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日本朝鮮人文学芸術家同盟

온 나라 인민을 감동시킨 TV무대 《신념의 웨침》을 보고

《로동신문》주체111(2022)년 1월 27일

투사의 그 정신 참된 삶의 줄기찬 박동으로 이어가리라

온 나라 인민을 감동시킨 TV무대 《신념의 웨침》을 보고

신념의 억센 뿌리

TV무대 《신념의 웨침》, 그것은 단순히 무대가 아니였다.거의 한세기라는 세월을 뛰여넘어 오늘에 펼쳐진 어제의 생생한 사실이고 우리앞에 다가선 그날의 살아있는 모습이였다.

권영벽, 너무도 귀에 익은 이름이 아니던가.배움의 시절 교과서를 펼쳐든 선생님의 젖은 목소리에서, 지하막장에서의 휴식참과 발전소건설장의 우등불가에서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와 더불어 삶과 투쟁의 자욱자욱을 더듬어보며 가슴속에 깊이 간직한 항일혁명선렬들중 한사람인 열혈의 투사.

우리는 지금 마음속으로 항일전장의 한복판에 서있다.그때의 차디찬 철창과 쇠고랑과 피에 절은 수인복을 눈앞에 마주하고있으며 죽어서도 영생하는 참된 삶의 진리, 어제와 오늘도 그러했고 래일도 영원히 우리모두의 심장속에 불멸할 신념의 메아리인 투사의 불같은 웨침을 듣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신념과 의리로 하는것이 혁명이며 신념과 의리로 하여 빛나는것이 혁명가의 인생행로입니다.》

우리는 투쟁과 생활에서 신념이란 말을 자주 외운다.자신이 체득한 사상과 견해에 대한 굳은 믿음과 그것을 끝까지 실현하려는 강렬한 지향인 신념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공고화되는것인가.

권영벽동지는 혁명의 길에 나서며 안해에게 이런 마지막당부를 남겼다.

《내가 가는 이 혁명의 길이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누구도 기약할수 없구려.난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니 이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치고 기다리지 마오.》

인생의 길에는 무수한 리별과 상봉이 있다.하지만 이처럼 단란한 가정을 뒤에 두고 죽음이 기다리고있을지도 모를 멀고 험한 길로 서슴없이 떠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살아서 조국이 광복되는것도 보고 고향에도 돌아가고싶지만 그런 행운이 나한테는 차례지지 않을것같습니다.나는 적들과의 결전에서 뒤자리에 설 생각이 없습니다.아버지의 원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언제나 맨 앞자리를 차지할 작정입니다.선두에서 결사전을 벌려야 할 이 몸이 어찌 살아날 생각부터 하겠습니까.그런 우연은 바라지 않습니다.》

권영벽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온 자리에서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아뢰였다.

사람의 한생에는 기쁨과 행복도 있고 고난과 시련도 있으며 지쳐 쓰러질 때도 있다.그 모든 희로애락중에서도 자신의 본태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보일수 있는 순간은 아마도 죽음을 눈앞에 둔 때일것이다.

하기에 더없이 귀중한 생명, 단 한번밖에 없는 삶을 아무러한 후회나 주저도 없이 바친다는것은 누구나 쉽게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투쟁에 나서는 첫 순간부터 애초에 살아돌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결연한 각오, 혁명을 위해 한목숨 바치는것을 더없는 행복으로 여긴 백절불굴의 기개와 투지를 놓고 우리는 생각해본다.

신념이란 죽음앞에서도 굴함없는 강철같은 의지와 지조이며 신념의 인간이란 그 어떤 시련과 고난속에서도 자기의 긍지높은 삶을 자부하며 생을 가장 깨끗하게 마무리할수 있는 불굴의 인간이라고.

자기가 선택한 사상과 위업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한몸을 서슴없이 내대며 설사 그 길에서 쓰러지거나 숨이 진다고 해도 혁명앞에 다진 맹세를 지켜 추호의 변심도 모르는것이 죽어도 변치 않을 혁명가의 굳센 신념이 아니겠는가.

권영벽동지는 타고난 혁명가는 아니였다.나라잃은 설음을 안고 머나먼 이국땅에서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아가던 화전민의 아들이였고 투쟁의 길에 나서기는 했어도 갈길 몰라 방황하며 자기에게 힘을 주고 희망을 줄수 있는 지도자를 목마르게 기다리던 그 시절의 하많은 애국자들중 한사람이였다.

