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日本朝鮮文学芸術家同盟

우리의 민족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들과 그 유산

우리의 민족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들과 그 유산()

김홍도는 18~19세기 우리 민족의 화단을 대표한 사실주의적경향의 진보적인 화가이다. 어렸을 때부터 뛰여난 그림재능을 보여준 김홍도는 당시의 진보적인 화가였던 김응환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그는 인물풍속화를 비롯하여 초상화, 산수화, 판화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걸작들을 남겼다.

특히 김홍도는 당시 실학사상의 영향밑에 도식화된 량반사대부들의 낡은 화풍을 깨뜨리면서 점차 자기 시대의 현실로부터 출발한 사실주의적인 풍속화창작의 길을 개척하였다. 그의 풍속화들은 근로하는 인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다양한 주제와 회화기법으로 그들의 창조적로동과 락천적인 생활, 순박하고 건전한 정신세계의 아름다움을 긍정하였으며 봉건관료들과 무위도식하는 계층의 부패타락한 생활을 자연스럽게 야유조소하여 당대의 불공평한 사회적면모를 재현하였다.

《대장간》, 《집짓기》, 《베짜기》, 《빨래터》, 《춤》, 《씨름》, 《고기잡이》, 《서당》, 《활쏘기》, 《우물가》 등은 근로하는 평민들의 창조적로동과 일상생활의 일단을 진실하게 반영한 그의 대표작이다.

김홍도는 힘있고 류창한 필치로 산수화의 걸작들도 남기였다.

그의 산수화들은 모두 조국산천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민족적정취, 짙은 향토미를 풍기고있으며 심오한 사색과 풍만한 정서, 자연의 아름다움속에 안기고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매혹적인 화폭으로 일관되여있다.대표적인 작품으로서는 《구룡폭》, 《홍류동》, 《나루배》 등이 있다.

김홍도는 18~19세기 화단의 새로운 장을 펼쳐놓은 대가로 우리 나라 회화사에 기록되여있으며 오늘도 그의 작품들은 일정한 시대적, 력사적제한성은 있으나 민족회화의 귀중한 재보로 되고있다.

우리의 민족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들과 그 유산(2)

안견은 15세기 중엽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화가의 한사람으로서 산수화를 특별히 잘 그렸으며 수많은 인물화, 상상화, 사군자도 그렸다.

안견은 내외의 이름난 명화들을 많이 보고 연구하면서 요점을 체득하고 장점들을 취사선택하였으며 그 과정에 자기의 고유한 화풍을 창조하였다. 자연의 풍치를 실감있게 보여주는데 주의가 돌려진 그의 작품들은 당시 화가들속에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으며 우리 나라 회화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안견의 일부 그림들에는 환상적인 풍경을 그린것들도 있다.그런 경우에도 우리 나라 자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이 잘 반영되여있는것으로 하여 작품의 품위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작품으로는 《청산백운도》, 《꿈에 본 동산》(《몽유도원도》), 《적벽도》, 《룡》, 《어부》 등과 사시도들이 알려져있다.

안견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전해오고있는 《꿈에 본 동산》은 조선봉건왕조의 왕자였던 리용이 꿈에 보았다는 복숭아동산의 경치를 상상하여 그린 풍경화이다.안견은 한밤중 꿈속에서 펼쳐졌다는 복숭아동산의 전경을 더듬어 이 그림을 3일만에 완성하였다고 한다.화가는 능숙하고 세련된 붓질과 농담의 알맞는 적용, 섬세한 세부묘사로 환상적인 산중의 별천지를 훌륭히 그려냈다.

안견의 작품들에는 대상을 진실하게 반영하는 표현력과 힘있고 아름다운 필치, 풍만한 정서가 잘 나타나있는것으로 하여 오늘도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되고있다.

우리의 민족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들과 그 유산(3)

리상좌는 노비의 신분을 타고났지만 뛰여난 그림재주로 하여 노비신분에서 벗어나 도화서의 화원으로 되였다.그는 주로 인물화를 많이 그렸지만 산수화와 동물화, 화조화, 삽화 등 여러 종류의 그림들을 다 잘 그렸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달밤에 소나무밑을 거닐며》, 《성난 범》, 《꽃과 새》 등이 전해지고있다.

힘있는 필치와 강한 기백, 날카로운 극성을 띤 형상으로 굳센 의지와 항거의 분위기를 강조한것은 리상좌의 작품에서 볼수 있는 독특한 창작경향이였다.

《달밤에 소나무밑을 거닐며》는 리상좌의 그러한 창작적개성과 화풍을 보여주는 대표작의 하나이다.

가파로운 벼랑의 바위틈에 뿌리박은 소나무가 줄기와 가지를 뻗쳐 거연히 서있으며 그아래로 한 늙은이가 아이를 데리고 걸어가고있다.오랜 세월 비바람에 시달려온 소나무는 마디마디 구불었으나 휘몰아치는 역풍을 맞받아 꿋꿋이 서있으며 그아래 인물들도 세찬 바람에 옷자락을 날리면서도 멈춤없이 걸음을 다그치고있다.

