 가지고 힘있게 전개될수 있다.
 우리는 문학예술사업을 보기 시작한 첫 시기부터 수령의 형상을 창조하는 사업을 문학의 주공전선으로 정하고 당적지도와 창작력량을 집중하여 힘있게 밀고나갔다. 오늘 우리 나라에는 당의 령도밑에 수령을 형상한 혁명문학의 대전성기가 펼쳐졌다.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항일혁명투쟁시기편이 완성되고 해방후편이 련이어 발표되고있으며 영화문학 《조선의 별》이 완성되여 영화로 옮겨졌다. 수령의 형상창조를 위한 정연한 지도체계와 창작체계도 세워지고 수령의 형상을 창조하는 위력한 창작기지도 마련되였다. 오늘 수령의 형상을 창조하는것은 주체문학건설의 핵으로 되고있으며 우리의 문학은 확고히 수령의 형상창조를 주선으로 하여 힘있게 건설되고있다.
 문학부문에서는 수령의 형상을 창조하는데서 이룩한 성과를 튼튼히 고수하고 빛내여나가야 한다. 수령의 형상을 창조하는 사업에서 이룩한 성과는 크지만 조금도 자만할 근거가 없다. 수령의 형상을 창조하는데서는 아직 새롭게 탐구하고 해결하여야 할 문제가 많다. 우리 작가들은 수령의 형상을 창조하는 기수로서 시대와 력사앞에 지닌 영예로운 본분을 다하여야 한다.
 로동계급의 수령을 형상하는데서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수령의 위대성을 잘 그리는것이다.
 수령을 형상하는 문학에서는 걸출한 사상리론가로서의 수령의 위대성을 깊이있게 형상하여야 한다.
 경애하는 수령님을 형상한 작품에는 수령님의 위대한 혁명사상이 깊이있게 반영되여야 하며 그 진리성과 독창성, 불패의 생활력이 뚜렷이 강조되여야 한다.
 작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불멸의 주체사상과 독창적인 혁명리론, 령도방법을 창시하고 발전풍부화시키신 과정을 전면적으로 깊이있게 형상하여야 한다.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혁명의 려명》과 《은하수》는 1920년대 후반기의 사회현실을 생동하게 반영하면서 시대와 혁명의 진로를 밝히는 위대한 주체사상이 어떻게 창시되였으며 그 불멸의 사상에 의하여 사람들의 세계관에서 어떤 심각한 변혁이 일어났는가 하는것을 철학적으로 깊이있게 밝혀냄으로써 심오한 사상리론과 빛나는 예지를 지니신 수령님의 위대한 풍모를 감명깊게 보여주고있다.
 작품에 반드시 어떤 사상리론의 창시과정을 그려야만 사상리론가로서의 수령의 위대성을 보여줄수 있는것은 아니다.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빛나는 아침》은 사상리론의 창시과정을 기본선으로 한 작품이 아니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 낡은 인테리를 교양개조하고 새 인테리와 민족간부를 육성하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시는 현명한 령도과정을 통하여 수령님의 빛나는 사상리론적예지를 깊이있게 밝혀내고있다.
 수령을 형상하는 문학에서는 정치가, 전략가, 령도의 예술가로서의 위대성을 깊이있게 형상하여야 한다.

혁명과 건설에 대한 수령의 령도는 본질에 있어서 정치적령도이다. 수령의 위대한 령도풍모를 보여주는데서는 모든 문제를 정치적으로 보고 정치적방법으로 풀어나가는 모습이 두드러지게 강조되여야 한다. 작품에 해당부문의 전문가도 풀기 어려운 기술실무적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위대한 수령님께서 풀어주시는 식으로 형상하는것은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우리 수령님께서는 정치, 경제, 문화, 군사의 모든 분야에 정통하고 어떤 문제든지 명철하게 풀어나가고계신다. 그러나 수령의 형상에서본질적의의를 가지는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수령으로서의 걸출한 풍모를 보여주는데 있다. 수령의 해박한 식견도 정치적령도자로서의 위대성에 기초하고있는것이다.
 위대한 전략가로서의 수령의 예지는 혁명과 건설의 매 단계마다 투쟁목표와 방향, 동력과 대상,과업과 수행방도를 정확히 제시하고 혁명력량을 옳게 편성하는데서 나타난다.
 수령의 령도예술에서 중요한 내용을 이루는것은 혁명적인 사업방법과 인민적인 사업작풍이다.
 작가는 경애하는 수령님의 위대한 정치, 위대한 전략, 위대한 령도예술을 깊이있게 그려내여 주체혁명위업을 승리에로 이끌어나가시는 수령님의 풍모를 격이 있게 보여주어야 한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리론과 령도방법은 모두 새롭고 독창적인것이다.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은 인류사상사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위대한 진리이며 주체사상을 진수로 하여 밝히신 모든 혁명리론과 령도방법은 다 선행한 그 어느 지도자도 내놓을수 없었던 새로운것이다. 혁명의 지도사상을 창시한 과정을 보면 수령님께서는 서재에서가 아니라 혁명투쟁의 실천속에서 창시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의 철학에 기초하여 모든 혁명투쟁을 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시작하고 벌려오시였으며 한평생을 온갖 애로와 난관을 맞받아나가는 전술로 싸워오시였다.
 우리 수령님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분으로 형상하자면 작가들이 수령님의 이러한 독특한 사상리론활동과 령도예술에 특별히 주목을 돌려야 하며 거기에 형상의 모를 박아야 한다.
  수령을 형상하는 문학에서는 수령이 지닌 인간적풍모의 위대성을 깊이있게 형상하여야 한다.
 수령의 위대한 인간적풍모를 보여주기 위하여서는 수령과 전사, 수령과 인민사이의 혈연적인 관계를 풍만한 생활로 펼쳐야 한다. 수령님의 공산주의적인간성은 참다운 동지애에 바탕을 두고있다. 경애하는 수령님의 혁명력사, 빛나는 인생행로는 참다운 동지애의 력사이다. 작품에서 수령과 전사, 수령과 인민사이의 인간적인 관계는 숭고한 혁명적의리와 동지애를 바탕으로 하여 형상되여야 한다.
 수령의 형상을 창조하는 문학에서 특히 중요한것은 혁명전사와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로서의 수령의 위대성을 깊이있게 그리는것이다.
 오늘 우리 나라에서 수령과 전사, 수령과 인민의 관계는 령도를 하고 령도를 받는 관계인 동시에 사랑을 주고받으며 운명을 보살피고 의탁하는 정치적보호자와 전사, 어버이와 자식사이의 혈연적관계이다.
 로동계급의 수령이 전사와 인민을 끝없이 사랑하며 그들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하는것은 인민의 운명을 전적으로 책임진 수령으로서의 본분이며 수령만을 믿고 따르는 전사와 인민에 대한 혁명적의리로 된다. 수령은 전사와 인민에게 가장 고귀한 정치적생명을 안겨주고 그들이 성스러운 혁명의 한길에서 영생하도록 이끌어주며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마음껏 누릴수 있도록 따뜻이 보살펴준다. 수령은 인민을 굳게 믿고 육친의 사랑을 베풀면서 그들의 힘에 의거하여 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나간다. 믿음과 사랑은 수령이 지니고있는 숭고한 풍모이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는 혁명전사와 인민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체현하고 한평생을 오로지 믿음과 사랑의 정치를 베푸시는 인민의 수령의 위대한 귀감이시다.
 경애하는 수령님의 믿음과 사랑이 있기에 전사와 인민은 수령에게 충성과 효성을 다하는것이다. 수령과 인민사이에는 친부모와 친자식사이와 같이 자그마한 어려움도 없고 간격도 없다.수령과 전사, 수령과 인민사이의 관계를 믿음과 충성, 사랑과 효성의 관계로 끌어올린 여기에 경애하는 수령님께서 지니신 인간적풍모의 위대성이 있다. 문학은 마땅히 수령님과 우리 인민사이에 맺어진 새로운 관계를 깊이있게 그려야 한다. 그래야 수령님께서 지니신 인간적풍모의 위대성을 밝혀낼수 있다.
 수령님께서 지니신 인간적풍모의 위대성을 형상하려면 혁명전사와 인민에게 베푸시는 믿음과 사랑의 정치를 잘 그리는것이 중요하다. 우리 당의 모든 정책과 시책은 인민의 의사와 요구를 정확히 반영한것이며 인민의 행복을 위한것이다. 여기에는 지난날 나라를 잃고 남에게 갖은 천대와 착취를 받으며 값없이 살아오던 우리 인민을 가장 존엄있고 행복한 인민으로 되게 하시려는 수령님의 숭고한 의리와 뜨거운 사랑이 깃들어있다. 수령님처럼 믿음의 정치, 사랑의 정치를 베푸시는 인민의 수령은 세상에 없다. 문학작품에서는 이 위대한 정치를 생활의 세부에 이르기까지 깊이 파고들어 생동하고 진실하게 그려내야 한다.
 수령이 지닌 인간적풍모의 위대성을 보여주는데서 형상을 격식화하거나 기정사실화하지 말아야 한다.

작품에서 수령과 주위인물사이의 인간적인 관계를 깊이 파지 않고 공식적인 관계로 그리면 수령의 형상이 딱딱하고 격식화되여 무미건조하게 안겨온다.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을 만나 담화하실 때 롱담도 하고 우스개소리와 생활적인 말씀도 자주 하신다. 작품에서는 이러한 생동한 생활적인 세부를 펼쳐나가야 하며 수령과 일가분들사이의 관계도 생활적으로 진실하게 그려내야 한다.
 작품에서 수령의 인간성은 행동이나 대사에서도 나타나지만 보다는 내면세계를 펼쳐보여주는데서 뜨겁게 발현된다. 하나의 문제를 놓고도 사색하고 또 사색하며 행동하는 수령의 풍부하고도 심오한 내부적체험세계를 깊이 펼쳐보여주지 않고서는 수령의 위대한 인간적풍모를 생동하게 드러내기 어렵다.

수령의 형상에서 어떤 결과만 강조하고 그 결과를 이룩할 때까지의 체험세계와 심리적굴곡과정을 진지하게 파고들지 않거나 어떤 문제가 제기되면 즉석에서 척척 결론하고 해당한 대책을 세워나가는 수령의 외적모습만 그려나가려 하여서는 안된다. 경애하는 수령님은 인간적으로 볼 때 어느 누구보다도 어려운 시련과 마음고생을 많이 겪어오신분이다. 수령님께서는 종파들때문에 머리가 세였다고 말씀하시며 조국통일문제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늘 말씀하신다. 우리의 문학작품에서는 수령님의 그 깊은 심리세계를 생동하게 펼쳐보여야 한다.
 수령님께서는 남다른 인간적풍모를 지니고계신다. 작가는 수령님의 혁명활동과정을 깊이 연구하고 수령님께서 지니고계시는 인간적풍모를 생활적으로 진실하게 형상하여야 한다.
 문학작품에서 수령의 형상은 반드시 수령, 당, 대중의 3위1체의 원칙에서 당과 대중과의 련관속에서 그려야 한다. 로동계급의 수령을 3위1체의 견지에서 보고 그리는가 못그리는가 하는데 따라 수령의 형상을 격이 있게 그려낼수도 있고 그려내지 못할수도 있다. 3위1체의 관점과 립장에 설 때에는 수령을 당과 대중과의 혈연적인 관계속에서 보면서 사회정치적생명체의 중심으로 형상하게 된다. 그러나 3위1체의 관점과 립장에 서지 못할 때에는 수령을 당과 대중과 동떨어져있는 개인으로 형상하게 되며 따라서 사회정치적생명체에서 수령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응당한 높이에서 보여줄수 없게 된다. 오직 수령을 3위1체의 견지에서 보고 그려야 탁월한 사상과 세련된 령도예술로 혁명의 참모부인 당의 전투적 기능과 역할을 높이고 대중을 의식화, 조직화하여 하나의 정치적력량으로 단합시키며 대중의 자주적인 요구와 리익을 가장 철저히 옹호하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에로 당과 대중을 불러일으키는 통일단결의 중심, 령도의 중심으로, 인민의 위대한 수령으로 깊이있게 형상할수 있다.
 로동계급의 수령을 3위1체의 관계에서 형상하는데서 중요한것은 언제나 인민속에서 활동하는 수령의 풍모를 그리는것이다.
 우리 수령님은 한평생을 오로지 인민들속에 계시면서 대중의 자주적인 요구와 리익을 가장 철저히 옹호하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여오신 인민의 위대한 어버이이시다. 수령님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반세기가 훨씬 넘는 장구한 기간 오로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혁명의 험난한 길을 헤쳐오시였으며 수억만리 현지지도의 길을 이으시며 인민들속에 계신다.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과 대안의 사업체계, 주체농업도 다 인민들속에 들어가시여 그들과 무릎을 같이하시고 그들의 지향과 요구를 집대성하여 내놓으신것이다. 3위1체의 견지에서 수령을 형상하려면 반드시 인민과 함께 고락을 같이하는 수령의 빛나는 활동과 숭고한 풍모를 깊이있게 그려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것은 수령님께서 한평생을 쉬임없이 이어가시는 현지지도의 로정에 깃든 잊을수 없는 사연을 감명깊게 형상하는것이다. 그런데 일부 작품에 그려진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에 대한 이야기는 회상실기를 읽는것보다감동을 주지 못하고있다. 이렇게 되는것은 작가가 현지지도에 깃든 수령님의 높은 뜻과 그것이 가지는 의의를 심장으로 느끼지 못한채 글을 쓰는것과 많이 관련되여있다. 현지지도내용에서 아무리 좋은 이야기거리를 잡았다고 하여도 거기에 깃든 수령님의 인간적풍모를 심장으로 느끼지 못하면 사실자료의 라렬에 그칠수밖에 없게 된다. 조선혁명박물관을 참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보았을것이지만 나는 수령님께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실 때 늘 입으시던 옷깃이 다 닳아서 보풀이 일고 해여진 수수한 군복외투를 볼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군한다. 보풀이 일고 해여진 군복외투의 오리오리에는 위기에 처했던 혁명의 운명,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고 우리 인민에게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련하여주려고 잠시의 휴식도 없이 인민을 찾으시여 수억만리 길을 이어가신 수령님의 크나큰 로고와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깃들어있다. 외투에 깃든 헤아릴수 없이 많은 사연을 가슴뜨겁게 느끼는 그런 충격, 그런 심정을 안고 현지지도의 갈피마다에 깃든 사연을 작품에 담는다면 수령님께서 지니신 인간적풍모의 위대성을 깊이있게 형상한 대작을 만들어낼수 있을것이다.
 수령의 위대한 풍모를 보여주기 위하여서는 수령의 혁명력사와 업적을 체계적으로, 전면적으로 깊이있게 그려야 한다.
 수령의 혁명력사와 업적에는 수령의 탁월한 사상리론과 현명한 령도, 고매한 인간적풍모가 집대성되였다.

탁월한 사상리론가, 령도자로서의 수령의 위대성은 수령의 빛나는 혁명력사와 업적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된다. 수령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와 업적을 체계적으로 잘 형상하여야 사람들에게 수령의 위대성을 보다 깊이 인식시킬수 있다.
 수령의 위대성을 체계적으로, 전면적으로 깊이있게 형상하기 위하여서는 총서형식의 장편소설을 창작하는데 힘을 넣어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 수령을 형상하는 문학사업은 총서 《불멸의 력사》가 창작되면서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하였다고 말할수 있다.
 문학에서 총서라는 형식은 이미 오래전에 나온것이지만 로동계급의 수령을 총서형식의 작품으로 형상한것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시도하고 개척하였다.
 총서 《불멸의 력사》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를 체계적으로, 전면적으로 깊이있게 그린 혁명적대작들을 하나의 통일적인 제목으로 묶어놓은것이다. 거대한 사회력사적대상의 일부 령역만 부분적으로 취급하였을 때에는 그것이 여러 권으로 창작되고 내용상 일정한 련관성을 가지고있는 경우에도 다부작으로 될수 있으나 총서형식의 작품으로는 될수 없다. 총서를 이루는 작품들은 서로 련관되면서도 독자성을 가진다. 총서형식의 소설들은 하나의 제목밑에 창작되지만 그 하나하나가 상대적으로 독자성을 가져야 하며 따로 떼여놓고 보아도 손색이 없는 완결된 작품으로 되여야 한다.
 총서 《불멸의 력사》에서는 총서문학의 이러한 일반적특성과 함께 수령을 주인공으로 하는 총서로서의 고유한 특징을 잘 살려야 한다. 총서 《불멸의 력사》에서는 수령의 혁명활동을 단계별로 일정한 력사적사변을 중심으로 하여 매 장편소설이 씌여져야 한다. 수령의 혁명력사를 일대기식으로 쓰거나 전기식으로 써서는 안된다. 수령의 혁명력사를 이름난 장군이나 위인의 전기처럼 일대기식으로 쓰거나 전기식으로 쓰면 수령의 방대한 혁명력사와 업적을 평면적으로 라렬하게 된다. 총서《불멸의 력사》의 매 장편소설은 인물이 서로 련결되고 사건이 계승되여야 하며 주제적과제도 련관되여야 한다. 총서 《불멸의 력사》는 한분의 위대한 수령을 주인공으로 하고 수령의 혁명력사를 체계적으로, 전면적으로 그리는것만큼 작품들사이에 주제적으로 련관될뿐아니라 인물선, 사건선도 밀접히 련관되여야 한다. 총서의 사건과 인물은 철저히 실제한 력사적사실과 원형에 기초하여 통일시켜야 한다. 작가가 허구적으로 설정한 인물의 경우에는 일률적으로 통일시킬 필요가 없지만 력사적으로 알려진 인물은 원형을 살리는 원칙에서 성격적특징과 투쟁사실을 실지 그대로 옮겨야 한다.
 총서 《불멸의 력사》의 항일혁명투쟁시기편이 끝난 조건에서 이제는 총서의 해방후 편을 빨리 완성하여야 한다. 해방후의 수령님을 형상하는데서는 복잡한 문제가 많이 제기될수 있다. 해방후에는 수령님께서 한 나라 당과 국가의 수반으로 활동하시였다. 수령님께서 온 나라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의 모든 부문을 통일적으로 틀어쥐고 령도하실뿐아니라 세계혁명과 국제공산주의운동의 탁월한 령도자로 활동하시는것만큼 수령님의 형상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하겠는가 하는데 대하여 심사숙고하여야 한다.
 위대한 수령님을 잘 형상하여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는것은 우리 세대 작가들이 지닌 가장 영예롭고 책임적인 과업이다. 이 과업을 후대에게 넘겨줄수 없다. 위대한 수령님을 형상하는 사업은 수령님의 혁명활동의 직접적인 목격자와 체험자가 살고있는 우리 대에 다 완성해놓아야 한다.
 로동계급의 수령을 형상하는것과 함께 수령의 후계자를 잘 형상하여야 한다.
 수령이 개척한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완성해나가는데서 수령의 후계자는 결정적역할을 한다. 로동계급의 혁명위업에 복무하는 사회주의문학은 마땅히 수령의 위대성과 함께 그 후계자의 위대성을 형상하는 문제를 주선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한다.
 수령의 후계자를 형상하는데서 중요한것은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충실성을 깊이있게 그리는것이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수령의 위업을 계승한 후계자의 기본품성이다. 후계자는 수령이 개척한 위업을 대를 이어 순결하게 고수하고 완성해나갈것을 첫째가는 사명으로 삼고있는것만큼 수령에게 끝없이 충성과 효성을 다하게 된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함께 혁명과 건설의 탁월한 지도자로서의 풍모와 업적을 전면적으로 깊이있게 형상하여야 한다. 후계자는 수령의 위대한 풍모와 자질을 그대로 이어받은 뛰여난 사상가, 정치가, 전략가이다. 후계자는 수령의 활동을 몸가까이에서 보좌하고 수령의 위업을 받들어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전반을 조직령도하는 과정에 누구도 허물수 없는 혁명업적을 쌓아올린다. 문학에서는 후계자가 이룩한 혁명업적을 통하여 사상과 령도의 위대성을 깊이있게 그려내야 하며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로서의 위대한 풍모를 감동깊이 형상하여야 한다. 후계자는 선행한 수령과의 관계에서는 후계자이지만 인민과의 관계에서는 수령의 지위와 역할을 그대로 이어받은 지도자이다. 그러므로 문학에서 후계자의 형상을 창조할 때에는 수령형상창조의 기본원칙을 그대로 구현하여야 한다.
  로동계급의 수령형상을 창조하는것은 수령형상창작집단뿐아니라 모든 창작집단과작가의 공동의 임무이며 전당적, 전사회적과제이다. 창작기관에서는 수령의 형상을 창조하는 작가의 창작열의를 적극 계발시키며 취재조건과 창작조건을 잘 보장해주고 전사회적으로 수령의 형상을 창조하는 사업을 지원하고 고무해주도록 하여야 한다.
 수령을 형상한 작품은 사람들에게 수령의 위대성을 깊이 인식시키고 그들을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하도록 교양하는데서 힘있는 무기로, 혁명의 교과서로 된다. 수령을 형상하는 문학에서 풍년이 들어야 문학계에 풍년이 든다.

3) 수령형상작품에는 고유한 생리가 있다


 로동계급의 수령을 형상한 문학작품은 주체문학의 본보기가 되여야 한다.
 창작에서 문학의 본보기가 될만큼 최상의 사상예술적수준을 보장한다는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로동계급의 수령을 형상하면서 일반작품을 쓰던 때의 경험과 지식에만 의거하여서는 만대에 길이 빛날 불멸의 작품을 내놓을수 없다. 작가는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 일반작품과 구별되는 미학적특성이 있다는것을 잘 알고 그 요구를 옳게 구현하여야 한다.
 문학의 모든 형상요소는 생명유기체와 같이 긴밀히 련관되여있고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자체의 생리에 따라 싹트고 자라나며 움직여나간다. 문학의 생리란 형상을 하나의 생명유기체와 같이 서로 조화시키고 살아숨쉬게 하며 생활을 그 자체의 고유한 특성에 맞게 진실하게 재현하는 원리를 말한다. 문학의 생리는 문학이 문학으로서의 생명을 가지게 하며 작품의 형상을 유기체와 같이 살아움직이도록 맞물려주고 이끌어나가는 원리이다. 작가가 주관에 사로잡혀 작품의 생리를 무시하거나 소홀이 하면 형상을 죽여버리고 성격과 생활을 외곡하게 된다. 작가의 주관적의도는 작품의 생리에 철저히 복종되여야 한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 고유한 생리가 있게 되는것은 무엇보다도 화폭의 중심에 내세우는 수령의 특출한 사회적지위와 관련된다.
 로동계급의 수령은 개인이 아니다. 그런데 문학에서는 추상적인 인간을 그리는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을 그려야 하는것만큼 로동계급의 수령을 추상적인 존재로 그려서는 안된다. 수령을 구체적인 인물로 그리면서도 개인으로 형상하지 말아야 한다는 특수한 사정으로 하여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은 자기의 고유한 생리를 가지게 된다. 만약 수령을 개인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면서 추상적으로 절대화하여 그리면 기정사실화하는 편향에 빠지게 되며 반대로 구체적인 인물로 보고 그린다고 하면서 개인일반의 형상에 용해시키면 수령의 높은 풍격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게 된다.
 작가는 수령이 개인이 아니라는 사상의 본질을 똑바로 알고 작품에서 수령을 사회정치적집단의 생명의 중심으로, 력사발전과 인민대중의 운명개척에서 결정적역할을 하는 특출한 위인으로 형상의 중심에 내세우고 그의 탁월한 령도자로서의 위대한 풍모와 현실에서 살아숨쉬고 활동하는 위인으로서의 인간적풍모를 다같이 생동하게 그려내야 한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서 중요한것은 혁명과 건설에서 차지하는 수령의 지위와 역할을 감명깊게 그려내는것이다. 수령의 형상에서는 령도자의 지위에 맞는 위대한 풍모가 격이 있게 그려져야 한다. 수령의 풍모를 격이 있게 형상하자면 무엇보다도 수령의 위대성에 어울리는 무게있는 형상과제를 내세워야 한다.
 문학작품에서 매 인물은 자기의 형상과제를 안고있다. 인물의 형상과제는 종자와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기본문제를 풀어나가며 작품의 구성을 엮는데서 매 인물이 맡아안은 몫이다. 어떤 형상과제를 제기하고 어떻게 풀어나가는가 하는데 따라 성격의 면모와 그 형상의 높이가 결정된다. 수령의 형상과제는 일반주인공의 형상과제와 다르며 력사에 이름있는 걸출한 위인이나 영웅의 형상과제와도 다르다. 로동계급의 수령은 조국과 민족,혁명과 건설의 운명을 좌우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풀어나간다. 작품에서는 사회정치적집단을 움직이고 력사의 거창한 전진운동을 떠밀어나가는 수령의 활동세계가 펼쳐질수 있도록 무게있는 형상과제를 내세워야 한다.
 총서《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혁명의 려명》이 수령님의 위대성을 높은 수준에서 품위있게 형상할수 있은것도 바로 무게있는 형상과제를 제기한데 있다. 장편소설 《혁명의 려명》은 수령님께서 초기혁명활동시기 길림에서 투쟁하시던 이야기를 펼치고있다. 당시 고루한 민족주의자들과 초기공산주의운동자들은 대중을 떠나 상층부의 몇몇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말공부만 하였으며 저마다 자파세력을 늘이려고 갖은 모략을 꾸미고있었다. 이른바 《독립》과 《혁명》을 부르짖는 기성세대들은 낡은 시대의 탁류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새로운 시대사조를 갈망하는 열혈청년들은 갈길을 몰라 헤매였으며 조선혁명은 수습할수 없는 위기에 빠져들어가고있었다. 이 엄혹한 정황속에서 걷잡을수 없이 기울어져가는 조선혁명의 운명을 어떻게 하면 구원할수 있겠는가, 기성세대의 리념이 이미 낡았다면 새로운 시대사조를 반영한 혁명사상은 어떤것으로 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절박하게 제기되였다. 새로운 지도사상을 창시하고 혁명의 길을 새롭게 개척하는 일은 오직 혁명의 탁월한 수령만이 감당할수 있는 력사적과제였다. 장편소설 《혁명의 려명》은 바로 위대한 수령만이 해결할수 있는 형상과제를 제기하고 예술적으로 깊이있게 풀어나감으로써 력사가 처음 알게 된 우리 수령님의 탁월하고 비범한 령도풍모를 응당한 높이에서 보여줄수 있었다.
 개별적사람의 사회적지위와 역할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수 있지만 수령의 지위와 역할은 누구도 대신할수 없다. 수령의 형상에는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수령의 특출한 지위와 역할에 맞는 문제가 제시되여야 한다. 수령의 지위와 역할에 어울리는 문제는 다름아닌 인민대중의 근본리익, 혁명과 건설의 전략과 로선과 관련되는 사활적인 문제이다. 수령의 령도에서 기본은 혁명의 전략과 로선을 세우고 그 관철에로 당과 대중을 현명하게 이끌어나가는것이다. 로동계급의 혁명전략과 로선은 수령에 의하여서만 작성될수 있고 수령의 유일적령도에 의해서만 실현될수 있다. 수령의 사색과 활동은 언제나 혁명의 운명을 좌우하는 근본문제인 전략적이며 로선적인 문제와 깊이 련결되여있다. 혁명과 건설에서 수령이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중요한 리유도 혁명과 건설의 운명과 전도를 결정하는 전략적이며 로선적인 문제를 틀어쥐고 풀어나가는데 있다.
 물론 수령의 혁명활동력사를 한 작품에서 한꺼번에 보여줄수는 없다. 혁명의 전략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를 내놓는다고 하면서 내용이 없이 규모만 크게 잡으려 하여서는 안된다. 형상과제의 크기는 작품의 규모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작품의 규모를 작게 잡아도 수령의 형상에 혁명의 운명과 관련되는 무게있는 력사적과제를 얼마든지 체현시킬수 있다. 작가는 수령의 혁명활동가운데서 어느 한 단면을 선택하여 작품에 담을수 있다. 례를 들어 수령님께서 어느 한 자그마한 지방산업공장을 현지지도하시는 이야기를 작품에 취급할수도 있고 어느 한 개별적일군을 교양하시는 이야기를 형상할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작품에 취급되는 생활범위가 아무리 작아도 수령님께서 한 지방산업공장을 통하여 온 나라의 지방공업실태를 꿰뚫어보고 당의 경제로선과 관련한 심오한 문제를 착안하시는 모습을 보여줄수 있고 또 개별적일군과의 사업과정을 통하여 인간개조의 전략과 관련되는 전사회적인 문제를 해명하시는 모습을 보여줄수도 있다. 문제는 작가에게 전략적이며 로선적인 문제를 무게있게 제기하고 풀어나갈만한 탐구력이 있는가 하는데 있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는 심오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력사가 보여주는바와 같이 로동계급의 수령은 다 위대한 철학가였다. 수령은 종래의 철학사상을 전면적으로 검토총화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철학사상을 내놓으며 그것을 혁명과 건설의 지도리념으로 삼는다. 수령의 사상리론활동은 지도사상으로 내세운 철학사상을 정치, 경제, 문화, 군사의 모든 분야에 구현하기 위한 리론을 정립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이며 혁명과 건설에 대한 수령의 령도도 그 철학사상에 바탕을 두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류사상사에서 가장 높고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였다. 오늘 세계의 혁명적인민들과 정계, 사회계 인사들은 주체철학의 진리성에 탄복하고 열렬한 공감을 표시하고있으며 우리 수령님을 인류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스승으로 우러르고있다. 수령님의 교시에는 구절구절마다 심오한 철학이 담겨져있으며 수령님의 사색과 활동 전과정은 특출한 철학적예지로 빛나고있다. 문학에서는 수령님의 비범한 철학세계를 깊이있게 그려내야 수령님의 뛰여난 풍모와 업적을 옳게 보여줄수 있다. 총서《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고난의 행군》은 조선인민혁명군의 100여일동안의 간고한 행군로정을 소재로 하고있기때문에 잘못하면 지루한 사건라렬로 될수 있었다. 그러나 소설은 적아간의 대립과 투쟁을 사람중심의 주체철학과 부르죠아《인생철학》사이의 심각한 대결과정으로 깊이있게 엮음으로써 수령님의 위대성을 철학적으로 심도있게 부각할수 있었다.
 수령의 형상을 높은 수준에서 창조하기 위하여서는 다른 인물의 형상에도 응당한 관심을 돌려야 한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 나오는 인물은 일정한 사회적계층의 대표자로 전형화되여야 한다. 문학작품에서 수령의 형상은 일정한 사회정치적계층의 지향과 요구를 대변하는 전형적인물과 관계를 맺을 때에만 사회적집단을 통솔하고 인도해나가는 최고뇌수로서의 수령의 지위와 역할을 원만히 보여줄수 있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서는 상대되는 인물의 격을 낮추는 방법으로가 아니라 더욱 높이는 방법으로 형상하여야 수령의 권위를 보장할수 있다. 적대적관계에 있는 부정인물을 그릴 때에도 그들의 힘을 강하게 보여주어 그것을 타승하는 수령의 위대성이 감명깊게 안겨오게 하여야 한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 고유한 생리가 있게 되는것은 력사에 실지 있은 위인을 형상하고 내세우는 사정과도 관련된다.
 일반작품에서는 실재한 원형에 기초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을수도 있고 작가의 허구에 의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울수도 있다. 실재한 원형에 기초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 경우에도 원형을 내세우자는데 목적이 있는것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해당 계급과 계층의 전형을 보여주자는데 목적이 있다. 실재한 원형에 기초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형상하는 경우에 반드시 한사람의 원형만을 기초로 삼아야 하거나 그의 실재한 생활자료만을 취급하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일반작품에서는 원형에 기초하면서도 실재한 여러 사람들의 자료를 하나의 주인공에 체현시킬수도 있고 전형화의 원칙에서 허구를 넣을수도 있다.
 그러나 수령을 형상하는 문학에서는 수령을 직접 형상하기때문에 일반화된 전형에 의거하는 여느 작품과 달리 원형자체를 절대시하고 내세운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서는 어디까지나 실지 있은 수령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여야 한다. 생존하여 활동하고있는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수령을 형상하는 문학작품에서는 력사에 실지 있은 위인을 형상하는것만큼 수령의 형상을 화폭의 중심에 내세우고 모든 형상요소를 수령의 위대성을 보여주는데 집중시켜야 한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서도 종자는 핵으로 되므로 그에 형상의 모든 요소를 복종시켜나가는 창작과정의 일반적생리를 지켜야 한다. 그러나 그 종자는 수령의 혁명사적에서 찾아내게 되며 수령의 위대한 풍모를 높이 부각시키는 방향에서 실현되게 된다. 종자뿐아니라 주제나 사상인 경우도 같다. 작품의 주제는 수령의 풍모와 혁명활동, 업적과 관련되는 문제로 되여야 하며 사상은 수령의 위대성을 높이 칭송하는 작가의 사상미학적주장으로 나타나야 한다.
  일반작품에서도 주인공의 성격이 중요하지만 내용상으로 볼 때 종자나 사상, 주제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수는 없다.
  수령을 형상하는 문학작품에서는 수령의 형상을 보다 심도있고 의의있게 보여주는 방향에서 종자를 잡고 사상과 주제를 밝혀야 한다.
 수령을 형상하는 문학은 력사에 실지 있은 수령을 직접 형상하기때문에 작품의 내용을 철저히 력사적사실에 맞게 하여야 한다.
 수령의 혁명활동은 대를 이어 길이 전해지며 력사에 남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력사는 우리 당의 력사이며 우리 혁명의 력사이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서는 력사에 없는 사실을 꾸며낼 필요가 없다. 원래 수령의 혁명력사자체가 사람들을 끝없이 격동시키는 위대한것이다. 수령을 형상한 작품은 수령의 위대한 풍모와 업적을 후세에 길이 전하는 력사문헌적인 의의를 가진다. 력사문헌적인 성격을 살리자면 중요인물의 관계와 사건줄거리를 비롯한 작품의 기본대가 력사적사실에 맞아야 한다. 작품에서는 형상체계가 력사적사실의 기본흐름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하며 특히 수령의 혁명활동로정과 수령이 기억하고있는 인물과 사실이 실지 있은 그대로 재현되여야 한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을 창작할 때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하여 사료가 인멸되였거나 불충분한것이 있을수 있는데 이런때 바로 작가의 예술적환상과 허구가 필요하다.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1932년》의 소사하집장면은 실재한 사실에 기초하면서도 작가의 풍부한 예술적환상에 의하여 당시의 생활을 매우 실감있게 보여주었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서 예술적허구는 수령의 위대성을 실지 있은 력사적사실에 기초하여 예술적으로 형상하는 방향에서 실현되여야 하며 력사에 기록되지 못한 사실을 추리하여 전면적으로 되살리는 방향에서 실현되여야 하며 작품을 인간학적으로 세련시켜 예술적인 감화력을 높이는 방향에서 실현되여야 한다.
 수령을 형상하는 문학작품에 고유한 생리가 있게 되는것은 작품의 창작적목적과도 관련된다.
 로동계급의 수령을 형상하는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수령의 위대성을 깊이 알고 수령을 충심으로 존경하고 받들며 수령의 사상과 의도를 깊이 새기고 수령의 위업에 충실하도록 하자는데 있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서는 수령에 대한 최대의 정중성과 충성심을 반영할것을 중요한 요구로 제기한다. 수령의 위대한 풍모와 영광찬란한 혁명력사를 정중하게 묘사하는것은 어길수 없는 창작원칙이다.
 수령을 형상하는 문학작품의 양상은 밝고 숭엄한것으로 되여야 한다. 수령에 대한 절절한 흠모감을 자아낸다고 하면서 인물들의 심리를 무겁고 어두운 빛갈로 형상하는것은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의 생리에 맞지 않는다. 로동계급의 수령은 혁명의 희망찬 미래를 밝혀주는 태양이며 인민을 승리와 영광, 행복과 번영에로 인도하는 구심점이다. 인민은 자기 수령을 언제나 밝고 숭엄한 감정으로 대하게 된다.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서 밝고 숭엄한 양상을 보여주는것은 수령의 영상과 수령을 대하는 인민의 감정에 맞는 형상원칙이다.
 수령을 형상하는 문학작품에서 수령을 보좌하는 인물의 성격을 잘 형상하는것이 중요하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서 측근인물의 형상은 그가 어떤 인물이든지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 성격의 핵으로 되여야 한다. 사회정치적생명체에서 수령과 혁명전사사이의 관계는 믿음과 충성, 사랑과 효성으로 특징지어진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 등장하는 측근인물은 응당 수령에 대한 충실성의 산 모범으로 전형화되여야 한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서 수령의 주위에는 수령과 고락을 같이하는 충신의 전형이 서있어야 한다. 우리 혁명의 력사는 그 려명기부터 위대한 수령님의 몸가까이에서 생사운명을 같이 하면서 수령님을 옹위하는 방패가 되고 성새가 되여 주체혁명위업을 받들어온 수많은 충신의 이름을 기록하고있다. 작품에서는 수령님께서 두고두고 잊지 못해하시는 충신들의 형상을 수령의 주위에 세워야 한다. 충신들의 형상을 통하여 비록 육체적생명은 짧아도 수령이 안겨준 사회정치적생명을 지닌 삶은 영생한다는 진리를 깊이있게 밝혀야 하며 수령을 충성과 효성으로 받드는 산 모범을 따라배우도록 하여야 한다.
 측근인물의 성격을 그리는데서 중요한것은 그 성격적특질을 잘 살리는것이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어디까지나 그 인물의 성격에서 핵으로 되여야 하며 그에 기초하여 여러가지 성격적특질을 조화롭게 배합하여야 측근인물의 개성을 잘 살릴수 있다.
 수령을 형상하는 문학작품의 생리를 잘 알고 그에 맞게 형상을 탐구하는것은 수령형상작품에서 최상의 사상예술적성과를 거두게 하는 필수적요구이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이 고유한 생리를 가지고있다고 하여 인간학으로서의 문학의 일반적요구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문학의 일반적요구를 철저히 지키면서도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 고유한 생리를 특색있게 살리는데 작가의 재능이 있고 형상을 성공에로 이끄는 비결이 있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서는 철저히 수령을 중심위치에 세워야 한다. 작품에서 종자는 수령의 형상에 의하여 기본적으로 밝혀져야 한다. 작품은 수령의 령도밑에 발전하는 력사적사건을 기본줄거리로 하고 수령을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엮으며 수령에 의하여 설계되고 조직령도되는 혁명사업을 기본으로 펼쳐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 수령을 매 장면에 나오게 하거나 크고작은 모든 일에 개입하게 하는 식으로 형상하여서는 안된다. 일반작품에서는 대체로 거의 모든 장면들에서 주인공을 내세우고 크고작은 인물선, 사건선을 그와 직접 련결시키군하지만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서는 수령을 기본선과 잘 련결시키면 된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서도 종자를 깊이있게 심고 주제를 바로세워야 한다. 지금 수령을 형상한 작품에서 종자가 뚜렷하지 못하고 문제성이 희박한 현상이 나타나는데는 일정한 원인이 있다. 그 하나는 력사적사실에 충실한다고 하면서 실재한 자료를 기록주의적으로 복사하는데 있으며 다른 하나는 수령의 형상만 잘하면 된다는 일면적인 관점을 가지고 종자와 주제를 탐구하는데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데 있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서도 형상수단과 수법을 여러모로 리용하여 형상의 진실성과 생동성을 충분히 보장하여야 한다. 작품에서 수령의 형상이 기름지지 못하고 메마르게 되는것은 형상수단과 수법을 다양하게 쓰지 못하는것과도 관련된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서도 인간생활을 작가나 제3의 인물의 시점에서 그리기도 하고 수령의 시점에서 깊이있게 그리기도 하여야 한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일수록 수령의 심리세계에 대한 직접적묘사가 더욱 자유분방하게 펼쳐져야 하며 수령의 위대한 영상이 여러 각도에서 묘사되여야 한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을 보면 아직도 언어표현과 세부형상이 단조롭고 딱딱하다. 우리 말에 웃음을 나타내는 단어가 수없이 많지만 작품들에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호탕하게 웃으시였다》는 식으로 몇가지 무난한 표현만 반복하여 쓰고있다. 수령을 형상하는 문학을 발전시키자면 언어표현에서부터 혁신하여야 한다. 수령을 형상하는 작품에서도 언어표현은 작가의 개성과 장기대로 기발하게 찾아내여 쓰도록 하여야 한다. 작가의 언어표현을 가지고 지나치게 따지지 말아야 한다. 수령형상작품에서 정중성은 어디까지나 수령의 권위와 존엄에 상응하는 형상의 높은 풍격을 보장하는데서 표현되여야 한다.
 로동계급의 혁명적수령을 형상하는데서는 문학의 일반적인 창작원리를 지키면서 수령형상작품의 고유한 생리를 살려야 하는것만큼 일반작품을 쓸 때보다 배가의 노력이 요구된다. 지성과 정서적체험이 그 위대한 인간세계의 높이에 접근하고 수령형상작품의 고유한 생리를 잘 살리는 작가만이 후손만대에 길이 전할 수령형상작품을 창작할수 있다.

