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日本朝鮮文学芸術家同盟

민족의 자랑 조선춤​

민족의 자랑 조선춤​

주체112(2023)년 11월 4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팔동작을 위주로 하면서 다리동작을 적절하게 결합하여 몸전체가 조화롭게 움직이는데 조선춤의 독특한 맛이 있다.》

슬기롭고 재능있는 조선민족은 오랜 력사적기간에 걸쳐 고유한 민족적정서와 감정을 반영한 무용예술도 널리 발전시켜왔다.

조선춤은 팔동작을 위주로 하면서 다리동작을 적절히 결합한 부드럽고 우아한 춤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미 고대시기 조선사람의 체질과 정서에 맞는 춤을 창조하고 발전시켜왔다.

옛 문헌기록에 의하면 고조선의 무용이 느리고 유순한 서정적인 춤에 비해 이웃종족의 무용은 빠르면서 동작이 잦은 춤이라고 씌여져있다.

고대시기 고조선의 《공막무》와 같은 춤은 높은 예술성으로 하여 이웃나라에까지 전파되였다.

삼국시기에 이르러 조선춤의 특징은 보다 뚜렷해졌다. 그것은 고구려무덤벽화를 비롯한 당시 우리 나라 유적들의 춤그림과 이웃나라의 유적들에 그려진 춤그림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고구려의 무덤벽화들에 그려진 긴소매옷춤은 모두 두팔을 앞 또는 옆으로 들어올린 상태이며 소매자락이 대체로 아래로 드리워져있다. 이것은 고구려의 긴소매옷춤이 정서적인 음악에 맞추어 소매를 부드럽게 끌어올리면서 춘 춤이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이와는 달리 이웃나라의 유적, 유물들에 그려진 긴소매옷춤그림들은 매우 긴소매를 우로 힘껏 뿌리치거나 휘돌리는 동작으로 형상되여있다. 이것은 고구려무용이 이웃나라 무용에 비해볼 때 섬세하고 우아하며 부드러운 춤으로 고유한 민족적특징을 가지고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발해, 후기신라시기에도 무용은 고유한 민족적춤으로 더욱 발전하였다.

이 시기 많은 무용들이 대외교류의 흐름속에서 이웃나라들에 전파되였는데 《고려무(발해무용)》, 《신라무용》 등으로 불리우면서 그 나라들의 무용예술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고려시기에 이르러 조선춤은 단일민족의 혈연적, 문화적공통성을 반영하여 더욱 발전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 근로인민들속에서 창조된 민속무용들은 물론 궁중의 향악무용, 당악무용, 아악무용들도 조선춤기법으로 추어지게 되였으며 민족적색채가 짙게 나타나게 되였다.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계승발전하여온 조선춤은 지난날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책동속에서도 본색을 잃지 않고 우리 인민들의 생활속에서 굳건히 명맥을 이어왔으며 그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일부 진보적인 무용가들의 창작활동과정에 세계 여러 나라들에 그 우수성이 널리 알려졌다.

1930년대 초엽 일본에서 진행된 우리 나라 무용가의 공연을 본 일본예술인들은 《민족성이 충분히 표현되였으므로 보기만 해도 훌륭하다.》고 탄복하였다.

민족적인 사상감정과 정서를 짙게 반영하면서 발전하여온 조선춤은 민족의 유구성과 단일성을 집약적으로, 직감적으로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문화적재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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