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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근로자들과 6월4일문학상
《로동신문》주체110(2021)년 6월 3일
평범한 근로자들과 6월4일문학상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는 근로인민대중이 모든것의 주인으로 되여있고 사회의 모든것이 근로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가장 우월한 사회제도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문학통신원들을 비롯한 근로자들속에서 문학예술창작활동이 적극 장려되고있다.
문학통신원들은 해당 지역 작가동맹의 작가로부터 개별적인 지도를 받으며 해마다 일정한 기간 집중적으로 창작강습도 받는다.
당의 은정어린 조치에 따라 1980년대초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우수한 작품들을 창작한 문학통신원들에게 6월4일문학상을 수여하였다.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일군의 말에 의하면 지난 기간 수십명의 문학통신원들이 6월4일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 첫 6월4일문학상은 평범한 로동자, 농민, 사무원이 받았다.
오늘도 온 나라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시초 《어디서나 백두산에 오르리》를 창작한 룡성기계련합기업소 로동자였던 주옥양동무도 바로 그때 6월4일문학상 수상자가 되였다.
양덕군의 나어린 처녀농장원은 비 오나 눈 오나 혁명사적지관리사업에 온갖 정성을 쏟아부은 소년단원들의 모습을 형상한 단편소설을 창작하여 이 문학상을 받았다.
그때를 추억하며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양덕군인민들의 생활향상을 위해 자기들의 고장을 몸소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매일같이 혁명사적지관리사업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큰 충격을 받고 펜을 들었지만 욕망뿐이였다.그때 평안남도작가동맹위원회의 작가가 농장마을에 내려와 작품의 구성과 인물들의 성격발전과정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해주었으며 농장마을사람들도 지혜를 합쳐주었다.
그들의 방조가 없었더라면 문학을 갓 배운 내가 어떻게 6월4일문학상을 수여받을수 있었으며 오늘은 이렇게 작가로 성장할수 있었겠는가.정녕 고마운 우리 조국이 나의 꿈을 키워주고 빛내주었다.
어찌 그만의 심정이라 하랴.
수십년전 황해남도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교원으로 배치받은 20대 처녀가 있었다.어느날 그는 도작가동맹위원회의 일군을 통하여 문학통신원들은 작가의 개별지도와 문학수업을 정기적으로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그는 지방의 한 처녀교원의 희망도 따뜻이 헤아려주는 고마운 조국의 사랑을 페부로 느끼며 창작활동을 순간도 멈추지 않았으며 그 나날에 6월4일문학상을 수여받았다.
그리고 평양시의 어느 한 건물관리소에서 로동자로 일하던 한 청년은 서로 돕고 위하는 우리 사회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시에 담아 6월4일문학상 수상자가 되였으며 그후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많은 시를 창작하였다.
6월4일문학상 수상자들가운데는 특류영예군인도 있다.
두다리와 한팔이 없는 그가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는 시를 창작하게 된 비결에 대하여 그의 안해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남편에게는 오랜 세월 수시로 집에 찾아와 창작수업을 도와준 고마운 스승들이 있다.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작가들의 방조속에 남편은 성한 사람도 쉽게 도달할수 없는 높이에 이르렀다.남편이 쓰는 한편한편의 시는 한몸을 깡그리 바친대도 한이 없을 우리 조국에 대한 불같은 사랑의 분출이다.
이들만이 아니다.
탄광과 광산의 로동자들과 대학생들을 비롯한 평범한 사람들이 6월4일문학상을 수여받았을뿐아니라 오늘은 대학의 교육자로, 작가로 자라났다.
그가 누구든 한점 그늘이 없이 희망의 꿈을 활짝 꽃피워주는 우리 나라, 때로는 자신도 알지 못하던 재능의 싹을 찾아 키워주는 고마운 선생님들이 그 어디에나 있는 우리 나라,
진정 이 땅에 사는 사람모두를 따뜻이 안아 보살펴주는 우리 조국이 세상에서 제일이다.