4) 당의 위대성을 깊이있게 형상하여야 한다


 수령의 위대성과 함께 당의 위대성을 형상하는것은 사회정치적생명체의 강화발전과 주체혁명위업수행에 이바지할 사명을 지닌 우리 문학의 본성적요구이며 가장 영예로운 과업이다. 당은 사회정치적생명체의 중추이며 주체혁명위업완성의 조직자, 향도자이다.
 당의 위대성을 형상하는데서 중요한것은 우리 당의 특성을 정확히 반영하는것이다.
 조선로동당은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하는 주체형의 혁명적당이다. 우리 당은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통일단결된 불패의 당이며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힘차게 투쟁하고있는 전투적인 당이다.
 당과 인민대중이 혼연일체를 이룬것은 우리 당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이다. 우리 당은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구호밑에 오직 인민을 위하여 충실히 복무하고있으며 인민은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신념으로 우리 당을 충성으로 받들어나가고있다.
 우리 당은 혁명위업의 계승성문제를 가장 빛나게 해결한 전도양양한 당이며 계급적립장과 혁명적원칙을 변함없이 지켜나가는 가장 견결한 당이다. 우리가 걸어온 길우에는 시련도 많았고 풍파도 많았지만 우리 당은 언제나 혁명적원칙을 견결히 지켜왔다. 우리 당의 원칙적인 투쟁에 의하여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공세가 집중되는 류례없이 복잡하고 첨예한 환경속에서도 사회주의기치는 굳건히 고수되여왔으며 공산주의운동안에 복잡한 사태가 빚어지고있는 오늘날에도 우리 혁명은 추호의 드팀도 없이 승승장구하고있다.
 문학작품에서는 우리 당의 고유한 특성을 철학적으로 심오하게 형상함으로써 세상에서 우리 당이 제일이라는 사상을 힘있게 강조하여야 한다.
 우리 당이 혁명과 건설에서 이룩한 업적을 잘 그리는것은 당의 위대성을 보여주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의 하나이다.
 해방후 토지개혁을 비롯한 민주개혁과 건국, 건군 사업, 조국해방전쟁, 사회주의기초건설과 사회주의공업화, 조국통일을 비롯한 혁명과 건설의 모든 단계, 모든 분야에서 이룩한 눈부신 성과는 다 우리 당의 활동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우리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며 우리 당을 영원히 혁명적이며 전투적인 주체형의 당으로 강화발전시킬수 있는 조직사상적기초를 반석같이 다져놓은것은 당의 가장 빛나는 업적의 하나이다. 문학에서는 당의 조직사상적기초를 쌓기 위한 투쟁과 활동과정을 예술적으로 깊이있게 형상하여야 한다.
 문학에서는 우리 인민을 힘있고 존엄있는 위대한 인민으로 키운 당의 업적에 대하여서도 생동하게 형상하여야 한다.
  세상에 우리 인민만큼 좋은 인민은 없다. 우리 인민은 세상에서 단결력과 의지가 가장 강하고 혁명성과 투쟁열의가 높으며 순결하고 근면하며 의리가 깊은 인민이다. 훌륭한 사람의 뒤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는것처럼 지난날 천대와 굴욕속에 짓밟히던 우리 인민이 세상에서 가장 존엄있는 인민으로 자랑떨치고있는것은 그들을 승리와 영광, 참된 삶과 행복의 한길로 이끌어주고있는 우리 당의 현명한 령도와 따뜻한 보살핌이 있기때문이다.
 문학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건설해놓은 당의 업적에 대하여서도 깊이있게 형상하여야 한다. 오늘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되여있고 모든 생활이 활기에 넘쳐있는 사회주의는 주체사상을 구현한 우리의 사회주의이다.
 당의 위대성을 형상하는데서도 3위1체의 원칙에서 그 지위와 역할을 깊이있게 밝혀내는것이 중요하다.
 로동계급의 당은 수령의 사상과 령도를 구현하기 위한 정치적참모부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정치조직이다. 수령의 사상과 령도는 당을 통하여 실현되며 인민대중의 지향과 요구도 당의 품에서 실현된다.
 문학작품에서 당을 형상할 때에는 수령을 유일중심으로 하여 대중과 혈연적으로 련결된 당으로 그려야 한다. 수령과 대중과의 련관밖에서 당을 형상하면 하나의 개별적인 집단으로밖에 그릴수 없게 되며 결국은 로동계급의 혁명적당으로서의 지위와 역할을 옳게 보여줄수 없다. 당을 수령과 대중과의 련관속에서 깊이있게 형상하여야 수령의 사상과 령도를 실현하는 당, 수령을 유일중심으로 하여 통일단결되고 대중속에 깊이 뿌리박고 그들을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는 당으로 보여줄수 있다.
 당을 수령과 대중과의 련관속에서 형상하는데서는 로동계급의 당을 제외한 그 어떤 정치조직도 향도적력량으로서의 로동계급의 당의 지위와 역할을 대신할수 없으며 로동계급의 당만이 수령의 사상과 의도를 받들고 인민대중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지고 보살펴준다는 사상이 힘있게 강조되여야 한다. 당정책의 정당성과 당의 업적을 형상하거나 당조직선과 당일군을 그리는 경우에도 3위1체의 견지에 확고히 서야 한다. 3위1체의 원칙에서 당을 형상하여야 당의 위대성을 깊이있게 보여줄수 있다.
 당의 위대성을 형상하는데서 중요한것은 송가문학의 사상예술적수준을 결정적으로 높이는것이다.
 문학에서 당의 위대성은 소설로도 형상할수 있고 시와 극문학을 통하여서도 형상할수 있다. 그런데 당을 직접 형상하자면 송가형식을 많이 리용하게 된다. 당을 직접 노래하는 시문학에서 기본은 송가문학이다. 우리 문학에서 송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며 그 사상예술적질도 비교적 높은 수준에 있다. 오늘 당의 위대성이 날을 따라 뚜렷이 과시되고 당을 따르는 인민의 충성심이 비상히 높아지고있는 조건에서 당에 대한 송가가 많이 창작되고있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송가창작에서 중요한것은 우리 당의 탁월한 령도력을 무게있게 노래하는것이다.
 송가는 원래 거창한 력사적대상과 사변을 웅장하고 장엄한 서정적화폭에 담아 노래하는 문학이다. 송가문학에서 당의 형상은 정서의 열도가 비상히 강렬하고 그 세계가 숭엄한 느낌을 주어야 한다.
 작품에 그려지는 당의 풍격은 당에 대한 시인의 체험과 사색의 깊이에 달려있다. 우리 인민은 누구나 당의 현명한 령도와 고마운 은덕을 받아안고 살지만 그것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당의 현명한 령도와 고마운 은덕을 체험하는 깊이와 매 사람의 수양정도에 따라 당의 위대성을 심각히 느끼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을수 있다. 당의 품에서 알고 받아안은 사랑보다 모르고 받아안은 은덕이 더 크다. 우리의 문학작품은 사람들에게 미처 모르고 받아안는 그 은덕의 고마움을 제때에 깨우쳐주며 비록 알고 받아안는 사랑이라 하여도 그 뜨거움을 더욱 절절하게 느끼도록 하여야 한다.
 장시 《인민은 말한다》가 잘된것은 당의 위대성을 깊은 사색의 세계에서 무게있게 노래하고있기때문이다. 특히 인민을 더 잘 먹이려고 온 나라에 농사제일주의를 선포하며 인민을 더 좋은 집에서 살게 하려고 력사의 한구간을 베여 건설의 해로 선포하였다는 표현이라든지 인민을 더 잘 입히려고 천을 짜고 신발을 만드는것도 혁명이라고 불러주는 우리 당의 고마움에 대하여 노래한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다.
 당의 위대성을 노래하는 작품에서는 형상을 격식화하지 말아야 한다. 당의 위대성을 무게있게 보여준다고 하여 요란한 수식사와 현란한 미사려구를 람발하면서 정치적인 내용을 직선적으로 노래하거나 사실을 분식하고 공허하게 웨쳐서는 안된다.
 기념일을 계기로 내보내는 헌시도 시인것만큼 거기에는 서정적주인공의 남다른 얼굴이 있어야 하고 시인만이 노래할수 있는 독특한 세계가 있어야 한다. 의무감에 못이겨 끄집어내는 《서정》은 사람을 울릴수 없다.
 정치적표현을 쓴다고 하여 형상성이 떨어지는것이 아니지만 꼭 정치적표현을 넣어야만 정치성이 높아지는것은 아니다.

정치술어들을 직선적으로 쓰지 않아도 정치적내용이 서정화되면 시적으로 느껴질수 있으며 형상전체를 통하여 그 사상이 생활적으로 안겨올수 있다.
 당에 대한 송가에서는 자그마한 분식과 과장도 필요없다. 작가는 자기의 주변에서 벌어지고있는 격동적인 사변과 인간의 아름다운 소행을 직접 보고 체험한 느낌을 그대로 소박하고 진실하게 엮어야 한다. 우리 인민이 서정시《어머니》를 좋아하는것도 거기에 소박하고 친근한 생활감정이 사실 그대로 진실하게 표현되였기때문이다. 당에 대한 송가는 《어머니》에서와 같이 꾸민데도 없고 현란한 표현도 없지만 생활적으로 표상되고 모든 사람에게 지난날의 체험을 깊이 되살려주는 진실한 감정을 펼쳐줄 때 그 어떤 정치적내용도 형상적으로 소화할수 있다.
 당을 직접 노래하는 송가에서는 흔히 당을 의인화하여 그리는 경우가 많다. 의인화를 비롯한 비유와 상징의 수법은 당을 생동하게 형상하는데서 효과적일수도 있지만 그에 대한 비유를 신중히 하여야 한다. 지금 문학작품에서 수령을 태양에, 당을 어머니에 비기는것이 일반적인 현상인데 비유를 반드시 그렇게만 하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당에 대한 비유를 독특하게 한다고 하여 당을 아무데나 고려없이 비기는 경향도 경계하여야 한다. 당에 대한 비유는 개성적으로 특색있게 하면서도 납득이 되도록 신중하게 하여야 한다. 당과 수령을 형상할 때 비유하는 자연현상이나 다른 대상은 그것이 사람에게 주는 인상과 본래의 의미가 가지는 여러가지 색갈을 충분히 검토해본 다음 정치적으로나 형상적으로 타당성을 가질 때에만 리용하여야 한다.
 당에 대한 예술적형상은 당조직선과 당일군의 전형을 통하여서도 실현된다.
 당의 사상과 의도는 당조직과 당일군들의 활동을 통하여 대중속에 침투되며 조직적으로 관철된다. 사람의 생활에서 기본은 사회정치적생명을 빛내이기 위한 정치조직생활이다. 정치조직생활은 당조직의 지도와 보살핌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당의 위대성을 형상하는 문학에서는 사람의 정치적생명을 책임지고 이끌어주는 당조직선을 어떻게 설정하고 형상하겠는가 하는것이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

문학에서 당조직선을 설정하고 형상하는것은 사람들에게 당이 수령과 대중사이에 혈연적뉴대를 맺게 하며 정치적생명을 끊임없이 빛내여나가도록 살펴주고 이끌어주는 보호자라는것을 깊이 인식시키기 위해서이다. 당은 수령의 사상과 령도를 실현하기 위하여 창건된 정치조직이며 사람들에게 수령이 안겨준 정치적생명을 빛내여주는 어머니품이다. 그러므로 당조직선은 사람들이 수령과 운명을 같이하는 길에서 정치적생명을 빛내여나갈수 있게 하는 생명선으로 된다. 문학작품에서 당조직선을 비롯한 정치조직선을 옳게 설정하고 잘 풀어나가야 정치적생명을 빛내여주며 끝없는 행복에로 이끌어주는 당의 위대성과 은혜로움을 깊이있게 보여줄수 있다.
 물론 종자의 특성과 주제의 요구에 따라 당조직선을 전면에 내놓고 그릴수도 있고 뒤에 깔아놓고 그릴수도 있다. 그러나 주제의 요구로 보아 당조직의 지도와 영향관계를 중요한 형상선으로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도 당조직과의 관계를 그리지 않고 주인공과 행정일군들의 관계만 파고들어서는 안된다. 사람들은 당조직선을 전면에 내놓은 작품이든 뒤에 깔아놓은 작품이든간에 거기에 그려진 당조직선을 통하여 곧바로 우리 당을 생각하게 되는것만큼 당조직선을 신중히 형상하여야 한다.
 문학에서는 당일군의 전형을 잘 형상하여야 한다.

사람들이 기쁠 때나 슬플 때 당일군을 찾아가는것은 사업과 생활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이 조직선을 타야 바로 풀릴수 있다는것을 체험을 통하여 너무도 잘 알고있기때문이다. 물론 당조직을 책임지고있는 개별적일군은 당조직을 대표하는 인물이 아니다. 사람들이 개별적당일군을 찾아가서 일신상의 애로까지도 서슴없이 털어놓는것은 당조직에 대한 관점과 태도문제가 곧 수령에 대한 관점과 태도 문제로 되며 바로 당조직이 사람들을 사회정치적생명체의 중심인 수령과 조직사상적으로 결합시키며 수령이 안겨주는 정치적생명을 순결하게 간직하고 빛내여나가도록 이끌어준다는것을 심장으로 체득하고있기때문이다. 우리 문학은 이러한 관점과 립장에서 우리 시대 당일군의 성격적특질을 깊이있게 그려야 한다.
 우리 시대 당일군의 가장 중요한 특질은 당과 수령에 대한 신념화된 충성심과 인민에 대한 헌신적인 복무정신이다. 문학에서는 혁명적수령관을 핵으로 하는 주체의 혁명관을 혁명적인생관으로 지닌 우리 시대 참된 당일군의 전형을 창조하여야 한다. 당과 수령에 대한 우리 당일군들의 충실성은 인민에 대한 그들의 헌신적복무정신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당과 수령에게 충실한 사람은 인민에게도 충직하며 인민을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은 당과 수령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친다.문학에 그려지는 당일군의 형상은 마땅히 당과 수령에게 충직한 충신으로, 인민의 충복으로 전형화되여야 한다. 장편소설 《뜨거운 심장》에 나오는 련합기업소 당책임비서의 형상은 우리 시대의 훌륭한 당일군으로 전형화되였다. 소설은 그의 형상을 통하여 수령에 대한 충성심과 인간에 대한 뜨거운 심장을 지닐 때만이 주체형의 참된 혁명가로 될수 있고 우리 시대의 참된 일군으로 될수 있다는것을 생동하게 보여주고있다. 작가들은 당일군의 당사업독본으로 될수 있는 이런 좋은 작품을 많이 써내야 한다.
 당일군을 형상하는데서 틀이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 문학작품에 나오는 당일군을 보면 거의 모두가 점잖고 틀이 잡히고 모든 면에서 원만한 인물로 그려지고있는데 사실은 이것도 하나의 도식이다. 우리 당일군들가운데는 점잖은 사람도 있고 보채기를 잘하는 사람도 있으며 이러저러한 약점을 사업을 통하여 대담하게 고쳐나가는 사람도 있다.
 모든 일군들이 로쇠와 침체를 반대하고 왕성한 패기와 정열에 넘쳐 일할것을 요구하고있는 오늘의 실정에서 우리의 당일군을 점잖고 틀잡힌 개성을 가진 인간으로만 형상하는것은 시대와 맞지 않는다. 우리 문학에 등장하는 당일군의 형상은 당일군이기전에 인간으로 그려져야 하며 개성적으로도 다양하고 생신하게 그려져야 한다.
 문학작품은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형상을 통하여서도 우리 당에 대한 옳은 인식을 줄수 있다.
 우리 당은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생활속에서 구체적으로 살고있으며 우리 당의 은혜로운 손길은 매 당원, 매 근로자들의 발자취마다에 그대로 스며있다. 스승의 모습은 그가 키워낸 제자들의 모습에 비껴있다는 말이 있다. 당의 모습은 당이 키워낸 인민의 장한 모습에 그대로 반영된다. 인민이 얼마나 준비되여있고 어떻게 살며 투쟁하는가 하는것만보아도 그 나라 당에 대한 충분한 표상을 가질수 있다. 작가는 시대의 전형적인간, 특히 당원의 형상을 통하여 우리 당의 위대성을 느낄수 있게 그의 생활을 깊이있게 파고드는것이 필요하다.
 당의 위대성을 노래한 작품을 통하여 우리 인민은 당에 대한 신뢰와 경모의 정을 더욱 두터이 하고있으며 우리 당은 커다란 고무와 격려를 받고있다. 인민대중을 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우고 당의 위업을 대를 이어 빛내여나가는데서 우리 문학은 참으로 큰 몫을 맡고있다. 작가들은 당을 형상한 우수한 작품을 많이 창작함으로써 사회의 모든 성원들이 당을 끝없이 신뢰하며 당의 위업수행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싸우도록 하는데 적극 이바지하여야 한다.

5) 주체형의 인간전형을 창조하여야 한다
 

우리의 문학은 로동계급의 수령과 당에 대한 형상과 함께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의 전형을 창조하여 수령, 당, 대중의 일심단결을 강화하고 인민대중을 자주위업수행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켜야 한다.
 우리 시대 주체형의 인간전형은 수령, 당, 대중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을 지니고있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의 기본품성이며 사회정치적생명체의 공고성을 담보하는 기본요인이다. 수령의 사상의지대로만 사고하고 행동하며 수령과 생사고락을 같이해나가는데서 삶의 보람을 찾는 사람이라야 사회정치적생명체를 귀중히 여기는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이라고 말할수 있다. 문학은 수령을 언제나 마음의 기둥으로 굳게 믿고 당과 수령의 사상과 령도를 실현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나가는 충신의 풍모를 그리는데 힘을 넣어야 한다.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이 지니고있는 수령에 대한 참다운 충실성은 신념화된 충실성이다.
 신념화된 충실성은 수령이 개척한 혁명위업의 승리를 굳게 믿고 수령의 사상과 령도를 가장 정당한것으로 받아들이며 그 실현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려는 고결한 공산주의적품성이다.
 수령에 대한 참다운 충실성은 현란한 말이나 격조높은 맹세속에 있는것이 아니다. 누구나 수령에 대한 충성을 말로는 쉽게 표현할수 있지만 실천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수령의 사상과 령도를 받들어나가는 길에서는 엄혹한 시련의 고비도 넘어야 하고 생명도 바쳐야 한다. 국제공산주의운동과 우리 혁명의 력사는 평온하고 행복한 시기에 누구보다도 좋은 말을 많이 하고 만세도 소리높이 부르던 사람들가운데서 복잡하고 어려운 시련의 시기에 배신의 길로 떨어진자들이 적지 않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말은 잘할줄 몰라도 가슴속에 불타는 충성심을 간직하고 어떤 역경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말은 적게 하여도 자신의 힘과 지혜를 다 바쳐가며 묵묵히 일하는 사람, 수령을 받드는 길에서 자그마한 드팀이 생겨도 죄송감으로 하여 가책과 모대김속에서 잠 못들며 오로지 수령의 사상으로 숨쉬고 수령의 령도에 발걸음을 맞추어나가는 사람이 진짜배기충신이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신념화되여야 변심이 없는 영원한것으로 될수 있다. 신념화된 충실성은 수령의 위대성에 대한 깊은 인식과 수령을 높이 모시고 받들어야 혁명이 승리하고 자신과 인민의 운명이 개척될수 있다는 확신에 기초하여 형성된다. 신념화된 충성심은 수령을 높이 모시고 끝까지 따르려는 자각과 각오를 높여주며 어떤 역경속에서도 수령의 사상과 령도를 드팀없이 받들어나가는 강의한 의지를 낳게 한다. 우리 인민의 혁명투쟁력사에 기록된 혁명선렬들은 례외없이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충실성을 신념으로 간직한 주체형의 공산주의혁명가였다. 그들은 수령님을 높이 받들어 모셔야 인민의 운명이 개척되고 나라와 민족이 륭성번영할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지고 어떤 바람이 불건 오직 변함없이 수령님만을 믿고 따랐다. 우리의 문학은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의 사상정신적특질인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을 그들이 지닌 혁명적신념과의 관계속에서 깊이있게 보여주어야 한다.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이 지니고있는 수령에 대한 참다운 충실성은 량심화된 충실성이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량심화되여야 가식과 사심이 없는 진실하고 순결한것으로 될수 있다. 량심은 나라와 민족, 사회와 집단앞에서 자기의 행동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느끼는 마음이다. 량심은 행동의 거울이며 거짓과 진실을 판결하는 기준이다. 정직한 인간은 며칠씩 굶고 잠을 자지 못하여도 떳떳하게 살수 있지만 량심을 저버리고서는 한순간도 마음편히 살수 없다.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의 량심에서 핵을 이루는것은 수령을 받드는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느끼는 혁명적량심이다.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혁명적량심으로부터 우러나와야 티없이 맑고 깨끗한것으로 될수 있다. 순수 강요나 의무감에 기초하고있는 충실성은 그 바탕에 명예와 보수를 바라는 공명과 사심이 깔리게 되며 환경과 조건에 따라 쉽게 변할수 있다. 항일혁명투사들이 절해고도에 홀로 남았을 때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오직 장군님을 우러르며 장군님께 다진 맹세를 끝까지 지킨 고결한 풍모에는 혁명적신념과 함께 혁명의 령도자를 진심으로 받들려는 티없이 맑고 깨끗한 혁명적량심이 깃들어있다. 주체형의 공산주의혁명가는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혁명적의무로 여기는 동시에 혁명적량심으로 빛내여나간다.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이 지니고있는 수령에 대한 참다운 충실성은 도덕화된 충실성이다.
 량심만 가지고서는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변함없이 높이 발휘할수 없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혁명적량심에 의거하여 도덕화되여야 누가 보건말건 언제 어디서나 숭고한 높이에서 발휘될수 있다.도덕화된 충실성은 수령의 사상과 의도대로 살며 일하는것을 어길수 없는 생활륜리, 행동준칙으로 여기고 자각적으로 지키는 품성이다.

수령에 대한 도덕화된 충실성은 수령을 친어버이로 숭배하며 수령에게 충성과 효성을 다하는것을 마땅한 도리로 여길 때 가장 고결한것으로 된다.
 문학작품에서는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의 가장 숭고한 정신도덕적특질인 수령에 대한 량심화, 도덕화된 참다운 충실성을 진실하고 깊이있게 그려야 한다.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이 가지고있는 수령에 대한 참다운 충실성은 생활화된 충실성이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생활속에서 체질화되고 공고화된다. 생활을 떠난 인간이란 없으며 생활속에서 인간의 아름답고 고상한 풍모가 형성되며 습성화, 보편화된다. 우리의 생활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충실성을 실천으로 꽃피우는 화원이며 신념과 량심, 도덕적품성을 튼튼히 키워주는 터전이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그것을 생활화할 때 그 어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것으로 된다.
 신념화, 량심화, 도덕화, 생활화는 수령에 대한 충실성의 진가를 가르는 중요한 척도로서 서로 밀접히 련관되여있다. 신념이 없이는 량심과 도덕을 지킬수 없고 량심과 도덕을 떠나서는 신념이 고수될수 없다. 신념과 량심, 도덕을 떠나 참다운 생활이 이루어질수 없으며 생활속에서 신념과 량심, 도덕적품성이 공고화된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신념화, 량심화, 도덕화, 생활화하는 여기에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의 참된 삶을 빛내이며 수령, 당, 대중이 일심단결을 이룬 우리의 사회정치적생명체를 끊임없이 공고발전시켜나가는 확고한 담보가 있다.
 이것은 내가 오래동안 수령님의 위업을 받들고 혁명하는 과정에 생활체험으로 깊이 느끼고 총화한 귀중한 진리이다. 우리가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신념과 량심, 도덕으로 간직하고 생활화한 참다운 충신과 효자로 키울 때 그 어떤 어려운 시련의 시기가 닥쳐와도 우리 당, 우리 인민, 우리 조국은 끄떡없고 두려울것이 없으며 못해낼것이 없을것이다.
 우리 문학에서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이 지닌 수령에 대한 참다운 충실성을 형상하려면 그것을 신념화, 량심화, 도덕화, 생활화하여나가는 과정과 밀접히 결부시켜 생동한 화폭으로 펼쳐야 한다.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이 지닌 신념화, 량심화, 도덕화되고 생활화된 수령에 대한 참다운 충실성을 생동한 화폭으로 펼치자면 그의 내면세계를 파고들어 깊이있게 형상하여야 한다.

원래 인물의 내면세계를 깊이있게 그리는것은 인간학인 문학의 본성적인 요구이지만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품성인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형상하는 작품에서 더욱 절실한 문제로 나선다.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깊이있게 그려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상한 주체형의 인간전형인 충신의 성격적특징을 옳게 밝힐수 있고 인간적풍모를 선명하고 풍만하게 보여줄수 있다. 사람들은 참다운 충신을 대하게 될 때 그의 아름다운 소행에 감탄하지만 그보다는 그가 지니고있는 수령에 대한 열렬한 충성과 지극한 효성의 바탕에 깔려있는 강의한 신념과 한없이 순결하고 고상한 량심과 도덕품성에 더 탄복하여 눈시울을 적시게 된다.문학작품에서 주체형의 인간전형의 아름다운 소행과 빛나는 공적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신념화, 량심화, 도덕화, 생활화된 충성과 효성의 세계를 깊이 파고들어 생동하게 그려야 한다. 그러한 작품이라야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수 있으며 하나의 전형을 통하여 수백수천의 새로운 충신, 효자를 키워내는데 이바지할수 있다.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의 내면세계를 그리는데서는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 신념화, 량심화, 도덕화,생활화되는 과정을 통일적련관속에서 그리는것이 중요하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신념화, 량심화, 도덕화, 생활화하여야 수령의 사상과 령도를 충성으로 받들고 그 실현을 위하여 몸과 마음 다 바쳐 싸울수 있고 참된 삶을 빛내여나갈수 있다. 우리 시대의 참다운 충신이란 그 어떤 어렵고 힘든 초소에 내세워도, 그 어떤 절해고도에 홀로 남는다 해도 끄떡없이 혁명을 끝까지 계속해나가는 사람, 설사 원쑤에게 체포되여 단두대에 오른다 하여도 두려움없이 자랑스럽게 깨끗한 충성을 안고 가는 사람이다.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의 내면세계를 그리는데서는 그의 신념화되고 량심화, 도덕화된 충실성과 함께 습성으로 굳어진 충실성을 깊이있게 보여주는것이 필요하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 량심과 도덕으로 굳어진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의무이기전에 량심으로 되며 어길수 없는 도덕적규범과 행동준칙으로 된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생활화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충실성이 버릇처럼 굳어져 수령이 의도하고 바라시는 일이라면 어떤 어렵고 힘든것이라도 하지 않고서는 배겨내지 못하며 그것을 억제당하거나 저애당하면 불안하고 불쾌하고 허전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한 인간은 수령을 높이 받드는 길에서 참된 인생의 기쁨과 행복을 찾으며 오직 수령이 준 과업을 수행하였을 때 삶의 긍지와 보람도 제일 강하게 느낀다. 문학작품에서는 주인공의 이러한 내면세계를 파고 들어 깊이 펼쳐보여야 한다.
 인물의 내면세계는 생활에 바탕을 두고있으며 생활을 통하여 발현된다. 우리 문학에서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이 지닌 참다운 충실성을 생동한 화폭으로 펼치려면 생활을 잘 그려야 한다.
 참다운 혁명가의 한생은 수령에 대한 충성으로 시작되고 충성으로 끝나는 가장 값높은 생활이다. 수령에 대한 충성과 효성속에 생활이 있고 투쟁이 있으며 생활과 투쟁속에서 수령에 대한 충성과 효성이 싹트고 자라난다. 문학작품에서는 생활과 투쟁을 이러한 관점과 립장에서 보고 그려야 한다.

참다운 충실성을 지닌 주체형의 인간전형을 그리는데서는 신념화, 량심화, 도덕화, 생활화된 충실성을 가장 뚜렷이 구현하고있는 생활단면을 찾아내고 세부화하여 그리는것이 중요하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신념화, 량심화, 도덕화, 생활화할데 대한 요구를 다같이 그린다고 하면서 평균주의적으로 토막내여 그리면 어느 한 측면도 깊이있게 보여줄수 없다. 인물의 참다운 충실성의 표징가운데서 그의 성격적특징을 가장 집중적으로 체현하고있는 생활을 파고들어 그려야 생활형상도 살고 성격적특징도 두드러지게 강조될수 있다.
 주체형의 인간전형이 지닌 신념화, 량심화, 도덕화, 생활화된 충실성을 폭넓고 깊이있게 보여주려면 그의 세계관형성과정속에서 잘 그려야 한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신념화, 량심화, 도덕화, 생활화하는 과정은 혁명적세계관형성과정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신념화, 량심화, 도덕화, 생활화하는것은 결코 하루이틀에 이루어지는것도 아니며 한꺼번에 다같이 형성되는것도 아니다. 그것은 간고하고도 시련에 찬 혁명투쟁의 실천속에서와 자신을 끊임없이 혁명화하기 위한 사상단련과 혁명적수양과정을 거쳐야만 형성발전하며 공고화된다.
 지금 일부 작품을 보면 주인공의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혁명적세계관형성과정과 밀접히 결부시켜 생활적으로 깊이있게 그릴 대신에 몇마디의 그럴듯한 대사나 몇대목의 극적인 장면묘사로 보여주려 하는데 이런 형상방법을 가지고서는 우리 시대의 참된 충신의 모습을 생동하게 보여줄수 없다. 장편소설이나 중편소설, 장편영화문학이나 장막희곡 같은 큰 형식의 문학작품에서는 이야기줄거리도 주인공의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 신념화, 량심화, 도덕화, 생활화되여나가는 과정을 기본으로 하여 엮고 전개하여야 한다. 이것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위업수행에 이바지하는 우리 문학이 사람의 혁명적세계관형성과정을 그리는데서 지켜야 할 원칙으로 되여야 한다. 참다운 충실성이 형성되고 공고화되는 과정을 혁명적세계관형성과정과 밀착시켜 그린다고 하여 신념화, 량심화, 도덕화, 생활화가 마치도 순차적으로 형성되거나 공고화되는것처럼 그려서는 안된다. 참다운 충실성의 중요한 척도인 신념화, 량심화, 도덕화, 생활화는 밀접한 련관속에 있는것만큼 그것은 어디까지나 통일적과정으로 그려야 하며 라렬식으로가 아니라 립체적으로, 일면적으로가 아니라 다면적으로 그려야 한다.
 수령에 대한 참다운 충실성을 신념화, 량심화, 도덕화,생활화하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는 주체형의 인간전형을 생동하고 진실하게, 폭넓고 깊이있게 그리는 여기에 우리 문학을 참말로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는 주체적이며 혁명적인 문학으로 되게 하는 길이 있다.
 우리 시대의 주체형의 인간전형을 창조하는데서도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수령, 당, 대중의 3위1체의 원칙에서 감명깊게 그려내야 한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당에 대한 충실성, 인민에 대한 충실성과 통일되여있다. 문학작품에서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이 지닌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잘 보여주자면 혁명적수령관을 혁명적 조직관, 군중관과 밀접히 결부하여 깊이있게 형상하여야 한다.
 수령, 당, 대중에 대한 충실성은 사회정치적집단의 생명이 개인의 생명의 모체로 되며 개인의 생명보다 집단의 생명이 더 귀중하다고 보는 집단주의적생명관에 기초하고있다. 문학작품에서는 우리 시대 인간의 집단주의적생명관을 잘 보여주어야 한다. 집단주의적생명관을 지닌 공산주의적인간을 잘 그리는 여기에 우리 문학의 중요한 특징이 있다. 1980년대부터 우리 문학작품이 많이 형상하고있는 숨은 영웅과 숨은 공로자들은 개인의 명예나 리익보다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묵묵히 바쳐나가는 참다운 공산주의자의 전형이다. 작가는 앞으로도 숨은 영웅을 잘 형상하는 한편 우리 시대에 끊임없이 자라나는 새형의 영웅의 전형을 창조하는데 큰 힘을 넣어 그들의 집단주의적생명관, 혁명적인생관을 깊이있게 보여주어야 한다.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이 지니고있는 대중적영웅주의를 잘 형상하여야 한다.
 주체형의 인간은 온갖 애로와 난관을 동반하는 혁명의 초행길을 헤쳐나가는 우리 시대의 영웅이다. 그들은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반사회주의책동이 극도에 이른 첨예한 정세속에서도 사회주의에 대한 굳은 신념을 가지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기 위하여 《모두다 영웅적으로 살며 투쟁하자!》라는 구호밑에 날에날마다 세상사람들을 놀래우는 기적과 혁신을 창조하면서 힘찬 진군을 다그치고있다. 문학에서는 마땅히 그들의 대중적영웅주의와 창조적위훈을 높은 경지에서 감명깊게 그려내야 한다.
 우리 시대의 영웅을 형상하는데서 그들이 처음부터 영웅의 기질을 타고난 기상천외한 인물이 아니라 평범한 출신의 근로자이며 직장과 가정에서 날마다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살고있는 보통인간이라는것을 잘 보여주어야 한다. 이와 함께 누구나 혁명위업에 대한 끝없는 헌신성을 가지고 당과 수령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칠 굳은 각오만 가지면 값높은 위훈을 세울수 있고 영웅이 될수 있다는 사상을 두드러지게 형상하여야 한다. 작가는 소박하고 평범한 보통인간이 어떻게 영웅으로 자라는가 하는것을 생활적으로 진실하게 밝혀내야 한다. 영웅의 소박한 성품을 그리면서도 그의 남다른 정신적높이와 특출한 위훈이 뚜렷이 드러나도록 형상하는것이 중요하다.
 우리 시대 인간들의 영웅주의는 개인영웅주의가 아니라 대중적영웅주의이다. 사회와 집단을 떠나서는 누구도 참다운 영웅이 될수 없다.영웅적으로 살며 투쟁한다는것은 개인의 리익이나 공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민대중의 혁명위업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헌신적으로 투쟁한다는것을 의미한다. 문학에서는 우리 시대 인간들이 지니고있는 대중적영웅주의의 본질을 생동하고 깊이있게 밝혀내야 하며 우리 문학에 그려지는 영웅의 성격은 사람들모두가 영웅적으로 살며 투쟁하는 전형적인 환경속에서 형상되여야 한다. 작품에서는 우리 시대 인간들의 대중적영웅주의가 집단주의적생명관에 기초하고 조직의 지도와 집단의 적극적인 협력에 의해서만 발휘될수 있다는 사상을 두드러지게 그려야 한다.
 주체형의 인간전형을 창조하는데서 숭고한 공산주의적인간성을 깊이있게 그려내는것이 중요하다.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은 사람을 가장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사람을 위하여 복무하는것을 더없는 영예로 여기고 누가 보건말건 자기의 량심을 바쳐 사회와 인민을 위하여 성실히 복무하며 풍부한 정서와 열정, 고상한 륜리도덕을 가진 참된 인간이라는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문학에서 주인공의 인간성은 정치성과 결합되여야 한다. 긍정인물의 성격창조에서 인간성을 정치성과 결합시키는것은 주체의 인간학에서 지켜야 할 기본원칙의 하나이다. 주체의 인간학에서는 주인공의 인간성을 그 어떤 타고난 천성으로 그릴것이 아니라 주체의 인생관에 기초하여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과정에 형성되고 공고화된 성품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주인공의 인간성만 강조하면 성격의 사회적본질을 밝힐수 없고 정치성만 강조하면 성격의 인간적풍모를 보여줄수 없다. 인간성이나 정치성의 어느 하나만을 강조하는것은 다 작품의 사상예술성을 떨구는 결과를 빚어낸다.
 주체형의 인간전형을 창조하는데서 특히 중요한것은 1990년대를 맞이한 우리 인민들속에서 새롭게 나타나고있는 정신도덕적풍모를 옳게 그리는것이다.
 오늘 우리 인민의 정신도덕적풍모는 일찌기 볼수 없었던 새로운 높이에서 발현되고있다.
 최근에 인민군대에서는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90년대의 김진, 리수복이 되자!》라는 구호밑에 사회주의건설의 가장 어렵고 힘든 부문에 진출하여 우리 나라 건설력사에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기적과 위훈을 창조하고있으며 전쟁시기도 아닌 평화로운 시기에 전우들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수류탄을 한몸으로 막고 희생된 김광철소대장과 같은 영웅들이 련이어 배출되고있다. 그런가 하면 아름다운 청춘을 군사복무에 바쳤던 녀성제대군인들이 자진하여 어렵고 힘든곳으로 집단진출하고있다.
 우리 시대 인간들의 아름다운 소행은 온 나라의 당일군과 안전원, 인테리, 청년학생들속에서 련이어 꽃펴나고있다. 청년들이 수령님의 현지지도의 거룩한 자욱이 깃들고 당의 혁명사적이 깃든 영광스러운 고장으로, 어렵고 힘든 부문으로 진출하고 녀성들이 영예군인과 한생의 길동무가 되려고 결혼하며 지난날에는 부끄러운 직업으로만 여겨졌던 도로관리원으로 졸업반학급전체가 집단적으로 진출하는것은 1990년대의 자랑으로, 막을수 없는 흐름으로 되고있다.
 수령, 당, 대중에게 자기의 모든것을 바치고있는 아름다운 소행에 대한 이야기가 련이어 꽃피여나는 속에서 전천군상업관리소 소장의 끝없는 충성과 지극한 효성에 대한 이야기가 만사람의 심장을 더욱 격동시키고있다.
  오늘 우리 시대의 벅찬 현실에서 새롭게 꽃펴나고있는 이 모든 아름다운 소행에는 우리 시대 청년들과 인민들속에 형성된 새로운 미관, 주체의 미관이 그대로 체현되여있다.

