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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역의 아들딸들을 위하여
이역의 아들딸들을 위하여 (1)
주체111(2022)년 9월 28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자주시대 해외교포운동의 개척자, 총련의 창건자이시며 재일동포들의 삶의 은인, 자애로운 어버이이십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조국을 멀리 떠나 이역에서 살고있는 우리 어린이들과 학생들을 각근히 사랑하시며 따사로운 해님의 빛발을 안겨주신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세월이 흐르고 년대가 바뀌였어도 재일동포들은 오늘도 눈물겹게 노래부른다.
수령님의 높고 큰 이 사랑을 산이나 바다에 그 어이 비기랴고, 주시고주신 그 사랑 총련의 세월을 펼치여 우리 아들딸들을 하나같이 키워주셨다고.
전후 그처럼 어려운 시기에도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해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이역에서 나서자라는 아들딸들도 지덕체를 갖추어 사회주의조국의 역군이 되기를 바라시는 친어버이심정으로 그이께서 해마다 보내주신 막대한 액수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은 재일조선인운동의 어제와 오늘을 주체의 피줄기로 꿋꿋이 이어준 애국의 생명수, 영원히 마를줄 모르는 은혜로운 사랑의 젖줄기였다.
재일동포들을 조국인민들과 꼭같이 한식솔로 여기신 어버이수령님의 육친적인 사랑속에 총련은 이역의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초급학교로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적민족교육체계를 정연하게 세워놓고 새 세대들을 애국위업의 믿음직한 계승자로 튼튼히 키워낼수 있었다.
이역의 후대들을 위해 바치신 어버이수령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재일동포들이 잊지 못해하는 하나의 가슴뜨거운 이야기가 있다.
조국으로 오는 재일동포들을 위해 《만경봉》호가 건조되였을 때의 일이다.
완성된 배의 외형과 내부구조를 찍은 사진들을 보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재일동포들을 태워올 이 배는 조국의 한부분이라고, 그러므로 우리 나라의 공업을 다 동원해서 외형적으로나 내용적으로 훌륭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 건조과정을 구체적으로 지도해주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혹 미진된것이 없겠는지 좀더 생각해보자고 하시며 다시금 사진을 펴놓으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귀국선이 한번 올 때 동포자녀들이 몇명씩이나 타고오는가, 배를 무을 때 어린이들의 놀이터를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인지라 누구도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그이께서는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해빛이 잘 들고 사방을 다 볼수 있는 곳에 어린이실을 널직하게 잘 꾸려주자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그리하여 다 무어진 배의 일부 구조를 변경하여 어린이실을 아담하게 꾸려주는 공사가 급히 진행되게 되였다.
아이들을 제일로 사랑하시는 우리 수령님의 심중에는 이토록 이역의 동포자녀들도 늘 자리잡고있었다.
그후 《만경봉》호를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여러곳을 돌아보시다가 문득 이 배를 무을 때 배의 구조를 변경시켜 꾸려놓은 어린이놀이터가 있겠는데 한번 보자고 하시였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어린이실에 들리시여 세발자전거며 목마를 손수 밀어보시던 그이께서는 여기서 아이들이 잘 노는가고 물으시였다. 동포자녀들이 이 방을 떠날줄 모르며 즐겁게 논다는것과 그것을 보면서 그들의 부모들이 더 기뻐한다는 보고를 받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럴거라고, 어린아이들의 마음에도 조국의 따뜻한 품이 느껴질것이라고 하시며 앞으로 평양에서 장난감도 더 많이 가져오고 놀이시설도 더 꾸려주자고 하시였다.
력사는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를 적지 않게 전하고있다. 하지만 그 사랑은 한가정의 뜨락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정녕 우리 수령님처럼 이역의 동포자녀들에게까지 이토록 친어버이사랑을 부어주신 그런 위인을 력사는 알지 못하고있다.
이역의 아들딸들을 위하여 (2)
주체111(2022)년 9월 29일
어버이수령님의 따사로운 품에 안겨 이역의 수많은 아들딸들은 조국을 알고 민족을 아는 참된 조선사람으로 훌륭히 자라났다.
