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日本朝鮮人文学芸術家同盟

우리 민족의 자랑 《문방4우》​

주체111(2022)년 3월 20일 

우리 민족의 자랑 《문방4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슬기롭고 지혜로운 우리 민족이 창조한 민족유산가운데는 《문방4우》도 있다.

《문방4우》란 종이와 먹, 붓, 벼루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4개의 문방구를 《문방4우》라고 하는것은 그 4가지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여러가지 서사활동을 할수 없기때문이다. 이로부터 이것들의 관계를 《벗의 관계》로 표현하였던것이다.

종이는 《문방4우》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민족유산이다.

일찌기 우리 인민의 서사생활에 쓰이기 시작한 종이는 삼국시기에는 고구려중 담징에 의하여 일본에까지 그 생산기술이 보급되였으며 고려시기에는 주변나라를 거쳐 아랍나라들에까지 수출되였다는 자료가 있다.

조선종이는 제조방법이 독특하고 질이 높아 명성을 떨치였다. 조선종이는 종이의 원료인 닥나무의 섬유질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면서 만들어져 명주천과 같이 질기며 재물에 충분히 풀린것으로 하여 부드럽고 흡수성이 높아 먹발을 잘 받았다. 또한 종이의 백색도가 높고 매끈하여 붓으로 글을 쓰면 미끄러지듯 하였다.

먹도 삼국시기에는 일본에까지 전해졌고 고려때에는 한 지방에서만도 한달동안에 수천자루씩 생산할수 있는 큰 능력이 있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는 먹을 생산하는 경험과 기술이 계속 발전되여 맹산, 순천, 녕원, 해주지방에서 생산되는 먹이 질이 높아 다른 나라들에까지 알려졌다. 특히 조선봉건왕조시기 해주에서 생산되는 먹은 제조방법이 특이하여 이웃나라들에 먹색이 검은 옻과 같다는 뜻의 《후칠먹》으로 전해져 명성을 떨치였다.

《문방4우》중의 하나인 붓도 연원이 매우 오래다.

고구려무덤벽화들에도 서사활동에 쓰이는 붓들이 반영되여있으며 고려시기에는 랑모필, 황모필, 대모필을 비롯하여 여러가지가 있었다. 이웃나라들에서 시를 잘 지은 사람들에게 조선의 대모필을 상으로 주었다고 한 자료를 통해서도 우리 나라의 붓의 질이 매우 좋았다는것을 알수 있다.

벼루는 돌의 재질에 의하여 그 질이 규정된다. 고려시기에 발견되여 조선봉건왕조시기와 근대에까지 벼루제작에 쓰인 자석이나 청석, 사문석 등은 질좋은 벼루재료였다. 이런 재료로 만든 벼루는 돌결이 치밀하고 두드리면 소리가 나며 먹을 갈면 보드랍게 갈리워 찌끼가 일지 않고 먹물이 깨끗하여 푸르게까지 보일 정도였다. 이런것으로 하여 우리 나라 벼루돌가운데서 자석, 청석 등은 일제침략자들의 략탈대상으로까지 되였다.

오늘 조선로동당의 민족문화유산보호정책에 의하여 《문방4우》는 우리 인민들의 서사활동을 위한 훌륭한 수단으로 널리 리용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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