우리 시대 인간의 새로운 정신도덕적풍모의 중요한 특징은 당과 수령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 충성과 효성을 다하는것을 혁명적의리와 본분으로 여기는데 있다. 수령, 당, 대중앞에 지닌 사회적의무에 대한 높은 자각과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는 끝없는 헌신성에 우리 인민만이 지니고있는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인간미가 있다. 여기에 또한 90년대 인간들의 삶의 철학이 있고 주체적미관이 있는것이다. 우리 인민은 수령의 품을 떠나서는 한순간도 살수 없다는것을 생활을 통하여 절실히 체험하고있기때문에 어떻게 하면 수령의 크나큰 은덕과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할수 있겠는가 하는데 대하여 늘 마음을 쓰며 수령에게 충성하는것을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것으로 생각하고있다.
 우리 인민의 이러한 미관은 오늘에 와서 비로소 생겨난것이 아니다. 수령, 당, 대중의 일심단결을 이룬 우리 사회에서 날에날마다 새롭게 발현되는 숭고한 인간미는 깊은 력사적뿌리를 가지고있다. 
우리의 사회정치적생명체는 혁명의 1세대와 2세대에 의하여 형성되고 고수되여왔으며 혁명의 3세대, 4세대에 의하여 끊임없이 공고발전되여나가고있다. 지구가 열번 뒤집히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정치적생명체에 영원히 자기운명을 맡기고 그와 생사를 같이하려는 우리 인민의 의지는 무엇으로써도 꺾을수 없다.
 사회정치적생명체앞에서 지닌 자기의 숭고한 의무를 깊이 자각하고있는 우리 시대 인간의 아름답고 숭고한 정신세계는 오늘뿐아니라 앞으로도 더 높은 수준에서 끊임없이 발현될것이다. 문학은 시대와 더불어 변화발전하는 우리 인민의 아름답고 숭고한 정신세계를 수령에 대한 충성과 효성에 기초한 혁명적미관의 견지에서 새롭게 탐구하고 형상하여야 한다.
  주체형의 인간전형을 옳바로 창조하기 위하여서는 성격의 전형화문제를 잘 해결하여야 한다.
 인간의 성격을 전형화하는데서는 개성화와 일반화의 요구를 옳게 해결하는것이 중요하다. 작가는 실지 있은 인물의 자료에서 깎을것은 깎고 돋굴것은 돋구면서 성격의 본질적특성이 두드러지게 살아나도록 하여야 한다. 원형의 성격에서 본질적인 특질보다 사말적인 세부에 매력을 느끼면 전형화의 원칙에서 벗어나게 된다. 본질적인것, 합법칙적인것을 보여준다고 하여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실을 무시하여도 안된다. 인물을 전형화한다고 하여 현실에 있을수 없는 허구를 마구 끌어들이거나 더우기는 원형과 사실자료에 전혀 의거하지 않고 작품전체를 허구적으로 꾸며내는 놀음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문학에서는 원형과 사실자료에 기초하여 전형화하는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작가가 원형과 사실자료에 기초하는것을 어길수 없는 전형화의 원칙으로 삼지 않으면 현실체험을 하지 않고 책상머리에 앉아 꾸밀내기를 하게 된다. 원형과 사실에 의거하는것은 현실적으로 수많은 주체형의 인간이 출현하고있는 오늘의 실정에도 맞으며 문학과 현실, 문학과 대중사이의 련계를 밀접히 하고 작가의 현실체험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주체형의 인간전형을 창조하는데서 그의 개성적특징을 생동하게 그리는것이 중요하다. 인물을 그리는데서 개성화가 전형화의 근본원칙의 하나로 된다는데 대하여서는 늘 강조하는 문제이다. 인물의 형상이 막대기같이 꼿꼿하고 메마르면 산 인간의 숨결이 느껴질수 없다. 인물형상이 생기가 없으면 작품전체가 메마르게 된다.
 문학의 인간성격은 작가자신이 발견한것으로 되여야 한다. 주인공이 지닌 남다른 성격을 발견하지 못한 작가는 붓을 들 권리가 없다. 작가는 매 작품에서 자기가 발견한 몫이라고 당당히 말할수 있는 새로운 성격을 들고나와야 한다.
 인물형상이 생동하게 되자면 그의 성격과 생활을 여러모에서 립체적으로 묘사하여야 한다. 인물의 세계관적인 측면에만 관심을 돌리고 기질적인 측면을 무시하여서는 안된다. 사람의 성격을 규정하는데서 기질은 무시할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사람의 기질이 같은 경우란 별로 없다. 사람의 기질은 상대적으로 공고하게 굳어져있으며 일생동안 잘 변하지도 않는다. 같은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라 하여도 그 세계관이 서로 다른 다양한 기질에 굴절되면 성격이 서로 구별될수 있다. 선천적인 기질만을 내세우거나 우리 민족의 특성과 미감에 맞지 않는 기형적인 기질을 들고나와서도 안되지만 인물의 기질을 단순화하고 도식화하는것도 전형화의 원칙에 어긋난다.
 인간전형을 창조하는데서 긍정일면에만 치우치는 경향을 없애야 한다. 우리 문학에서 긍정적인 전형을 내세우는것자체가 부정에 대한 비판으로 되지만 그렇다고 하여 긍정만 내세워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의 사람들속에는 긍정적인것만 있는것이 아니라 부정적인것도 아직 남아있다.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주체사상의 요구대로 개조하려면 긍정적모범을 통한 감화교양과 함께 부정을 극복하기 위한 강한 사상투쟁을 하여야 한다. 현실에 있는 부정적현상을 보고도 못본체하는것은 공산주의적태도가 아니며 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가의 량심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작가는 긍정에 대한 열렬한 옹호정신과 함께 부정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지녀야 한다.
 부정에 대한 비판은 인물의 낡은 세계관에 기초하고있는 그릇된 사상을 바로잡기 위한 투쟁인것만큼 언제나 비타협적이고 견결하고 철저하여야 한다. 작품에 우리 사회의 부정인물을 설정하는 중요한 목적은 그가 동지들과 집단의 원칙적인 비판과 뜨거운 사랑속에서 어떻게 개조되여가는가 하는것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생활의 교훈을 주자는데 있다. 부정인물이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심각한 생활의 교훈을 준다면 그것은 성공한 형상으로 된다.
 긍정적전형을 그리는 경우에도 그의 형상에서 긍정일면을 보여주는데 치우치거나 리상화하려는 경향이 나타나서는 안된다. 허물이 없는 사람은 없으며 다만 그것을 얼마나 빨리 고쳐나가는가 못나가는가 하는데서 차이가 있을뿐이다. 긍정인물을 현실에서와 같이 진실하게 보여주려면 생활속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수양하고 단련하여나가는 그의 성격발전과정을 실감있게 그려내야 한다.

5. 생활과 형상


1) 작품의 종자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오래전에 문학예술작품의 종자에 대한 리론을 내놓았다. 종자에 대한 리론은 그동안 창작실천을 통하여 진리성과 생활력이 충분히 확증되였다. 종자에 대한 리론은 문학예술분야에서 혁명을 일으키고 력사적인 전성기를 이룩하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우리는 앞으로도 문학작품의 종자에 대한 리론을 창작실천에 철저히 구현해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종자의 본질을 바로 인식하여야 한다.
 종자는 작품의 핵으로서 작가가 말하려는 기본문제가 있고 형상의 요소가 뿌리내릴 바탕이 있는 생활의 사상적알맹이이다.
 아직 일부 작가들속에서는 기성관념에 사로잡혀 종자를 새롭게 발견된 범주로 보지 못하고 주제나 사상과 같은것으로 잘못 리해하는 편향이 없어지지 않고있다. 주제와 사상은 오랜 세월에 걸쳐 문학리론에서 론의되여왔으며 그 과정에 주제와 사상을 문학작품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로 보는 관념이 굳어졌다. 오래동안 굳어진 기성관념에 매인 사람들은 종자도 주제나 사상처럼 보게 되였다.
 종자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지난 시기 일부 사람들이 주제와 사상의 본질을 옳게 인식하지 못한것과도 적지 않게 관련되여있다. 하나의 문학작품에서 주제, 사상, 인물성격같은 개별적요소는 서로 뗄수 없이 련관되여있으므로 전반적인 형상체계속에서만 그 개념을 똑바로 규정할수 있다. 특히 문학에서 핵을 이루는 범주에 대한 옳바른 해명이 앞서야 개별적요소의 개념을 옳바로 해명할수 있다. 작품의 핵은 작품의 모든 개별적요소를 싹틔우고 자래울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이다.
 지난 시기 주제를 작품에 제기된 사회적문제로 정당하게 본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작품에 제기한 작가의 주장으로 보거나 창작을 추동한 사상으로 보았다. 이것은 주제를 작품의 사상과 거의 같은것으로 간주하거나 작품의 핵과 같은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지난 시기에는 작품의 핵을 밝히지 못하고 주제에 대한 개념도 바로 규정하지 못하였기때문에 작품의 사상에 대하여서도 정확한 인식을 가질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작품의 기본사상을 주제로 보고 부차적인 사상에 대하여서만 사상으로 규정하였으며 어떤 사람은 주제와 사상을 갈라보지 않고 같은것으로 취급하였다.
 물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제는 사회적문제로, 사상은 작가의 사상미학적주장으로 정당하게 보았지만 이러저러한 그릇된 견해에 말려들어 빛을 보지 못하였다. 작품의 핵인 종자에 관한 리론이 나옴으로써 비로소 작품을 이루고있는 형상요소가 똑바로 밝혀지게 되였다.
 종자는 주제와도 다르고 사상과도 다르다.
 종자의 본질을 옳게 리해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생활의 사상적알맹이란 무엇인가 하는것부터 똑바로 인식하는것이 중요하다.
 사람은 자기의 지향과 요구로부터 출발하여 목적의식적으로 사회를 개조하고 자연을 정복하는것만큼 생활속에 있는 이러저러한 현상은 어느것이나 다 일정한 사상적의미를 가지게 된다. 인민대중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사회를 개조해나가는 과정에 이러저러한 생활현상에 사상적의미가 체현되게 되는것은 필연적인것이다. 일정한 사상적의미는 커다란 사회적의의를 가지는 력사적사건이나 사변에는 물론, 사람의 일상생활에도 담겨져있다. 사회적현상에는 더 말할것 없고 사람의 자취가 스며있고 손길이 미친 자연현상에도 다 일정한 사상적의미가 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화원을 보면서 거기에 깃든 원예사의 정성을 가슴뜨겁게 느낄뿐아니라 미에 대한 그의 관점과 고상한 취미도 알게 된다.
 그런데 어떤 사상적의미를 어느 정도로 가지고있는가 하는것은 생활에 따라 다르다. 현실에는 단순하게 한가지 사상적의미를 가진 생활현상도 있고 여러가지 사상적의미를 가진 생활현상도 있다. 일반적으로 생활현상은 단순하지 않고 매우 복잡하게 얽혀져있기때문에 여러가지 사상적의미를 가지게 된다. 생활현상에 체현되여있는 사상적의미가운데는 그 생활현상자체를 지배하며 이여의 사상적의미를 제약하는 가장 본질적이며 규정적인것이 있다. 생활현상에 체현되여있는 본질적이며 규정적인 사상적내용은 그 존재를 담보하는 근본요인으로, 기본핵으로 된다. 바로 그 핵을 생활의 사상적알맹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생활의 사상적알맹이가 다 문학의 종자로 되는것은 아니다. 생활의 사상적알맹이가운데는 문학에 담을수 있는것도 있고 담을수 없는것도 있으며 비록 문학에는 담을수 없지만 인문학의 다른 부문에서 취급할수 있는것도 있다. 문학이 생활에 대한 백과전서라고 하여도 모든 생활의 사상적알맹이를 다 담을수는 없다. 그것은 문학에 고유한 형상창조의 법칙, 생활을 감성적형식속에서 그 모습 그대로 반영하여야 한다는 법칙이 있기때문이다.
 우리 작가들가운데는 문학에 담을수 없는 사상적알맹이를 잡아쥐고 몇해씩 씨름하는 사람도 더러 있는데 그렇게 되는 기본원인은 종자가 사상적알맹이라는것만 일면적으로 생각하면서 종자와 사상을 혼동하고있는데 있다.

종자는 생활의 사상적알맹이이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상과 구별된다. 종자는 리성으로뿐아니라 감성으로도 파악되고 정서적으로도 공감되며 론리적사유만 아니라 형상적사유도 계발시킨다.
 일반적으로 사상은 주관적인것으로서 추상적인 형태로 나타나지만 생활에 체현되여있는 사상적인것은 객관적인것으로서 구체적인 대상속에 생동한 형태로 나타난다. 생활에 체현되여있는 사상적인것은 사람의 성격속에 있고 사건속에 있으며 현상속에 있다. 생활에 체현되여있는 사상적인것은 어느것이나 다 구체적이고 생동한 대상속에 자리잡고있다. 종자도 역시 생활의 사상적알맹이인것만큼 구체적인 대상속에 생동하게 체현되여있다. 종자가 체현되여있는 대상은 다름아닌 작가가 말하려는 기본문제가 있고 형상의 요소가 뿌리내릴 바탕이 있는 생활이다.
 종자는 작가가 말하려는 기본문제가 있고 형상의 요소가 뿌리내릴 바탕이 있는 생활의 사상적알맹이이기때문에 사상적으로뿐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공감되는것이다. 작가의 머리를 움직이게 할뿐아니라 심장을 격동시키며 사상을 안겨줄뿐아니라 정서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생활의 사상적알맹이가 진짜 문학작품의 종자이다.
 작가가 말하려는 기본문제가 없고 형상의 요소가 뿌리내릴 바탕이 없으며 따라서 작가의 심장을 틀어잡을수 없고 정서를 불러일으킬수 없는 생활의 사상적알맹이는 아무리 사회적의의가 큰것이라고 하여도 작품의 종자로 될수 없다. 종자가 사상적알맹이라는것만 생각하면서 순전히 사상적인것에만 매달리는 작가의 잘못이 바로 이것을 망각한데 있다. 작가의 심장에 창조의 불씨를 지펴주고 창조적열정을 불러일으키며 정서적체험세계에로 이끌어주고 창조적환상의 나래를 달아주는 생활의 사상적알맹이라야 문학의 종자로 될수 있다.
 문학작품의 종자와 사상의 관계에 대하여서도 옳바른 리해를 가져야 한다.
 종자가 생활의 사상적알맹이라고 하여 작품의 사상과 같은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작품의 사상은 폭넓게 이루어진다. 작품의 사상은 종자와 그에 의하여 규제되는 성격, 사건, 갈등과 같은 여러가지 형상요소가 생활에서 본래부터 가지고있던 사상적내용과 그에 대한 작가의 견해의 통일로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말하여 작품의 사상은 종자의 구현과정을 통하여 밝히려는 작가의 주장이고 화폭으로 펼쳐지는 생활에 대한 그의 평가이며 인물의 운명에 대한 결론이다. 이것은 종자가 사상적알맹이이기는 하지만 작품의 사상을 대신할수 없다는것을 말하여 준다. 작품의 사상은 종자로부터 흘러나오며 종자에 의하여 규정된다.
 문학작품의 종자는 작가가 말하려는 기본문제를 안고있는 생활의 사상적알맹이이다.
 생활이 안고있는 기본문제는 앞으로 창작될 작품에서 주제로 심화된다. 주제는 작품에서 작가가 말하려는 기본문제이다. 그 기본문제는 사회적문제, 인간문제로서 종자가 체현되여있는 생활속에서 제기된것이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한 자위단원의 운명》의 주제는 나라잃은 민족의 운명문제, 압제자에게 순종하느냐 아니면 항거하느냐 하는 수난당하는 민족의 사활적인 문제이다. 이 문제는 《자위단》에 들어도 죽고 안들어도 죽는다는 사상적알맹이를 안고있는 1930년대의 우리 나라 현실, 구체적으로는 일제의 주구단체인 《자위단》과 관련된 생활에서 제기된 근본문제이다. 일제침략자들이 칼부림하는 세상에서 가난한 조선사람들이 살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살아서 설곳이 없고 죽어서 묻힐곳이 없었다. 《자위단》에 끌려간 사람들은 일제침략자들의 총알받이가 되여 개죽음을 당하여야 하였고 《자위단》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은 고역과 굶주림에 시달리다 죽어야만 하였다. 바로 이러한 암담한 비극적현실로부터 조선민족의 생사존망문제가 제기된것이다.
 종자와 주제는 생활속에서부터 뗄수 없이 밀착되여있다. 생활이 인간문제를 안고있는가 안고있지 않는가 하는데 따라 그 사상적알맹이가 문학작품의 종자로 되는가 못되는가 하는것이 결정된다. 인간문제를 안고있지 않는 생활의 사상적알맹이는 문학작품의 종자로 될수 없다. 그렇다고 하여 주제가 종자를 규정하는것은 결코 아니다. 작가가 말하려는 기본문제가 있는 생활을 지배하는것은 그에 체현되여있는 사상적알맹이이다. 그 기본문제는 다름아닌 생활의 사상적알맹이에 뿌리박혀있기때문에 주제는 종자에 의하여 제약되게 된다.
 문학작품에 담아야 할 종자는 형상의 요소가 뿌리내릴 바탕이 있는 생활의 사상적알맹이이다.
 종자는 작가로 하여금 앞으로 그려질 형상의 기본테두리를 예상할수 있게 한다. 종자는 주인공과 주요인물의 성격, 인물들사이의 관계, 사건, 갈등, 이야기줄거리와 같은 형상의 기본요소에 대한 초보적인 표상을 륜곽적으로 준다.
 여기로부터 종자와 소재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소재는 문학작품의 형상의 바탕으로 되는 생활자료라면 종자는 생활의 사상적알맹이이다. 소재나 종자는 다같이 생활에 바탕을 두고있기때문에 서로 밀접히 련관되여있다. 사실 작가는 현실에 들어가 어떤 생활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 우연히 그속에 담겨져있는 사상적알맹이를 발견할수 있으며 그것을 앞으로 쓰려는 작품의 종자로 삼을수도 있다. 이러한 사정으로 하여 소재와 종자를 비슷하게 보거나 지어는 같은것으로 보며 소재를 잡아쥐고 종자를 찾아낸것처럼 생각하는 편향이 종종 나타나군한다. 물론 현실에서 잡아쥔 생활자료를 깊이 파고들어가 밝혀낸 사상적알맹이가 문학작품에 담을수 있는것이라면 그때에는 종자를 찾아냈다고 말할수 있다. 그러나 문학작품에 담을만한 사상적알맹이가 없거나 그것을 미리 찾아내지 못한 경우에는 생활자료가 한갖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
 소재는 생활에 있는 사실자료이다. 소재는 언제나 구체적인 실체를 가지고있다. 사람에 대한 자료라면 그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였는가 하는 물음에 대답을 줄수 있는것이여야 하며 사건이라면 그것이 언제 어디서 어떤 원인에 의하여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물음에 대답을 줄수 있는것이여야 한다. 그러므로 소재를 쥐면 개별적인 인물이나 사건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생동한 표상을 가질수 있다. 그러나 소재는 작품의 형상전반에 대한 표상을 줄수 없으며 더우기 인물의 성격과 인물사이의 관계,사건과 갈등같은 형상요소를 규제할수 없고 그것을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그려나가야 하는가 하는것을 가르쳐줄수 없다.
 종자는 소재처럼 형상요소에 대한 구체적인 표상을 주지 못한다. 종자는 다만 련상속에서 형상요소를 그려볼수 있게 한다. 그러나 종자는 소재와는 달리 개별적인 형상요소의 선택을 규제할뿐아니라 그것을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그려나가야 하는가 하는것을 암시해주며 앞으로 태여날 작품의 형상을 전일적으로 그려볼수 있게 한다. 소재자체도 종자에 의하여 규제된다. 그것은 종자가 형상요소가 뿌리내릴 바탕이 있는 생활의 사상적알맹이로 되는 사정과 관련되여있다.
 문학작품의 종자의 본질을 옳게 리해하기 위하여서는 작품의 형상체계안에서 종자가 핵으로 된다는것을 똑바로 인식하여야 한다.
 작품의 핵을 옳게 밝히는것은 창작실천과 문예리론에서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 무엇을 핵으로 보는가에 따라 창작을 옳게 진행하는가 못하는가, 작품의 사상예술적수준을 높이는가 높이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가 좌우된다.
  지금까지 어떤 작가들은 주제나 사상이 아니면 성격을 작품의 핵으로 보았으며 어떤 극작가들은 갈등을 극작품의 생명이라고 하였다. 작품의 핵에 대한 옳은 인식을 가지지 못하였기때문에 창작실천에서는 산 인간을 형상하지 못하고 사상만 앙상하게 드러낸 작품이 나오고 성격은 있어도 의의있는 사상이 없는 작품이 나오게 되였으며 사상도 성격도 살리지 못하면서 공연히 긴장시키기만 하는 작품이 나오게 되였다. 물론 형상체계안에서 주제와 사상,성격과 갈등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사실이지만 그 어느것도 종자와 같은 자리에 놓을수는 없다.
 생활속에서 찾아내여 형상에 심어놓은 종자는 작품의 핵으로 된다. 종자를 작품의 핵이라고 할 때 그것은 종자가 모든 형상의 중심을 이루는 기본알맹이라는것을 말한다.
 종자가 작품의 핵이라는것을 옳게 리해하자면 핵으로 되는 요인을 깊이 인식하는것이 중요하다. 종자를 형상체계안에서 수행하는 기능에 기초하여 작품의 핵으로 규정하여서는 그 본질을 옳게 밝힐수 없다. 종자가 작품의 핵으로 되는데서 물론 그 기능도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되지만 그 기능까지도 담보하는 근본요인이 있으며 그것을 알아야 종자의 본질을 바로 인식할수 있다.
 종자가 작품의 핵으로 되는 근본요인은 그것이 작품에 반영된 생활의 가장 심오한 본질을 체현하고있는 사상적알맹이라는데 있다. 만일 그 사상적알맹이가 없으면 작품에 반영된 생활은 죽어버리게 되고 형상은 빛을 잃게 된다. 그 사상적알맹이는 작품에 반영된 생활의 생명이며 핵이다. 그러므로 종자는 작품의 형상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규제하고 통일시키며 이끌어나가는 유일한 중심으로 된다.
 실천적경험은 작가의 창작과정과 작품의 형상체계안에서 종자가 얼마나 커다란 역할을 놀고있는가 하는것을 실증하여준다. 작품에서 모든 형상요소는 종자를 꽃피우는데 한결같이 맞물려지면서 하나의 전일적인 화폭을 이룬다. 작품의 내용과 형식은 종자를 기초로 하여 통일되며 그 사상성과 예술성도 종자를 바탕으로 하여 결합된다. 종자야말로 작품의 기본핵이다.
 종자가 생활의 사상적알맹이로부터 작품의 핵으로 되기까지의 과정이 바로 작가의 창작과정이며 새로운 형상세계가 태여나는 과정이다. 오직 종자만이 창작과정과 예술형상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통일시킬수 있으며 그 과정에 제기되는 요구를 해결하는데서 유일한 기준으로 될수 있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종자는 오직 한 작품과만 결부되여있으며 해당 작품을 떠나서는 살지 못한다. 문학작품들이 서로 구별되는 근본요인은 자기의 고유한 종자에서 싹터난것이기때문이다.
 창작에서 종자를 바로잡고 깊이 심는 문제는 작품의 운명을 좌우하는 근본문제로 제기된다. 종자를 바로잡고 그에 기초하여 형상의 꽃을 피워나가는것은 문학창작의 생리로, 철칙으로 되여야 한다.
 작가가 생활에서 창작적충동을 받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다. 어떤 의의있는 사상이나 성격, 매력있는 사건이나 세부를 찾아쥔것이 계기로 되여 작품을 쓸수도 있다. 작가는 무엇을 먼저 발견하였거나 무엇에 먼저 매혹되였거나 관계없이 일단 종자를 잡아쥐였을 때에만 작품을 구성하고 붓을 들어야 한다. 어떤 성격이나 사건을 먼저 잡은 경우라 하여도 종자가 확정되면 이미 잡은 모든것을 종자의 요구에 비추어 다시 평가하여야 하며 종자에 맞지 않는것은 버려야 한다.
 생활이 있는곳이면 어디에나 작품에 담을수 있는 종자가 있다. 창조와 혁신으로 들끓는 보람찬 우리의 현실에는 작가를 끝없이 흥분시키며 창조적령감의 세계에로 이끌어주는 가치있는 종자가 이루 헤아릴수 없이 많다. 그러나 문학작품에 담아야 할 종자는 아무때 아무데서나 손쉽게 잡아쥘수 있는것이 아니다. 생활에서 종자를 발견하는 과정은 그에 체현되여있는 본질을 파고드는 과정을 동반하게 된다. 작가는 생활을 늘 해부학적으로 보면서 그속에 스며있는 본질이 무엇인가, 거기에서 어떤 인간문제를 찾아낼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모대기기때문에 생활의 본질을 누구보다도 많이 체득하고있을수 있다. 그러나 어떤 본질은 아직 무엇이라고 꼭 집어 말할수 없는것일수 있으며 찍어말할수 있는것이라 하여도 머리속에 아무때나 재생되는것이 아니다. 이미 찾아낸 생활의 본질은 어떤 의미심장한 생활현상을 다시 보게 되는 순간 번개치듯 머리에 떠오를 때도 있다. 그것은 목격한 생활현상이 이미부터 속에 품고있던 어떤 생활의 본질을 표현하는데 알맞는 도화선의 불꽃같은 계기로 되였기때문이다. 바로 이런 때에 종자를 잡아쥘수 있다. 작가는 어느 한 생활계기에서 이미 찾았던 생활의 본질을 재생하는 식으로만 종자를 잡을수 있는것은 아니다. 작가가 아직 모르고있던 생활의 본질을 어떤 현상을 목격하고 그에 대한 사색을 깊이하는 과정에 새로 찾아낼수도 있다. 작가가 어떤 생활현상을 놓고 깊이 연구하는 과정에 새로 발견한 본질이 그대로 작품의 종자로 될수도 있다.
 종자는 표면에 드러나있는것이 아니라 생활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있다. 아무런 충격도 없고 아무런 변화도 없이 정상적으로 흘러가는 생활에서는 종자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종자는 어떤 충격에 의하여 생활에 파동이 일어나 그 정상적인 흐름이 깨여지며 사람의 운명에서 심각한 변화가 생기게 될 때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생활의 흐름을 새롭게 변화시키며 사람의 운명에서 극적인 전환이 일어나게 한 그 근본요인속에 바로 생활의 사상적알맹이, 종자가 있다. 작가는 생활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파동에 현혹되지 말고 한걸음 더 들어가 그 파동을 일으킨 근본요인까지 파헤쳐야 작품에 담을수 있는 종자를 면바로 골라잡을수 있다.
 생활의 사상적알맹이를 탐구하는 과정은 현상으로부터 본질에로 파고드는 과정이다. 작가는 생활현상을 관찰하는데 머물지 말고 생활속에 깊이 들어가 생활현상으로부터 생활의 본질에로 끝까지 파고드는 철학적사색과 탐구능력을 가져야 한다. 생활을 보고 철학적으로 사색할줄 아는 작가만이 그속에서 뜻깊고 의의있는 종자를 찾아낼수 있다. 인류문학사에 오른 모든 가치있는 예술적발견은 다 자기 시대의 생활에 깊이 파고들어간 이름있는 작가의 심오한 철학적사색이 가져다준 귀중한 결실이다.
 작가는 좋은 종자를 골라쥔 다음에는 거기에 모든 형상요소를 집중시키고 예술적으로 잘 가공하여야 한다.

종자를 바로잡았다고 하여 좋은 작품이 저절로 완성되는것은 아니다. 종자의 발견은 어디까지나 작품창작의 선결조건이며 기초이다. 종자가 좋으면 작품도 좋아야 제격이지만 애써 찾은 종자를 가지고 졸작을 빚어 내놓는 일이 없지 않다.
 종자를 예술적으로 잘 가공하여 그것이 진실하고 생동한 형상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우러나오게 하여야 한다. 문학작품은 사상적의도가 뚜렷하면서도 철학적으로 웅심깊고 생활의 긴여운을 주어야 가치있는것으로 된다.
 종자를 명백하게 한다고 하여 생활의 론리를 무시하고 사상적알맹이를 강짜로 드러내보여서는 안되며 일부 소설과 극문학작품에서처럼 주요대사나 주정토로를 통하여 종자를 직선적으로 생경하게 드러내보이려 하여서도 안된다. 물론 대사나 주정토로와 같은것을 가지고 종자를 강조할수 있다. 요즘 나온 일부 작품에서는 주인공의 대사를 통하여 사상적알맹이를 뚜렷이 강조함으로써 사상적내용을 명백하게 하고있다. 종자가 이미 작품의 형상과정을 통하여 충분히 무르익혀진 조건에서는 그 사상적알맹이를 다시한번 강조하는 의미에서 대사나 주정토로에 밝힐수도 있다. 종자의 요구에 맞게 형상의 요소를 집중시키고 풍만하게 꽃피우는데는 품을 적게 들이다가 나중에 와서 종자를 덧붙이는 식으로 하거나 주요한 대목에서 사상적알맹이를 찍어보이는 식으로 하는것이 종자를 실현하는 효과적인 방법인것처럼 생각하여서는 안된다. 종자는 기본형상선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도록 하여야 한다.
 작가는 아무런 예술적표상도 주지 않는 추상적인 사상을 잡아쥐고 거기에 형상을 맞추려 하여서는 안된다. 작가가 주관에 빠지면 종자는 죽고만다. 작가에게 있어서 종자가 발견중의 발견으로 되여야 한다면 그에 기초하여 펼쳐지는 인간성격과 사건, 세부와 일화도 새롭고 독창적인것으로 되여야 한다.
 작가는 시대의 지향과 인민대중의 요구에 옳바른 해답을 줄수 있는 가치있는 종자를 찾아내여 높은 사상성과 고상한 예술성이 결합된 진실로 사실주의적이며 혁명적인 작품을 창작하여야 한다.

2) 성격문학이냐 사건문학이냐 

인간은 어떻게 보고 그리는가 하는것은 문학창작의 출발점으로 된다.
 문학에서 인간은 복잡한 갈래를 이루는 생활의 다양한 흐름을 주동적으로 이끌어나가는 화폭의 중심위치에 확고히 서있어야 한다. 생활을 창조하는것도 인간이며 생활을 향유하는것도 인간이다. 사회현상은 다 인간에 의하여 발생하고 인간의 주동적인 역할에 의하여 변화발전한다. 현실을 주체의 관점에서 보고 그리는 문학에서는 화폭의 중심에 인간을 내세우고 뚜렷이 부각하여야 한다.
 인간은 생활을 떠나 존재할수 없지만 인간과 생활이 서로 같은 위치에 있는것은 아니다. 인간은 생활에서 주인의 위치에 있다. 인간이 있고 생활이 있다. 문학에서 모든 생활현상은 다 인간을 중심에 놓고 펼쳐져야 하며 인간형상에 복종되여야 한다.
 문학에서 인간을 그린다는것은 그의 성격을 그린다는것이다. 문학에서 인간을 화폭의 중심에 세운다는것은 결국 그의 성격을 위주로 하여 형상을 창조하는것을 말한다. 문학은 사건이 아니라 성격을 위주로 하여 형상을 창조하여야 한다.
 지난 시기에는 인간을 물질세계의 한 부분으로 취급하면서 인간과 다른 대상사이에 원칙적인 계선을 긋지 않았다. 성격과 사건에 대한 문제도 통일적인 관계를 위주로 보면서 두 범주를 인간형상이라는 하나의 테두리속에서만 취급하였다. 성격과 사건의 통일성만 보고 그사이에 계선을 긋지 않은데로부터 성격을 특별히 강조하는 문제를 창작원칙으로 내세우지 못하였다.
 성격을 위주로 내세우지 않으면 작품이 인간학의 본성에도 맞지 않게 된다. 작품에서는 성격을 그린다고 하여 어떤 경우에나 사건이 그에 복종되는것이 아니며 고분고분 따라오는것이 아니다. 문학작품에서 성격과 사건의 관계를 잘못 풀면 사건이 성격을 묻어버릴수도 있다.
 성격과 사건은 서로 유기적으로 련관되여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일련의 특성이 있다. 성격의 운동에 의하여 사건이 발생발전하고 사건을 통하여 성격이 드러나고 발전한다는것은 성격과 사건사이에 유기적인 련관성이 있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격과 사건사이에는 엄연한 구별이 있다. 성격이 보다 내적이고 본질적인것이라면 사건은 보다 외적이고 현상적인것이다. 성격이 보다 주동적인것이라면 사건은 보다 피동적인것이다. 성격을 기본으로 보는가 사건을 기본으로 보는가 하는것은 결국 본질적인것과 현상적인것, 주동적인것과 피동적인것에서 무엇을 기본으로 보고 내세우는가 하는 문제에 귀결된다. 성격과 사건의 관계에서 성격을 기본으로 보는것은 객관적존재에서 인간을 기본으로 보는 관점이며 현상적인것보다 본질적인것을 위주로 보는 관점이다.
 문학에서 사건보다 성격에 근본적인 의의를 부여하는것은 문학의 발전과 인민대중의 미의식발전의 합법칙적인 요구이다.
 추상적인 사유능력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에 있던 인류발전의 낮은 단계에서는 사람이 주위세계를 직관적으로 감수하는데 머물렀으며 이러한 의식상태가 그대로 반영된 당시의 예술작품은 주위세계의 사물현상을 단순하게 모방하는것으로 일관되였다. 사물현상을 파악하는데서 사람의 인식능력은 시대가 발전할수록 커지지만 그 과정이 매우 더디게 점차적으로 진행되기때문에 주위세계를 현상 그대로 모방하던 예술의 흔적도 오래동안 인류문화에 남아있었다.
 오늘 우리 시대의 건전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것을 직관적으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깊이 파고들려고 한다. 문학작품을 읽어도 인물의 성격에 끌려 읽지 아기자기한 사건적인 이야기나 보자고 읽는것이 아니다. 문학은 반드시 성격위주의 방향으로 나가야 현대적미감에 맞을수 있다.
 사건보다 성격을 위주로 내세우기 위하여서는 작품에서 성격형상수준을 결정적으로 높여야 한다.
 성격을 위주로 형상하는 문제는 작품에서 사건보다 성격이 상대적으로 우세하기만 하면 풀리는것이 아니다. 성격을 내세운다고 하여 사건을 홀시하는것으로써 성격형상을 부각하려는것은 작품자체를 말아먹는 길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사건보다 성격에 더 매혹되게 하자면 성격형상수준을 높이는데 모를 박아야 한다.
 사건보다 성격을 위주로 내세우기 위하여서는 종자의 요구를 성격을 그리는데 집중시켜야 한다.
 종자는 작품의 기본형상선을 주도하는것만큼 성격형상도 그와 밀착되여야 작품의 주선을 탈수 있다. 종자는 원래 주인공을 비롯한 인물의 성격형상을 통하여 밝혀지므로 아무리 이야기를 흥미있게 엮고 극을 치밀하게 꾸며나간다 하여도 인물의 성격을 살려내지 못하면 종자를 제대로 밝혀낼수 없다. 그렇다고 하여 인물의 성격이 다만 종자를 밝히기 위한 수단으로만 되는것은 아니다. 성격은 형상의 중심으로서 독자적인 몫을 가지고 다른 모든 형상에 주동적으로 작용하며 자체의 고유한 인식교양적목적을 실현한다. 인물의 성격은 종자의 요구를 집중적으로 체현하여야 화폭의 중심에 설수 있으며 작품의 주제사상을 밝히는데서 주동적인 역할을 할수 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에는 일제의 간도《토벌》, 항일유격대의 성시공격작전, 지하혁명조직의 폭동조직 같은 여러가지 사건이 그려지고있다. 이러한 사건은 물론 당시의 실재한 력사적사건에 기초하여 진실하고 의의있게 형상되였지만 인물의 성격이 사건보다 인상깊게 안겨오는것은 수난의 《피바다》를 투쟁의 《피바다》로 만들어야 한다는 종자의 요구를 거기에 집중적으로 체현시킨것과 많이 관련된다. 이 작품은 성격이 종자의 요구를 집중적으로 체현할 때 종자도 살고 성격도 산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사건보다 성격을 위주로 내세우기 위하여서는 작품의 구성을 성격발전의 력사로 되게 엮어나가야 한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줄거리를 사건줄거리와 같은것으로 리해하고있는데 이야기줄거리와  사건줄거리는 같은것이 아니다. 작품의 이야기에는 사건만 있는것이 아니라 일화와 생활세부, 인물의 심리와 경력 같은것도 있다. 다시말하여 작품의 이야기에는 생활의 흐름을 이루는 모든 내용이 다 포함될수 있다. 사건이 발생발전하고 해결되는 과정은 이야기줄거리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이야기줄거리는 이러저러한 사건의 단순한 련결이 아니라 인물의 성격과 생활의 필연적인 발전과정이다. 이야기줄거리는 이야기가 시작되여 전개되는 과정에 인물관계가 맺어지고 발전해가면서 이루어지는것만큼 인물들의 호상관계와 성격발전과정이 그대로 이야기줄거리로 되도록 구성을 잘 꾸며야 한다. 작품에서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는 등장인물들의 성격발전과정에 따라 이야기줄거리를 엮고 성격과 성격의 호상관계에 의하여 사건과 갈등, 일화가 생겨나고 발전하도록 구성을 짜야 한다.
 감정조직을 구성의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는것도 구성이 성격형상을 기본으로 하여 엮어져야 한다는데로부터 흘러나온 요구이다. 감정조직은 성격의 본질을 정서적으로 드러내는 형상방법이다. 감정은 사상과 함께 인간의 내면세계를 이루는것만큼 감정을 떠나서는 내면세계를 제대로 밝힐수 없으며 따라서 인물의 성격을 진실하게 그려낼수 없다. 감정조직이 잘되면 모든 인물의 성격이 생동하게 살아나면서 현실에서와 같은 진실감을 줄수 있다. 사건본위의 문학에서는 주로 사건조직을 구성의 기본으로 보면서 사건에 매달리기때문에 인간의 사상감정을 깊이있게 그려내지 못하고 사건을 가지고 이야기를 흥미본위로 꾸미는 일이 적지 않다. 사건조직은 어디까지나 인물관계를 맺어주며 인물들의 행동을 조건짓는 생활적기초를 마련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사건조직은 반드시 감정조직의 기초로 될 때에만 성격형상에 이바지할수 있고 감동을 줄수 있다.
 인물을 그리는데서 힘을 넣어야 할 첫째가는 대상은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작품의 인물형상집단을 대표하는것만큼 그의 성격이 어떻게 그려지는가 하는데 따라 성격형상의 전반적인 질이 좌우된다. 구성을 아무리 인간성격의 발전과정에 따라 엮으려 하여도 주인공선을 돋구지 않을 때에는 성격들이 전반적으로 사건선에 눌리울수 있다.
 구성에서 주인공은 여러 인물을 련결시키고 끌고나가는 중심에 서있어야 한다. 주인공선을 돋구려면 작품의 기본문제를 해결하는데서 주인공이 주동적인 역할을 놀게 하며 다른 인물과의 관계에서도 중심에 서게 하여 그가 움직이는데 따라 다른 인물이 움직이게 하여야 한다.
 성격을 위주로 하여 구성을 엮는 문제는 소설을 비롯하여 서사적요소가 많은 작품일수록 절실하게 제기된다. 력사적으로 볼 때 성격문학이냐 사건문학이냐 하는 문제는 소설문학이나 극문학과 같은 형태에서 심각하게 제기되였다. 다른 어느 문학보다도 사건을 많이 다루는 소설이나 극문학에서 성격과 사건의 호상관계를 잘 풀어나가는데 더 깊은 관심을 돌려야 한다.
 문학에서는 성격을 위주로 내세우면서도 사건처리를 잘하여야 한다.
 문학작품에는 기본사건도 있고 부차적사건도 있으며 력사적사변과 같은 큰 규모의 사건도 있고 생활의 작은 토막사건도 있다. 성격을 위주로 한다는것은 결코 사건을 무시해도 된다는것이 아니다. 사건은 성격이 발현되는 생활의 한 요소이다. 사건을 무시하면 성격이 생활적인 바탕을 잃을수 있다. 사건을 통하여서도 생활의 본질과 합법칙성을 보여줄수 있고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지식과 교양을 줄수 있다. 특히 일정한 력사적사변이나 력사적사건을 취급하는 경우 해당 력사에 대한 깊은 지식을 주기 위하여서는 사건을 잘 그리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일정한 력사적사변을 줄거리로 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를 수록한 총서 《불멸의 력사》중의 장편소설들은 성격형상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매 력사적사변을 진실하고 깊이있게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수령님의 혁명력사에 대한 깊은 인식을 주고있다.
 문학작품에서 사건은 큰 의의를 가지지만 성격형상과 결부되지 않고서는 자기의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문학에서 사건은 성격창조의 수단으로 된다. 사건은 사회적으로 의의있는것이여야 할뿐아니라 인물들의 성격창조에 이바지할수 있게 그려져야 한다. 성격은 의의있는 사건과 생활의 흐름을 타고 성장발전하는 과정으로 그려져야 한다. 거대한 력사적사건을 라렬하는것으로 한몫 보려는 경향도 사실은 성격형상을 무시하고 사건조직 일면에만 치우치는 현상과 관련되여있다. 인간은 생활의 주인인 동시에 사건의 주인이다. 사건은 인간의 호상관계와 활동에 의하여 생겨나는것만큼 사건묘사의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성격이 놓여있어야 한다.