주체61(1972)년 여름 총련 도꾜조선중고급학교 축구소조와 요꼬하마조선초급학교 음악무용소조원들이 조국방문의 길에 올랐다.
그들의 마음은 구름우에 두둥실 떠오른듯 하였다.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이 조국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느닷없이 눈시울이 불깃해지는것을 보면서 그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는 조국땅을 하루빨리 밟고싶은 충동을 금치 못하던 이역의 학생소년들이였다.
마침내 그들이 탄 비행기는 조국땅에 착륙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비행장구내가 온통 환영의 꽃바다였던것이다.
손에손에 꽃다발과 풍선을 든 수많은 조국인민들과 학생들이 터치는 환호성, 개선장군을 맞이하는 행사인들 이토록 요란하겠는가.
영문을 알수 없어 주춤주춤하며 비행기에서 내려온 그들을 조국의 학생들이 환성을 올리며 달려와 얼싸안았다. 그리고는 꽃목걸이를 걸어주고 목마를 태워 환영군중속으로 들어갔다.
조국인민들은 머나먼 이역땅에서 찾아온 아이들을 어디 한번 안아보자고 하면서 저저마다 따뜻한 손길로 그들을 어루만지였다.
환영의 꽃물결을 헤치며 가까스로 비행장을 벗어나니 시내로 들어가는 길 량쪽에도 오색테프를 줄줄이 늘인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는것이 아닌가.
그날 날씨가 흐렸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졌는데 환영군중은 폭우속에서도 흩어지지 않고 열렬히 환영하였다.
동포학생들의 가슴속에서는 뜨거운것이 솟구쳐올랐다.
(아, 이것이 조국이구나! 우리 부모들이 꿈결에도 못 잊어하던 어머니품이구나.)
이날의 성대한 환영행사는 이역의 아들딸들에 대한 우리 수령님의 뜨거운 정에 의해 마련된것이였다.
총련동포자녀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사업정형을 료해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환영행사의 규모가 너무 작다고 하시면서 비행장환영은 물론 대규모의 연도환영도 조직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나어린 학생들을 위한 대규모의 연도환영,
이 전례없는 조치에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는 일군에게 그이께서는 간곡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애들이 조국을 찾아오는 이역의 첫 학생소년예술소조원들인데 조국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아이들의 심장속에 조국의 귀중함을 심어주어야 한다. 환영도 크게 하고 각별히 잘 보살펴주어야 한다.
뒤늦게 이 가슴뜨거운 사연을 알게 된 동포학생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였다.
조국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있던 그들은 어느날 기쁜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 인차 어버이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가게 된다는것이였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평양을 떠나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였다.
해마다 사랑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시고 학교들에 조국의 동식물표본과 민족악기까지 갖추어주시며 다심한 사랑을 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 언제면 그 인자하신 영상을 몸가까이 뵈올수 있을가 하고 늘 생각하던 이역의 학생들은 격정으로 설레이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해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출발날자는 계속 미루어졌다. 그러던 어느날 조국의 한 일군이 그들에게로 급히 달려와 어버이수령님께서 너희들을 만나주시려 이제 곧 평양학생소년궁전으로 나오시니 어서 준비하라고 하는것이였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정말 눈물없이는 들을수 없는것이였다.
현지지도의 길에서 동포학생들이 잘 지내는가를 알아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지금 그들이 자신께서 계시는 곳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요새는 장마철이여서 길이 험할텐데 학생들이 고생할것 같다. 조국이 그리워 찾아온 아이들인데 고생을 시켜서야 되겠는가. 아무리 바빠도 내가 가서 만나봐야 하겠다.
동포학생들은 솟구치는 감격으로 어깨를 떨었다.
(저희들이 무엇이길래…)
멀리 이역에서 사는 자식들이여서 더 아끼고 사랑해주시는 수령님의 어버이정에 목이 꽉 메일뿐이였다.
마침내 영광의 시각이 왔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타신 승용차가 도착하자 평양학생소년궁전구내에서는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올랐다.