바람세차고 어둑침침한 밤경치를 그렸지만 스산하거나 불안한 느낌은 거의 없으며 세월의 풍상고초와 온갖 시련을 다 이겨내는 강의한 의지와 굳센 기상, 불굴의 기개가 강하게 안겨오는 작품이다.

《성난 범》을 비롯한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박력있는 형상을 통하여 강한 기개가 잘 나타나고있다.

당대에 그의 격동적인 화풍을 따를만 한 화가는 없었다고 한다. 리상좌의 작품들은 당시 화단을 지배하고있던 고루하고 형식주의적인 화풍에서 벗어나려는 화가의 지향을 보여주고있다.

그의 화법들은 조선화발전과 그 연구에서 귀중한 자료로 되고있다.

우리의 민족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들과 그 유산(4)​

우리 나라의 중세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미술가들중에는 리징도 있다.

리징은 조선봉건왕조시기의 대표적인 금니화화가이다.

금니화란 금가루를 갖풀에 개여 만든 채색을 섞어 장식적효과를 나타내는 조선화의 한 갈래이다.

어려서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한 리징은 그림공부를 열심히 하여 이름있는 화가로 되였다.

리징은 청록산수, 금벽산수 등 이채를 띠는 작품들을 창작하였는데 그중에서도 금니화를 특별히 잘 그리였다. 그는 전통적인 금니화형식의 조선화를 계승발전시켰으며 특히 금니로는 불화나 풍경만을 그리던 종래의 틀을 깨고 꽃과 짐승도 잘 형상함으로써 당시 우리 화단의 회화적양상을 풍부히 하는데 기여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금니화작품들에는 《독수리》, 《산수도》, 《사슴》, 《거북》 등이 있다.

《산수도》는 리징의 그림재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금니화작품의 하나이다.

높고낮은 산봉우리들이 구름바다우로 우뚝 치솟았으며 푸른 나무 우거진 바위산골짜기로는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있다. 한 사람은 구름에 휘감긴 산의 황홀경에 취하였는지, 구슬굴러가는듯 한 물소리에 넋을 잃었는지 몸이 바위에 붙은채 점도록 일어설 생각을 못하고있다. 그 모습에 등뒤에 다가서던 사람들도 명상을 깨뜨릴가 저어하며 어쩌지 못하고 서있다.

리징은 당대의 사회현실을 반영한 작품들을 많이 그리지는 못하였으나 우수한 금벽산수화들과 금니화들을 창작함으로써 조선화발전에 이바지한 우리 민족의 우수한 화가이다.

우리의 민족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들과 그 유산(5)​

신윤복은 김홍도와 더불어 18세기 사실주의회화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대표적인 인물풍속화가이다.

어려서부터 뛰여난 예술적재능을 지니고있던 그는 당시 화단에서 영향력을 가지고있던 진보적인 화가들에게서 현실을 보고 대하는 사실주의적창작방법을 배웠다.

김홍도가 농촌생활상을 위주로 하여 그림을 그렸다면 신윤복은 도시생활형상으로서 당시 사회의 각이한 계층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알수 있게 하는 훌륭한 인물화들을 많이 창작하여 중세회화사를 풍부히 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주막》, 《배놀이》, 《봄나들이》, 《가야금타기》, 《칼춤》, 《미인도》, 《소나무와 매》 등이다.

– 《주막》 –

《주막》은 예리한 관찰과 정확한 소묘에 기초하여 오고가는 길손들이 드나들던 주막집의 정경을 부감형식의 구도, 간결한 선과 담박한 색채로 매우 실감있게 보여준 그림이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가마가 가지런히 걸려있는 부뚜막에 얌전하게 앉아서 길손들의 편의를 도모해주는 녀주인, 어수룩한 차림새와 몸가짐을 하고 시중을 들면서 길손들을 바라보는 사내, 성격과 신분, 차림새가 각이한 길손들 등 인물들의 모습을 통하여 당시의 세태풍속을 잘 보여주고있다.

또한 신윤복은 《배놀이》를 비롯한 작품들에서 량반들의 안일하고 부화타락한 생활리면도 적라라하게 폭로하였다.

신윤복은 인물풍속화에서뿐아니라 산수, 날짐승그림에서도 뛰여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신윤복은 현실에서 창작의 원천을 찾고 모순에 찬 봉건사회를 예리하게 해부함으로써 우리 민족회화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우리의 민족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들과 그 유산(6)

신윤복은 김홍도와 더불어 18세기 사실주의회화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대표적인 인물풍속화가이다.김홍도가 주로 산과 들에서 땀흘려일하는 농민들의 생활세태를 그렸다면 신윤복은 도시에서 사는 평민계층의 각이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그의 작품들가운데서 대표적인것은 《주막》, 《배놀이》, 《봄나들이》, 《가야금타기》, 《칼춤》, 《미인도》, 《소나무와 매》 등이다.