3) 형상의 힘은 진실성과 철학성에 있다
  

진실성은 문학의 본성적요구이다. 문학작품은 인간생활을 진실하게 반영하여야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 인류문화사에 길이 전해질수 있다. 아무리 묘사가 세련되고 구성이 째인 작품이라 하여도 그것이 생활을 진실하게 반영하지 못한것이라면 쓸모가 없다. 문학작품창작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의 하나가 진실성문제이다. 당정책적인 대가 바로서고 작가의 사상적의도가 좋은 경우에도 형상이 진실하지 못한 작품은 대중의 사랑을 받을수 없다.
 문학작품의 진실성은 작품에 그려진 생활이 현실과 같은가, 같다면 어느 정도 같은가 하는것을 재는 척도로 된다. 작품에 펼쳐진 생활이 현실생활과 같으면 진실한것이고 다르면 진실하지 못한것이다.
 문학작품에서 진실성을 살리자면 형상에 생활의 본질을 반영하여야 한다. 작품에 그려진 형상이 생활과 현상적으로는 같아도 생활의 본질에 어긋날 때에는 진실성을 가질수 없다. 오직 형상이 생활의 본질과 일치되고 본질적인 세부로 차넘쳐야 작품이 진실하게 된다.
 작품의 형상이 생활의 본질적인것과 일치되게 하기 위하여서는 본질적인것과 형상적인것과의 호상관계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져야 한다. 물론 우리 작가들이 본질과 현상의 호상관계와 작품의 진실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도에 대하여 모른다고는 볼수 없다. 리론적으로 뻔히 알면서도 막상 창작에 들어가서 생활을 진실하게 형상하지 못하는것은 작가의 창작태도와 능력과 관련된다.
 생활을 진실하게 그리는가 못그리는가 하는 문제는 창작실무에 대한 문제이기전에 작가의 량심과 직접 관련되는 보다 중요한 문제이다.
 진실한 사람만이 진실한 말을 할수 있고 진실한 작가만이 진실한 작품을 써낼수 있다. 작가는 량심을 가지고 사회앞에 나서야 하며 시대의 량심을 대변하여 대중을 감화시켜야 한다.  량심을 버린 작가는 현실에 진심으로 공감할수 없고 따라서 가식과 거짓을 가지고 작품을 쓰게 된다. 작가라면 응당 진실한 인간의 본보기, 가식과 변심을 모르는 순결한 량심의 대변자로서 현실을 바로보고 그려야 한다.
 작가의 창작적량심은 자기 작품을 인민앞에서 책임지려는 립장과 태도에서 나타난다. 작가는 자기가 창작하는 작품이 인민에게 미칠 영향을 깊이 생각할줄 알아야 한다. 작가가 진실하지 못한 작품을 써내면 인민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작가는 문학작품의 진실성을 보장하는 문제가 단순히 그 사상예술적수준을 높이는 문제인것이 아니라 자신을 혁명화하며 대중을 교양하는 문제와 관련되여있다는것을 깊이 명심하여야 한다.
 생활을 진실하게 반영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문제는 작가의 생활체험이 얼마나 깊은가 하는데 따라 많이 좌우된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탁상문학, 취재문학을 하는 현상을 없애는것이다. 현실을 모르거나 외면하고 작품을 쓰면 형상이 실지생활과 맞을수 없다. 현실에 잘 나가지 않고 기껏하여 신문기자처럼 필요한 자료나 취재하는것으로 현실체험을 대치하고있는 작가는 책상머리에 앉아서 작품의 어느 인물은 어떤 경로를 통하여 어떻게 처리하고 어느 사건은 어떤 굴곡을 거쳐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하는것까지 미리 정해놓은 다음 거기에 현실자료를 들어맞춘다. 이렇게 쓴 작품은 다 읽지 않아도 어느 인물은 어떻게 처리될것이고 어느 사건은 어떻게 해결될것인가 하는것이 빤히 알린다. 작가는 자기가 일단 설정해놓은 인물이나 사건이 앞으로 어떤 결과에 도달할수 있겠는가 하는것을 예견할수는 있지만 미리 구체적으로 정해놓지는 말아야 한다. 인물과 사건을 설정해놓은 다음에는 그 발전과정을 생활과 성격의 론리에 따라 인내성있게 파고들어가 스스로 결과에 이르도록 하여야 한다.
 문학작품은 진실하여야 할뿐아니라 철학적깊이가 있어야 한다.
 오늘 우리 인민의 사상정신세계는 매우 높으며 생활정서도 풍부하고 고상하다. 인민은 아름답고 고상한 인간생활의 깊은 세계가 뜨겁게 안겨오며 두고두고 삶의 참뜻을 되새겨보게 하는 훌륭한 작품을 요구하고있다. 인민의 미학적요구를 충족시켜주며 그들이 옳바른 혁명관과 인생관을 가지도록 하자면 철학적깊이가 있는 작품을 창작하여야 한다.
 형상의 철학성을 보장하는것은 원래 문학의 본성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필수적요구이다. 문학은  예술적화폭을 통하여 인간의 운명문제에 해답을 주는 생활의 철학이다. 인간의 운명문제는 문학이 다루어야 할 문제인 동시에 철학상의 문제이다. 그 어떤 인간의 운명문제도 인간에 대한 철학적 견해와 립장을 떠나서는 풀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운명문제에 해답을 주는 문학은 철학성을 띠게 된다.
 문학이 인간의 운명문제에 해답을 주는 생활의 철학으로 되자면 마땅히 철학적깊이가 있어야 한다.

문학작품에서 철학성은 작가에 의하여 새롭게 발견되고 형상적으로 심화된 생활진리의 깊이이다.
 문학작품에서 철학성이란 말은 어느 한 작품을 놓고 쓸수도 있고 어느 한 세부나 대사 하나를 놓고 《철학적인 세부》, 《철학적인 대사》라는 식으로 쓸수도 있다. 작품전반을 놓고 말하든 어느 한 세부나 대사에 대하여 말하든 철학성이 있다고 하는것은 거기에 작가의 새로운 발견이 깃들어있다는 의미와 작가가 발견한 생활의 진리가 매우 심오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작품에서 제기하는 인간의 운명문제가 심각하고 그에 해답을 주는 사상이 심원하며 형상이 하나를 통하여 열, 백을 헤아릴수 있게 하는 깊이를 가졌을 때 철학성이 있다고 말한다.

작품의 철학성은 철학적인 내용을 취급하였다고 하여 생겨나는것이 아니며 철학적인 양상을 띤다고 하여 보장되는것도 아니다. 지난날 많은 작가와 문예리론가들은 철학적인 문제를 취급하였거나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을 《철학적인 작품》, 《철학성이 있는 작품》이라고 하였으며 이런데로부터 한때 구라파에서는 《철학소설》이라는 소설형태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그들이 이른바 《철학적인 작품》이라고 한 작품가운데서 진실로 커다란 예술적감동을 주고 깊은 철학적사색에 잠기게 한 작품은 얼마 없다.
 영화문학 《최학신의 일가》는 철학적인 론리를 푼 작품도 아니고 철학적인 양상을 띠는 작품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한생을 두고 미제를 《하느님》처럼 믿다가 온 집안이 몰살당하는 한 목사일가의 비극적운명을 통하여 미제와는 결코 한하늘을 이고 같이 살수 없다는 생활의 심오한 진리를 철학적으로 깊이있게 밝히였다. 철학성은 작품이 밝혀내는 생활철학의 깊이이다.
 문학작품의 철학성은 형상의 진실성과 밀접히 련관되여있다. 문학작품에서는 생활을 진실하게 그리면 그릴수록 철학성이 더욱 깊어지며 화폭속에 의의있고 심오한 사상이 구현되면 될수록 진실성이 더욱 철저히 보장된다.
 문학에서 철학성을 구현하자면 철학적깊이가 있는 종자를 골라잡고 잘 가꾸어야 한다. 철학적깊이가 있는 종자를 골라잡는것은 작품의 철학성을 담보하는 선결조건이다. 작품의 철학성은 생활의 본질과 합법칙성을 밝혀내는 사상과 형상의 깊이에 달려있다. 사람의 참된 삶이란 무엇이며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이 자기운명을 개척하기 위하여서는 어떻게 살며 투쟁하여야 하는가 하는 진리를 예리하고 심각하게 제기하고 높은 예술적경지에서 심오하게 해명하여야 작품의 철학적깊이가 보장된다. 종자는 바로 작가가 발견하고 작품에 심어놓은 생활의 사상적알맹이인것만큼 작가가 어떤 종자를 골라잡는가 하는데 따라 작품의 철학적깊이가 결정된다.
 인간문제의 심오성은 작품의 철학적깊이를 담보하는 주되는 요인의 하나이다. 작품의 철학적깊이는 거기에 담겨진 인간문제가 얼마나 의의있고 심오한가 하는데 따라 많이 좌우된다.
 구성과 세부,대사에 이르기까지 형상의 모든 요소들을 심도있고 특색있게 잘 가꾸어야 한다. 그래야 종자의 선택으로부터 시작하여 그것이 꽃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의 전과정에서 철학적깊이를 보장할수 있다.
 작가는 철학가가 되여야 하고 생활의 정력적인 탐구자가 되여야 하며 예술언어의 능수가 되여야 한다. 높은 정치적식견과 철학적안목을 지닌 작가라야 사람으로 하여금 참된 삶과 운명개척의 길을 두고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하는 진실하고 철학적깊이가 있는 훌륭한 작품을 창작할수 있다.
 

4) 문학의 지성세계를 높여야 한다


 문학작품은 작가의 지적창조물이다. 문학작품은 단순히 객관세계를 수동적으로 복사하는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작가의 견해와 립장을 반영한다. 같은 하나의 현실을 놓고도 작가가 그것을 어떤 수준에서 평가하고 그리는가 하는데 따라 작품의 질이 좌우된다. 작가가 높은 지성세계에서 현실을 분석하고 잘 형상한 작품은 사상예술적으로 높은 경지에 오를수 있고 사람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감화시킬수 있다.
 문학의 지성도는 나라와 민족의 문명수준을 표현하는 중요한 척도이다. 문학의 지성도가 얼마나 높은가 하는것만 보고도 그 시대가 도달한 문화수준과 그 나라, 그 민족의 문명정도를 가늠할수 있다. 문학은 사람의 문화수준과 문명정도를 표현할뿐아니라 그것을 끊임없이 높여나가는 선도적역할을 한다. 문학의 지성도를 높이면 그만큼 사람을 높은 지성을 가진 문명하고 고상한 인간으로 만들수 있다.
 문학의 지성세계를 높이는것은 현시대 사람들의 절실한 미학적요구이다. 사람의 사상의식과 문화적소양은 시대와 함께 끊임없이 발전한다. 인간의 자주적인 사상의식과 창조적능력이 높아지는것은 그만큼 인간의 지성도가 높아진다는것을 의미한다.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과 온 사회의 인테리화가 힘있게 추진되고 과학기술이 빨리 발전하고있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사람의 지성도가 비할바없이 높아지고있다. 문학예술에 대한 사람의 조예도 대단히 깊어지고있다. 문학예술활동이 대중화되고 텔레비죤방송으로 문예작품이 많이 보급되고있기때문에 청년들은 물론, 늙은이와 어린이들도 날마다 문학예술작품을 감상할수 있게 되였다. 누구나 목격하고있는 일이지만 지금은 웬만한 어린이나 늙은이도 텔레비죤방송에서 방영되는 영화를 보고 무엇이 잘되였다 못되였다 하면서 평가하고있다. 작가가 종래의 낡은 형상방법, 낮은 지성도를 가지고는 우리 시대 사람들의 지성세계를 온전히 그려낼수 없고 그들의 높은 지적요구에 만족을 줄수 없다. 결국 문학의 지성도를 높이는것은 시대발전의 합법칙적인 요구이다.
 문학의 지성도는 한마디로 말하여 형상세계의 리성적인 높이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지성적인것은 리성적인것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문학의 형상은 리성적인것과 감성적인것의 통일로 이루어진다. 물론 문학은 그자체의 미학적특성으로 하여 감성적인 요소를 매우 중요시한다. 그러나 감성적인 요소는 리성적인 요소의 주도적작용을 떠나서는 작품의 사상예술성을 높이는데 아무런 기여도 할수 없다. 작품의 사상예술적질을 담보하는데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리성적인것의 높이가 다름아닌 작품의 지성도이다.
 지성도가 높다낮다하는것은 작품에 보통사람들이 알고있는것보다 얼마나 더 깊고 풍부한 지식이 담겨져있는가, 사람들이 경탄하고 높이 올려다볼만한 고상한 미의 세계가 개척되였는가, 형상기교와 문화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한마디로 말하여 작품의 세계가 높은가 낮은가 하는데 따라 결정된다.
 작품의 지성세계는 내용과 형식의 모든 요소를 통하여 종합적으로 표현된다.
 지성인의 기본표징의 하나가 뜻이 높은데 있는것처럼 문학작품도 사상적내용이 심오하고 고상하여야 높은 지성세계를 보장할수 있다. 작품의 지성세계를 높이는것이 현대문학의 추세로 되고있지만 그 방식에서는 계급적립장과 미학관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부르죠아반동작가들은 작품의 지성도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작품을 인위적으로 까다롭고 몽롱하게 꾸며대는데 신경을 쓰고있으며 지성도를 내용과 동떨어진 그 누구도 리해할수 없는 형상을 빚어내는데서 찾고있다. 그들은 작품에 까다롭고 모호한 내용을 담아야 이른바 《지성》이 높은 사람의 구미에 맞을수 있고 《지성인》들에게만 통하는 지성적인 작품으로 될수 있다고 보고있다. 인민대중에게 통하지 않는 작품은 한푼의 가치도 없으며 그런 작품에서는 지성세계를 론의할 여지조차 없다. 그들이 내용을 일부러 어렵고 애매하게 꾸미는것은 보여주려는 사상이 저속하고 반동적이기때문이다. 형식의 미를 가지고 아무리 롱간을 부려도 내용이 속되면 작품전반의 지성세계가 저조해지기 마련이다. 문학작품에 고상한 사상을 담는다고 하여도 형식이 저조하면 그것을 제대로 전달할수 없으며 작품의 지성도도 보장할수 없다. 문학작품은 적어도 생활을 그리는 수준이 보통상식에서 훨씬 벗어져야 하며 사상적으로 건전하고 예술적으로 고상하여야 한다.
 문학의 지성세계를 높이자면 새로운 철학세계와 미의 세계를 개척해나가야 한다.
 문학작품에 작가에 의하여 발견된 새로운 생활철학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것은 철학성과 관계되는 문제인 동시에 지성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로 된다. 철학적발견은 인간의 리성적활동의 정화물이다. 생활의 귀중한 진리를 담은 심오하고 독창적인 내용이 밝혀졌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작품의 높은 지성도를 느낄수 있다. 깊고 새로운 생활철학을 담은 작품은 사람들을 사색하게 만든다. 작품은 모든 사람을 깊은 사색의 세계에로 이끌고갈만한 심오한 문제성을 안고있어야 한다. 작품에 생활철학이 담겨져있다는것은 거기에 작가의 사색이 비껴있다는것을 의미하며 바로 그 사색의 심도에 의하여 작품의 지성도가 좌우되는것이다.
 문학작품에서는 아름답고 고상한 미의 세계가 펼쳐져야 한다. 문학은 인간생활의 미를 찾아내고 그리는 사회적의식의 한 형태이다. 작가가 현실에서 무엇을 아름다운것으로 보며 그것을 얼마나 높은 수준에서 그려내는가 하는것은 작품의 지성도를 재는 중요한 척도로 된다. 주체의 미학관은 높은 자주의식과 창조적능력을 가진 인간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보며 그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가장 아름다운것으로 본다. 우리 문학에서는 자주적인 인간과 그의 생활을 미적탐구의 대상으로 삼고 그것을 높은 미학적리상으로 그려내야 한다. 문학작품에 반영되는 작가의 미학적리상은 읽는 사람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킬수 있는 고결하고 숭고한것으로 되여야 하며 우리 시대의 미학적요구에 만족을 줄만큼 높은 경지에 올라서야 한다.
 문학의 지성세계를 높이기 위하여서는 작품에 깊고 풍만한 인식적내용을 담아야 한다.
 작품에는 사람이 새롭게 알고 받아들일만한 풍부한 지식이 담겨져야 한다. 사람은 작품을 통하여 사상정서적으로 교양받을뿐아니라 인간과 사회, 자연에 대하여 자기가 모르던것을 새로 파악하기도 하고 이미 가지고있던 지식을 더 깊이 다지기도 한다. 지성도가 높은 작품일수록 거기에 새로 배울것이 많다. 사람은 작품에서 자기보다 더 높은 지적세계를 알게 될 때 그에 매혹된다.
 작품에 풍부한 지식을 담는다고 하여 이것저것 얻어들은 세계고사나 과학적인 자료를 베껴넣는 일이 없어야 한다. 유식을 자랑하는것은 지성도를 높이는것과 아무런 인연이 없다. 유식을 자랑하는것자체가 무식을 드러내는것이며 그것은 도리여 작품의 지성도를 떨군다. 작품에 담겨지는 세계에 대한 지식은 내용의 뗄수 없는 요소로 되여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야 한다.
 문학의 지성세계를 높이기 위하여서는 인물의 리지적인 성격을 옳게 살려내야 한다. 이것은 현대의 인간을 그리는 경우에 더욱 필수적으로 제기되는 요구이다. 문학작품의 지성도를 높이는 문제와 어떤 형의 인간을 형상의 대상으로 삼는가 하는 문제가 어느 경우에나 일치되는것은 아니다. 작품에서 리지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을 그릴수도 있고 지성이 낮은 인물을 그릴수도 있다. 어떤 형의 인간을 그리든지 그에 대한 작가의 평가와 리상의 높이가 중요하다. 지성이 낮은 인간을 그려도 그를 높은 지성세계에서 형상해낸다면 작품은 충분히 지성도를 보장할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인물선택과 지성수준이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볼수는 없다. 사실주의는 작품에 시대의 전형을 내세울것을 요구한다.시대의 특징과 사회의 본질적면모를 보여줄수 없는 인물을 작품에 내세우는것은 그자체가 작가의 저조한 관점과 무식을 의미하며 작품의 지성도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게 된다.
 현대인을 전형화할 때 작가는 응당 그들의 리지적인 측면을 강조하여야 한다. 해방후 민주건설시기에는 장편소설 《땅》에 나오는 곽바위같은 인물을 그 시기 농민의 전형으로 보았고 사회주의개조시기에는 장편소설 《석개울의 새봄》에 나오는 김창혁과 같은 인물을 그 시기 농민의 전형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적지 않은 세월이 지난 80년대나 90년대의 농민전형은 곽바위나 김창혁과 같은 인물보다 훨씬 높은 의식수준과 기술, 문화적소양을 갖춘 지성적인 인물로 되여야 한다. 우리 사회에 있을수 있는 부정인물인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생활을 그릴 때에는 부정인물에 대해서도 그들이 가지고있는 리지적인 측면을 강조하여야 하며 교양개조과정을 보다 진지하고 격이 있게 그려내야 한다.
 문학작품의 지성세계를 높이기 위하여서는 형상을 구성하고 전개하는데서도 사색을 깊이하여야 한다.

형상수단과 수법, 형상기교를 높은 수준에서 리용하는것은 작품의 지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조건의 하나이다. 촌티를 벗지 못한 작품, 누구나 쓸수 있는 수법으로 씌여진 작품, 작가의 독특한 재간이 엿보이지 않는 작품은 례외없이 사람들로부터 지성세계가 낮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문학작품의 지성세계는 작가의 지성도의 한계를 벗어날수 없다. 작품의 지성수준은 전적으로 작가의 지성도에 의해 결정된다.
 작가는 독자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사람들을 가르치자면 그들보다 아는것이 많아야 한다. 작가는 백을 알고 하나를 가르쳐야지 하나를 알고 하나를 가르치려 하여서는 안된다. 아는것이 밭으면 인차 밑천이 드러난다.
 많이 아는것만 가지고는 안된다. 지식이 많은 사람이라고하여 다 지성이 높은것은 아니다. 풍부한 지식은 사상문화적인 높은 수양과 결합되여야 한다. 아는것이 많고 수양이 높은 작가는 작품을 써도 지성이 있는 좋은 작품을 쓴다.
 작가는 생활의 박식가로, 뜻이 높고 수양있는 문화인으로 되여야 하며 생활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철학적인 안목과 지성적인 사고력, 높은 형상능력을 지니고 우리 문학의 지성수준을 더욱 높이는데 힘있게 이바지하여야 한다.


5) 구성이 좋아야 작품이 산다


 현실에서 사람은 서로 밀접한 련계를 가지고 끊임없이 변화발전하는 생활의 흐름속에서 살아가고있다. 생활을 현실에서와 같이 구체적으로 생동하게 보여주어야 하는 문학작품에서는 인간의 호상관계와 그 변화발전과정을 보여주는 구성작업에 깊은 주목을 돌려야 한다.
 작품에 대한 작가의 구성은 구성작업에서 종합되고 그 기본테두리가 확정된다. 다 써놓은 작품이 뒤집혀져 처음부터 다시 쓰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대체로 작품의 골격을 이루는 구성의 대를 바로세우지 못한데 있다. 기둥이 바로서지 못한 집은 무너지기마련이다. 아무리 종자가 좋고 묘사가 잘되였다 하더라도 구성을 잘 엮지 못하면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격으로 작품이 뒤집히고만다.
 문학에서는 종자의 요구에 맞게 구성의 대를 바로세우는것과 함께 구성을 예술형상의 생리에 맞게 엮는것이 아주 중요하다.
 문학작품을 하나의 산 유기체로 본다면 형상의 요소들을 싹틔워주는 종자는 물론, 화폭의 중심을 이루고있는 인간성격도 다 현실에서와 같이 살아숨쉬는 자체의 고유한 생리를 가지고있다. 예술형상의 고유한 생리는 종자나 인물의 성격에만 아니라 구성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구성을 예술형상의 생리에 맞게 엮는다는것은 인간관계, 갈등, 이야기줄거리를 모두 생명유기체와 같은 산 형상에 고유한 생활의 흐름에 맞게 짜나간다는것을 의미한다.
 종자의 요구에 따르는 작품의 구체적인 생리를 무시하고 구성을 주관주의적으로 꾸며내서는 안된다. 주관주의에 사로잡혀 생경한 론리만 따지면 구성이 예술형상의 생리에 맞게 될수 없고 작품의 전체 형상이 메말라버리고만다.
 예술형상의 생리는 일정한 론리적바탕을 가진다. 론리를 떠난 생리란 있을수 없다. 다만 그 론리가 추상적인 론리인가 아니면 유기체와 같은 산 형상에 고유한 론리인가 하는데 차이가 있을뿐이다.
 문학작품의 구성에서 론리는 형태상 특성에 따른다. 작품마다 형태상 특성에 따르는 자기의 고유한 구성원리를 가지고있다. 소설과 시의 구성이 다르고 같은 소설문학이라고 하여도 단편소설과 중편소설, 장편소설의 구성이 다르다.
 구성에서 론리는 작품의 종자와 그에 담게 될 인간생활의 특성에도 관계된다. 종자는 작품의 내용을 꾸리고 형식의 요소를 내용에 맞게 통일시키는데서 기초로 된다. 종자의 요구에 가장 알맞는 구성형식은 하나뿐이다. 작가는 하나의 인물관계, 한토막의 일화를 설정하여도 그것이 종자의 요구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 하는것을 따져보아야 한다. 작품마다 서로 다른 인간생활을 취급하는데 따라 그에 작용하는 론리도 서로 달라진다. 현실에서 천태만상을 이루고있는 하나하나의 성격과 생활에는 사회와 집단에 공통적으로 작용하는 일반적합법칙성과 함께 자기의 고유한 특성이 있다.
 이 모든 요구로 하여 구성의 론리는 작가의 주관에 의하여 좌우될수 없다.
 작가는 자기의 사상미학적의도와 작품에 담아야 할 성격과 생활의 요구를 일치시키고 그것을 통일적으로 해결할수 있게 구성을 세워야 한다. 창작과정에는 작가가 자기의 사상미학적의도에 따라 주인공이 희생되는것으로 구성을 엮으려고 하지만 그의 성격론리로 보아 도저히 희생시킬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런 때 주인공의 설정자체를 달리하기전에는 그를 희생되는 인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구성의 요구는 엄격하며 객관적이다. 작가가 아무리 큰 욕심을 가지고있어도 그것이 예술형상의 생리에 맞지 않을 때에는 쓸모가 없다.
 구성은 예술형상의 생리에 맞아야 작품마다 서로 다르게 될수 있다. 예술형상의 생리자체가 작품마다 서로 다르다. 아무리 솜씨있는 작가라고 하여도 해당 작품에 고유한 예술형상의 생리를 터득하기전에는 구성작업에서 한걸음도 전진할수 없다. 작품에 따르는 고유한 생리에 맞는 인물관계와 갈등, 이야기줄거리를 엮어나가야 구성을 비반복적인것으로 만들수 있다.
 구성은 예술형상의 생리에 맞아야 진실하게 될수 있다. 구성을 형상생리에 맞추는것은 결국 작품이 담고있는 구체적인 생활의 요구에 튼튼히 발을 붙이게 하는것이다. 작가는 주관에서 벗어나 구성을 형상의 생리에 맞게 꾸며야 생활을 그대로 진실하게 보여줄수 있다.
 형상의 생리에 맞게 빈틈없이 엮어진 구성은 어느 한 요소라도 들어내거나 바꾸어넣을수 없게 유기적으로 튼튼히 맞물려 있는것이 특징이다. 작품을 심의할 때 아무리 리치에 맞는 의견이라 하여도 그것을 함부로 내리먹일수 없는것은 작품마다 자기의 고유한 생리가 있기때문이다. 작가는 작품의 어느 한 요소나 부분이라도 도저히 다른것으로 바꾸거나 들어낼수 없게 유기적으로 빈틈없이 맞물려야 한다.
 문학작품의 구성은 형상의 생리에 맞게 되여야 할뿐아니라 깊이있게 맞물려져야 한다.
 작품의 구성이 깊이있게 되여야 그 내용도 깊어진다. 어떤 작가는 작품의 구성을 얕은 오해선으로 엮어놓군하는데 그런 작품은 대체로 진실성이 부족할뿐아니라 깊이도 없다. 오해의 수법도 격에 맞게 쓰면 효과를 낼수 있지만 작품전체를 오해의 련속으로 일관시킬 때에는 흔히 내용이 천박해져서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수 있다. 일부 문학작품이 첫끝만 보아도 뒤가 빤드름히 내다보이는데 이것은 그만큼 구성의 깊이가 얕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다. 문학작품의 철학적깊이는 구성의 심도와도 관련된다. 구성을 깊이있게 엮으면 그만큼 사상적내용을 심도있게 보여줄수 있다.
 구성의 깊이를 보장하는데서 인물관계를 그들의 인생관의 관계로 깊이 파고드는것이 중요하다.
 문학작품의 인물관계는 실무적인 관계가 아니라 사상적인 관계, 운명적인 관계로 되여야 한다. 그러자면 인물들의 관계를 그들의 인생관에 기초하여 깊숙이 맞물려놓아야 한다. 현실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제나름의 인생관을 가지고있으며 그것은 호상 교제하는 과정을 통하여 스스로 드러나기마련이다. 서로의 인생관이 드러날수 있게 인물들의 교감을 깊이있게 보여주어야 그들의 운명문제를 심오하게 밝혀낼수 있다.
 오늘 우리 인민은 당과 수령의 두리에 굳게 뭉쳐 하나의 사상과 리념에 기초하여 살며 투쟁하고있다. 그렇다고 하여 현실주제의 작품에서 사람의 인생관이 다 같은것으로 보면서 서로 구별되는 성격의 본질을 깊이 파고들지 않아서는 안된다. 같은 사상으로 교양받고있는 사람이라 하여도 그 준비정도에 따라 인생관의 깊이에서는 차이가 있다.
 적아간의 적대적갈등을 취급한 작품에서도 적의 정치적견해와 립장을 깊이있게 파헤쳐야 한다.물론 작품창작에서 원쑤의 형상을 희화화할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적에 대한 과소평가로 되거나 하나의 류형으로 도식화되여서는 안된다. 적대적인 부정을 그리는것이라고 하여 그 형상을 추물이나 짐승처럼 희화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 인민은 결코 그런 무맥한 추물이나 짐승과 싸워 승리한것이 아니다. 적에 대한 과소평가는 승리자의 형상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력사적으로 우리와 맞다든 원쑤는 다 만만치 않은 적수였다. 원쑤들에게도 자기나름의 인생관이 있고 생활철학이 있다. 그들도 자기 부모처자를 사랑할줄 알고 자기 계급을 위하여 피를 물고 싸울줄 안다. 우리 인민이 진행한 두차례의 전쟁이 류례없이 준엄했고 우리 혁명이 걸어온 길이 간고했던것은 다 우리와 맞선 적들이 만만치 않았기때문이다. 문학작품에서는 마땅히 그러한 력사적사실을 실지 그대로 진실하게 재현하여야 한다. 적들의 추악성과 취약성만 강조할것이 아니라 우리와 적들사이의 인생관의 대결, 생활철학의 대결과정을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구성의 깊이를 보장하는데서는 그것을 조형미가 나게 립체적으로 엮는것이 중요하다.
 외곬을 타고 평면적으로 흐르는 구성은 조형미도 없고 립체미도 없으며 따라서 깊이도 보장할수 없다. 문학작품의 구성은 주선을 굵고 뚜렷하게 그어나가면서도 시공간적으로 겹놓인 지선이 주선을 중심으로 하여 튼튼히 맞물리게 되여야 한다.
 구성을 립체적으로 꾸미지 못하는 편향은 인물관계를 단순화하는데서 나타난다. 긍정인물은 미리부터 긍정적인 사람으로, 부정인물은 애초부터 부정의 딱지가 붙은 사람으로 기정사실화하거나 지어 이름까지 긍정인물은 듣기 좋게, 부정인물은 별나게 지어놓는 식으로 하여서는 안된다. 이런 작품은 처음부터 누구는 긍정인물, 누구는 부정인물이라는것이 미리 정해져있기때문에 그 결과도 어떻게 되리라는것이 빤히 내다보인다. 현실에서 사람의 긍부정관계는 결코 그렇게 간단하고 단순하게 얽혀져있는것이 아니다. 긍정적으로 나오는 사람가운데도 따져보면 부정적인 면이 없지 않고 부정적으로 나오는 사람가운데도 긍정적인 면이 한두가지가 아닌 사람이 적지 않다. 동지적단결과 협조가 사회관계의 기본을 이루고있는 우리 사회주의사회에서는 긍정인물과 부정인물이 미리부터 정해져있는것이 아니며 설사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 하여도 애초부터 부정인물로 찍어놓고 몰아주는 일이 없다. 작가가 이런 사회현실을 외면하고 긍부정의 인물관계를 그 어떤 틀에 맞추어 기정사실화하거나 단순화하면 작품이 읽을 맛이 없게 되는것은 물론, 현실을 외곡하는 결과를 빚어내게 된다.
 구성작업에 기울이는 작가의 노력이 크면 클수록 작품은 훌륭한 결실을 맺을수 있다.

6) 언어형상에 문학의 비결이 있다
 

문학은 언어의 예술이다. 문학은 오직 언어를 통하여 인간과 생활을 그리며 사상감정을 전달하는것만큼 읽는 사람들이 작가의 능란한 언어솜씨에 매혹되여 한문장한문장 눈을 밝혀가며 새겨나갈수 있게 되여야 한다. 아무리 큰 사상을 심어놓아도 문장이 읽을 맛이 없으면 독자의 마음을 끌수 없다.

지금까지 언어형상에 밝지 못한 작가가 사상예술적으로 성공한 작품을 써낸 례는 없다. 동서고금의 이름있는 작가는 다 언어의 능수였으며 민족어발전의 개척자였다. 우리 나라에도 언어의 예술가로서 빛나는 재보를 남긴 작가가 많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비롯한 항일혁명문학은 우리 말의 주체성과 민족성을 구현하고 인민대중의 자주적요구에 맞게 언어의 기능을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빛나는 본보기를 창조하였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에 나오는 대사와 시구절은 우리 문학이 대를 이어 계승발전시켜나가야 할 고귀한 언어유산이다. 작가는 우리 문학의 빛나는 언어전통을 이어받아 문학의 언어형상수준을 높이는데서 결정적인 전환을 일으켜야 한다.
 언어탐구와 형상에서는 주체적립장을 확고히 견지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언어는 인간생활의 힘있는 수단이다. 인간의 활동은 언어를 떠나서 이루어질수 없으며 사회적존재로서의 인간의 호상관계는 언어의 역할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언어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힘있는 무기로 된다.