하다면 그가 어떻게 되여 그렇듯 사선의 고비도 웃으며 넘나드는 불굴의 투사로 성장했는가.철창속에서 살이 찢기고 뼈가 부서지면서도 자기의 혁명적지조를 끝까지 지킨 신념의 억센 뿌리는 과연 무엇이였던가.

수령의 품, 바로 이것이 권영벽동지가 목숨과도 바꿀수 없고 죽어서도 떠날수 없었던 신념의 고향이였다.다름아닌 수령의 품에 뿌리내린 신념이였기에 그것은 강철보다 억세고 억년암반의 뿌리처럼 깊은것이였다.

혁명의 길에 나선 그를 어엿한 투사로 키워주시고 태양과도 같은 넓고 따뜻한 품에 안아 천금을 주고도 사지 못할 사랑과 믿음으로 보살펴주신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권영벽동지가 위대한 수령님의 슬하에서 혁명을 한지는 불과 몇년밖에 되지 않았다.하지만 그 길지 않은 나날에 그는 국내외의 수많은 애국자들을 묶어세우고 일제교형리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유능한 정치공작원, 불굴의 투사로 자라났다.

혁명투쟁에서 나를 가르쳐주고 키워주신 사령관동지는 나의 스승이며 어버이이시다.나는 일편단심 김일성장군님께 충성을 다할것이다!

투사가 지닌 억센 신념의 또 하나의 원천은 동무에게 장백을 맡긴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이였다.인민들을 전취하는것은 힘든 일이지만 그 결과는 동무에게 달려있다고, 나는 동무를 믿는다고 하신 사령관동지의 크나큰 기대와 믿음에 보답하기 위하여 투사는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장백지구에서 활동한 권영벽동지의 투쟁에 대하여 회고하시면서 하강구의 7도구로부터 상강구의 25도구에 이르는 수백리의 로정을 권영벽은 한달에도 몇차례씩 발이 닳게 돌아다니였다고, 장백현에 부락들이 많았지만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부락이란 거의 없었다고 하시였다.

우리 잠시 생각해본다.수령의 슬하에서 혁명을 배우고 수령의 사랑과 믿음을 받아안은 사람이라고 하여 다 충신이 되고 다 혁명가로 되는것인가를.

수령의 사랑과 믿음을 남다르게 받아안았지만 그것을 망각하고 배신의 길을 걸은자들의 추악한 모습은 또 하나의 진리를 우리모두에게 새겨준다.

그것은 바로 수령의 사랑과 믿음을 생의 근본, 명줄로 여기며 설사 최후의 순간이 닥쳐온다 해도 잊지 않고 저버리지 않는 고결한 의리를 간직할 때만이 민족사에 길이 남고 후대들이 생의 모범으로 새겨안는 신념의 인간이 될수 있다는것이다.

간고한 항일혁명의 불길속에서 수령의 위대성을 심장으로 체득하고 그이의 사랑과 믿음을 인생의 영광으로 받아안으며 그이의 사상과 령도를 받들어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쳐싸우는것을 혁명전사의 숭고한 도덕적의리로 간직한 참다운 혁명전사였기에 권영벽동지는 생의 마지막순간에도 《김일성장군 만세!》를 높이 부르며 혁명가의 값높은 삶을 빛내일수 있었다.

투사가 고귀한 생을 마친 때로부터 세월은 멀리도 흘렀다.그러나 투사가 남긴 신념의 웨침, 혁명의 전세대들의 간곡한 당부는 오늘도 시대의 메아리가 되여 우리의 진군대오에 힘있게 울려퍼지고있다.

눈속에 묻힌대도 푸른빛을 잃지 않는 소나무처럼, 부서져 가루되여도 흰빛을 잃지 않는 백옥처럼, 열백번 불에 타도 곧음을 잃지 않는 참대처럼 그 어떤 천지풍파가 닥쳐온대도 한번 다진 맹세, 혁명신념을 변치 말라!

그렇다.이 영원한 메아리와 더불어 투사들의 고결한 혁명정신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따르는 한길에서 우리 천만인민의 참된 삶의 줄기찬 박동으로 끝없이, 힘차게 이어질것이다.

본사기자 리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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