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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초대위원장 리면상선생
우리 국가의 발전행로에 뚜렷한 자욱을 새긴 충신, 애국자들
주체음악발전에 공헌을 한 작곡가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초대위원장 리면상선생
《로동신문》2023.05.12.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새세대들도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하였던 전세대들처럼 한생을 빛나게 살도록 교양하여야 합니다.》
우리 공화국의 70여년력사에는 위대한 태양의 품속에서 조국과 인민이 사랑하는 작곡가로 성장한 리면상선생의 이름도 새겨져있다.
해방전 가난한 농가에서 태여난 그는 음악에 뜻을 품고 이역땅에서 고학의 나날을 보내였다.그후 조국에 돌아와 남다른 재능으로 가요와 민요들을 창작하였지만 식민지민족의 불우한 음악가로서의 그의 운명은 달라질수 없었다.
그가 인민의 참된 작곡가로서 창작활동을 하게 된것은 해방후부터였다.주체35(1946)년 5월 리면상선생은 영광스럽게도 평양에서 열린 어느한 대회에 참가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뜻깊은 연설을 직접 받아안게 되였다.그때부터 그는 혁명을 알고 당정책을 옹호관철하는 혁명적인 작곡가로 인생의 방향전환을 하게 되였다.
그 시기 리면상선생이 창작한 유명한 작품은 우리 인민들의 열렬한 애국의 감정과 민족적긍지감을 격조높이 구가한 가요 《빛나는 조국》이다.그는 뒤이어 나라의 주인된 환희와 열정을 안고 첫 인민경제계획수행에 떨쳐나선 로동계급의 억센 기상을 노래한 《승리의 5월》과 《산으로 바다로 가자》 등 인민의 사랑을 받는 가요들을 련이어 창작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면상동무가 작곡한 노래들은 민족적이며 인민적인 정서가 풍부한것으로 하여 인민들의 사랑을 받고있다고 하시며 은정어린 피아노를 선물로 보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따뜻한 사랑과 믿음은 그에게 무한대한 창작적열정을 안겨주는 원동력이였다.하기에 그는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의 나날에도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싸우는 전사들과 언제나 한전호속에 있었다.
그는 《조국보위의 노래》와 《문경고개》를 창작하여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을 원쑤격멸의 성전에로 불러일으키는데 이바지하였다.
전화의 나날 불타는 고지에서 인민군용사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그들의 가슴속에 간직된 조국과 고향산천, 부모처자에 대한 사랑이 어떤것인가를 체험하는 과정에 그는 가요 《내 고향의 정든 집》을 창작하였고 류벌공들과 함께 떼목을 타고가면서 사색을 거듭하여 가요 《압록강 2천리》를 창작함으로써 전시생산을 위해 떨쳐나선 인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안겨주었다.
그후 리면상선생은 《눈이 내린다》와 같이 우리 당의 혁명전통으로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무장시키는데 적극 이바지하는 노래들도 창작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명곡들을 새로 창작할 때마다 리면상동무의 노래는 곡이 좋다고, 곡이 좋으니 세상사람들이 다 부른다고 높이 평가해주시였으며 그에게 인민예술가칭호를 수여하도록 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가극으로 옮기는 사업에서 특출한 공헌을 한 그를 나라의 첫 김일성상계관인으로 내세워주시고 그후에는 우리 나라의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수훈자의 영예를 지니도록 해주시였다.
리면상선생은 절세위인들의 대해같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로년기에도 왕성한 창작적의욕을 가지고 가요 《당은 내 삶의 어머니》를 시대의 명작으로 훌륭히 창작하여 내놓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면상선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인민의 사랑받는 재능있는 작곡가로서 그가 세운 공적을 높이 평가하시여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해주시였다.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는 리면상선생의 생일 100돐을 맞으며 음악회를 열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태양의 품속에서 리면상선생이 누려온 값높은 삶은 오늘도 우리 인민이 사랑하고 즐겨부르는 수많은 명곡들과 함께 영생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