말과 글이 있어야 사람들을 주체형의 인간으로 교양하는 사업도 잘할수 있고 경제와 문화,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 자연과 사회, 인간을 주체의 요구대로 개조해나갈수 있다. 언어는 민족성을 고수하고 발전시키는데서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한다. 피줄과 함께 언어가 같아야 한민족이라고 말할수 있으며 자기 언어의 순결성을 지켜나가는 민족만이 자주적으로 발전할수 있다. 민족어가 민족의 존망과 관련되는 사활적인것의 하나로 되기때문에 제국주의자들은 다른 나라를 침략할 때마다 모국어말살정책을 강요한다. 우리는 미제국주의자들이 추구하고있는 북과 남사이의 민족이질화책동을 결정적으로 짓부시고 우리 민족어의 순결성과 공통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적극 벌려야 한다.
 작가는 언어문제가 단순히 작품의 형상문제인것이 아니라 자기 민족, 자기인민의 자주성과도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라는것을 깊이 명심하고 언제나 주체적립장에서 어휘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어야 한다.
 언어형상에서 주체적립장을 견지하자면 인민대중의 의사와 요구에 맞는 언어를 탐구하고 살려써야 한다.
 우리 인민의 감정과 미감에 맞게 말하고 글을 쓰는것이 바로 언어에서 주체를 세우는것이다. 문학의 언어형상은 개별적인 사람들의 언어행위와는 다른 점을 가지고있다. 작품에서 언어는 인민대중을 대상하여 씌여지는것만큼 작가는 언제나 인민과 말하는 립장에서 언어를 탐구하여야 한다.
 문학언어는 알기 쉬워야 한다. 문학작품은 각이한 문화수준을 가진 광범한 인민대중이 누구나 다 보고 알수 있게 쉬운 말로 씌여져야 한다. 언어의 통속성은 문학작품의 인민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표징의 하나이다. 인민은 알기 쉬운 말로 생활의 진리를 표현할줄 아는 작가를 사랑하며 따른다.
 문학의 언어는 문화적이여야 한다. 문학작품이 인민대중의 구미에 맞으려면 알기 쉬우면서도 높은 문화성을 가져야 한다. 문학언어의 문화성은 여러 측면에서 나타난다.
 작품의 언어는 표현이 정확하여야 한다. 한 문학작품에서 어느 한 대상을 표현하는데 가장 알맞는 표현은 하나밖에 없다. 수많은 비슷한 표현가운데서 그 대상에 가장 적중한 하나의 표현을 찾아내는데 작가의 재능이 있다. 대상의 본질을 명중하는 적중한 어휘를 찾아내는 작가의 노력에 대하여 산더미같은 금광의 버럭속에서 한알의 금싸래기를 얻어내는 일과 비교하는 경우도 있다. 문장을 다듬는데 뼈심을 넣는 작가만이 보석처럼 빛을 내는 정확한 단어와 표현을 찾아낼수 있다. 우리의 문학은 문화어규범을 지키는데서 모범이 되여야 한다. 우리 말 규범은 민족어의 특징과 요구를 일반화하여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지켜야 할 언어사용준칙을 규제하고있다. 언어규범에 맞지 않는 부정확한 말은 사회의 언어규범화를 확립하는데 해로운 영향을 준다.
  문학의 언어는 정확하면서도 간결하고 명료하여야 한다. 글이 간결하고 명료하게 되려면 쓸데없이 설명을 덧붙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에 나오는 하늘중천에 솟은 달은 하나이건만 땅우에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서로 다르다는 시문장이나 영화문학 《군당책임비서》에 나오는 충신도 우리곁에 있고 간신도 우리곁에 있다는 대사같은것은 표현이 간결하지만 많은것을 생각하게 한다. 문학의 언어는 그 하나하나가 열, 백마디의 말로도 대신할수 없는 함축되고 명백한 표현으로 이어져야 한다.
 언어의 문화성을 높이자면 낡은 시대가 남겨놓은 비문화적인 언어를 없애버려야 한다. 언어는 오랜 세월 세대를 이어 물려온것이기때문에 거기에는 낡은 유물이 적지 않게 남아있다. 낡은 언어관습은 쉽사리 고쳐지지도 않는다. 언어에 남아있는 낡은 시대의 오물을 걷어내고 새로운 언어문화를 건설하는것은 하나의 혁명이다. 작가는 언어혁명을 선도하는 기수가 되여 온갖 속되고 비문화적인 언어를 없애는데 앞장서야 한다.
 언어형상에서 인민대중의 요구를 구현하자면 인민이 늘 쓰는 입말을 작품에 적극 받아들이는것이 중요하다. 인민적인 입말에 있는 좋은 점을 글말에 널리 받아들여 글말과 입말의 차이를 줄이는것은 우리 말을 주체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중요한 과업의 하나이다. 민족어는 원래 입말로부터 생겨났으며 입말에 기초하여 글말이 발전하였다. 지난날에는 문자와 글이 지배계급의 소유물로 되여있은데로부터 지배계급의 손에 장악된 글말과 인민이 널리 쓰는 입말사이에는 여러가지 심한 차이가 생겨나게 되였다. 인민대중이 문자와 서사생활의 주인으로 된 오늘의 조건에서 낡은 시대가 남겨놓은 입말과 글말의 심한 차이를 그대로 둘수 없다. 문필가들은 인민이 써오던 입말의 풍부하고 우수한 요소를 적극 받아들여 글말을 더욱 발전시켜야 하며 글말이 입말을 보다 문명한것으로 만드는데서 선도적역할을 하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 인민이 오랜 력사를 통하여 창조하고 다듬어온 입말은 우리 문학의 언어를 기름지게 하는 무진장한 원천이다. 작가는 인민들속에 들어가 허심하고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그들이 쓰는 언어를 꾸준히 배워야 한다. 인민적언어에서 고상하고 아름다운 표현을 찾아내고 골라써야 대중에게 리해되고 접수되는 훌륭한 언어형상을 창조할수 있다.
 언어형상에서 주체적립장을 견지하자면 고유한 우리 말을 적극 살려쓰는데도 힘을 넣어야 한다.
 고유어는 다른 민족어의 침습을 받지 않고 그 민족이 대대로 창조하고 발전시켜온 민족적특성을 가장 뚜렷하게 가지고있는 언어이다. 고유어는 민족어에서 기본을 이룬다. 고유어는 민족의 고유한 심리와 정서를 그대로 반영한 언어요소이므로 글의 민족적색채를 돋구고 민족적정서를 살리는데 효과적이다. 우리의 고유어는 어감이 풍부하고 섬세한 정서적인 빛갈을 가지고있으며 표현이 다양하고 말소리의 울림이 아름답기때문에 문학작품의 형상성과 서정성을 살리는데 매우 적중한 언어수단으로 된다. 우리의 고유어에 기초하여 씌여진 작품을 보면 대체로 다 서정이 짙고 생신한 형상적인 맛을 풍긴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사향가》는 우리의 고유어를 리용하여 풍만한 형상미와 향토적인 서정미를 돋군 본보기작품이다.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문앞에서 눈물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고 노래한 1절이나 우리 집에서 멀지 않게 조금 나가면 작은 시내 돌돌 흐르고 어린 동생들 뛰노는 모양이 눈에 삼삼하다고 노래한 2절은 다 우리의 고유어에 기초하여 사람의 가슴속에 사랑하는 고향과 조국산천에 대한 사무친 애정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있다. 우리의 문학작품은 다 고유어의 진맛을 돋구는 참다운 조선식작품으로 되여야 한다.
 고유어를 살려쓰는것과 함께 외래어와 한자어를 될수록 새로 다듬은 우리 말로 바꾸어 써야 한다.
 세계에 다른 나라 말이 흘러들어오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다. 특히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로 있던 나라나 큰 나라들사이에 끼여있는 작은 나라인 경우에는 다른 나라 말의 침습을 더 많이 받게 된다. 이런 나라들에서 다른 나라 말과 글의 잔재를 없애버리지 않고서는 민족어의 순결성을 지킬수 없다.
 우리 나라에서는 지금 고유한 우리 말을 적극 살리는 한편 지난날 우리 말속에 흘러들어온 외래어와 한자어를 정리하는 사업이 힘있게 벌어지고있다. 이것은 우리 말의 민족적특성을 고수하는 면에서는 물론, 북과 남사이의 언어의 이질화를 막는데서도 중요한 방도로 된다. 지금 남조선에서 민족어가 심히 말살되고있는데다가 북과 남의 겨레들이 오래동안 서로 갈라져 살아오면서 언어교류를 할수 없었기때문에 언어의 공통성이 사라질수 있는 위험이 조성되고있다. 이런 때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인민의 언어생활을 자연발생성에 내맡겨둔다면 오래지 않아 민족의 기본표징인 언어의 단일성마저 잃어버릴수 있다. 비록 언어교류가 없는 조건에서도 북과 남이 같은 하나의 기준, 하나의 원칙을 내세우고 언어를 발전시킨다면 그런 사태를 미리 막을수 있다. 북과 남이 다같이 고유조선말을 기준으로 삼고 언어의 기본대를 세우며 외래어와 한자어를 정리하여 우리 말로 바꾸는 원칙에서 언어를 발전시킨다면 언어의 이질화를 미리막고 그 순결성을 지켜낼수 있을것이다. 지난날 고유조선말은 공화국북반부에서도 널리 씌여왔고 남조선에서도 널리 씌여왔지만 미제에 의하여 국토가 분렬된 다음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오늘 남조선에서 우리 말은 그 순수성이 점차 사라지고 잡탕말로 변해가고있다. 해방전까지 《표준어》로 삼아오던 서울말도 변질되여 영어, 일본어, 한자어투성이로 되였으며 말투와 억양이 우리 민족의 전통적미감에 맞지 않는 이상한것으로 변하였다. 공화국북반부에서만은 우리 당의 옳바른 언어정책에 의하여 예로부터 써오던 고유조선말이 순수하게 살아남아있으며 시대의 요구에 맞게 발전하였다. 혁명의 수도 평양은 우리 말과 글의 민족적특성을 가장 순결하게 고수하고 발전시킨 문화어의 중심지이다. 새롭게 발전한 오늘의 평양말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우리 말의 순결성과 주체성을 살리면서 그것을 건전하게 발전시킬수 있다. 평양문화어는 공화국북반부 전체 인민의 공동의 노력으로 창조하고 가꾸어온 우리 민족어의 우수한 언어요소를 집대성하고있으며 서울말을 비롯하여 남조선각지에서 전통적으로 써오던 좋은 민족어요소도 흡수하여 발전시킨것이다. 남조선동포들과 해외동포들이 평양으로 찾아올 때마다 평양문화어의 우수성에 대하여 찬사를 아끼지 않고있는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다. 작가는 우리 당의 언어정책의 정당성을 누구보다 깊이 인식하고 평양문화어를 적극 살려써야 한다.
 작품창작에서 외래어와 한자어를 많이 쓰는 경향은 작가의 낡은 언어관념과 관련되여있다. 지난날 우리 나라의 봉건사대부들은 국문을 천시하고 한문을 숭상하면서 한문을 많이 아는 사람, 한자어를 많이 쓰는 사람을 유식한 사람으로 여기였다. 이런 낡은 관념은 해방후 우리 민족어발전에 적지 않게 방해를 주었으며 오늘까지도 그 잔재가 완전히 뿌리뽑히지 않고있다.
 외래어와 한자어를 적게 쓰려면 다듬은 우리 말을 많이 알아야 한다. 지금 체계적으로 외래어와 한자어를 우리 말로 다듬고있는데 다듬은 말을 대중속에 보급하는데서 작가의 위치가 중요하다. 작가는 다듬은 말을 많이 알고 작품에 널리 리용하여야 한다. 새로 다듬은 말이 나오면 작가들이 먼저 작품에 받아들여야 한다.
 언어탐구와 형상에서 주체적립장을 철저히 지켜나가려면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적문풍을 따라배워야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쉬임없는 사상리론활동과 문필활동을 벌리시는 과정에 우리 시대의 가장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문풍을 창조하시였다. 수령님의 문풍은 우리의 말과 글을 인민대중의 요구에 맞게 자주적으로 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원칙적요구를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해결하고 완성한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문풍의 귀감이다.
 수령님의 문풍을 따라배우기 위하여서는 수령님의 독창적인 언어사상과 리론으로 무장하여야 하며 수령님의 교시와 로작을 많이 읽고 새기면서 문장과 단어 표현의 묘미를 원리적으로 깊이 체득하여야 한다. 작가는 수령님의 교시와 로작에서 우리 말의 민족적특성을 전면적으로 발양시킨 측면, 당적이며 로동계급적인 견지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깊이있게 해명한 측면, 인민이 알아들을수 있는 쉬운 말로 심오한 뜻을 표현한 측면, 독창적인 새로운 표현을 탐구한 언어구사의 빛나는 모범을 창작에 적극 구현하여야 한다.
 언어탐구와 형상에서는 사실주의원칙을 철저히 구현하는것이 중요하다.
 언어는 사실주의와 반사실주의, 진보적문학과 반동문학의 계선을 가르는 주요한 분기점이다. 력대적으로 예술지상주의자들과 형식주의자들은 내용과 분리된 《순수 형식》을 운운하면서 언어문제를 기본문제로 내세우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오늘도 그들은 내용과 형식, 사유와 언어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주장을 고집하고있다. 우리 작가들은 언어문제를 둘러싸고 사실주의문학을 반대하는 부르죠아반동작가들의 공세가 심해지고있는데 대처하여 응당 사실주의적원칙을 고수하는데 각별한 주의를 돌려야 한다.
 언어구사의 사실주의적원칙에서 기본은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통일을 보장하는것이다.
 내용은 보잘것없는데 언어만 가지고 잔재간을 피운 작품은 형식주의적인 작품이다. 생활에 대한 깊은 탐구가 없는데로부터 작품에 담을 사상감정과 생활내용이 빈약한 작가들이 흔히 서툰 말장난에 매달린다. 없는 내용을 말재주로 가리우고 분칠하는것은 대중에 대한 희롱이다. 반대로 하고싶은 말도 많고 의의있는 사상을 이야기하려고 애를 쓰면서도 말이 모자라 표현하지 못하는 작가는 언어의 예술가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 언어탐구에 품을 넣지 않은 작품은 내용도 볼맛이 없다. 그릇이 빛나야 담겨진 음식도 구미를 돋군다. 말이 반찬인 작품이나 언어가 미숙한 작품이나 문학의 사상예술성을 떨구는데서는 같다.
 언어구사에서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통일을 보장하자면 생활에 대한 깊은 탐구와 심오한 사색이 필요하다. 생활은 작가에게 내용을 제공하고 내용은 그에 따르는 형식을 요구한다. 훌륭한 언어표현은 허공에서 생겨나는것이 아니라 생활에 대한 깊은 탐구와 사색과정에 발견된다. 생활에 대한 지식은 없고 사상감정이 메마르고 주의주장이 명백치 못한 작가에게는 언제가도 깊이있고 기지있는 표현이 떠오를수 없다. 작가는 말을 가지고 재간피울 생각을 할것이 아니라 자기가 말하려는 대상을 실지로 볼줄 알아야 하며 그 본질과 의의에 대한 남다른 깊은 파악을 가지고있어야 한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것만큼 표현할수 있다. 한 인간이 가지고있는 언어의 총량은 인식과 사유의 총량과 맞먹는다는 말이 있다. 자기가 볼수 없는 대상, 자기가 파악하지 못한 본질은 그 어떤 미사려구를 써도 사람들에게 전달될수 없다. 그러므로 훌륭한 언어형상을 창조하기 위한 탐구의 첫 공정은 언제나 묘사대상에 대한 풍부한 체험과 인식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언어형상에 깊은 뜻을 담아야 한다. 언어형상에 깊은 뜻을 담는것자체가 내용과 형식을 높은 수준에서 결합시킨다는것을 의미한다.명문장, 명표현, 명대사의 기본표징은 뜻이 깊은데 있다. 그래서 글속에 글이 있고 말속에 말이 있다고 한다. 문학의 언어는 깊은 뜻을 담은 명문장, 명표현, 명대사로 되여야 한다. 문장과 표현속에 깊은 뜻을 담을줄 아는 재능은 생활의 의의를 깊고 폭넓게 파악하고 간결하게 나타낼줄 아는 작가에게서만 볼수 있다.
 작가는 대사형상에 각별한 주의를 돌려야 한다. 영화문학과 소설에서 대사를 람발하는 현상이 있는데 이것은 영화와 소설의 기본형상수단에 대한 옳은 관점이 서있지 못한데도 있지만 기본은 작가의 사상적의도를 영화의 행동선이나 소설의 묘사로 해결하지 못하고 대사를 통하여 직선적으로 쉽게 해결하려는데 있다. 작가의 사상적의도를 대사를 통하여 직선적으로 로출시키기때문에 대사가 필요없이 많아지지만 무게있고 철학적깊이가 있는 대사는 별로 찾아볼수 없다. 대사를 망탕 람용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언어구사에서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인 결합을 보장하기 위하여서는 정황과 대상에 맞는 표현을 탐구하여야 한다. 우리 문학의 주인공들은 정치성과 인간성이 결합된 인간들이다. 대사형상은 인물의 정치리념과 개성을 집중적으로 반영하는 동시에 말할 때의 주의분위기와 환경에 꼭 들어맞아야 한다. 묘사문, 주정토로문, 설명문같은 작가의 말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작가의 말은 그 하나하나가 대상과 그것이 처한 정황, 작가의 사상감정 그리고 작품의 양상에 다같이 부합되는 표현이여야 한다. 작가의 말이라 하여 주관에 빠져 제멋대로 늘어놓으면 대상과 정황을 과장할수도 있고 왜소화할수도 있으며 결국 내용과 형식의 불일치를 가져올수 있다.
 해당 시기의 생활과 시대상을 선명하고 진실하게 보여주려면 그 시대의 언어생활을 정확히 반영하여야 한다. 작가의 말인 경우에는 력사물이라고 하여 전적으로 그 시기의 언어를 그대로 살려쓸수는 없다. 력사물에서 작가의 말은 오늘의 조선문학어를 쓰면서 해당 력사적시대의 상용어휘와 상용어투를 시대적표상이 떠오를수 있게 맛이나 보이는 정도로 리용하여야 한다. 시대에 맞게 언어생활을 반영하는데서 특별히 관심을 돌려야 할것은 사회정치제도와 경제관계, 문화도덕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을 잘 골라서 쓰는것이다. 지난 시기의 생활을 오늘의 견지에서 파악하고 의의있게 묘사하여야 하지만 력사주의적원칙을 떠나서 없던것을 만들어내거나 있던것을 제멋대로 개작하여 내놓아서는 절대로 안된다.
 언어구사의 사실주의원칙을 구현하는데서는 개성적인 참신한 표현을 탐구하는것도 중요하다.
 일상생활에서 사람의 사상감정과 문화도덕수준, 직업과 지식정도, 기호와 취미가 거의나 말을 통하여 표현되는것처럼 작가의 세계관도 창작적개성도 언어를 통하여 그대로 드러난다. 언어는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볼수 있게 하고 밖에 내비칠수도 있게 하는 《창문》이라고 할수 있다. 문학의 언어는 공식적인 사무분야와 신문보도, 과학기술분야의 언어와 달리 생동하고 정서있고 개성적인 특성을 가진다. 이러한 형상적특징가운데서도 주되는것은 개성적인 특징이다. 언어는 개성화되여야 생동해지고 정서가 깃든다. 언어형상의 개성화는 남보다 류별나게 말하거나 색다르게 표현하려는 의도에 의하여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체험한 사실과 느낀 사상감정을 진실 그대로 보다 정확하고 보다 명백하게 드러내보이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문학의 언어는 개성화될수록 생활을 생동하고 진실하게 형상할수 있다. 언어형상의 개성화정도에 따라 문학작품의 독창성과 참신성이 많이 좌우된다. 문학작품에서는 언어가 새롭지 못하면 그에 담겨지는 내용도 새로울수 없다.
 작가는 다른 작품에서 쓴 표현은 원칙적으로 다시 쓰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예술적으로 세련된 명문장, 명대사라고 하여도 한번이상 가치를 가질수 없으며 그것이 모든 작가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되는것도 아니다. 작가는 될수록 기발하게 착상하고 생신한 표현과 어휘를 골라써야 한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3인1당》에서 세 정승이 서로 자리다툼을 하는 말싸움장면은 대사를 개성화한 좋은 실례이다. 세 당파에 속해있는 군대를 통합하는것이 백마국의 침입을 막고 나라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는 박정승의 대사나 강약이 부동한 정황에서는 큰 나라에 원병을 청하는것이 현명한 방책이라고 주장하는 문정승의 대사나 위급한 때에는 한걸음 물러서서 사태를 수습하고 힘을 키워야 한다고 우기는 최정승의 대사는 다 인물의 성격적특징을 표현하는 개성적인 말로 되여있기때문에 서로 룡상에 올라앉으려고 회유와 권모술수, 사기와 협잡, 배신과 매국을 하면서 무서운 각축전을 벌리는 세 정승의 표리부동한 몰골을 생동하게 드러내고있다. 사람들은 이 장면을 무대에서 직접 보지 않고 대사만 읽어보아도 큰 몸집에 여차하면 칼부터 빼드는 무관형의 무지막지한 박정승과 말끝마다 왕족출신이라고 점잔을 빼지만 속에 흉심을 품은 문정승과 교활하고 표독스럽기 그지없는 최정승의 성격적특징을 생동하게 그려볼수 있을것이다.
 우리 문학에서 언어형상의 개성화를 확고히 보장하기 위한 결정적인 방도는 작가들이 자기 식의 독특한 문체를 확립하는것이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자기의 똑똑한 문체를 가지고있는 작가가 얼마 되지 않는다. 자기 문체를 못가진 작가는 진짜 작가가 아니다. 작가라면 자기의 뚜렷한 언어적개성을 가지고 창작에서 매번 남과 구별되는 독특한 언어형상을 들고나와야 한다. 서사시《백두산》을 지은 조기천은 자기 문체를 가진 재능있는 시인이라고 할수 있다. 그가 쓴 시적표현은 매우 독특하고 기발한것이기때문에 누구도 그것을 모방할수 없다. 그대로 표절하지 않고 약간 그 비슷한 맛이 풍기는 표현으로 돌려써도 인차 그의 시적표현을 모방했다는것이 나타날수 있다. 작가는 그 누구도 모방할수 없는 자기의 얼굴, 자기의 고유한 언어밭을 가지고 문단에 나서야 한다.
 작가가 자기의 문체를 가지고 생신한 언어형상을 창조하는것은 자질과 기량에 달려있다.
 언어구사의 비결은 전적으로 작가의 재능에 달려있다. 풍부한 표현력과 일반화의 가능성을 가진 언어수단의 위력은 작가가 언어를 어떤 방법으로 어떤 수준에서 리용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작가는 형상수단과 수법에 정통하고있을 때에만 그것을 자기의 의도에 맞게 충분히 리용할수 있으며 그 과정에 자기 식의 투를 가지게 된다. 작가야말로 가장 많은 어휘의 소유자, 언어구사의 명수가 되여야 한다.

6. 문학형태와 창작실천
 

1) 시는 시대를 선도하는 투쟁의 기치로 되여야 한다


 진보적인 시는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을 힘있게 고무한다. 로동계급은 자본의 철쇄를 마스기 위한 투쟁에 나선 첫 시기부터 시를 전장에 울리는 북소리나 진군의 나팔소리와도 같이 만사람의 심장을 격동시키는 위력한 전투적무기로 삼아왔다.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이 힘있게 벌어지고 그들의 사상의식수준과 문화수준이 비상히 높아진 오늘에 와서 시문학의 전투적인 기능과 호소적인 역할은 그 어느때보다도 높아지고있다. 한편의 혁명적인 시는 천만자루의 창검을 대신할수 있다. 우리 혁명은 천만자루의 창검을 대신할만한 훌륭한 시를 더 많이 창작해낼것을 절실히 요구하고있다.
 오늘 우리의 주체혁명위업은 새로운 높은 목표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고있으며 인민을 끊임없는 위훈과 혁신에로 부르고있다. 어제와 오늘의 현실이 다르고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일본새도 하루가 새롭게 달라져가고있다. 우리 시문학은 눈부시게 발전하는 현실을 민감하게 반영하여야 하며 시대를 선도하는 투쟁의 기치로 되여야 한다.
 시문학이 시대를 선도하는 투쟁의 기치로서의 전투적 기능과 역할을 다하자면 서정성을 결정적으로 높여야 한다.
 서정성은 시문학의 기본특성이며 생명이다. 소설은 재미있고 실감있는 이야기로, 극작품은 극적견인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끌지만 시는 풍부한 서정미로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서정이란 생활에서 환기된 정서를 형상으로 재현한것이다. 정서라는 말은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이지만 서정이라는 말은 주로 예술형상분야에서 쓰인다. 가끔 일상생활에서도 서정이라는 말이 쓰이군하는데 그것은 대상을 형상적으로 표현하는 경우이다.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사람의 정서가 그대로 문학작품의 서정으로 되는것은 아니다. 생활에서 받아안게 되는 사람의 정서에는 시대의 본질이 담겨진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것도 있다. 시대의 본질이 담겨진 감정이라 하여도 시인이 취급하려는 작품의 종자에 맞는것도 있고 맞지 않는것도 있다. 시인은 전형적인 감정을 잡아 작품의 특성과 요구에 맞게 재가공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서정이다.
 생활정서는 일정한 세계관에 기초하고있다. 사람의 감정은 모두 현실과의 관계에서 생겨난다. 현실이 감정의 바탕이고 감정이 현실반영의 특수한 형식이라고 하여 현실에 있는 모든 대상이 감정을 일으키는것은 아니다. 또한 같은 대상도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감정을 일으키며 그에 대한 체험정도도 서로 다르다. 현실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감정의 성질과 체험정도를 규정하는 근본요인은 세계관이며 정신적준비상태이다.
 감정과 사상은 뗄수 없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있다. 정서는 언제나 일정한 사상과 함께 생겨나고 드러난다. 그러므로 시에서 서정을 단순히 감성의 산물로 보아서는 안된다. 서정은 감성과 사상적인 지향을 결합시킨 형상적사유의 산물이다.
 시문학의 서정성을 높이려면 시대의 주도적인 감정을 깊이 있게 담아야 한다.
 시대의 주도적인 감정은 시대의 기본흐름과 인민대중의 정서적지향을 반영한 감정이다. 시대의 주도적인 감정에는 풍부하고 다양한 내용이 포괄되여있다. 오늘 우리 인민이 지니고있는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의 감정과 주체사상을 신념화하고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철저히 구현해나가려는 뜨거운 지향,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조국에서 사는 끝없는 긍지와 사회주의제도를 끝까지 빛내이려는 열정, 나라의 자주성을 짓밟으려는 온갖 원쑤에 대한 증오심과 조국을 통일하려는 불타는 열망을 비롯하여 주체혁명위업을 수행하기 위한 투쟁에서 발현되는 전형적인 감정이 다 시대의 주도적인 감정으로 될수 있다. 시대의 주도적인 감정을 형상하는데서 특히 중요한것은 현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결하시려는 절박한 문제와 당의 정책적요구를 민감하게 받아안고 제때에 풀어나가려는 우리 인민의 열렬한 감정세계를 깊이있게 그려내는것이다.
 서정시 《나의 조국》은 조국애를 노래한 우수한 작품으로서 시대의 주도적인 감정을 깊이있게 형상한 본보기로 된다.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읊은 시가 많지만 서정시《나의 조국》처럼 조국애를 우리 시대의 주도적인 감정에 기초하여 훌륭히 노래한 작품은 흔치 않다. 서정시 《나의 조국》은 조국애를 노래하였지만 단순히 나서자란 어머니조국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인간의 자주성과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이 보장된 조국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있으며 조국에 대한 사랑을 혁명적수령관에 기초하여 생활적으로 감동깊게 형상하고있다. 시는 이렇게 되여야 오늘의 시대정신과 우리 인민의 미감에 맞는 노래로 될수 있다.
 시인은 시대의 가수, 시대의 나팔수가 되여야 한다. 가슴에 늘 시대를 안고 몸부림치며 시대의 숨결과 호흡을 같이하기 위하여 아글타글 애쓰는 사람이라야 참다운 시인이 될수 있다.
 시문학의 서정성을 높이자면 시인의 개성적인 얼굴을 뚜렷이 드러내는것이 필요하다.
 서정은 본성에 있어서 구체적이며 섬세한 생활정서인것만큼 고유한 특성을 띠기마련이다. 시의 서정은 다른 종류의 문학예술작품에서 나타나는 서정과 구별된다. 시의 서정은 시인자신의 정서를 직접 표현하는 주정이다. 시에서는 서정적주인공으로 나타나는 시인의 남다른 얼굴이 직접 표현된다. 시에서 시인의 얼굴이 엿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벌써 창작에서 실패를 의미한다. 시에서는 서정적주인공의 모습이 뚜렷하여야 하며 다른 사람이 대신할수 없는 독특한 정서세계가 펼쳐져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서정시 《용서하시라》를 잘된 시라고 말할수 있다. 시에는 어린 학창시절부터 축적되여온 한생의 체험이 비껴있으며 그 한생의 총화를 거쳐 어머니조국에 다지는 전사의 숭엄한 맹세가 절절히 표현되여있다. 시인은 지난날 어렸을 때 철없이 지내면서 저지른 이러저러한 잘못에 대해서는 용서해주기를 바라지만 자기를 키워준 조국의 크나큰 은덕을 저버리는 경우에는 절대로 용서치 말아달라고 하면서 자기는 결코 당과 조국을 배반하지 않을것이며 목숨바쳐 보답하리라는 사상을 풍만하고 생신한 정서에 담아 노래하였다. 시인은 한편의 시를 써도 자기 얼굴과 자기 목소리가 뚜렷한 서정세계를 펼쳐놓아야 한다. 시대의 주도적감정을 개성이 뚜렷한 독창적인 체험세계에서 노래하는것이 바로 시문학의 서정성을 높이기 위한 기본요구이다.
 시문학의 음악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진지하게 노력하여야 한다.
 시문학은 일찌기 가요예술에서 발생하면서 처음부터 음악성을 고유한 속성으로 삼아왔다. 음악이 생활의 노래라면 시도 생활의 노래라고 말할수 있다. 시에서는 정제된 아름다운 운률을 타고 서정이 흘러가며 시어와 시구가 음악적 률동과 박자에 맞게 맞물려진다. 음악적인 풍만한 정서와 아름다운 음향, 치밀하게 다듬어진 률동미로 하여 시는 그대로 글로 씌여진 음악으로 된다.
 시가 산문화되면 음악성을 살리지 못한다. 음악성은 운문의 기본속성이다. 시는 들으면 곧 따라부르고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 좋은 노래처럼 소리내여 읊거나 외우고싶은 감을 주게 씌여져야 한다. 시는 음악처럼 우아하고 정가롭고 류창한 맛이 있어야 한다.
 시의 음악성은 내용과 형식의 두 측면에서 다같이 잘 살려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아름답고 풍만한 서정이 시문학의 음악성을 담보하는 내용이라면 운률은 그 음악성을 살리는 형식이라고 말할수 있다.
 시의 서정은 운률을 가지고있는것으로 하여 다른 문학작품의 서정과 구별된다. 시에 운률이 없으면 음악성도 없어지며 음악성이 없는 정서는 시의 서정으로 될수 없다. 시창작에서는 운률의 본질과 그 조성방법을 똑똑히 알고 우리 식 작시법의 요구에 맞게 그것을 구현하는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
 운률은 시에서 말소리의 음악적인 흐름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운률을 구성하고있는 기본성분은 흐름새와 박자이다. 시에서 말소리의 음악적인 흐름은 음악의 곡조와 마찬가지로 흐름새와 박자로 이루어진다. 흐름새와 박자는 뗄수 없는 유기적관계에 있다. 박자는 운률단위에 규칙적인 대응과 반복을 보장하여주고 흐름새는 운률에 다양한 굴곡과 굴림새를 보장하여준다. 시의 운률은 박자를 조절하고 절제하는데 따라 규칙성을 띠면서 류창하고 조화로운 흐름을 타고나가야 한다.
 시를 쓸 때 글자수나 맞추고 시줄을 적당히 끊어놓는것으로써는 운률을 살릴수 없다. 물론 운률을 살리는데서 시어의 소리마디와 시줄의 길이를 조절하는것이 중요하다. 소리마디의 수량과 색갈을 고려하여 시어를 선택배렬하고 호흡에 맞게 시줄의 길이를 조절하여야 운률이 생겨날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하게는 생활에 대한 시인의 정서적체험이 뜨겁고 시의 정서적내용이 고도로 앙양되여있어야 한다. 운률은 서정을 앙양시키는 날개로 될 때라야 가치를 가진다. 사람은 원래 흥분하고 열정이 북받칠 때라야 보통 감정상태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심장의 박동과 호흡을 느끼게 된다. 시의 서정도 고도로 앙양된것이라야 운률과 자연스럽게 어울릴수 있다. 메마른 정서적체험을 가지고서는 아무리 글자수를 맞추고 시줄을 조절하여도 운률이 아니라 기계적인 반복밖에 나올것이 없다. 이것은 시창작에서 일종의 형식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서정은 파지 않고 무엇인가 자꾸 설명하려고 할 때에는 서술식문장이 람발되고 그에 따라 운률이 파괴된다.
 시의 운률을 살리기 위하여서는 민족어의 다양한 수단을 능숙하게 활용할줄 알아야 한다. 운률조성방식은 민족어의 특성에 따라 많이 좌우된다. 우리 말의 우수한 특성을 최대한으로 리용하여 우리 인민의 구미와 정서에 맞는 류창하고 아름다운 운률을 조성하여야 하며 혁명하는 시대에 어울리는 기백있고 고상하며 발랄한 새로운 운률을 끊임없이 창조해내야 한다.
 시문학의 고유한 특성을 잘 살리는것과 함께 시문학의 다양한 형태를 전면적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서정시와 함께 서사시도 쓰고 서정서사시도 써야 하며 서정시에서도 어느 한두가지 형식에만 매달리지 말고 여러가지 형식을 다 리용하여야 한다. 서정시부문에서는 긴 형식도 리용하고 단시와 같은 짧은 형식도 리용하여야 한다. 길게 써야 할 시도 있지만 짧게 써야 할 시도 있다. 짧은 시라고 하여 제구실을 못하는것은 결코 아니다. 시조는 짧은 시이지만 거기에는 서정시가 갖추어야 할 모든 특성이 다 있다. 원래 짧은 형식속에 풍부하고 깊이있는 내용을 담는것이 서정시의 기본특징의 하나이다. 사실 서정시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담시와 같은 이야기형식의 시도 장려하여야 한다. 생활에는 시적이면서도 극적인 이야기거리가 많은데 그런 소재를 시로 형상하는데서는 담시형식이 격에 맞는다.
 정론성이 강한 정치적성격을 띠는 시와 교훈적인 의의를 가지는 시도 내놓아야 하며 조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는 풍경시도 내놓아야 한다. 시에서 인간생활을 떠나 순수 자연을 찬미하는것은 백해무익하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통하여 거기에 비낀 인간세계를 깊이있게 드러내는것은 좋은것이다. 그림에 풍경화가 있듯이 시에도 풍경시가 있어야 한다.
 가사창작에 깊은 주목을 돌려야 한다.
 시대를 선도하고 인민대중을 불러일으키는데서 혁명적인 노래가 노는 역할을 매우 크다. 투쟁이 있는곳에는 노래가 있고 노래가 있는곳에는 혁명적랑만이 차넘치고 전투적열정이 끓어번지기마련이다. 우리의 혁명적인 노래는 오늘 사회주의건설의 전투장마다에서 사람들의 투쟁열의를 북돋아주고있으며 우리 시대의 진군을 고무하면서 온 사회에 혁명적분위기를 세우는데 크게 이바지하고있다.

우리의 노래가 혁명투쟁과 대중교양의 힘있는 수단으로 되게 하기 위하여서는 가사문학에서부터 근본적인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
 가사는 한편의 정교한 시로 되여야 한다.

가사는 결코 가요음악의 종속물이 아니며 또 그렇게 되여서도 안된다. 가사는 시문학의 한 분야로서 자기의 독자적인 사상예술적풍격을 완벽하게 갖추고있어야 한다. 가사에는 독창적으로 찾아쥔 종자가 있어야 하고 시인이 노리는 뚜렷한 주장과 개성적얼굴이 있어야 하며 발견이 깃든 새롭고 풍만한 서정이 있어야 한다. 가사는 곡을 붙이지 않아도 능히 사람의 가슴을 설레이게 할수 있도록 씌여져야 한다.
  가사가 한편의 정교한 시로 되여야 한다는것은 정서가 있어야 한다는것을 말한다. 가요 《도시처녀 시집와요》는 도시처녀가 사회주의농촌으로 시집을 온다는 간단한 내용을 가지고 썼지만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의 빛발아래 농촌마을이 도시부럽지 않게 되여간다는 사상이 잘 반영되여있다. 구체적인 생동한 정서를 통하여 깊은 사상을 노래한 이런 가사라야 한편의 정교한 시로 된 참다운 가사라고 말할수 있다.
 가요창작은 어디까지나 가사에 곡을 붙이는것이 정상적인 공정으로 되여야 한다. 곡이 먼저 된 다음 가사를 붙여도 좋은 노래가 나오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곡에 가사를 붙이려면 시인이 작곡가의 요구에 매여 창발성을 잃게 되고 곡의 흐름에 맞게 가사의 운률과 글귀를 맞추는데만 신경을 쓰게 되기때문에 좋은 가사를 쓰기 어렵다. 가요창작에서 곡을 먼저 쓰고 거기에 가사를 붙이는것과 같은 비정상적인 일이 생기는데는 자기의 의견만 내세우는 작곡가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결코 작곡가만 탓할수 없는 일이다. 가사를 쓰는 시인이라면 응당 음악도 알아야 한다. 음악을 알고 쓴 가사라야 작곡가에게 납득되고 악상을 계발시킬수 있다. 시인이 작곡가가 욕심낼만큼 서정이 풍부한 가사를 내놓지 못하기때문에 작곡가가 먼저 곡부터 쓰게 되는것이다.
 가사는 입에 인차 오르게 되여야 하고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게 되여야 한다.
 이미 오래전에 나온 노래이지만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인 《조선의 노래》, 《사향가》와 같은 작품은 물론이고 해방직후에 나온 《밭갈이노래》,《승리의 5월》,《산으로 바다로 가자》와 같은 노래는 지금도 인차 가사가 떠오르고 선률이 떠오른다. 노래 《새봄》도 아무때나 가사가 저절로 떠올라 《봄이 왔네 봄이 왔네》하고 흥얼흥얼 부르게 된다. 노래는 아무때나 저도 모르게 흥얼흥얼 부를수 있게 되여야 한다.
 가사가 사람의 입에 오르게 하자면 생활적으로 씌여져야 한다. 가사는 몸가까이에서 목격하고 체험할수 있는 실지생활이 비껴있고 친숙한 생활감정이 담겨질 때 비로소 사람의 사랑을 받을수 있다.
 가사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게 하자면 부르기 쉽고 알기 쉽게 되여야 한다. 알기 쉬운 말로도 얼마든지 심오한 생활철학을 표현할수 있다. 가사는 곡과 함께 노래로 부르는 시이기때문에 어려운 표현을 써서는 안된다. 가사를 창작할 때 마치 그 무슨 표현경쟁이나 하는것처럼 저마다 기발한 표현을 꾸며내는데만 신경을 쓰는데 가사에서 어휘와 표현을 기발하게 탐구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창작에서 그것이 기본으로 되는것은 아니다. 가사는 원래 곡과 함께 한번 듣고도 내용이 제꺽 리해될수 있게 되여야 한다. 가사는 몇줄밖에 안되는 짧은 시이다. 작은 용적에 여러가지 어려운 표현을 담는 방법으로 깊은 사상을 보여주려고 하는것은 사실상 어리석은 일이다. 가사의 표현은 누구나 다 쉽게 알수 있고 또 별치않은 말 같지만 다 읽고나서는 무엇인가 충격을 받고 오래동안 생각할수 있게 되여야 한다. 가사《눈이 내린다》는 눈이 내리는 고유한 밤에 창가에 앉아 빨찌산이야기를 듣는다는 이야기밖에 실지 펼쳐진 화폭이 별로 없는데 한번 듣고나면 그야말로 많은 련상이 떠오르고 깊은 여운에 잠기게 된다. 가사에서는 표현으로 한몫 보려고 할것이 아니라 전체 시형상을 통하여 한덩어리의 생동한 화폭을 펼쳐놓으면서 많은것을 련상시키고 깊은 여운을 줄수 있게 하여야 한다.
 우리 시문학의 창작방향은 명백하다. 문제는 시인이 시대앞에 지닌 자기의 사명감을 얼마나 깊이 자각하고 심장을 불태우는가 하는데 있다. 시인의 심장이 불타올라 생활에 대한 정서적체험이 깊어지고 사색의 세계가 비상이 높아져야 시문학에서 끊임없는 변혁을 일으키고 명시, 명가사 풍년을 안아올수 있다.