본사기자 방경찬
첫 <6월4일문학상>수상자 주옥양
(평양 2002년11월21일발 조선중앙통신)
주옥양은 조선의 시문학화원에 영생하는 로동자시인,나라의 첫 <6월4일문학상>수상자이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무척 즐기며 장차 유명한 시인이 될 꿈을 지닌 그는 학교시절에 벌써 남다른 사색과 열정,뛰여 난 재능으로 전문가들의 이목을 끌었다.
주체64(1975)년에 중학교를 마치고 로동계급속에 들어 가 선반기를 잡은 그에게 있어서 기대의 고르로운 동음과 더불어 펼쳐 지는 기계바다,불도가니마냥 들끓는 현실은 그대로 시창작의 터전이였다.
그는 완강한 정신력과 불 같은 열정으로 사상예술성이 높은 수백편의 시를 창작하였다.
<선반공의 노래>,<기대여,영원히 너의 주인으로>,<붓이 닳을가,먹이 마를가>,<나는 사랑하네 그 불보라를>,시초 <어디서나 백두산에 오르리> 등은 그 대표작이다.
그중에서도 혹한이 울부짖는 2월에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 올라 백두의 천만산악과 아아한 봉우리들,천리수해를 한가슴에 새겨 안으며 조선로동당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와 당을 받들어 한생 변함없을 자기의 신념을 격조높이 구가한 시초 <어디서나 백두산에 오르리>는 높은 사상예술성과 깊은 문학적세계,시적감정의 진실성으로 하여 시단의 특출한 성과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뜨거운 열정을 안고 창작에 온갖 심혈을 기울이던 그는 뜻밖의 급병으로 22살의 꽃나이에 생을 마쳤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은정 깊은 사랑에 의하여 그가 생전에 창작수첩에 써놓은 시들을 묶어 출판한 시집과 그를 원형으로 한 텔레비죤련속극 <나의 이름은 청춘>도 나왔다.
<6월4일문학상>: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중앙으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정연한 군중문학창작지도체계를 새롭게 세워 주시고 문학창작사업을 대중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제반 대책을 세워 주신 주체66(1977)년 6월 4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1982년 3월에 제정하였다.(조선대백과사전)
《어디서나 백두산에 오르리》
주 옥 양
백두산!
내 토끼무늬가방 메던 시절
크레용으로 너를 그리던 그날엔
어린 마음의 나래펴고
네우에 올랐다
붉은넥타이시절
아버지가 가져온 백두산의 돌을 안고
잠 못 들던 그밤엔
내 꿈속에서 네우에 올랐고
답사갔던 작업반의 그 동무
백두산헌시비의 글발을 줄 땐
내 그 시를 읊으며
네우에 올랐다
아, 산같이 쌓아온 그리움
혁명의 성지에 한껏 쏟으며
내 지금
그리도 소원이던 백두산에 오르나니
터치노라, 백두산아
층층 하얀 명주필인듯
키를 넘는 흰눈에 뺨을 비비며
수령님 스무성상 찍으신 자욱에
이내 작은 심장 한껏 터치노라
터치노라, 터치노라
한줌 고목의 넝쿨이끼에도
그이 바쳐오신 로고의 반세기가 새겨져있고
한송이 웃는 눈속의 만병초에도
그이께서 가꿔오신 내 조국의 모습이 떠올라
이깔은 이깔마다
숭엄한 기념비런가
한가닥 저 바람결조차
크낙한 숨결이 되여
내 심장에 흘러드는가
티없이 푸르른 너의 천지물은
바치는 삶에 진함없을 나의 피!
치솟아 아아한 너의 일만산악은
죽어서도 변치 않을 나의 신념
오 백두산 백두산아
네우에 한번 오르면
몸도 마음도 새로 태여나거니
나는 너의 딸! 백두의 딸!
어버이수령님 우러러
내 만일 한점의 티라도 낀다면
어디서나 다시 백두산에 오르리
내 만일 꽃으로 폈다 시들면
여기 올라 다시 필 자리 찾으리
아 내 한생
어디서나 백두산에 오르리
삶의 순간마다
언제나 그 언제나 백두산에 오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