인사도 변변히 드리지 못한채 앞을 다투어 어버이수령님의 옷자락에 매달리며 감격에 울고웃는 학생들, 그들모두를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신 수령님께서는 매 학생들의 이름과 나이, 부모, 조국방문소감에 대하여 하나하나 물어보시며 우리 말을 아주 정확하게 잘한다고 만족해하시였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이 일본에서 우리 말로 공부를 하고 오늘과 같이 조국에도 다녀갈수 있게 된것은 사회주의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기때문이라고 하시면서 전후에 재더미만 남았던 조국이 짧은 기간에 훌륭히 일떠선데 대하여 감명깊이 이야기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학생들이 준비한 공연을 보아주시고 전체 성원들과 영광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시였으며 자신의 존함이 새겨진 손목시계까지 안겨주시였다.
동포학생들은 행복의 무아경에 잠겨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니 거기서는 또 어버이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사랑의 선물이 그들을 기다리고있었다.
참으로 행복한 하루였다.
이역의 아들딸들을 위하여 (3)
주체111(2022)년 9월 30일
그후 총련학생들과 조국학생들의 련환대회를 조직하도록 해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모든 사업을 뒤로 미루시고 여기에 참석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을 또다시 만나뵈옵게 된 동포학생들은 너무도 감격하여 발을 동동 구르며 그이의 품에 얼굴을 묻고 목놓아울었다. 겨우 눈물을 거두었던 그들은 우리는 매우 기쁜 마음으로 동무들을 맞이하였는데 이제 머지않아 갈라지게 되니 섭섭한 마음 금할수 없다고 하시는 그이의 말씀에 다시금 어깨를 들먹이였다.
어느덧 뜻깊은 련환대회가 끝나고 한 일군이 돌아가실 시간이 되였다고 말씀드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저 학생들과 잠시라도 더 함께 있고싶다고 하시며 동포학생들에게로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순간 동포학생들은 막혔던 물목이 터진듯 저저마다 달려가 그이의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이날 동포학생들과 헤여지신 후 그들이 떠나간 쪽을 한참이나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 어린것들도 자기의 조국을 떠나자니 마음이 좋지 못한 모양이라고, 그애들이 오늘 너무 많이 울었다고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돌아오신 후에도 눈물속에 자신께 매달리던 동포학생들의 모습을 되새기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오늘 낮에 어린것들이 많이 울었는데 숙소에 돌아가서 마음이 우울해지면 안된다고, 교예극이라도 관람시켜 기분을 전환시켜주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이렇듯 다심한 은정에 의해 동포학생들이 교예극장의 특별석에 앉아 공연을 보면서 손벽치며 마음껏 웃는 광경이 펼쳐지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6년후 공화국창건 30돐을 축하하는 재일조선학생예술단이 조국에 왔을 때의 일이다.
예술단성원들가운데는 평양학생소년궁전에서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뵈왔던 어제날의 꼬마들도 있었다.
만수대예술극장에서 그들의 공연을 보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그이께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시면서 모두를 몸가까이 불러주시자 이역의 학생들은 한달음에 달려가 저마다 그이곁에 가까이 서겠다고 승벽을 부리였다. 그들의 무랍없는 행동을 자애로운 미소속에 바라보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자리가 정돈되기를 기다리시였다.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는 행복의 시각에 동포학생들 누구나 한껏 웃으려 하였으나 자꾸만 눈물이 솟구쳐올라 웃을수 없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울지 말라고, 울면 사진이 안된다고 달래실수록 흐느낌소리는 더욱 커졌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손수건을 꺼내시여 곁에 선 학생의 눈물을 닦아주시였다.
그 감동깊은 화폭은 오늘도 만사람의 눈굽을 적셔주고있다.
이런 가슴뜨거운 이야기들을 다 하자면 정녕 끝이 없다.
자연에 생기와 활력을 주는 봄의 따사로움에는 한계가 있지만 우리 수령님의 사랑은 그 끝과 깊이를 헤아릴수 없는 위대한 사랑, 영원한 사랑이였다.
정녕 우리 수령님은 온 나라 청소년들뿐아니라 이역의 동포자녀들까지도 따사로운 품에 안아 보살펴주신 위대한 스승,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이의 그 웅심깊은 사랑속에 어엿하게 성장하였던가.
하기에 어느덧 귀밑머리에 흰서리가 내린 어제날의 동포학생들은 오늘도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으로 가슴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