2) 소설문학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켜야 한다


 소설은 문학의 대표적인 형태이다. 한나라 문학의 높이와 발전수준은 주로 소설문학의 사상예술적높이에 따라 평가된다.
 소설은 인민들속에서 가장 사랑을 받는 문학형태이다. 소설은 새것에 민감하고 정서가 풍부한 청년들속에서는 물론, 어린이나 늙은이들속에서도 널리 읽히우고있다. 사람은 소설을 읽으면서 생활의 진리를 체득하고 혁명의 원리를 깨닫게 되며 아름답고 고상한 정서도 키우게 된다. 소설은 혁명적세계관을 세우는데서 큰 작용을 한다.
 소설문학의 사회적가치는 인민대중의 평가에 의하여 결정된다. 지난 시기 우리 작가들은 총서 《불멸의 력사》에 속하는 장편소설을 비롯하여 인민의 사랑을 받는 좋은 작품을 많이 창작하였다. 그러나 아직 인민들이 우리 작가가 쓴 소설을 다 즐겨읽는다고 말할수 없다. 작가는 자기가 써낸 일부 소설이 어떻게 되여 인민들속에서 널리 읽히우지 못하고있는가 하는데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일부 소설이 인민들속에서 널리 읽히우지 못하는것은 작품에 펼쳐진 생활과 현실생활사이에 간격이 있기때문이다. 사람은 작품에 펼쳐진 주인공의 생활에서 무엇인가 생활적인 친근감을 느낄 때 그 세계에 끌려들게 된다.
 우리의 일부 소설이 친숙감이 덜하고 사람의 생활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주요한 원인의 하나는 인물이 대체로 리상화되여있는데 있다. 현실의 인간보다 비할수 없는 높이에 올라있는 인물의 형상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수 없다. 소설은 마땅히 현실보다 앞서나가야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현실을 초월한 인물을 꾸며내면 인간과 생활을 리상화하는 결과를 빚어낸다. 우리 소설의 주인공은 현실에 실지 있는 인간이여야 하고 사람들곁에서 늘 같이 숨쉬고있는 친근한 모습으로 안겨와야 한다. 소설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늘 목격할수 있는 평범한 생활의 본질을 드러내며 평범한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되여있는 숭고한 정신세계를 전형화하여 보여주어야 한다. 예술적흥미는 바로 일상생활에 체현되여있는 깊은 뜻을 새롭게 알게 되고 고상한 생활세계에 스스로 끌려들어가는데서 생겨나는것이다.
  일부 소설이 인민들속에서 널리 읽히우지 못하는것은 거기에 생활이 없는것과도 관련된다. 실제로 다양한 생활을 여러 각도에서 폭넓게 그려낼수 있는 위력한 힘을 가지고있는 소설에서까지 생활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여서는 그 가치에 대하여 론할 여지가 없다. 소설에 그려지는 생활에는 정치생활, 경제생활, 문화생활이 있는가 하면 가정생활도 있고 과거생활과 미래에 펼쳐질 생활도 있다. 작가는 그 모든 생활에 대한 깊은 체험을 가지고 작품의 종자에 따르는 다양한 생활을 자유분방하게 그려낼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작품에 생활이 있다없다 하는것은 아무 생활이나 다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생활이란 시대와 사회의 본질이 반영된 전형적인 생활이며 작가의 발견이 깃든 새롭고 특색있는 생활이다. 아무리 일상생활의 세부까지 다 늘어놓는다 하여도 그것이 진실하지 못한것이라면 작품에 생활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 사람은 매 순간 생활속에 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깊은 생활체험이 있으며 자기나름의 생활지식이 있다. 인민대중은 생활의 창조자, 향유자인것만큼 생활에 대하여 박식하다. 인민대중앞에 내놓는 작품에서 생활의 진실을 가지고 어느 작가도 그들과 흥정할수 없다. 생활에 대한 자그마한 외곡도 인민에게는 통할수 없다. 더우기 작품을 다 읽고나서도 생활다운 생활을 느낄수 없다면 그런 소설이 대중의 구미에 맞을리가 없다.
 오늘 우리의 소설은 온갖 낡은것에 도전하는 새형의 문학으로 되여야 한다. 당은 인민대중의 자주적요구와 높은 문화수준에 맞게 소설문학에서 혁명을 일으킬것을 요구하고있다. 작가는 당이 내놓은 문학예술혁명방침을 높이 받들고 소설분야에 남아있는 온갖 낡은 요소와 도식적인 틀을 마스고 주체시대의 요구에 맞는 우리 식 소설을 많이 창작하여야 한다.
  소설창작에서 중요한것은 소설의 특성을 잘 살리는것이다.
 소설은 문학에 쓰이는 형상수단을 종합적으로 다 리용할수 있는 우월성을 가지고있다. 문학의 기본형상수단인 언어를 가지고 그려내지 못할 인간생활이란 있을수 없다. 언어로써는 묘사도 하고 대화도 주고받을수 있으며 주정토로도 하고 설명도 할수 있다. 언어의 무제한한 표현능력은 문학의 어느 종류에서나 다 발휘되는것이 아니다. 시문학은 주정토로와 대사 같은것을 가지고 주로 인간의 정서를 표현한다면 극문학은 대사와 지문을 리용하여 주로 직관적으로 볼수 있는 인간생활을 표현한다. 오직 소설문학만이 묘사와 대사, 주정토로와 설명같은 형상수단을 전면적으로 리용하여 언어로 표현할수 있는것은 다 그려낼수 있다. 소설에서는 직관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물론, 내면심리와 뒤생활도 마음먹은대로 보여줄수 있으며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아무런 제한도 받지 않고 인간과 생활의 전모를 그려낼수 있다. 소설은 언어수단을 전면적으로 리용하여 생활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엮어나가는 글이기때문에 사람들에게 스스로 읽고싶은 충동을 주며 무대작품과 달리 아무때 아무데서나 들고다니며 볼수 있는 유리한 점도 있다.
 소설이 문학의 다른 형태에 비하여 언어수단을 종합적으로 리용할수 있는 우월성을 가지고있다고 하여 극문학이나 시문학보다 쓰기 쉬운것은 아니다. 소설이 생활을 자유롭게 형상할수 있는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이다.
 문학의 형상수단을 종합적으로 리용하고있는 점은 소설문학의 우월성인 동시에 특성이다. 소설에서 문학의 형상수단을 종합적으로 리용하여 인간과 생활의 전모를 폭넓고 깊이있게 보여주는데 힘을 넣어야 한다.
 소설은 문학의 형상수단을 종합적으로 리용하면서도 어디까지나 묘사를 기본으로 하고있다.
 소설을 극문학처럼 대사만 읽어도 이야기의 흐름을 알수 있게 써서는 안된다. 소설에서 대사가 중요하고 또 많이 쓰이는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기본형상수단으로는 되지 않는다. 소설에서는 주로 묘사의 련결로 이야기가 흘러야 하며 대사나 주정토로, 설명은 거기에 보충적인 작용을 하여야 한다.
 소설의 묘사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심리묘사이다. 인물의 내면세계를 펼쳐보여주는데서 기본은 사색과정을 깊이있게 그리는것이다. 인물의 사색과정을 잘 묘사하여야 성격의 본질적특징과 사고방식을 집중적으로 발현시킬수 있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의 외형과 행동,환경에 대한 묘사는 인물의 심리와 작가의 얼굴을 다같이 볼수 있게 되여야 한다. 인물의 외형과 행동, 환경에 대한 묘사는 인물과 작가자신의 심리가 비끼고 그들의 사상감정으로 물들여지고 정서적평가에 의하여 굴절되여야 소설문학의 특성에 어울릴수 있고 독자의 관심도 끌수 있다.
 인간과 생활에 대한 세부묘사는 사실주의적묘사의 기본형태이다. 소설에서는 인물을 그리든 환경을 그리든 할것없이 세부묘사를 기본으로 하여야 한다.
 생활을 이야기식으로 펼쳐나가는것도 소설의 중요한 특성이다.
 소설은 묘사문학인 동시에 이야기문학이다. 소설이라는 말도 이야기라는 말에서 나온것이다. 인류문학사를 보면 어느 나라에서나 소설은 이야기형식의 작품으로부터 유래되였다. 소설이 발전하는 과정에 점차 묘사의 비중이 커지고 성격형상에 중심이 쏠리면서 이야기체가 묘사체로 바뀌여지고 내용은 성격형상을 축으로 하는 문학적인 이야기로 발전하였다. 그러면서도 어디까지나 일정한 이야기를 통하여 인간을 보여주고 생활을 펼쳐나간다는 점은 어길수 없는 약속으로 되여왔다.
 소설에는 반드시 일정한 문학적인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소설의 이야기는 재미가 있어야 하고 끌려들어가는 맛이 있어야 한다. 소설에서는 인민대중이 현실적으로 가장 절박하게 요구하고있는 문제를 민감하게 반영하고 그것을 인민대중의 지향에 맞게 풀어나가야 할뿐아니라 이야기줄거리도 재미나게 엮어나가야 한다. 소설의 이야기흐름은 사람의 마음을 조였다풀었다하면서 매혹과 감동의 련속으로 시종 견인력있게 엮어져나가야 한다.
 소설의 이야기는 빈틈없는 감정조직을 타고 흘러야 한다. 감정조직은 작품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엮어 독자를 형상세계에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기 위한 중요한 방도이다. 감정조직은 인물들사이, 작품과 독자사이의 감정의 련계를 짜나가는 형상작업이라고 할수 있다.
 감정조직을 빈틈없이 하기 위하여서는 인물들사이의 감정적련계를 잘 맞물려나가야 한다. 사람의 감정은 사상이나 의지와 달리 매우 가변적이고 류동적이다. 작품에 나오는 인물의 감정은 교체되고 변화되면서 일정한 흐름선을 이룬다. 작품에서 인물의 감정선은 총체적으로 축적과 폭발이 이어지면서 승화되는 과정으로 엮어진다. 인물의 감정선은 밀접히 련쇄되여 서로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 작가가 그 영향관계를 생활론리에 맞게 파고들 때에만 인물들사이의 감정조직을 잘할수 있다.
 감정조직에서 작품의 형상세계와 독자사이의 감정적련계도 잘 맺어주어야 한다. 감정조직의 진정한 목적은 독자의 정서적감흥을 높이는데 있다. 작품에서 인물이 웃고 울며 흥분하여도 독자에게 그 흥분이 납득되지 않거나 공감을 주지 못하면 그것은 아무런 의의가 없다. 작가가 주관적흥분에 사로잡혀 독자의 감정상태를 무시하면 인물의 감정선과 독자의 감정선사이에는 계속 불일치와 모순이 생겨나고 결국 감정조직은 파탄을 면치 못하게 된다. 작가는 언제나 독자의 심리에 정통하고있어야 하며 그의 감정상태를 깊이 파악하고 인물들사이의 감정적련계를 생활의 론리대로 펼쳐나가야 한다.
 감정조직은 작품의 서정성과 련결되여있다. 소설의 서정성은 대상에 대한 짙은 정서적묘사와 주정토로를 통해서도 보장되지만 그보다도 이야기자체가 깊은 정서를 가지고있어야 살아날수 있다. 소설에서 이야기의 서정성은 감정조직에 따라 좌우된다. 작가는 매 인물의 감정선과 그사이의 련쇄관계를 성격과 생활의 론리에 맞게 잘 엮어나감으로써 작품에 풍만한 서정이 넘쳐흐르도록 하여야 한다.
 감정조직은 극성과도 련결되여있다. 극성은 원래 극문학의 고유한 속성이지만 일정한 이야기거리를 가진 소설작품에서도 필수적인것으로 된다. 물론 경우에 따라 극적으로 첨예한 소설도 있을수 있고 부드럽고 조용한 서정적인 양상이나 경쾌하고 발랄한 양상이 두드러진 소설도 있을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상을 가진 작품에 극성이 있다없다하고 단언할수는 없다. 양상에 따라 극성이 외적으로 두드러진 경우도 있을수 있고 내적으로 깊이 감추어진 경우도 있을수 있는것이다. 소설의 이야기는 극적인 이야기로 되여야 감정조직에 탄력과 견인력이 생기고 사람들을 형상세계에 끌어들일수 있다. 소설은 상식적인것에서 벗어나 무엇인가 사람의 예상을 뒤집는 맛이 있어야 하며 새롭고 특색있는 생활의 굴곡이 이루어져있어야 한다.
 소설창작에서 중요한것은 도식적인 틀에서 벗어나는것이다.
 작가는 대담하게 착상하고 형상하여야 한다. 공연히 이것저것재면서 눈치놀음을 하여서는 도식적인 틀에서 벗어날수 없다.
 지금 적지 않은 소설에서 인물의 호상관계를 교양을 주고 교양을 받는 관계로만 형상하는데 반드시 그래야만 되는것이 아니다. 문학이 사람을 교양하기 위한것이지만 그 교양적목적이 반드시 작품에 나오는 인물의 관계를 교양을 하고 교양을 받는 관계로 형상하여야만 실현되는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주인공의 숭고한 모범에 감화되여 교양을 받을수도 있고 부정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에 자극되여 교양을 받을수도 있다. 사람들에 대한 교양은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되여야 효과를 낼수 있다.
 이야기줄거리를 환경전개, 사건의 발생과 발전, 절정, 결말의 체계에만 맞추어 전개하는것도 하나의 도식이다. 이야기줄거리는 작품의 종자와 작가의 개성에 따라 자유롭고 다양하게 엮어져야 한다. 작가는 력사적으로 내려오면서 다듬어진 구성형식가운데서 생활을 진실하게 반영하며 시대의 미감에 맞는것을 잘 살려쓰는 한편 발전하는 현실생활과 예술의 본성에 어울리는 새로운 구성형식을 끊임없이 찾아내여 완성시켜야 한다.
 작품에서 정서를 돋군다고 하면서 흔히 사랑선을 넣군하는데 사랑선을 넣는 그자체가 나쁜것은 아니다. 사랑관계를 잘만 형상하면 우리 시대의 애정륜리에 대한 옳은 인식을 줄수 있고 작품을 정서적으로 색갈있게 만들수 있다. 문제는 그것을 도식적인 틀에 맞추어 어색하고 싱겁게 보여주는데 있다. 작품에서는 대체로 처녀총각이 서로 사랑하다가 오해가 생겼거나 뜻이 맞지 않거나 이러저러한 리유로 사이가 버그러졌다가 다시 결합되는 식으로만 그리고있다. 사랑하는 남녀사이에 첫 인연이 맺어지는 계기도 어떤 필연적인데서만 찾으려고 하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 처녀와 총각사이에는 첫 인연이 아주 우연적인 계기에서 맺어질수도 있고 일단 사랑관계를 맺은 남녀가 마지막에 리상의 불일치로 결렬될수도 있다.
 도식은 문학과 독사사이를 갈라놓는 장벽이다. 작가는 온갖 도식에서 벗어나 저마다 새로운것을 들고나와야 한다.
 소설문학에서는 형상수법을 다양하게 써야 한다.
 사람의 미학적기호는 시대와 함께 변화발전한다. 지난 시대에 쓰던 낡은 형상수법으로써는 오늘 우리 인민의 새로운 미감에 맞는 소설형상을 창조할수 없다. 소설이나 시나 할것없이 방향을 잘 세운 다음에는 곧추 가든 돌아가든 가는 방법을 한개틀에 얽어맬 필요가 없다. 작품창작에서 형상수법은 작가가 재간껏 탐구하여 리용하여야 한다.
 형상수법에는 인민대중이 좋아하는 수법도 있고 반동계급이 좋아하는 수법도 있다. 우리는 반동계급의 취미에 맞는 저속한 형상수법을 철저히 배격하여야 하며 형상수법을 쓰는데서 주체를 세우고 로동계급적립장을 튼튼히 지켜야 한다.
 문학의 형상수법은 오랜 세월에 걸쳐 보편화된 형상창조의 효과적인 방법이다. 작가는 지난날의 공인된 형상수법에만 매달리지 말고 새롭고 효과적인 형상수법을 우리 인민의 미감과 요구에 맞게 활용함으로써 형상창조의 폭을 대담하게 넓혀나가야 한다.
 소설창작에서 다주인공을 설정하는 수법 같은것을 효과적으로 리용할수 있다. 소설에 반드시 하나의 주인공만 설정하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작품의 종자가 요구하면 주인공을 많이 등장시켜도 일없다. 다주인공작품은 거창한 시대적화폭과 생활을 립체적으로 보여주는데 합리적일수 있다. 다주인공소설은 주인공이 하나인 소설과는 달라서 누가 주인공인가 하는 물음이 제기되지 않는다.
 소설창작에서 주인공을 감추어놓고 형상하는 수법도 쓸수 있을것이다. 주인공을 직접 등장시키지 않는 경우 그의 형상은 여러가지로 굴절되여 간접적으로 전달된다. 간접적으로 전달되게 하는 형상방식이 직접적으로 전달되게 하는 형상방식보다 어려울수는 있으나 주인공의 모습에 대한 관심과 기대감을 높여줄수 있으므로 작품의 극적흥미를 돋굴수 있다.
 소설에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간을 중심에 놓고 형상할수도 있다. 소설부문에서도 영화문학 《잔치날》이나 《우리 집문제》와 같은 류형의 작품을 쓸수 있다. 우리 사회의 부정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을 때에는 그와 같은 결함을 가진 사람에게 심각한 생활의 교훈을 안겨줄수 있도록 사상적본질을 명백히 밝혀야 하며 비판은 예리하게 하면서도 사회적으로 그를 바른길로 이끌어가려는 집단의 꾸준하고 성실한 노력을 잘 보여주어야 한다. 원쑤의 형상을 중심에 놓고 적의 내부세계를 폭로하는 작품도 써낼수 있다.
 소설창작에서 작가와 인물의 심리를 기본으로 펼쳐나가면서 생활을 묘사하는 수법도 쓸수 있다.작가와 인물의 심리를 기본으로 하는 형상수법은 인물의 심리적체험에 대한 분석적인 묘사와 작가의 내면독백을 많이 펼쳐놓는 수법이다. 이 수법을 잘 쓰면 외형적인것보다 내심적인것, 현상적인것보다 본질적인것을 깊이 파고들수 있으므로 작품의 철학성을 높이는데도 효과적일수 있다. 작가와 인물의 심리를 기본으로 하는 형상수법은 주관주의적인 형상수법과 완전히 다르다. 소설창작에서 심리를 기본으로 그려나간다고 하여 제멋대로 떠오르는 무정형적인 몽롱한 생각을 늘어놓거나 누구도 해득할수 없는 문장으로 횡설수설하여서는 절대로 안된다. 이 수법은 어디까지나 생활의 론리에 따라 인간의 정신세계를 진실하고 풍부하게 개방하고 생활의 본질과 작가의 사색을 보다 철학적으로 깊이있게 펼쳐보이는 방향에서 리용되여야 한다.
 소설에서 랑만주의수법도 널리 탐구리용하여야 한다. 작가는 인류문학발전과정에 이루어진 랑만주의수법을 현대생활의 요구와 미감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한편 새로운 랑만주의수법을 적극 탐구해내야 한다.
 형상수법과 함께 소설의 형태도 다양하게 개척하여야 한다.
 중편이나 장편을 써야 소설가로 인정받을수 있는듯이 생각하는것은 잘못이다. 세상에 이름을 남긴 작가들가운데는 평생 단편소설만 쓴 소설가도 적지 않다. 소설의 사회적가치는 결코 그 부피에 의하여 결정되는것이 아니다. 단편이라고 하여도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게 높은 사상예술성을 가지고있으면 얼마든지 명작으로 될수 있다.
 발전하는 현실은 시기적이며 선동적인 내용을 담은 벽소설같은 짧은 형식의 소설도 절실히 요구한다. 벽소설은 기동성과 전투적호소성이 있는 대중교양의 좋은 수단의 하나이다. 대건설전투장들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있는 기적과 혁신을 기동성있게 반영하는데서는 벽소설을 따를만한 소설형식이 없다. 지금은 《문학신문》 같은데서도 한면이나 두면짜리 긴 소설만 내군하는데 이것은 기동성을 보장하여야 할 신문의 성격에도 맞지 않고 제한되여있는 지면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문학신문》과 《조선문학》을 비롯한 신문, 잡지들에서는 벽소설을 많이 내보내는것이 좋을것이다.
 서한체로 된 소설이나 일기체로 된 소설도 쓰고 추리소설과 탐정소설 같은것도 많이 써야 한다. 물론 이러한 소설형식에는 일련의 제한성이 있다. 서한체소설만 하여도 인물의 성격과 생활을 삼자의 립장에서 자유롭게, 폭넓고 깊이있게 그리기 어렵다. 그러한 제한성을 극복하면서 좋은 점을 잘 살려내면 얼마든지 훌륭한 소설을 내놓을수 있다.
 실화소설은 사람을 긍정적모범으로 교양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의 현실에는 실화소설에 담아야 할 의의있는 생활자료가 헤아릴수 없이 많다. 위기일발의 순간에 서슴없이 자기의 한목숨을 바쳐 집단과 동지를 구원하고 사경에 처한 동지를 위하여 살과 뼈를 떼주는것과 같은 일찌기 력사가 알지 못하는 숭고한 소행도 바로 우리의 현실에서만 펼쳐지고있는 값높은 생활이다.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새 인간이 탄생하고 새 생활이 약동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처럼 작가에게 뜻깊고 풍부한 생활을 안겨주는 그렇듯 보람차고 위대한 현실은 찾아볼수 없다. 우리의 현실이야말로 실화소설의 마를줄 모르는 원천이다. 우리 인민은 문학작품을 통하여 새시대의 새로운 인간으로 성장한 자기의 모습을 보려고 하며 자신의 힘으로 일떠세운 새 사회, 새 생활의 약동하는 기상을 실지 그대로 보려고 한다. 력사소설, 실화소설은 다 실재한 인물과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철저히 인간학으로 되여야 한다. 원형과 력사적사실에 기초한다고 하여 사실자료를 라렬한 기록식문학으로 되여서는 안된다.
 환상소설도 써야 한다. 환상소설의 폭을 넓혀 사회생활도 환상형식으로 그려낼수 있다. 가령 지금 모든 사람이 통일된 조국의 앞날을 그려보면서 신심에 넘쳐 투쟁하고있는데 작가가 조국통일의 대사변을 맞이한 그날의 감격적인 모습을 환상적으로 형상한 소설을 써낸다면 사람들에게 커다란 기쁨과 희망을 주고 그들의 사업과 생활을 고무해줄것이다. 그런 식으로 공산주의리상사회,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가 실현된 앞날의 우리 조국이나 자주화된 세계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그려낼수 있다. 그런 소설은 휘황한 래일에 대하여 해설하는 강연보다 더 큰 감흥을 줄수 있다. 환상소설에서 환상은 허황한 공상이 되여서는 안된다. 환상소설에서 환상은 력사와 과학발전의 합법칙성에 기초하여야 하며 생활의 진실에 발을 붙여야 한다.
 의인화의 수법으로 엮어진 소설도 많이 써내는것이 좋다. 우리 고전문학에는 《재판받는 쥐》와 같은 우수한 소설이 적지 않다. 의인화의 수법은 적들의 생활을 풍자하는데도 좋고 우리 인민의 현실생활을 비유적으로 재미있게 보여주는데도 좋을것이다.
 운문소설이나 지능소설도 창작할수 있을것이다.
 우리는 이밖에도 현대문학이 개척한 우수한 형상수법과 소설의 여러가지 형태를 주체적립장에서 받아들여 다양하게 리용하여야 한다.
 우리의 소설은 문학의 중심위치를 확고히 차지하고 시대와 현실발전의 요구를 빛나게 구현해나가야 하다. 작가는 온갖 낡은 틀에서 벗어나 소설문학에서 새로운 혁신을 일으키기 위하여 더욱 분발하여야 한다.

3) 아동문학을 어린이의 심리적특성에 맞게 창작하여야 한다


 어린이들을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으로 키우는것은 조국의 만년대계를 위한 사업이다. 어린이들은 나라의 꽃봉오리이며 미래의 주인공이다.조국의 앞날과 민족의 전도는 어린이들을 어떻게 키우는가 하는데 달려있다.
 어린이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는데서 문학예술작품은 중요한 작용을 한다.
 정서에 민감하고 무엇이든 알고싶어하는 어린이들은 문학작품을 보기 좋아한다. 혁명적인 문학작품은 어린 독자에게 학습과 생활의 생동한 본보기를 보여주며 혁명적성장에 필요한 여러가지 정신적량식을 준다. 문학작품은 자기 집, 자기 동네, 자기 학교의 좁은 테두리속에서 인간세상을 내다보는 어린이에게 세계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며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여러모로 다져준다.
 아동문학은 많은 면에서 성인문학과 같지만 어린이를 대상하는것으로 하여 일련의 특성을 가지고있다.
 아동문학은 어린이를 상대로 하여 그의 시점에서 형상을 창조하는 문학이다. 아동문학은 묘사시점에서 고유한 특성이 나타난다. 인간과 생활을 어린이의 시점에서 보고 평가하고 그린다는데 아동문학의 기본특징이 있다. 아동문학에서는 주로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어린이의 생활을 묘사하지만 가끔 어른의 생활도 어린이의 시점에서 그리게 된다. 아동문학에서는 모든 생활이 어린이의 시야에 비껴든것이여야 하고 그의 시점에서 체험된것이여야 한다. 아동문학의 독자는 어린이이다. 아동문학작품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여 씌여지는것만큼 그 예술적가치는 동심세계를 잘 그리는데 있다. 어린이의 동심에 맞지 않는 아동문학작품은 문학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아동문학은 혁명적인 내용을 어린이의 년령심리적특성과 수준에 맞게 보여주어야 한다.
 아동문학작가는 우리 나라 어린이들의 특성을 잘 알고 그에 맞게 형상을 창조하여야 한다.
 우리 나라 어린이들은 사상의식상태가 매우 높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어린이들을 나라의 《왕》으로 내세우고 이 세상의 좋은것이라면 다 그들에게 돌려주고계신다.
 우리 어린이들은 세상에 태여난 첫날부터 날마다 당과 수령의 은덕을 뜨겁게 받아안고 살아가기때문에 우리의 아버진 김일성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이라고 노래하고있다. 참으로 당과 수령에 대한 우리 어린이들의 충성과 효성의 감정은 세계의 그 어느 나라 어린이들과 대비도 할수 없이 높고 절절하며 뜨거운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조직생활과 집단생활을 통하여 혁명적인 교양을 받고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 어린이들은 조직성과 규률성, 집단주의정신이 강하다. 우리 어린이들은 나이에 비하여 정치적생명에 대한 의식이 높고 세계관의 형성과정이 빠르며 혁명위업의 계승자로서의 자각도 높다.
 아동문학은 마땅히 우리 어린이들의 높은 정신상태에 맞게 형상을 창조하여야 한다.
 지난 시기 일부 사람들이 한것처럼 그저 빨갛고 파랗고 노란것이나 노래하는것은 어린이의 사상미학적감정에 맞지 않는다.
 최근 세계아동문학의 동향을 보면 어린이의 성격을 날 때부터 타고난 천성적인데서 찾으면서 초계급적인 《순수 기질》을 찬미하는 풍조가 류행되고있다. 어린이의 성격형상에서 후천성을 거세하고 선천성을 절대화하는것은 자라나는 새 세대들을 사회와 담을 쌓고 시대와 혁명앞에 무기력한 인간으로, 반동적인 숙명론의 포로로 만드는 길이다. 우리의 아동문학에서는 혁명문학의 본성에도 배치되고 우리 나라 어린이들의 정신상태와 요구에도 맞지 않는 반동적인 창작경향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아동문학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과 은혜로운 당을 흠모하고 따르는 우리 어린이들의 충성과 효성을 깊이있게 그려내야 한다. 어린이들에게 있어서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은 아직 세계관화, 인생관화되지 못한 상태에 있다. 아동문학에서는 이 세상에서 우리 수령님이 제일가는분이시고 우리 당이 제일 위대한 당이라는것을 진심으로 느낄수 있도록 당과 수령의 위대성을 실감있게 형상하여야 하며 항일혁명투쟁시기 장군님을 따라 용감하게 싸운 아동단원들과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용감하게 싸운 소년들,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한 참된 소년단원들의 생동한 전형을 창조하여 우리 어린이들이 그 모습을 마음의 거울로 삼도록 하여야 한다.
 아동문학에서는 혁명적조직생활을 통하여 나타나는 어린이들의 높은 조직성과 집단주의정신을 진실하게 반영하여야 한다.
 어린이들에게 집단의 힘이 얼마나 크며 집단과 동무들이 얼마나 귀중하고 고마운가 하는것을 생동하게 보여주어야 하며 조직생활에 모범인 참된 소년단원의 본보기를 형상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아동문학은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자로서의 자각을 높여주는데도 힘을 넣어야 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하여 우리의 혁명위업이 어떤 간고한 시련속에서 개척되였으며 그 위업의 정당성과 위대성, 불패성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것을 똑똑히 인식시키며 주체혁명위업계승에서 새 세대의 위치와 임무를  깨우쳐주는 작품을 심도있게 써내야 한다. 아동문학에서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사회주의조국의 변화되는 현실과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나의 높은 정신세계와 투쟁모습을 감동적으로 보여주어 거기에서 깊은 자극과 혁명적영향을 받도록 하여야 한다. 지난 항일혁명투쟁시기 아동단원들과 조국해방전쟁시기 소년유격대원들의 투쟁경험과 업적이 말해주고있는바와 같이 나어린 소년들도 혁명투쟁에 적극 이바지할수 있다. 아동문학은 어린이들에게 사회주의건설과 조국통일위업에 대한 깊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나라와 인민을 위한 사업에 한몫하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우리 나라 어린이들은 지능상태가 전반적으로 높다.
 우리의 어린이들은 누구나 교육의 혜택을 받으며 자라고있다.
 우리 나라에는 한창 배울 나이에 로동직장에 다니거나 학비를 내지 못하여 학교에서 쫓겨나는 아이가 하나도 없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름없는 섬마을에 몇명 안되는 어린이를 위하여서도 학교를 세우고 산골마을의 여라문 학생을 위하여 통학렬차를 내기도 한다. 도시로부터 머나먼 산간마을과 섬마을에 이르기까지 정연한 교육망으로 덮여있는 우리 나라에서는 모든 학령아동이 전반적인 11년제무료의무교육의 고마운 혜택을 받으며 마음껏 공부하고있다. 우리 나라에서 아동문학의 독자대상은 다름아닌 정규적인 교육을 받고있는 고등중학교와 인민학교학생과 유치원생이다.
 누구나 다 일찍부터 글을 알고 체계적인 지식을 습득한 어린이를 상대로 하고있는것만큼 아동문학에서는 그의 지능수준에 맞게 형상을 창조하여야 한다. 어린이의 인식수준이 일반적으로 어른보다 낮다고 하여 작품에서 아무런 탐구도 없이 상식적인것을 들고나오거나 속되고 저조한것을 늘어놓아서는 안된다.
 학생에게 있어서 첫째가는 임무는 공부를 잘하는것이다. 아동문학은 모든 학생이 자기의 기본과업인 학과학습을 잘하는데 힘을 집중하도록 옳은 학습관점과 학풍을 세워주고 새 지식에 대한 탐구심을 키워주는데 모를 박아야 한다. 작가는 자기의 작품에서 교육학적으로 모순되거나 학생들의 지능발전에 지장이 될수 있는 요소가 나타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는 한편 주동적으로 학교들과 련계를 맺고 학생교육에서 제기되는 절실한 문제를 제때에 작품에 반영하여야 한다.
 우리 나라 어린이들은 마음이 티없이 순결하다.
 우리 나라에는 어린이들이 나쁜 물에 오염될수 있는 사회적근원이 없다. 온 나라가 하나의 사회정치적생명체로 결합되여있고 건전한 생활기풍이 차넘치고있는 조건에서 어린이들은 가정과 학교, 사회의 그 어디에서나 늘 순결한 영향을 받게 된다. 세계의 어디를 둘러보아도 우리 나라만큼 순결하고 건전한 어린이들을 가지고있는 나라는 없을것이다.
 아동문학에서는 우리 어린이들의 남달리 깨끗한 마음이 진실하게 재현되여야 한다. 백지와 같이 정결한 우리 어린이들의 마음에 자그마한 티도 앉지 않게 원쑤들의 반동적영향과 낡은 사상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 어린이들이 훌륭한 사회적환경에서 행복만을 안고 부럼없이 살아오기때문에 낡은 사회의 표상과 혁명투쟁의 시련에 대한 체험이 없다는데 대하여서도 응당한 주목을 돌려야 한다.
 우리의 어린이들은 앞으로 준엄한 혁명의 머나먼 길을 헤쳐나가야 할 새 세대이다. 그들이 걸어갈 앞길에는 예상할수 없는 난관과 시련이 가로놓일수 있다. 우리의 새 세대들이 앞으로 그 어떤 폭풍우속에서도 맑고 깨끗한 충성의 한마음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끝까지 싸워나가도록 하기 위하여서는 아동문학에서 피바다만리, 불바다만리를 헤쳐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를 깊이 형상하여 모든 어린이를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무장시켜야 한다. 이와 함께 나라없고 주권이 없던 지난날 설음과 고통에 시달려온 우리 인민의 피눈물나는 력사를 생동한 예술적형상으로 보여주어 오늘의 이 행복을 영원히 지켜나갈 굳은 각오를 가지게 하여야 한다.
 작가는 아동문학을 우리 당의 정책과 우리 나라 어린이의 특성에 맞는 우리 식 문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오직 우리 식 아동문학만이 우리 어린이들을 주체가 선 조선의 혁명인재로 키우는데 이바지할수 있다.
 아동문학작품창작에서는 유년기와 소년기의 일반적인 년령심리적특성을 잘 살리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유년기와 소년기에는 흔히 사고가 단순하고 솔직하며 생기발랄하고 행동이 빠르며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활동적인 성미를 가지게 된다. 그들은 모든것을 사진기처럼 그대로 받아들이고 모방하기를 좋아한다. 유년기와 소년기에는 사고와 행동이 민첩한 대신 지속성과 인내성이 부족하고 감성과 정서에 민감한 대신 추상적인 사고가 약하며 섬세하고 엉뚱한 대신 시야가 좁은 특성을 가진다. 어린이라 하여도 유년기가 다르고 소년기가 다르다. 학령전 어린이와 학생소년들의 특성에 따라 작품의 수준과 질이 달라야 한다. 아동문학작가는 어린이의 세계에 정통한 아동심리학자로, 어린이의 친근한 벗으로 되여야 한다.
 아동문학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것만큼 작품이 재미가 있어야 한다. 아동문학의 흥미문제는 성인문학보다 더 절실한 요구로 나선다. 어린이는 원래 재미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른의 무릎에 다가앉아 자꾸 재미있는 옛말을 들려달라고 졸라대는것은 어린이의 일반적인 동심이다. 어린이인 경우에는 문학작품을 재미에 끌려 읽는것이 보통이다. 꿀벌이 향기나는 꽃을 찾아다니듯이 어린이들이 스스로 책을 찾아 읽게 하여야지 그들에게 억지로 책을 읽히워서는 별로 소득이 없다. 어린이는 사고가 단순하고 지속성이 약하므로 처음 읽는 책이 재미없으면 인차 싫증을 느끼고 책에 정을 붙이지 못하게 된다.
 아동문학에서는 사상을 론리적으로 주입하려 하지 말고 흥미있는 형상속에서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게 하여야 한다. 아직 추상적인 사유가 채 발달하지 못한 어린이들에게 개념화된 사상을 그대로 내리먹여서는 안된다. 작품에서 요란한 사상을 보여주려고 욕심을 부리기보다 비록 크지 않은 사상이라도 어린이들이 감성적으로 인차 받아들일수 있게 그리는것이 더 효과적이다. 아동문학에서 예술적형상은 감정이 예민하고 모든것을 감성적인 형태로 받아들이는 어린이의 특성과 미감에 맞게 될수록 감각적이여야 하고 음악적인 률동감이 있어야 한다.
 아동문학에서는 변화무쌍한 행동성과 강한 운동감이 느껴져야 한다. 어린이들은 변화가 다양하고 약동적인 작품을 좋아한다.
 아동문학에서는 경적인 묘사를 장황하게 늘어놓기보다 인상적이고 특징적인 표상을 주는 활동적인 세부를 간결하게 그려나가는것이 더 합리적이며 성인문학처럼 사람의 내면심리를 깊이 추구하는것보다 흥미있고 변화무쌍한 행동선을 아기자기하게 엮어나가는것이 더 어울릴수 있다.
 아동문학에서는 한창 말과 글을 배워나가고있는 어린이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될수록 쉬운 말과 표현을 써야 한다. 아동문학의 언어표현은 감성적이면서도 유순하고 평이하여야 한다.
 어린이들의 생활에서 통용되고있는 말과 그들이 즐겨쓰는 생활적인 표현을 찾아내여 써야 하며 추상적인 까다로운 어휘와 표현은 될수록 피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 아동문학창작에서 어린이들이 다 아는 상식적인 말만 곱씹거나 몇개 안되는 적은 어휘밑천으로 형상을 창조하여서는 안된다. 말과 글을 배우는 어린이들에게 있어서 아동문학작품은 그대로 국어공부를 위한 과외도서로도 된다. 어린이들은 드문드문 모를 말이 나오면 사전을 찾아보거나 어른들에게 물어보면서 어휘지식을 넓혀나간다. 작가는 어린이들에게 고상하고 표현력이 높은 어휘를 될수록 풍부히 습득시키는 방향에서 작품을 써야 한다.
 아동문학은 새것을 좋아하는 어린이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내용과 형식이 다채로와야 한다. 소설인 경우에 재담식서술을 배합한 소설이나 운문형식의 소설도 쓸수 있고 실화소설이나 우화적인 소설, 여러 형태의 환상소설도 쓸수 있다. 과학영화촬영소에서 《령리한 너구리》를 비롯하여 어린이들에게 과학교육지식과 사상교양을 함께 주는 좋은 영화를 만들어내고있는데 아동문학분야에서도 이런 류형의 문학작품을 써내는것이 좋을것이다. 아동문학분야에서는 의인화된 수법과 환상, 과장, 상징을 비롯한 지금 있는 수법을 다양하게 리용하는 한편 새로운 형상수법과 기교를 대담하게 창조하여야 한다. 아동문학작가는 우리 시대 어린이들의 미감과 동심세계에 맞는 새로운 문학형태를 대담하게 개척해나가야 한다.
 아동문학창작에서는 문학창작의 일반적요구를 잘 구현하여야 한다.
 아동문학도 문학일반의 창작원칙에 복종되여야 한다. 아동문학의 특성을 살린다고 하면서 그 특수성만 내세우며 문학창작의 일반원리를 무시하여서는 안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동문학이 문학의 일반원리에 더 충실하여야 한다고 볼수 있다.
 진실성문제도 아동문학에서 더욱 중요하게 제기된다. 아동문학에서 진실성문제는 단순히 작품의 예술적가치를 높이는데만 의의가 있는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정직한 품성을 키워주는 보다 심각한 교양문제와 잇닿아있다. 무엇이나 본따기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이 실지 생활과 맞지 않는 허황하고 인위적인 작품을 자주 보게 되면 그들도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그런 식으로 꾸며대는 나쁜 습성이 붙을수 있다. 우리는 어린이들을 어렸을 때부터 가식과 허위를 모르는 진실한 인간으로 키워야 한다.
 아동문학에서는 형상의 독창성문제도 절실하게 제기된다. 류사성과 도식이 문학일반에서 죽음으로 되지만 아동문학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새것에 민감하고 변화무쌍한것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은 늘 보던것을 되풀이하거나 고정격식에 맞춘 도식적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동문학일수록 기발하고 특색이 있어야 한다.
 아동문학작가는 어린이들을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자로 키우는 친근한 교양자이다.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하고 완성해나가는 보람찬 진군길에서 우리의 아동문학작가는 자기의 영예로운 책임과 임무를 빛나게 수행하여야 한다.

