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日本朝鮮人文学芸術家同盟

민족음악가가정

민족음악가가정

아버지는 고음저대, 어머니는 중해금, 맏딸은 양금, 막내딸은 대해금. 온 가족이 민족악기와 인연을 맺은 이 가정은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교원 주혜련의 가정입니다.

주혜련선생은 40여년세월 대학에서 민족악기를 가르치고있습니다.

몇해전에 세상을 떠난 남편 황진철선생도 주혜련선생과 함께 대학에서 민족악기교육에 한생을 바쳤습니다.

이들부부가 지난 기간 키워낸 수많은 제자들이 오늘 주요예술단들에서 나라의 민족음악발전에 기여하고있습니다. 사실 이들부부가 처음 선택한 악기는 민족악기가 아니였습니다.

주혜련선생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1966년에 대학에 입학할 때 저의 전공은 피아노였고 저의 남편은 바이올린을 전공하고있었습니다.

1966년 7월을 비롯하여 여러차례 우리 대학을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학생들이 연주하는 민족음악도 들어주시고 높이 평가해주시면서 민족음악을 들으려면 이 대학에 와야 하겠다는 뜻깊은 교시를 주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교시는 양악기를 하던 저와 저의 남편이 민족악기에 뜻을 두게 된 계기점으로 되였습니다.》 그로부터 몇년후 주혜련선생과 황진철선생은 해금과 저대로 전공을 바꾸었습니다. 또한 민족음악에 대한 공통된 지향을 안고 이들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이들부부는 두 딸들에게도 민족악기를 쥐여주었습니다.

온 가족이 민족악기를 하게 된 이 가정의 류다른 생활을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였습니다.

이 가정에는 뭇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며 부모와 자식들이 모두 대학으로 함께 출근하는 이채로운 정서도 있었고 온 가족이 모여앉아 기량발표회도 하고 가족기악중주를 펼치는 즐거운 휴식일도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 이들은 미처 다 알지 못했던 민족악기의 독특한 울림과 예술성에 더욱더 심취되였고 이런 악기를 다루는 긍지와 함께 민족악기들에 대한 애착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긍지와 애착이 자식들의 마음속에 처음부터 자리잡은것은 아니였습니다. 맏딸 황련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대학졸업반때인가 아버지에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내가 민족악기를 하는것이면 되지 않겠는가, 동생만이라도 양악기를 시키자고 말한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저에게 우리 집이 대를 이어 민족음악을 하는것이 우리 가정만을 위한것이고 부모들의 대를 잇는다고만 생각하면 잘못된것이다, 너희들은 자기 수령께 충실하고 자기 민족을 위해 복무하는 그런 충신들이 되길 바라는 부모들의 넋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하시였습니다.》 아버지의 당부에서 두 딸들은 민족악기를 잡았다고 하여 다 민족음악가가 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였습니다.

두 딸들은 새로운 결심을 안고 악기를 잡았습니다.

-우리의 선률은 심장에서부터 흘러나와야 한다, 우리의 뛰여난 연주실력으로 민족의 우수성을 빛내이자- 맏딸 황련아는 2개의 채를 가지고 하게 되여있는 양금을 3개, 4개의 채를 가지고 연주하는 새로운 연주법을 창조하여 사람들을 놀래웠고 둘째딸 황나연도 대학기간에 2.16예술상개인경연에서 1등을 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주체99(2010)년 8월을 비롯하여 여러차례에 걸쳐 황련아의 양금독주를 들어주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연주를 잘한다고, 온 가족이 민족악기를 한다는데 이 가정은 민족음악가가정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였습니다.

조국과 민족앞에 떳떳한 참다운 예술인, 애국자로 살기 위해 오늘도 이들은 끊임없이 노력하고있습니다. 황련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모들의 뜻을 이어 우리 자식들에게도 또 그 다음대에도 민족음악을 시키고 민족의 넋을 그대로 이어주면서 민족음악가가정의 대를 굳건히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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