4) 문학의 모든 형태를 다양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인민대중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투쟁이 심화발전되는데 따라 문학이 형상하여야 할 생활령역은 끊임없이 확대되고있다. 사람은 자연을 정복하고 사회를 변혁하며 자기자신을 개조하는 투쟁을 벌리면서 더욱더 새로운 생활령역을 개척해나가고있다.
 문학의 형상원천인 인간생활이 풍부해지고 그 령역이 계속 넓어지는데 따라 문학의 형태도 다양하게 발전하게 된다. 새 사회, 새 생활을 창조하는 과정에 우리 인민은 낡은 사상과 문화의 구속에서 해방되고 혁명적인 사상과 문화의 참다운 소유자로 성장하고있다. 그들은 사상문화수준이 끊임없이 높아지는데 따라 사상예술성이 높은 다양한 형식의 문학예술작품을 요구하고있다.
 문학의 모든 형태를 다양하게 발전시키는것은 문학의 본성적요구이다. 문학의 력사는 그 내용의 변화발전과정인 동시에 형태를 비롯한 형식들의 변혁과정이였다. 문학형태는 오랜 력사를 거쳐 이루어지고 일정하게 고착된것이기는 하지만 완성된 절대적인것은 아니다. 문학이 담아야 할 내용이 달라지는데 따라 그 형태도 끊임없이 발전시켜야 한다. 그래야 문학을 시대의 요구에 따라세울수 있다. 료리사가 특색있는 갖가지 음식을 만들어도 같은 그릇에 차려놓아서는 그 다채로운 빛갈이 살아날수 없다. 료리에 따라 그것을 담는 그릇이 달라야 다양한 빛갈과 고유한 맛을 돋굴수 있는것처럼 문학에서도 문학의 모든 형태를 전면적으로 활용하여야 작가의 창작적개성을 마음껏 발양시킬수 있고 문학의 화원을 풍성하게 꽃피울수 있다.
 문학형태를 다양하게 발전시키기 위하여서는 작가들이 몇몇 문학형태에만 매달리는 편향을 없애고 력사적으로 발전하여오는 과정에 이미 그 우월성과 생활력이 뚜렷이 나타났을뿐아니라 오늘의 현실과 인민의 요구에도 맞는 문학형태를 전면적으로 리용하여야 한다.
 극적사변으로 충만된 우리 현실의 요구에 맞게 시, 소설, 아동문학과 함께 극문학을 다양하게 발전시키는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극문학을 다양하게 발전시키는데서 중요한것은 극적인것에 대한 리해를 폭넓게 가지는것이다.
 지금 나오는 영화나 연극은 주로 생활에서 벌어지고있는 새것과 낡은것과의 투쟁을 기본으로 그리고있다. 여기에서도 긍정인물과 부정인물의 직접적인 대립과 충돌로 갈등을 설정한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있다. 이것은 우리 작가들이 생활의 본질을 진실하게 그리고있다는것을 말하여준다. 생활은 투쟁으로 시작되고 투쟁으로 이어지며 투쟁으로 끝난다. 생활은 발전하는것과 쇠퇴하는것, 진보적인것과 보수적인것, 적극적인것과 소극적인것, 총체적으로 긍정적인것과 부정적인것의 투쟁으로 일관되여있다. 생활에서 벌어지는 새것과 낡은것의 투쟁을 예술적으로 반영하는것이 갈등이다. 긍정인물과 부정인물의 대립과 투쟁으로 갈등을 설정하고 이야기를 엮어나가는것은 극적인것을 형상하는데서 기본으로 된다. 그러나 단순히 긍정과 부정사이의 대립과 투쟁만이 극적인것으로 되는것이 아니다.
 물론 극적인것은 일정한 모순을 전제로 하지만 그것이 인물들사이의 직접적인 대립과 충돌에 의해서만 생겨나는것은 아니다. 긍정과 부정사이의 직접적인 대립과 충돌이 있어야만 극성을 보장할수 있다는것은 낡은 리론이다.
 영화문학 《세상에 부럼없어라》는 긍정인물과 부정인물의 직접적이며 성격적인 충돌을 보여주지 않고있지만 심각한 극을 안고있다.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침략자들에게 부모를 잃고 고아로 된후 당의 품속에서 어엿한 예술인으로 자라난 오누이의 운명도 극적인것이지만 자기 팔에 안겨 장렬한 최후를 마친 전우의 마지막부탁을 지켜 20년이 넘도록 그들을 찾아 온 나라 방방곡곡을 다니는 주인공의 체험도 또한 극적인것이다. 그의 체험의 기초에는 당의 해빛아래 수많은 고아들이 세상에 부럼없이 자라나는 행복한 모습을 볼 때마다 오누이를 찾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그럴수록 오누이를 고아로 만든 미제침략자들에 대한 사무치는 증오와 원한이 깔려있다. 비록 전쟁은 끝났지만 미제침략자들이 남긴 상처는 그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그에게 있어서 오누이를 찾는것은 다름아닌 미제원쑤와의 계속되는 투쟁이였다. 그가 체험하는 심리극은 그대로 고상한 사회주의적인도주의와 반동적인 인간증오사상사이의 투쟁의 반영이다. 그렇기때문에 작품은 강한 극적견인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극의 세계에로 깊이 끌어들이며 그들에게 극적감흥을 안겨준다.
 영화문학 《세상에 부럼없어라》는 갈등을 설정하고 전개하는데서 하나의 본보기를 마련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혈육들의 상봉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만드는 모든 극작품의 형상을 다 그런 식으로 하여서는 안된다. 종자의 특성과 요구에 따라 극을 전개하는 방식도 작품에 따라 다 특색이 있어야 한다.
 극적인것은 생활에서 여러가지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오래동안 헤여져살던 혈육이 뜻밖에 상봉하는 경우를 놓고도 극적인것이라고 한다. 지금 조국통일기운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지고있는 가운데 수많은 해외동포들이 조국을 방문하고있다. 해외동포들의 조국방문은 그 무엇으로써도 막을수 없는 하나의 추세로 되고있다. 조국을 방문한 해외동포들가운데는 일제의 식민지통치와 미제의 민족분렬책동으로 말미암아 수십년동안 서로 헤여져 생사조차 알지 못하였던 아들딸을 만난 부모도 있고 안해를 만난 남편도 있다. 그들의 눈물겨운 상봉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는 참으로 극적인것이다. 생리별을 당한 그들은 일일천추로 상봉의 날을 기다렸으며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하였다. 그들의 몸은 비록 수륙만리 떨어져있어도 심장은 언제나 조국통일에 대한 하나의 지향으로 고동쳤다. 조국에 있는 혈육들은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였으며 해외에 있는 혈육들도 안팎의 분렬주의자들의 위협과 공갈, 회유와 기만을 박차고 조국통일을 위한 성전에 떨쳐나섰다. 그들의 상봉은 바로 그 성스러운 투쟁의 길에서 마련된 귀중한 열매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문학에 담아야 할 극적인 이야기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사람들은 생활에서 자기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일에 부닥쳐 강한 충격을 받게 되는 경우를 놓고도 극적인것이라고 한다. 《통일의 꽃》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림수경학생이 희생을 무릅쓰고 분계선을 넘어간 영웅적거사도 세인을 경탄케 하는 놀라운 극적사건이였다. 얼마전에 출판물을 통하여 널리 보도된 남조선의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이야기도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극적인 이야기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였던 결과가 우연히 이루어지거나 어떻게 되리라고 짐작하였던 일이 뜻밖에 뒤집혀지는 경우를 놓고도 극적인것이라고 하며 일이 성사될듯말듯하면서 매번 성사되지 않아 듣는 사람을 긴장시키는 이야기나 서로 오해하다가 뜻밖에 풀려지는 이야기에서도 극적인것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극적인 이야기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극적인 이야기는 정상적인 생활의 흐름이 깨여지고 예상이 뒤집혀지는 충격적인데서 생겨난다. 이야기의 전개과정이 생활의 정상적인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거나 듣는 사람이 예상하는대로 흘러갈 때에는 극적인것을 느끼지 못한다. 극적인 이야기는 일정한 곡절을 가지고있다.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이라 하여도 전후사연이 없이 순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일이라면 거기에서 극적인것을 느낄수 없다. 극적인것을 느끼게 되자면 충격을 줄만한 전제가 있어야 하며 그에 따르는 일정한 곡절이 있어야 한다. 극적인 이야기는 긴장감이 있어야 하고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강한 견인력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정상적으로 흘러가는 일상생활에서는 별로 긴장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일단 정상적인 흐름이 깨여지는 충격적인 계기에 부딪쳤을 때는 긴장해지고 흥분하며 사태를 예리하게 주시하게 된다. 한마디로 말하여 정상적인 생활의 흐름이 깨여지고 예상이 뒤집혀짐으로써 사람에게 긴장감과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일정한 곡절을 가진 이야기도 극적인 이야기로 될수 있으며 이러한 특징을 갖추고있는 사건도 극적인것으로 될수 있다.
 작가는 현실에 있는 극적인 소재를 여러 방면에서 찾아내여 다양한 형태와 양상으로 그려내야 한다.

극문학에서는 정극에만 매달리지 말고 다양한 형태를 전면적으로 리용하여야 한다. 우리에게는 혁명가극《당의 참된 딸》이나 예술영화《월미도》와 같은 혁명적비극도 필요하고 예술영화《우리 집문제》와 같은 경희극적인 작품도 필요하며 온갖 원쑤들의 반인민적죄행을 폭로규탄하는 희극도 필요하다.
 재담이나 촌극같은 소품도 많이 내놓아야 한다. 지난 시기에 예술선전대들에서 인민의 사랑을 받는 촌극과 재담을 많이 내놓았는데 그 경험을 살려 극소품을 많이 창작하여야 한다.
 풍자문학도 발전시켜야 한다.
 한때 문학분야에서는 《벌거벗은 아메리카》나 《뼉다귀장군》과 같은 작품을 내놓았는데 지금은 풍자시와 풍자소설도 없고 풍자극도 별로 없다. 이따금 방송에서 만담이나 내보내는 정도이다. 신문지상에서 펠레톤형식의 기사가 사라진것과 거의나 때를 같이하여 풍자문학도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였다. 신문지상에서 펠레톤형식의 기사가 사라지게 된데는 사연이 있다. 1950년대말에 우리 나라에서는 자본주의적생산관계가 완전히 청산되고 사회주의적생산관계가 전면적으로 확립되여 온갖 사회악을 빚어내는 화근이 없어짐으로써 현실에서는 긍정적인것이 지배적인것으로 자라나게 되였다. 변천된 새로운 현실은 사람들을 교양하는데서 긍정감화의 방법을 더욱 전면에 내세울것을 요구하였다. 그런데로부터 현실의 부정적현상을 야유하거나 조소하는 펠레톤형식의 신문기사와 문학작품이 자연히 자취를 감추게 되였다.
 사람들을 교양하는데서 긍정감화의 방법이 기본이라고 하여 풍자문학이 필요없는것은 결코 아니다. 오늘의 정세는 풍자문학을 더욱 절실히 요구하고있다. 현시기 풍자문학의 과녁은 온 민족의 숙원인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반대하는 안팎의 분렬주의적반동세력과 《반공》책동에 집요하게 매달리면서 세계제패를 실현하려는 미제를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침략세력이다. 우리의 풍자문학은 그들의 반동적이며 반인민적인 정체를 만천하에 고발하며 력사와 인류앞에 저지른 적들의 죄행을 날카롭게 규탄하고 섬멸적인 타격을 주어야 한다. 풍자문학은 원쑤의 심장을 꿰뚫는 화살이 되여야 하며 그들의 아성을 들부시는 폭탄이 되여야 한다.
 실화문학과 환상문학도 발전시키고 수필, 단상과 같은 작은 형식의 글도 활발히 써내야 한다.
 지금 우리의 환상문학은 환상세계가 폭넓지 못하며 형식이 다양하지 못하다. 창조적인 환상은 작가에게만 필요한것이 아니라 자연을 정복하며 사회를 개조하는 모든 사람에게 다 필요하다. 환상문학은 그들에게 창조적환상의 나래를 펼쳐주는 영양소이다.
 작가가 수필을 홀시하여서는 안된다. 수필을 아담하게 잘 쓰면 소설이나 시보다 오히려 사람들을 더 울릴수 있다. 작가라면 평생에 사람의 기억에 남는 좋은 수필을 적어도 몇편씩은 내놓아야 한다. 수필은 산문으로 씌여진 한편의 정교하고 아담한 서정시와 같은것으로 되여야 한다. 필자의 느낌을 펼쳐보이지 않고 어디서 보고 들은 사실을 전달하는 식으로 쓰면 수필다운 맛이 나지 않는다. 수필에서 필자의 느낌을 적는 경우에도 상식적으로 누구나 할수 있는 말을 곱씹거나 정치적내용을 직선적으로 늘어놓으면 읽을 맛이 없다. 지금 수필의 내용흐름에는 관계없이 무조건 수령님의 교시를 인용하는것이 하나의 틀로 되고있는데 수필도 문학작품인것만큼 꼭 그렇게 하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앞으로 필자의 남다른 얼굴이 엿보이고 깊은 사색과 풍부하고 생신한 사상감정이 담긴 좋은 수필을 써내기 위한 창작경연 같은것을 조직할 필요가 있다.
 력사적으로 내려오는 문학형식을 리용하는데서 중요한것은 그것을 발전하는 현실의 요구와 인민의 미감에 맞게 끊임없이 혁신해나가는것이다.
 문학의 기성형태와 종류가운데는 력사적으로 내려오면서 전해지는것도 있고 일시 나타났다 사라지는것도 있다. 력사적으로 형성된 형식이라 하여도 시대와 생활이 발전하며 인민의 리상과 요구가 높아지는데 따라 리용되는것도 있고 리용되지 않는것도 있다. 모든 시대, 모든 문학에 그대로 맞는 형태와 종류란 있을수 없다. 력사적으로 내려오면서 그 우월성이 확증된 형태와 종류도 시대의 요구에 맞게 새롭게 발전시켜야 한다. 영화혁명과 가극혁명, 연극혁명과정에 극문학을 혁신한것은 시대의 요구로부터 출발한것이다. 문학부문에서는 력사적으로 이루어진 기성형태를 적극 리용할뿐아니라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미감에 맞는 새로운 종류를 끊임없이 창조하여야 한다.
 가극혁명을 전후한 시기에 무대부문에서 창조한 음악무용이야기, 음악무용서사시, 음악무용서사시극과 같은 새로운 예술종류는 문학과 음악, 무용이 결합된 종합예술의 한 형식이다. 여기에서 기본인 문학은 시와 극, 서사적요소가 결합된 독특한 형태이다. 문학부문에서는 이미 이룩한 성과와 경험에 기초하여 발전하는 현실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여야 한다.
 특히 텔레비죤문학을 여러 형태에 걸쳐 새로 개척하는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문화정서생활에 텔레비죤이 널리 리용되면서부터 텔레비죤문학이 대단히 인기를 끌고있다. 텔레비죤문학은 문학예술분야에서 자기의 지위를 급속히 넓혀나가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온 나라의 텔레비죤화가 실현된것과 때를 같이하여 텔레비죤문학의 사회적기능이 비상히 높아졌으며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매우 커졌다. 텔레비죤문학이 나온지는 오래지 않지만 문학예술부문에서 자기의 존재를 뚜렷이 나타내고있다. 그것은 텔레비죤이 문학일반의 형상수법은 물론, 영화를 비롯한 종합예술의 형상수단과 수법을 전면적으로 리용할수 있고 모든 사람이 날마다 감상할수 있는 유리한 점을 가지고있기때문이다. 우리는 텔레비죤문학을 보다 다양하고 품위있게 발전시켜야 한다.
 텔레비죤소설, 텔레비죤영화, 텔레비죤극은 일반 소설이나 영화, 연극과 일정하게 구별되는 종류이다. 거기에는 텔레비죤의 형상수단과 방영시간, 시청방식의 특성에 따르는 일련의 특징이 있다. 사람이 혼자서 시청하거나 가정적분위기속에서 시청하는 특성도 고려하여야 하며 영화적수법을 많이 리용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그러나 텔레비죤소설도 소설인것만큼 묘사문학으로서의 소설의 고유한 속성을 살려야 하며 텔레비죤영화는 행동예술로서의 영화적속성, 텔레비죤극은 대사예술로서의 속성을 가져야 한다.
 텔레비죤소설은 랑독자의 화술로 실현되는 언어묘사를 기본수단으로 하고 거기에 화면이 배합된다. 언어묘사가 일반소설만큼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할수는 없지만 이야기가 기본적으로 그에 의하여 전달된다. 랑독을 화면밖에서 할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엇바꾸어 할수도 있으며 생활의 진실을 파괴하지 않는 한 랑독자가 등장인물로 들어갈수도 있고 등장인물이랑 독자로 변할수도 있다. 랑독을 다양한 수법으로 하고 화면배합을 잘한다면 텔레비죤소설이 아주 재미있게 될수 있다.
 텔레비죤극은 텔레비죤영화와 달리 대사를 기본형상수단으로 삼는다. 텔레비죤극은 일반연극보다 무대조건과 시공간적인 제한성을 덜 받으면서도 기본사건이 벌어지고있는 장소가 일정하게 고착되여있어야 한다.
 텔레비죤소설, 텔레비죤극, 텔레비죤영화는 일반 소설, 연극, 영화와 달리 여러 회로 나뉘여지면서 매 회별로 상대적인 매듭이 지어져있는것이 특징이다.
 텔레비죤문학에서 그 질을 한계단 높이는것과 함께 여러가지 새로운 형태를 많이 창조하여야 한다.

문학의 형태를 다양하게 발전시키는데서 그 특성을 살리는것이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 모든 문학예술작품은 이러저러한 형태를 갖추고있다. 문학예술작품의 형상은 일정한 형태속에서 구체화되며 자기의 체모를 갖추게 된다. 예술의 형태는 그 형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할수 있다. 문학의 모든 형태와 종류는 자기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있다. 비록 문학의 묘사방식이 서로 침투하고 어울리기도 하지만 그 형태와 종류는 자기의 특성을 보존한다. 산문형식으로 씌여지는 시도 있고 시와 결합된 극도 있지만 그것은 다 자기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있다. 만약 형태를 다양하게 발전시킨다고 하여 창작에서 매 형태사이의 상대적인 계선을 무시하거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모호한 형태를 망탕 만들어낸다면 문학발전에 오히려 혼란을 주게 된다.
 우리는 력사적으로 이루어진 기성형태나 새로 창조하는 형태나 할것없이 모든 형태의 고유한 특성을 뚜렷이 살려 주체문학의 화원을 더욱 풍만하고 다채롭게 장식하여야 한다.

5) 우리 식 평론의 특성을 살려야 한다


 평론은 문학의 새로운 형상분야를 탐색하고 작품창작과정을 바로잡아주는 문학발전의 힘있는 추동력이다. 평론의 선도적역할에 의하여 시대와 작가, 현실과 문학의 관계에서 제기되는 리론실천적문제가 제때에 해명되고 문학작품창작과 건설에 관한 당의 방침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길이 개척된다.
 력사적으로 문학은 평론에 의하여 총화되고 평가되여왔다. 인류문학사에 올라있는 훌륭한 작품가운데는 평론가의 옳은 평가에 의하여 비로소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것도 적지 않다. 한때 이름없이 파묻혀있던 작가가 평론에 의하여 세계적인 문호로 이름을 떨친 경우도 있고 일시적으로 사람의 주목을 끌었던 작품이 평론에 의하여 그 진가가 드러나 력사의 버림을 받은 경우도 있다. 평론은 문학창작에서 나타난 새로운 싹을 남먼저 발견하는 예리한 눈과 그 성과를 종합일반화하는 폭넓은 개괄력을 가지고 문학발전을 힘있게 떠밀어준다.
 평론이 없이는 문학의 건전한 발전을 기대할수 없다. 평론사업을 활발히 벌려야 창작에서 나타나는 편향을 제때에 바로잡아나갈수 있으며 작가들의 정치적식견과 예술적소양을 끊임없이 높일수 있고 창작에서의 과오도 미리막을수 있다.
 제국주의자들의 사상문화적침투와 복고주의를 배격하고 썩어빠진 부르죠아문예조류와 수정주의자들의 반혁명적인 문예리론을 제때에 짓부셔버리기 위하여서도 평론의 전투적역할을 끊임없이 높여야 한다. 평론계가 잠들면 낡은 창작적경향이 되살아나고 온갖 불건전한 문학조류가 머리를 쳐들게 된다.
 평론가가 종래의 틀에 사로잡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평론을 써내면 작가들속에서 권위를 세울수 없고 평론의 대를 세울수 없다. 평론가는 시대와 문학예술발전의 요구에 맞는 우리 식의 새로운 평론을 건설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한다.

평론을 시대와 문학예술발전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키기 위하여서는 우리 식의 평론의 본질과 특성을 잘 알고 평론활동에서 철저히 구현하여야 한다.
 우리 식 평론은 주체적문예사상과 리론에 기초하여 전개되고 우리 나라 실정과 우리 문학예술발전의 요구에 맞게 창작된 평론이다.
 평론의 근본사명은 문학예술에 대한 선도적역할을 수행하는데 있다. 문학예술을 시대와 력사발전의 요구에 맞게 창작하도록 선도하는것이 평론의 기본과업이다. 지난날에는 문학예술을 선도하는 중대한 사업이 전적으로 평론가에게만 맡겨져있다고 보아왔다. 그러나 로동계급의 혁명적문학예술에 대한 평론의 선도적역할은 당과 수령의 령도밑에 수행된다. 당과 수령은 문학예술창조와 건설의 지도적지침인 문예사상을 창시하고 혁명발전의 매 단계에서 문예로선과 정책을 작성하여 문학예술발전방향과 방도를 제시하며 작가, 예술인들을 그 관철에로 이끈다. 우리 식 평론의 선도적역할은 당의 문예사상과 방침에 의하여 확고히 담보된다.
 우리의 평론에서 문학을 선도하는 사업은 당의 문예정책을 해석선전하고 그 관철을 위한 실천적방도를 찾는 방법으로 수행되여야 한다. 우리 당의 문예정책은 우리 시대의 문학예술이 나아갈 길을 가리키는 라침판이다. 그러므로 당의 문예정책을 옹호하고 해석선전하는것은 문학을 선도하는데서 평론의 중요한 임무로 된다. 당의 문예정책을 견결히 옹호하고 적극 선전하며 철저히 관철하는것은 우리 식 평론의 기본특징이다. 평론가는 당의 문예정책을 옹호하고 관철하는 사업에서 전위투사로 되여야 하며 평론은 주체문학예술발전을 추동하는 힘있는 무기로 되여야 한다.
 우리 식 평론에서 기본은 우리 당의 문예정책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론증하고 그것을 창작실천에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형상방도를 탐구하는것이다. 평론가들은 우리 당의 문예로선과 방침의 정당성을 깊이있게 론증하며 문학예술분야에서 우리 당이 이룩한 빛나는 업적을 일반화하는 론설을 활발히 써내야 한다. 우리의 평론은 당의 문예정책을 작가들과 인민들속에 깊이 인식시키는 동시에 그것을 창작실천에 철저히 구현하는데 적극 이바지하여야 한다.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반사회주의적책동이 로골화되고있는 오늘 우리 당의 문예정책을 견결히 옹호하는것은 주체문학의 운명과 관련되는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평론가는 문화전선의 전초선에 서서 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들의 공격과 사상문화적침투로부터 당의 문예정책을 견결히 옹호하는 투사로 되여야 한다. 평론가는 예리한 정치적안목을 가지고 당의 문예정책과 배치되는 자그마한 이색적인 요소도 우리 문학예술부문에 스며들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좁은 식견과 안목을 가지고서는 우리 당의 문예정책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폭넓고 깊이있게 해석선전할수 없으며 옹호할수도 없다. 평론가는 세계에 류포되고있는 온갖 문예리론과 문예조류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작가의 창작에서 나타나는 자그마한 이색적인 요소에 대하여서도 그것이 어떤 반동적인 문예조류에 근원을 두고있는가 하는것을 인차 가려낼수 있어야 한다.
 평론의 선도적역할은 다만 당의 문예정책을 선전하는것으로만 수행되는것이 아니다. 당의 문예정책은 어디까지나 문학창작과 건설을 방향적으로 선도하는것만큼 평론에서는 창작에서 나서는 구체적인 문제를 당의 문예사상과 리론에 기초하여 선도하여야 한다. 평론은 시대적요구와 인민의 지향을 제때에 민감하게 포착하고 창작의 주제방향과 형상방향을 구체적으로 그어주어야 한다.
 평론가는 문예학의 원론적인 문제도 과학적으로 해명함으로써 작가에게 문예관을 바로세워주어야 한다. 평론에서는 사회주의사회에서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 혁명임무와 사회적로동에 대한 인간의 미학적태도라든가 작가의 창작심리에 대한 문제 같은것을 주체적관점에서 깊이있게 해명하여줄수도 있다.
 평론가는 진보적이며 혁명적인 다른 나라 문학의 성과를 우리의 실정에 맞게 받아들이는 안내자가 되여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나라의 문학을 주체적인 립장에서 공정하게 대하여야 하며 좋은것은 허심하게 배울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 문학만 제일이라고 하면서 다른 나라 문학을 도외시하는것은 백해무익하다. 평론가는 다른 나라 문학도 폭넓고 깊이있게 연구하면서 좋은것을 제때에 찾아내야 하며 우리의 미감에 맞게 창조적으로 리용하도록 작가의 창작활동을 이끌어주어야 한다.
 우리 식 평론은 작가와 작품을 진심으로 아끼고 도와주는 립장에서 진행되여야 한다.
 평론가와 작가사이에 어떤 사회적관계가 맺어지는가 하는데 따라 평론의 성격도 달라진다. 평론가의 활동은 작가의 창작활동과 밀접히 련결되여있다. 우리 나라에서 평론가와 작가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위한 공동의 목적과 리익을 위하여 투쟁하는 혁명동지이며 그들사이의 관계는 혁명적의리와 동지애에 기초한 협조의 관계로 되여야 한다. 평론가는 작가의 창작을 성심성의로 이끌어주고 도와주어야 하며 작가와 작품을 아끼고 책임지는 립장에서 평론을 써야 한다.
 작가를 인신공격하는 평론이나 작품의 긍정면을 무시하고 결함만 들춰내여 헐뜯는 《타도식》평론을 하던 때는 이미 지나간지 오래다. 평론가는 작가가 작품을 잘 썼으면 좋고 잘못썼으면 때린다는 식으로 랭담하게 대하지 말아야 하며 작가와의 개인적인 관계때문에 편견을 가지고 주견없이 평론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런 평론은 평론가와 작가사이에 개인주의적인 관계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나 통할수 있다. 혁명적의리와 동지애에 기초하여 작가의 창작을 원칙적이면서도 진심으로 이끌어주고 도와주며 작가와 작품을 아끼고 책임지는 립장에서 평론하는것이 우리 식 평론의 륜리이다.
 물론 평론에서 비판이 중요하다. 그러나 평론의 기본목적은 작가들속에서 좋은 작품이 나오게 하자는데 있지 비판 그 자체에 있는것이 아니다. 결함이 자라나 엄중한 지경에 이른 다음에 비판하는것보다 결함을 제때에 고치도록 미리 예방하는것이 더 효과적이다. 우리의 평론은 당의 의도에 맞게 예방이 위주로 되여야 한다. 평론에서 예방을 위주로 하는것은 곧 평론의 선도성을 높이는것으로 된다.
 평론은 창작에 필요한 새로운 형상방도와 수법을 탐구하며 우수한 창작경험을 일반화하여야 한다. 평론에서는 작가들의 창작에서 나타난 참신한 시도와 발기를 민감하게 찾아내여 적극 지지해주고 조장발전시키는것이 필요하다. 작품에서 새롭게 시도한 긍정적인 싹을 발견할줄 아는 평론가가 참된 평론가이다. 평론가는 문학작품에서 작가가 의도적으로 노리고 품을 넣어 창조해낸 좋은 점은 물론, 작가자신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써넣은 좋은 점까지 꿰뚫어볼줄 알아야 한다. 비록 그것이 미미한 싹에 지나지 않거나 이러저러한 부족점이 있는것일지라도 경향성이 좋고 발전성이 있는것이라면 적극 지지해주고 일반화해나가야 한다.
 평론이 긍정적인것을 일반화하는데 주되는 힘을 넣는다고 하여 나타난 과오와 결함을 묵과하거나 어루만져서는 안된다. 평론에서 비판은 원칙적이고 공정하면서도 날카로와야 한다. 평론에서는 작품평가를 공정하게 하는것이 중요하다. 작품의 결함에 대하여서는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작품전체를 평가할 때에는 공정하고 심중하여야 한다. 평론에서의 비판은 날카로우면서도 계발식으로 되여야 한다. 평론에서 작가에게 작품의 본질적인 결함과 그 원인을 정확히 인식시키고 극복방도를 실속있게 찾아주어야 한다.
 평론에서 주관주의는 금물이다. 평론에서 작가의 의도를 무시하고 작품을 기존공식과 도식적인 틀에 맞추어 론단하고 함부로 정치적감투를 씌우거나 순수 사회학적견지에서 평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문학에서 요구되는 평론은 어디까지나 문학적평론이지 사회학적평론이나 정치적인 론평이 아니다. 평론가에게는 작가에 못지 않은 예술적감각과 형상적환상력이 있어야 한다. 생활과 작품을 형상적으로 파악하는 예술적감각이 무디고 환상이 없는 평론가는 추상적인 일반론리만 따지게 된다. 평론가는 일반사회과학자와 달리 형상과 론리에 다 밝아야 하며 작가의 창작심리와 작품생리에도 정통하여야 한다. 창작심리와 작품생리에 정통한 평론, 대안까지 찾아주는 평론이라야 작가를 납득시키고 공감시킬수 있다. 어떤 하나의 문제를 놓고도 작가에 따라 그것을 형상하는 방식은 서로 다를수 있으며 거기서 어느것이 낫고 어느것이 못하다는 식으로 단정할수 없다. 평론가는 구체적인 형상방도문제를 놓고 주관적인 의도를 내리먹이려고 하여서는 안된다. 평론가는 작품세계에 깊이 침투하여 창작적의도를 따져보면서 작가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와 이러저러한 부족점을 설득력있게 해명해주어야 한다.
 우리 식 평론은 인민대중을 문학예술의 참다운 창조자,향유자로 키우는데 적극 복무하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평론은 작가, 예술인을 기본대상으로 하여 문학예술창작을 선도한다. 그러나 평론이 작가, 예술인만을 대상으로 하여서는 인민대중의 진정한 향유물로 될수 없다. 평론은 인민을 위한것으로 되여야 하며 인민의 사랑을 받는것으로 되여야 한다.
 인민대중은 문화의 주인이며 문화혁명의 직접적담당자이다. 오늘 우리 나라에서는 당의 정확한 문예정책에 의하여 인민이 문학예술의 창조자로, 향유자로 되고있다. 인민이 리해할수 없고 전문가만 알수 있는 평론은 낡은 사회에서나 통할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어떤 평론이든지 인민대중의 요구와 구미에 맞는것으로 되여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 평론은 문학예술에 대한 인민대중의 지향과 요구를 대변하여야 한다. 평론에서 잘되였다고 하는 작품이 인민들속에서 불만을 자아내는 경우도 있고 인민의 호평을 받고있는 작품이 평론에서 잘되지 못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평론은 례외없이 인민대중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썼거나 외면하고 쓴것이라고밖에 볼수 없다. 평론가는 작품이 잘되였다거나 잘되지 못하였다고 결론을 내리기전에 대중의 의견을 들을줄 알아야 한다. 인민대중은 가장 현명한 평론가이다. 인민대중이 평가하지 않는 작품은 좋은 작품으로 될수 없다. 평론에서는 언제나 인민의 목소리를 존중하여야 하며 인민의 목소리가 울려나와야 한다. 평론은 인민의 요구를 제때에 작가에게 알려주며 작품을 인민의 지향과 미감에 맞게 쓰도록 이끌어주는 작가의 친근한 길동무가 되여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 평론은 인민의 문화적소양을 높여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인민은 평론을 통하여 당의 문예정책과 우리 당이 문학예술부문에서 쌓아올린 업적 그리고 문학예술작품의 사상예술적가치와 교양적의의에 대하여 더 깊이 인식하게 되며 문학예술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쌓게 된다.
 평론이 인민대중을 위한것으로 되자면 인민이 알수 있는 쉬운 말로 씌여져야 한다. 평론을 어렵게 쓰는것은 세상에 문예평론이 생겨난이래 지금까지 고질적으로 물려오고있는 악습이다. 평론가는 자기가 쓰는 평론이 그대로 인민에게 주는 글이라는것을 명심하고 내용과 형식의 모든 면에서 인민적인 요구를 구현하여야 한다.
 우리 나라 평론은 조직성과 집단주의적성격을 띠고있다. 우리 나라 평론가들은 당과 수령의 유일적인 령도밑에 조직적으로 결속되여있으며 그들의 평론활동도 조직적으로 진행되고있다. 우리의 평론가들은 유일한 정책적기준을 가지고 문학작품을 보고 평가하고있다. 우리 나라에서 평론가는 평론활동에서 집단주의적원칙을 철저히 구현하고있다.
 우리 나라 평론은 조직성과 집단주의적성격을 가진것으로 하여 평론가들사이에 개인주의적관계가 지배하고 저마다 자기식 문예관과 창작원칙을 내세우고있는 부르죠아사회의 평론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다른 나라에서처럼 평론가의 활동이 자유구락부식으로 진행되지 않고있으며 저마다 상반되는 문예관과 창작원칙에 서서 이 사람이 이 소리하고 저 사람이 저 소리 하여 갈피를 잡을수 없게 혼란을 주는 일이 없다.
 평론가의 창발성은 조직성과 집체성으로 안받침될 때 더 큰 은을 낼수 있다. 평론이 수공업적인 방법으로 산만하게 진행되면 어느 한 문제도 똑똑히 풀어나갈수 없다. 평론가의 활동이 조직화되면 그만큼 평론의 선도적역할을 높일수 있다.
 문예총과 작가동맹에서는 매 시기마다 평론의 주공방향과 기본과녁을 정확히 설정하고 섬멸전과 집중포화의 방법으로 한문제씩 실속있게 풀어나가야 한다. 이와 함께 문학발전의 추세와 작가의 창작정형을 늘 예리하게 주시하면서 평론가들의 지상토론과 론쟁을 기동성있게 조직하며 문학창작에서 걸리고있는 사상리론적문제를 평론가들의 집체적인 힘에 의거하여 풀어나가야 한다. 평론가들속에서 리론투쟁과 론쟁을 적극 조직할 필요가 있다. 론쟁이 없이는 평론계가 활발해질수 없으며 문학사업이 활기를 띨수 없다. 문예총과 작가동맹에서는 수시로 평론을 통하여 해결하여야 할 가치있는 론쟁문제를 제기하고 평론가를 론쟁마당에 적극 인입시키며 론쟁과정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주어야 한다.
 평론사업을 강화하는데서 현역평론가의 역할을 높이는것이 중요하다. 평론사업은 어디까지나 창작현실에 접근해있는 현역평론가가 주인이 되여 끌고나가야 한다.
 평론사업을 행정적인 방법으로 평론가에게 내리먹이는 식으로 하여서는 안된다. 평론가라면 자기의 일가견이 있어야 하며 뚜렷한 미학적주장이 있어야 한다. 다른 평론가가 좋다고 하여도 자기 보기에 졸작이면 배심있게 자기 주장을 내대는 평론을 써내야 한다. 그러는 과정에 론쟁도 일어나고 론쟁마당을 통하여 작가와 평론가는 물론, 일반독자도 많은것을 새롭게 배울수 있다. 평론에 대한 조직사업은 평론가의 재능과 창발성을 적극 조장발전시키고 그들의 열의를 높여주는 방향에서 진행되여야 한다. 평론에 대한 조직사업을 평론가의 창발성을 억제하고 내리먹이는 식으로 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수 있다.
 우리의 평론은 당의 문예정책적요구에 맞게 사상리론적인 대가 정확히 서고 내용의 과학리론적심도가 보장되여야 하며 작가의 창작실천과 인민의 문화정서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수 있게 되여야 한다.
 우리의 평론은 심오하고 사리정연한 론리성이 있어야 한다. 평론은 심오하고 사리정연한 론리에 의해서만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평론은 주체문학건설에 모든것을 바치려는 평론가의 뜨거운 열정이 체현된 사리정연한 론리가 보장되여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수 있다. 평론가는 우리 문학의 현실태와 장래발전을 놓고 책임지는 립장에 서야 하며 정의감에 불타야 한다.
 평론도 창작이다. 평론에는 평론가의 독창적인 발견과 주견이 있어야 한다. 아무런 탐구도 없이 누구나 아는 상식적인 리론을 되풀이한 평론은 고유한 의미에서 평론이 아니다. 평론에서 새것을 들고나가자면 평론가가 담이 커야 한다. 대담한 평론가가 있어야 평론이 자기의 사명과 역할을 더 잘 수행할수 있다.
 평론의 형식도 근본적으로 개선하여야 한다. 평론은 과학론문이 아니며 그 어떤 연설이나 웅변도 아니다. 문학평론의 문체는 론리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맛이 있어야 하며 친절하고 흥미있어야 한다. 평론의 형식을 론설체로만 하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대담식으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론쟁하는 형식으로 쓸수도 있고 운문형식이나 수필식으로 쓸수도 있으며 서한체, 일기체로도 쓸수 있다. 작가론적인 평론도 장려할 필요가 있다. 작가의 창작적개성과 창작경험을 깊이있게 분석한 작가론은 작가에게 영예감과 자신심을 줄수 있으며 창작에서 이룩된 독창성과 개성화의 모범을 일반화하는데 큰 도움을 줄수 있다.
 주체의 문학건설에서 평론의 권위를 높여야 한다. 평론은 문학계에서 작품창작의 교과서라고 할만큼 권위가 있어야 한다. 평론의 권위는 그 질에 달려있다. 평론가의 실력이 딸리고 평론의 수준이 낮으면 평론의 권위가 서지 않게 된다. 평론의 권위가 서야 문학창작활동에서 당의 문예정책이 철저히 구현될수 있고 주체문학이 힘있게 전진할수 있다.

7. 당의 령도와 문학사업


1) 문학사업은 당의 령도밑에 진행되여야 한다


 문학사업에 대한 당의 령도는 로동계급의 혁명적문학을 건설하기 위한 필수적요구이며 문학발전의 성과를 담보하는 근본요인이다. 로동계급의 문학의 력사적사명은 사회주의, 공산주의위업수행에 이바지하는데 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위업은 로동계급의 당의 위업이며 따라서 그것은 당의 령도밑에서만 승리적으로 수행될수 있다. 당의 령도는 로동계급의 혁명적문학의 생명선이다.
 문학사업에 대한 당의 령도는 로동계급의 혁명적문학창작과 건설에 대한 정책적지도이며 정치적지도이다. 로동계급의 당은 인민대중의 지향과 요구를 구현한 문학창작과 건설의 방향과 방도를 제시하며 작가들과 광범한 대중이 문학사업에 적극 참가하도록 정치적으로 이끌어주고 밀어준다.당의 령도밑에서만 작가들이 로동계급의 문학을 건설하는데서 그 담당자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할수 있으며 창조적지혜와 열정을 남김없이 발휘할수 있다. 당의 령도를 떠나서는 작가들이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게 창작활동을 벌려나갈수 없다.
 력사적경험은 사회주의, 공산주의문학을 건설한다고 하면서도 문학사업에 대한 당의 령도를 거부하고 《자유화》하면 문학이 반동적인 사조에 오염되여 혁명적이며 로동계급적인 본성을 잃게 되며 나아가서는 부르죠아문학에로의 복귀의 길로 떨어지게 된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어떤 사람들은 문학사업에 대한 당의 령도가 작가의 손발을 얽어매고 문학의 창조적발전을 억제한다고 하면서 《창작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있는데 그들이 말하는 《창작의 자유》란 사회주의문학을 공격하고 문학사업에 대한 로동계급의 당의 령도를 거세하기 위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창작의 자유》는 허위적인것이다. 반동들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아무 소리나 자유롭게 할수 있는듯이 말하고있으나 거기에서는 어디까지나 부르죠아제도를 옹호하는 사상만 허용되고 부르죠아계급과 착취제도를 반대하여 정의와 량심의 목소리로 말할수 있는 자유는 가차없이 유린말살되고있다.《창작의 자유》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들은 례외없이 문학이 정치에 복무하는것을 반대해나서고있지만 그들자신이 부르죠아정치를 대변하고있다.
 당이 문학사업에 대한 지도를 포기하면 작가, 예술인들이 변질되고 불만을 품고있던자들,서방부르죠아문학에 환상을 가지고있던자들이 앞장에 나서서 《창작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당과 혁명에 도전해나서게 된다. 제국주의자들이 반사회주의적공세를 벌리고있고 일부 나라들에서 비정상적인 사태가 벌어지고있는 오늘의 현실은 문학예술에 대한 당의 령도를 어느때보다도 더욱 강화할것을 요구하고있다.
 문학사업에 대한 로동계급의 당의 령도는 결코 작가의 손발을 얽어매거나 문학에 도식을 강요하는것이 아니다. 우리 당은 언제나 작가의 창발성과 창작적개성을 마음껏 발양시키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하고있다. 우리 당이 반대하는것은 《창작의 자유》라는 미명밑에 부르죠아문학을 끌어들이는것이지 창작활동의 자유와 창작적개성이 아니다. 창작을 자유롭게 한다고 하여 인민대중의 리익을 침해하는 반동작품까지 허용할수는 없는것이다. 문학사업에 대한 당의 령도는 작가의 창의창발성을 최대한으로 발양시켜 문학을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에 보다 힘있게 이바지하도록 이끌어나가기 위한것이다. 문학의 본성과 력사적사명을 인민대중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규정하고 문학발전의 앞길을 정확히 제시하며 작가의 정치적생명과 창작활동을 따뜻하게 보살펴주는 로동계급의 당의 령도를 받는것은 작가에게 있어서 최상의 영예이며 최대의 행복이다.
 문학사업에 대한 당의 령도를 강화하기 위하여서는 당의 령도체계를 바로세우고 일군들의 사업방법과 작풍을 결정적으로 개선하여야 한다.
 문학사업에 대한 당의 령도체계를 튼튼히 세워야 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말이 있다. 당의 령도체계를 세우지 않으면 문학사업이 사공많은 배처럼 방향을 바로 잡지 못하게 되고 제자리걸음과 퇴보를 면할수 없게 되며 정치적야심가, 음모가들에 의하여 롱락당할수 있다. 문학은 당의 령도밑에 창작되고 건설되여야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수령의 사상과 의도, 당의 문예방침을 철저히 옹호관철할수 있으며 시대와 혁명의 요구에 맞게 찬란히 개화발전할수 있다.
 문학사업에 대한 당의 령도는 본질에 있어서 수령의 령도이다. 수령은 당을 통하여 혁명과 건설에 대한 통일적인 령도를 실현하며 당은 수령의 사상과 의도를 받들고 그에 철저히 기초하여 혁명과 건설을 승리적으로 전진시키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벌린다. 당의 방침은 다 수령의 사상과 의도에 기초하고있으며 수령의 사상과 의도를 구현하기 위한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상사업부문일군들과 작가들은 당의 의도와 방침을 절대화하고 모든 문제를 오직 당의 유일적결론에 의해서만 풀어나가는 엄격한 제도를 세워야 한다.
 당이 문학사업을 옳게 지도하자면 작가들과의 사업, 정치사업을 짜고들어 그들의 창발성을 적극 계발시켜나가야 한다.

문학사업에 대한 당적지도에서 작가들과의 사업을 잘하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무슨 사업에서나 성과를 거두려면 그 사업의 주인인 대중의 정치적자각을 끊임없이 높여주어 그들의 무궁무진한 힘과 창발성을 적극 조직동원하여야 한다.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이 심화발전하는데 맞게 작가들의 정치적자각을 끊임없이 높여줄 때에만 그들속에서 창조적지혜와 열정이 충분히 발양되고 사상예술성이 높은 훌륭한 작품이 나올수 있다.
 작가들과의 사업에서 일군들의 지도방법과 작풍을 끊임없이 개선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문학부문일군들은 자기의 사업방법과 작풍이 우리 당의 존엄과 련결되여있다는것을 깊이 자각하고 수령님식사업방법과 작풍을 철저히 구현하여나가야 한다.
 문학사업에 대한 정책적지도와 형상적지도를 옳게 결합시켜야 한다.
 문학사업을 정책적으로 지도한다는것은 문학창작사업을 당의 사상과 의도에 맞게 정책적대를 바로세우도록 장악통제하고 이끌어준다는것을 말한다. 문학사업을 형상적으로 지도한다는것은 문학창작의 특성에 맞게 작품의 사상예술적수준을 높이도록 작가의 창작과정을 이끌어주는것을 말한다.
 문학부문당조직들과 지도일군들은 창작을 정책적으로 지도한다고 하면서 작품의 특성과 작가의 의도를 무시하고 주관을 내리먹여서는 안되며 반대로 형상적으로 지도한다고 하면서 정책적대를 바로세워주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된다. 창작지도일군들과 심의일군들은 작품의 정책적대를 세우고 방향을 그어주는데 머무르지 말고 형상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높은 수준에서 풀어나갈수 있도록 작가를 잘 이끌어주고 밀어주어야 한다. 창작지도기관과 심의기관은 작품창작에 도움을 주는 기관으로 되여야지 제동을 거는 기관으로 되여서는 안된다. 창작지도기관과 심의기관이 작품창작에 도움을 주는 기관으로 되자면 창작지도일군들과 심의일군들의 실력을 높여야 한다.작품을 직접 쓰는것보다 작품의 우결함을 찾아내고 수정대안을 제기하여 훌륭한 결실을 맺도록 지도하는 사업이 더 어렵다. 창작지도일군들과 심의일군들은 창작가의 선생이 되여야 하며 그러자면 창작가들보다 더 높은 정치적식견과 실무능력을 갖추고있어야 한다. 창작지도일군들과 심의일군들은 권력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력으로 일하는 사람이 되여야 한다.
 정치적식견이 높고 예술실무적자질을 훌륭히 갖춘 일군이라야 문학사업에 대한 당의 정책적요구를 옳바로 파악하고 그 관철을 위한 투쟁에로 작가들을 똑바로 이끌어주고 실제로 도움을 줄수 있으며 따라서 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수 있다.

문학사업에 대한 당적지도를 강화하려면 문학부문당조직들의 기능과 역할을 높여야 한다.
 우리 당의 문예정책과 방침은 문학부문의 당조직을 통하여 작가들에게 전달되고 관철되며 모든 작가들의 조직사상생활과 창작활동도 해당 당세포와 초급당조직들의 구체적인 지도밑에 진행된다. 우리는 문학부문의 당조직들을 튼튼히 꾸리고 그 전투적기능과 역할을 백방으로 강화함으로써 문학창작의 모든 분야에서 당의 문예정책이 철저히 관철되도록 하여야 한다. 당조직들은 작가들로 하여금 우리 당이 문학사업을 지도하면서 쌓아올린 업적을 옹호고수하고 빛내여나가도록 하며 조직사상생활과 학습을 강화하여 창작활동에서 끊임없는 앙양을 일으키도록 하여야 한다.

2) 문학운동을 힘있게 벌려야 한다
 

사회주의문학을 건설하는데서 문학운동을 힘있게 벌리는것이 중요하다.
 문학운동을 힘있게 벌리는것은 사회주의문학의 본성적요구이다. 사회주의문학은 당의 령도밑에 대중의 조직적이며 집단적인 힘에 의하여 건설되며 사회와 인민대중의 공동의 리익을 위하여 복무한다. 작가에게 있어서 창작활동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혁명사업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하나하나의 작품이 다 상품으로, 돈벌이수단으로 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작가는 돈벌이를 위한 상품생산자의 처지에서 벗어날수 없으며 적지 않은 작가들이 사회와 인민을 위해서보다 자기 개인의 리익과 명예를 위하여 창작활동을 벌린다. 그러나 사회주의사회에서는 문학작품이 상품으로 되는 법이 없으며 개인의 명예를 위하여 창작활동을 벌리는 작가도 있을수 없다. 우리의 작가들은 작가이기전에 혁명가이며 작가에게 있어서 문학창작활동은 곧 사회정치활동, 혁명활동이다. 사회주의문학은 그 사회적성격으로 하여 개인주의에 기초한 직업화의 길로 나갈것이 아니라 집단주의에 기초한 대중적인 운동, 문학운동의 길로 나가야 한다.
 문학사업을 끊임없이 발전하는 현실의 요구에 따라세우기 위해서도 문학운동을 힘있게 벌려야 한다. 문학사업은 매일같이 변모되는 새로운 현실의 요구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그 요구를 기동성있게 관철하기 위한 창작전투의 련속으로 되여야 한다. 그러자면 문학운동을 힘있게 벌려 모든 작가들을 하나의 조직된 힘으로 묶어세우고 궐기시키며 광범한 대중이 문학발전에 깊은 관심을 가지도록 하여야 한다. 전체 창작집단이 한결같이 떨쳐나서고 광범한 군중이 적극 참가하면 문학창작사업에서 점령못할 요새가 있을수 없다.
 우리앞에는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의 요구에 맞게 문학창작에서 끊임없이 혁신을 일으켜나가야 할 무겁고도 책임적인 과업이 나서고있다. 격식화된 틀과 구태의연한 창작방식으로써는 문학창작에서 혁신을 일으킬수 없다. 인류문학사는 선행시대의 낡은 문학과 새시대의 진보적문학이 교체되는 력사적인 전환기마다에서 새로운 사조를 반영하는 문학운동이 일어나군하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물려온 온갖 낡고 진부한 문학의 잔재를 청산해버리고 하루빨리 주체적인 혁명문학을 건설하기 위하여서는 문학운동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려야 한다.
 우리에게는 문학운동을 힘있게 벌릴수 있는 충분한 조건과 가능성이 있다. 오늘 우리에게는 문학사업에 대한 당과 수령의 현명한 령도가 있고 주체적인 문예사상과 리론이 있다.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한 작가대렬이 튼튼히 꾸려져있고 문학사업에 대한 대중의 열의도 매우 높다. 조직사업만 잘하면 문학운동을 힘있게 벌려나갈수 있다.
 문학운동은 작가들이 사회정치생활과 창작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문학의 사회적기능과 역할을 비상히 높이게 하는 보람찬 사업이다. 우리의 문학은 현실을 반영만할것이 아니라 생활의 선도자, 혁명의 나팔수가 되여 인민대중을 이끌어나가야 한다. 문학운동을 힘있게 벌려 나라의 방방곡곡에서 인민들의 혁명투쟁을 고무격려하는 작가들의 목소리가 힘차게 울리고 우리의 문학작품이 만사람의 심장을 격동시키는 불씨로 되게 하여야 한다.
 문학운동은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조직화하고 집단주의를 높이 발양시켜 문학사업에서 전례없는 혁신이 일어나게 하는 혁명적인 사업이다. 작가마다 서로 다른 창작적개성을 가지고 창작활동을 벌린다고 하여 분산적으로 하여서는 나라의 문학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킬수 없다. 문학운동은 모든 창작력량을 뚜렷한 방향과 목표에로 지향시키고 궐기시키는 사업이며 문학건설의 모든 문제를 작가들의 집체적인 노력으로 풀어나가기 위한 공동작전이며 공동행동이다.
 문학운동은 문학에 대한 전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문학을 군중적인것으로 전환시키는 사업이다.

우리의 문학운동은 지난 시기 진행된 사회주의문학운동의 성과와 경험을 총화하고 새롭게 발전시킨 우리 식의 주체적인 문학운동이다. 우리의 문학운동은 위대한 주체사상과 그 구현인 주체적문예사상을 유일한 지도적지침으로 삼고 주체형의 새로운 혁명문학을 건설하기 위한 뚜렷한 목표밑에 진행된다는데 주되는 특징이 있다.
 지도리념을 떠난 문학운동은 있을수 없다. 동서고금의 모든 문학운동은 다 일정한 사상과 리념에 기초하여 발기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으로 벌어졌다. 지도사상, 지도리념은 문학운동의 성격과 목적을 규제하는 지침이며 문학운동의 진보성과 력사적의의를 평가하는 첫째가는 기준이다. 사회적운동은 사회와 집단의 일정한 지향과 요구를 전격적으로 실현하여야 할 필요가 생겼을 때 조직되는 사업이다. 문학운동도 그것을 통해 달성하려는 사회와 집단의 공통된 리상과 투쟁목표가 있기마련이다. 투쟁목표의 높이에 따라 문학운동의 높이도 결정된다. 우리 식 문학운동은 주체사상의 기치밑에 자주시대의 지향과 요구를 가장 완벽하게 체현한 문학건설을 목표로 한것으로 하여 문학운동사에서 높은 단계를 이룬다.

우리 식 문학운동은 오늘에  와서 비로소 시작된것이 아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쟁시기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살리여 해방직후부터 주체적인 민족문화건설로선을 내놓고 우리 식의 문학운동을 줄기차게 이끌어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당의 령도밑에 우리 문학운동은 주체의 요구에 맞게 힘있게 발전하여왔으며 그 과정에 세인을 놀래우는 수많은 기적을 창조하였다. 영화혁명, 가극혁명, 연극혁명이 힘있게 벌어지던 주체예술의 대전성기에는 우리 식 문학운동의 빛나는 자욱이 찍혀져있다.
 문학부문일군들과 작가들은 문학운동에 대한 옳은 관점과 태도를 가지고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야 한다. 우리 식의 문학운동을 현실의 요구에 맞게 짜고들어 조직하고 더욱 힘있게 내밀어야 문학부문에서 다시한번 지난 70년대와 같은 일대 전성기를 마련할수 있다. 문학운동은 말로만 떠들어서 되는것이 아니다. 문학운동은 뚜렷한 방향과 구체적인 설계에 기초하여 목적의식적으로 착실하게 벌려야 하며 그에 대한 총화사업도 잘하여야 한다. 문학부문일군들과 작가들은 신들메를 고쳐매고 우리 식의 문학운동을 더욱 힘있게 벌리기 위한 결정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문학운동은 철두철미 당의 령도밑에 진행되여야 한다.
 문학운동에 대한 당의 령도를 떠나서는 문학을 시대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킬수 없고 부르죠아사상과 수정주의를 비롯한 온갖 이색적인 사상의 침습도 막아낼수 없다.

문학부문에서는 어느때보다도 당의 유일적령도체계를 튼튼히 세우고 문학운동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당의 방침에 따라 해결하는 엄격한 규률을 세워야 한다. 창작기관의 당위원회들은 해당 단위의 문학운동을 책임적으로 수행하여야 한다.

문학운동을 벌리는데서 당, 문학예술행정기관, 문예총이 3위1체를 이루는것이 중요하다.
 문학운동은 당의 지도밑에 문화예술부를 비롯한 문학예술행정기관들과 문예총이 일심동체가 되여 작가들을 사상미학적으로 준비시키고 창작에로 힘있게 떠밀며 창작조건을 충분히 마련해주고 그들이 혁명적열의와 창조적적극성을 최대한으로 발양시킬 때에만 성과적으로 진행될수 있다.
 문학사업에서 3위1체를 실현하는데서 중요한것은 문예총과 작가동맹의 역할을 높이는것이다. 문학운동은 하나의 사회적운동인것만큼 당의 지도밑에 문예총과 작가동맹이 주동이 되여 힘있게 조직전개하여야 작가자신의 사업으로, 작가집단의 사회적관심속에서 성과적으로 진행될수 있다. 문예총과 작가동맹은 작가들에 대한 교양사업과 그들의 문학창작사업에 대한 지도방조사업을 잘하여야 한다. 문예총과 작가동맹은 당의 문예로선과 방침을 정상적으로 해설선전하며 동맹원들을 사상미학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고 당의 문예로선과 방침에 기초하여 전망적인 창작방향과 매 시기 제기되는 주제방향, 동맹기관지의 편집방향을 토의결정하며 동맹원들이 당의 문예방침에 따라 창작사업을 왕성하게 벌려나가도록 고무추동하여야 한다. 문예총과 작가동맹은 위대한 수령님의 문예사상연구모임, 작가강습, 분과토론회를 정상적으로 운영하여 창작에서 나서는 중요한 사상미학적문제를 진지하게 토의하고 창작에서 나타난 성과와 결함을 제때에 정확히 총화하여야 하며 론쟁도 활발히 벌려야 한다. 작품심의사업도 책임적으로 조직하여 작품이 당의 정책적요구에 맞게 공정하게 평가되도록 하여야 한다.
 문학부문에서는 창작지도를 행정실무화하지 말아야 한다. 문학사업은 결코 행정적방법으로는 옳게 지도할수 없다. 행정실무화는 문학사업에서 관료주의, 주관주의를 낳는 주되는 요인이며 문학운동을 억제하는 장애물이다.
 작가와 대중을 문학운동에로 불러일으키기 위한 정치사상교양사업을 잘하여야 한다.
 작가와 대중속에서 당의 문예정책을 적극 선전하며 그 관철에로 한결같이 떨쳐나서게 하여야 한다. 특히 작가들이 위대한 수령님과 당의 주체적문예사상과 리론을 전면적으로 심오히 체득하고 문학건설에서 주체를 확고히 세워나가도록 옳게 이끌어주어야 한다. 이와 함께 문학사업을 저애하는 소극성과 보수주의, 공명심과 개인주의, 사대주의와 수정주의를 비롯한 온갖 그릇된 사상잔재를 뿌리뽑기 위한 사상투쟁을 힘있게 벌려야 한다.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북돋아주며 그들의 집체적지혜를 남김없이 발양시키기 위한 사업을 잘하여야 한다.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북돋아주기 위하여서는 그들이 창작한 작품이 빨리 실현되도록 하며 우수한 작품에 대하여서는 표창도 하고 개별적작가의 작품집도 내주어야 한다. 작가의 작품으로 소개하거나 창작활동을 소개선전하여주는 사업도 조직하여야 한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소개선전사업을 당의 정책적의도에 맞게 잘하면 작가의 창작의욕을 북돋아주고 문학운동을 더욱 활발하게 벌려나갈수 있을것이다.
 문학운동을 힘있게 벌리기 위한 조직사업을 빈틈없이 짜고들어야 한다.
 문학부문에서는 잡도리를 단단히 하고 동원적인 계획을 세우며 일단 설정된 목표는 대담하게 판을 벌려 패기있게 밀고나가야 한다. 문학운동에서 긍정적모범을 창조하고 그것을 일반화하기 위한 조직사업도 짜고들어야 한다.
 문학운동에 대한 정연한 사업체계를 세우고 조건보장사업도 잘하여야 한다.
 문학운동의 성과는 문학작품으로 나타나야 한다. 문학운동을 벌린다고 벅적 떠들기만 할것이 아니라 실지로 명작대풍을 마련하여야 한다. 문학운동의 매 단계 총화사업은 창작된 작품의 질과 량에 기본을 두고 진행하여야 하며 좋은 작품을 쓴 작가들을 운동의 선구자로 적극 내세워야 한다.
 문학운동을 벌리는데서 평론가가 한몫 단단히 하여야 한다. 평론계가 활발하여야 문학운동전반이 활기를 띠고 흥성거리게 된다. 평론가는 문학운동의 선도자가 되여 주체문학의 대부흥기를 마련하기 위한 투쟁의 앞길을 적극 열어나가야 한다.
 문학운동을 깜빠니야식으로 벌려서는 안된다. 당면하게 주체문학의 대부흥기를 마련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면서 앞으로도 계속 문학운동을 심화발전시켜 우리 문학을 끊임없는 앙양에로 이끌어나가야 한다.
 

3) 문학의 대중화를 실현하여야 한다
  

문학의 대중화를 실현하는것은 문학운동을 성과적으로 수행하며 우리 문학을 주체시대의 요구에 맞는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문학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담보이다. 문학의 대중화를 실현하여야 문학운동을 군중적지반우에서 활발히 벌려나갈수 있으며 우리 문학을 인민대중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발전시킬수 있다.
 문학의 대중화는 우리 당의 일관한 방침이다. 문학을 대중화한다는것은 광범한 군중을 문학창작활동에 널리 참가시키며 사회의 모든 성원들이 문학을 마음껏 즐길수 있게 하는것을 말한다. 문학의 대중화는 인민대중을 문학의 진정한 창조자, 향유자로 되게 하기 위한 사업이다.
 문학을 대중화하는것은 문학건설과 문학운동에서 나서는 중요한 요구이다. 모든 사업의 성과여부는 무궁무진한 지혜와 창조적열정의 소유자인 인민대중이 어떻게 발동되는가 하는데 달려있다. 문학건설과 문학운동도 인민대중에 의거하고 그들의 지혜와 열정을 적극 발양시켜야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게 발전시켜나갈수 있다. 문학발전의 원동력은 인민대중이다.
 문학은 인민대중을 대상으로 하여 인민대중의 생활을 형상한다. 인민대중은 자기가 창조하고 누리는 생활에 대하여 누구보다 깊은 체험을 가지고있으며 자기가 지향하는 미학적리상에 대하여서도 누구보다 깊은 리해를 가지고있다. 작품에 그려지는 생활의 직접적창조자이며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공정하고 현명한 평론가인 인민대중과의 밀접한 련계가 없이는 문학을 발전시킬수 없다. 인민대중은 마땅히 자신이 체험하는 생활을 자신이 바라는 리상에 맞게 반영하는 문학창작활동에서 주인의 구실을 하여야 하며 그 문학의 참다운 소유자, 향유자가 되여야 한다.
 문학을 대중화하는것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기 위한 중요한 요구이다.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려면 무엇보다도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주체형의 공산주의자로 만들어야 한다. 주체형의 공산주의자는 사상, 기술, 문화의 모든 면에 걸쳐 전면적으로 발전된 새형의 공산주의적인간이다. 인류의 최고리상인 공산주의사회에서는 인간의 지적발전이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르며 모든 사람이 문화적이고 유족한 생활을 누리게 된다. 이러한 리상사회의 요구에 상응하는 인간의 높이에 오르자면 모든 사람이 사상, 기술적으로, 문화정서적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문학의 대중화를 실현하기 위하여서는 문학작품보급사업을 개선강화하여야 한다.
 광범한 대중속에 문학작품을 보급하는것은 문학의 대중화를 위한 중요한 공정이다. 문학예술작품보급사업을 잘하여야 사람들을 혁명적세계관이 튼튼히 서고 풍부한 문화적소양과 고상한 도덕품성을 가진 공산주의적인간으로 더 잘 키울수 있으며 그들을 문학사업에 적극 나서도록 힘있게 고무추동할수 있다.
 문학작품보급사업을 개선하자면 출판보급일군들이 책임성과 역할을 높여야 한다. 문학작품출판일군들은 대중의 수요에 맞게 문학도서, 문학잡지, 문학신문의 질을 높이고 출판물종수와 부수를 늘여야 한다. 문학작품보급일군들은 매 시기 제기되는 당사상사업방향과 요구에 맞게 문학작품에 대한 보급계획을 바로세우고 제때에 어김없이 수행하며 문학작품의 내용에 대한 해설선전사업을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하여야 한다.
 인민들속에서 문학작품읽기를 생활화, 습성화하기 위한 사업을 잘하는것이 중요하다. 특히 청소년들속에서 책읽기를 생활화, 습성화하기 위한 투쟁을 벌리도록 하여야 한다.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문학작품은 삶과 투쟁의 교과서이며 혁명화의 중요한 량식이다. 문학작품을 읽는것은 심심풀이가 아니라 자신을 수양하기 위한 하나의 혁명임무로 되여야 한다.
 사람들속에서 문학작품을 읽는 기풍을 세우려면 소설책과 시집이 많아야 한다. 근로자들속에서 책을 읽는 기풍을 세우라고 말만 하지 말고 문학작품의 종수도 늘이고 부수도 더 늘이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세우는것이 필요하다.
 문학작품에 대한 실효투쟁을 실속있게 벌려야 한다. 실효투쟁은 근로자들과 청소년들이 혁명적인 문학작품에서 체득한 투쟁과 생활의 진리를 사업과 생활에 실지로 구현할수 있도록 이끌어주는데서 매우 힘있는 작용을 한다. 대중속에서 소설감상모임, 시랑송모임, 《문학의 밤》을 비롯한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문학작품에 대한 실효투쟁을 실속있게 벌려 우리의 문학작품이 인민들의 실천투쟁에서 은을 낼수 있게 하여야 한다.
 군중문학창작사업을 활발히 벌리도록 하여야 한다.
 전문작가가 창작한 문학작품만으로는 문학에 대한 인민대중의 요구를 원만히 충족시킬수 없다. 사람은 다양한 문학작품을 요구하며 작품에 대한 감상만이 아니라 직접 창작에 참가하려는 지향도 가지고있다. 사람은 누구나 문학작품을 즐겨읽을뿐아니라 자기 손으로 작품을 쓸줄도 알아야 한다.
 문학통신원들은 문학의 대중화를 실현하는 선구자이며 믿음직한 작가후비이다. 군중문학창작의 새로운 고조기를 마련하는데서 기본으로 되는것은 군중문학소조활동을 적극 장려하고 문학통신원들의 창작적열정을 비상히 앙양시키는것이다. 문학통신원들은 오늘의 벅찬 현실을 직접 창조하고있는 생활의 주인공이며 낡은 창작경향에 물들지 않은 신진창작력량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현실생활을 소박하고 진실하게 반영할수 있으며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새로운것을 대담하게 들고나올수 있다. 물론 그들이 창작경험이 어리고 예술적기교가 약한 점도 있고 자기의 본신임무를 수행하는 여가에 창작하여야 하는것만큼 시간도 좀 딸릴수 있다. 그러나 창작에서 성과의 비결은 사상과 열정에 있다. 문학통신원들은 항일혁명투사들이 일제와 싸우는 그 어려운 조건에서도 전투적이며 혁명적인 문학예술작품을 창작하였던것처럼 강의한 혁명정신과 높은 창작적열정을 가지고 분초를 짜내여 사상예술적으로 우수한 문학작품을 더 많이 창작해내야 한다. 기관, 기업소와 협동농장의 책임일군들은 군중문학소조활동에 대한 옳은 관점을 가지고 소조가 늘 활동할수 있게 관심을 돌리며 군중문학통신원들이 마음껏 창작하며 작품토론을 할수 있는 조건을 잘 보장해주어야 한다. 청소년학생들속에서 글짓기운동을 활발히 벌리도록 하여야 한다. 학생들이 인민학교와 고등중학교시절에 글을 많이 써보아야 자기의 의사를 글로 표현할수 있는 능력과 문학적재능을 키울수 있고 아동문학도 발전시킬수 있다. 전국의 모든 고등중학교들에서 글짓기운동이 대중화, 생활화되도록 하여야 한다.
 문학작품현상모집사업을 정상화하고 그 수준을 결정적으로 높여야 한다. 현상모집은 광범한 군중의 창작의욕을 불러일으키며 대중속에서 문학창작의 귀중한 싹을 발견하고 키울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위대한 수령님 탄생기념일과 당창건기념일 같은 중요명절을 계기로 문학작품현상모집을 정기적으로 조직하여야 한다. 현상모집에서 당선된 작품에 대한 표창사업을 잘하는것과 함께 당선되지 못한 작품에 대한 처리도 잘하여야 한다. 당선되지 못한 작품이라 하여 밀어버릴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희망이 보이는 작품은 끝까지 완성하도록 방조를 주어 출판물에 실현시켜야 한다.
 군중문학창작사업에 대한 지도를 개선강화하여야 한다. 군중문학창작에 대한 지도를 몇몇 일군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작가동맹적인 사업으로, 전체 작가들의 사업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작가들이 문학통신원들을 담당하고있는것만큼 아무리 창작과제가 바빠도 그들의 작품창작을 실속있게 지도하여야 한다. 작가들이 문학통신원을 도와준다고 하여 그의 작품을 대신 써주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작가들은 문학통신원이 제발로 걸을수 있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문학의 대중화를 위한 사업은 온 나라의 예술화를 실현하는 웅대한 목표에로 지향되여야 한다.
 온 나라의 예술화란 문학예술활동이 사회생활의 한 부분으로 보편화, 생활화되며 사회의 모든 성원이 공산주의사회에 맞는 높은 문화적소양과 예술적자질을 갖추도록 하는것을 말한다. 온 나라의 예술화가 실현되면 모든 사람이 문학예술의 참다운 창조가, 향유자로 될것이며 우리의 문학예술은 더욱 활짝 꽃펴나게 될것이다.
 

4) 작가는 당과 운명을 같이하는 혁명가이다


 문학은 우리 당의 사상적무기이며 작가는 당사상전선의 전초병이다. 당의 사상전선을 지켜선 우리의 작가들은 어떤 환경속에서도 당의 사상과 령도를 충성으로 받들어야 하며 작가의 필봉은 언제나 당을 옹호하는 혁명의 보검으로 빛나야 한다.
 위대한 수령님과 우리 당의 두터운 정치적신임에 의하여 우리 작가들의 사회적지위는 매우 높아졌다. 우리 당은 작가들의 창작활동의 중요성과 특성을 고려하여 언제나 그들을 사회적으로 높이 내세우고 우대하고있다.
 우리 나라에서 작가의 활동은 당과 수령의 위업수행과 밀접히 련결되여있다. 우리 나라에서 작가는 당건설과 활동의 영원한 동행자, 충실한 방조자, 훌륭한 조언자이며 당문예로선의 철저한 옹호자, 적극적인 관철자이다. 작가들은 선행한 그 어느 력사적시대, 그 어느 사회에서도 누릴수 없었던 최상의 사회적지위에서 일하는 영예와 긍지, 자부심을 안고 자기의 성스러운 본분을 다해나가야 한다.
 작가는 당의 영원한 동행자로 되여야 한다.
 당의 영원한 동행자란 당에 자신의 운명을 전적으로 의탁하고 당과 끝까지 운명을 같이하는 주체형의 공산주의혁명가를 말한다. 작가는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하기 위한 멀고도 험난한 혁명의 한길에서 당과 뜻을 같이하고 생사운명을 같이하는 영원한 동행자가 되여야 한다. 작가는 혁명의 일시적인 동반자가 아니라 당과 끝까지 운명을 같이하는 영원한 동행자로 될 때에만 가장 값높고 보람찬 삶을 누릴수 있다. 작가는 어떤 바람이 불어도 우리 당만 믿고 따르는 참다운 충신, 지극한 효자로 되여야 한다. 작가는 당과 수령의 믿음과 기대에 보답하기 위하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내린다 하여도 오직 당을 받들어 충성의 한길을 변함없이 끝까지 걸어나가야 하며 그 길에서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쳐야 한다.
 작가는 당의 충실한 방조자로 되여야 한다.
 당의 충실한 방조자란 당의 의도와 구상, 로선과 정책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심장깊이 새기고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옹호하며 당의 위업을 실천적성과로 받들어나가는 믿음직한 협력군을 말한다. 작가는 창작적재능과 지혜로 당의 위업을 높이 받들어나가는 충실한 방조자가 되여야 한다. 작가는 당의 사상과 로선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그것을 끝까지 관철해나가야 한다. 작가는 오직 당을 위한 몸이 되여야 하며 무엇을 하나 창작하여도 당의 뜻을 끝까지 받들고 꽃피우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하여야 한다. 작가는 언제 어디서나 당의 사상과 의도를 먼저 생각하여야 한다. 당이 의도하고 바라는 문제는 시대와 혁명이 요구하고 인민이 바라는것이며 현실이 그 해결을 절박하게 기다리는 문제이다. 작가는 당이 해결하자고 하는 문제를 제때에 포착하여야 한다. 당에서 의도하고 바라는 문제를 가지고 사상예술성이 높은 작품을 만들어내면 그것이 곧 당을 옹호하는것이고 당에 도움을 주는것이다. 작가는 언제나 당이 의도하고 바라는 절박한 문제를 종자로 잡아쥐고 창작사업을 벌려나감으로써 당의 충실한 방조자, 믿음직한 협력군으로서의 영예와 본분을 다하여야 한다.
 작가는 당의 훌륭한 조언자로 되여야 한다.
 당의 훌륭한 조언자란 당의 위업의 정당성과 혁명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가지고 당활동과 혁명실천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풀기 위한 건설적인 방안과 방도를 탐구하고 제기하는 당의 정열적인 사색가, 적극적인 보좌원을 말한다. 작가는 높은 정치적식견과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언제나 사회주의조국의 륭성번영과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늘 머리를 써야 하며 건설적인 의견을 제때에 제기하여야 한다. 작가가 조국의 륭성번영과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머리를 쓰고 건설적인 의견을 제때에 제기한다는것은 바로 작품창작에서 그런 사람을 시대의 주인공, 주체형의 인간전형으로 내세운다는것을 의미한다. 당은 작가들이 창작한 문학작품을 통하여 현실을 더 깊이 료해할수 있고 현실에서 걸리고있는 문제와 그것을 풀기위한 방도를 찾을수도 있다.
 작가가 당에 조언을 줄만한 훌륭한 작품을 써내려면 그 누구보다도 당의 구상과 의도에 민감하여야 하며 혁명과 건설의 전반을 꿰뚫어볼줄 알아야 한다. 당의 구상과 의도에 민감한 작가만이 당의 로선과 정책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문제성있는 종자를 잡아쥐고 당의 요구하고 인민이 절실히 바라는 문제에 옳은 해답을 줌으로써 당의 위업을 진심으로 받들어나가는 훌륭한 조언자로서의 영예를 빛내일수 있다.
 작가는 당문예로선의 철저한 옹호자, 적극적인 관철자로 되여야 한다.
 당문예로선의 철저한 옹호자란 당이 제시한 문예사상과 정책의 정당성을 굳게 믿고 그것을 견결히 지지하며 온갖 반동적문예조류의 침습을 반대하여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 당문예로선의 신봉자, 보위자를 말한다. 우리 당의 문예사상과 정책은 주체사상의 진리와 현실발전의 요구를 구현한 우리 문학예술의 유일하게 옳바른 지도적지침이다. 당의 문예로선에 철저히 의거하여 창작활동을 벌려야 시대와 인민대중의 지향에 맞는 훌륭한 작품을 써낼수 있고 문학예술을 건전하게 발전시킬수 있다. 문학예술의 진로를 환히 밝히는 가장 과학적인 지침을 가지고있는것은 우리 작가들의 더없는 자랑이며 행복이다. 작가는 우리 당의 문예로선을 유일하게 정당한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기의 피와 살로 만들어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 당의 문예로선과 정책을 헐뜯으며 반동적인 부르죠아문예사상과 문예조류를 끌어들이려는 사소한 경향과도 비타협적인 투쟁을 벌려야 한다.

당문예로선의 적극적인 관철자란 당의 문예로선과 방침을 무조건 드팀없이 구현하는 철저한 집행자를 말한다. 당에서 아무리 정당하고 현명한 정책을 내놓아도 작가들이 그것을 집행하지 않으면 지상공문이 되고만다. 당정책에 대한 무조건성은 충신의 기본품성의 하나이다. 작가는 언제나 충신의 자세로 당의 문예로선과 방침을 받들고 자그마한 조건타발도 없이 그것을 창작사업에 철저히 구현하여야 한다.

작가들이 당건설과 활동의 영원한 동행자, 충실한 방조자, 훌륭한 조언자로, 당문예로선의 철저한 옹호자, 적극적인 관철자로서의 성스러운 본분을 다할 때 진실로 당과 운명을 같이하는 참된 주체형의 혁명적문예전사라고 말할수 있다.

작가들이 당과 운명을 같이하는 참된 주체형의 혁명적문예전사로 되기 위하여서는 자신을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준비하여야 한다.

작가들은 누구보다도 혁명적수령관을 세우기 위한 사업을 잘하여야 한다. 로동계급의 당은 수령의 당이며 당에 대한 충실성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된다. 작가들속에서 우리 당의 창건자이시며 령도자이신 수령님의 위대성을 심장깊이 간직하도록 하기 위한 사업을 실속있게 벌려나감으로써 그들이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우리 당의 위업을 진심으로 받들고 빛내여나가도록 하여야 한다.

작가는 주체적인 관점과 립장을 가지고 인간과 생활을 볼수 있게 준비되여야 한다. 충분한 사상정신적자양분을 섭취한 기초우에서 현실속에 깊이 들어가 인민대중의 사상감정으로 글을 쓰고 말할수 있게 되여야 당과 혁명이 절실하게 요구하는 작품을 제때에 내놓을수 있다.

작가들속에서 낡은 사상을 뿌리빼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야 한다. 작가는 낡은 사상이나 문화와 접촉할 기회가 많은 반면에 정신로동을 하기때문에 실천속에서 단련될 기회가 적으며 집단적으로 사업할 기회도 많지 못하다. 이런데로부터 작가는 낡은 사상잔재의 영향을 받을수 있는 요소가 많다. 작가들속에 남아있는 낡은 사상잔재는 외부로부터 부르죠아사상문화와 수정주의문예조류가 침습할수 있는 온상으로 된다. 작가는 부르죠아사상, 수정주의사상, 봉건유교사상을 비롯한 온갖 낡은 사상잔재를 극복하고 자신을 우리 당의 혁명사상, 주체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여야 한다.

작가들이 당과 운명을 같이하는 참된 문예전사로 되기 위하여서는 기술실무적으로 튼튼히 준비되여야 한다. 문학적자질과 재능이 없이는 당에 도움을 줄수 없고 당의 문예로선을 제대로 관철할수도 없다. 작가는 문학적자질이 높아야 작품창작에서 계속혁신, 계속전진해나갈수 있다. 명작을 내놓는가 내놓지 못하는가 하는것도 작가의 문학적자질이 어떠한가 하는데 많이 달려있다. 부르죠아작가들처럼 생활을 제멋대로 그려낼내기를 한다면 크게 품을 들이지 않아도 작품을 쓸수 있지만 우리 당의 사상과 의도에 맞게 사상성과 예술성이 결합된 훌륭한 작품을 창작하자면 높은 실무능력을 갖추고있어야 한다. 작가는 누구보다 공부를 많이 하고 생활체험을 많이 쌓아야 한다. 그래야 생활의 박식가, 창작의 능수가 될수 있다.

작가들은 당과 운명을 같이하는 참된 주체형의 혁명적문예전사로서의 숭고한 사명을 깊이 자각하고 사상예술성이 높은 다양한 주제, 다양한 종류의 성과작을 많이 창작하여야 한다. 여기에 바로 작가들이 당의 신임과 기대에 참답게 보답하는 길이 있다.

주체의 문학리론은 우리 당의 령도밑에 인류가 리상하는 가장 고상한 공산주의문학, 참다운 주체문학을 건설하고 창작하기 위한 어렵고도 복잡한 투쟁속에서 창조되고 심화발전된 새로운 리론이다. 자주시대의 문학은 주체의 문학리론을 창작실천에 철저히 구현함으로써만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는 참말로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문학으로 될수 있다.

문학창작은 심오한 사상과 높은 열정을 가지고 하는 사업이다. 세계관이 바로서고 철학적사색이 깊으며 창작적열정과 예술적자질이 높은 작가라야 인민의 사랑속에 력사에 남는 훌륭한 작품을 창작할수 있다.

주체의 문학리론은 자주시대 문학창작과 건설의 지침이며 작품평가의 기준이다. 주체의 문학리론은 작가에게 인간과 생활의 깊은 세계를 가장 정확히 꿰뚫어보고 생활의 진리와 인간의 가치를 높은 경지에서 밝힐수 있는 사색의 나래를 주며 끓어넘치는 창조적열정을 준다. 작가들은 주체의 문학리론을 깊이 연구하고 창작실천에 철저히 구현함으로써 우리의 문학을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온 세계의 자주화를 실현하는데 힘있게 이바지하는 투쟁의 무기로 되게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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