《주막》은 예리한 관찰과 정확한 소묘에 기초하여 오고가는 길손들이 드나들던 주막집의 정경을 부감형식의 구도, 간결한 선과 담박한 색채로 매우 실감있게 보여준 그림이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가마가 가지런히 걸려있는 부뚜막가에 얌전하게 앉아서 길손들의 편의를 도모해주는 녀주인, 어수룩한 차림새와 몸가짐을 하고 시중을 들면서 길손들을 바라보는 사내, 성격과 신분, 차림새가 각이한 길손들 등 인물들의 모습을 통하여 당시의 세태풍속을 정확히 보여주고있다. 이 작품에서 화가는 진실한 동정심을 가지고 백성들을 화폭의 중심에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있다.

이와 함께 신윤복은 《배놀이》를 비롯한 작품들에서 량반들의 안일하고 부화타락한 생활리면도 적라라하게 폭로하였다.

봉건지배층이 천시하던 인민들의 생활을 즐겨 다룬것이나 량반들의 위선에 찬 생활리면을 낱낱이 발가놓고 야유조소한것은 당시 화단에서는 파격적인 일이였다.신윤복이 뛰여난 화가였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전해지는것이 없는것은 바로 그의 그림이 봉건사대부들의 비위를 거슬린것과 관련되여있다.

신윤복은 인물풍속화에서뿐아니라 산수, 날짐승그림에서도 뛰여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신윤복은 현실에서 창작의 원천을 찾고 모순에 찬 봉건사회를 예리하게 해부함으로써 조선회화사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우리의 민족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들과 그 유산(7)

18세기 우리 나라의 이름있는 화가들가운데는 최북도 있다.

최북은 인물과 산수, 꽃과 짐승을 그리는데 능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산수화를 잘 그려 《최산수》라고 불리우기까지 하였다.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아름다운 조국산천을 화폭에 담는것을 즐겨하였으며 통치배들의 비위에 맞는 그림은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량반이 세력을 등대고 최북에게 그림을 그릴것을 강요하자 그는 자기의 한쪽눈을 찔러 멀게 하면서까지 그림을 그려주지 않았다는 일화도 전해지고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한여름》, 《금강산》, 《표훈사》, 《여름풍경》, 《매와 토끼》 등을 들수 있다.

《한여름》에서 화가는 섬세한 필치로 여름철 산간의 정서를 특색있게, 인상깊게 묘사하였다.

작품에서는 섬세하게 반복붓질하여 바위와 산의 립체감을 나타내고 각이한 농담의 점묘법으로 나무들을 생동하게 그려낸 화가의 개성적인 필치와 독특한 화법이 엿보인다.또한 작품에 산천을 구경하거나 앉아서 한담하는 로인들, 마당을 쓸거나 풍구앞에서 부채질하는 아이를 그려넣음으로써 자연과 인간을 밀착시키고 친근감을 자아내게 하였다.

《금강산》은 산수화의 기성관념에서 벗어난 지리도해적형식을 띤 작품이지만 회화로서의 조형적효과성과 예술적품위를 충분히 갖추고있으며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있다.

고향산천에 대한 애착과 굳센 지조, 깨끗한 량심을 지니였던 최북은 대상을 화면에 가득 채우는 독특한 구도와 간결한 색처리, 자유분방한 필치로 대상의 특징을 생동하게 밝혀내는 독자적인 화풍을 세움으로써 18세기 우리 나라 사실주의회화발전에 기여하였다.

우리의 민족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들과 그 유산(8)

김득신은 18세기에 김홍도와 가까이 사귀면서 우리 나라 사실주의풍속화창작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데 이바지하였다.

그는 자기의 그림에 근로하는 인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그들의 생활을 폭넓고 깊이있게 형상하여 당대의 신분관계와 경제생활, 세태풍속 등을 생동하게 펼쳐보이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량반과 농민》, 《고양이를 쫓는다》 등이 있다.

김득신은 풍속화와 함께 산수화, 동물화도 그리였다.시대적 및 계급적제한성으로 하여 《신선도》와 같은 현실생활과 동떨어진 그림들도 남기였다.

그가 그린 인물풍속화들은 묘사대상의 폭이 넓고 주제와 내용에서 깊이가 있다.

《량반과 농민》은 여름날 나들이가던 부부가 길가에서 량반행차를 만나 공손하게 절하는 모습을 통하여 당시 불평등한 봉건적인 신분제도를 보여주고있다.

순진하고 소박한 부부와 눈웃음짓는 하인, 거드름피우는 량반 등 매 인물의 표정과 몸가짐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그들의 성격과 심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하였다.

《고양이를 쫓는다》는 우리 나라 그 어디에서나 볼수 있었던 농촌집 안마당에서 벌어진 한토막의 사건을 재미있게 보여주고있다.

고양이에게 물린 병아리의 울음소리에 놀란 어미닭은 고양이를 뒤쫓아 필사적으로 달려들고 늙은이는 고양이를 치려고 담배대를 쥔 손을 내뻗치고있다.방안에서 달려나온 그의 안해는 저걸 어쩌나 하고 손만 내젓고있다.

순간적인 상황을 해학적으로 형상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을 금할수 없게 한다.

김득신은 진지한 현실탐구에 기초한 생활계기설정에서의 재치, 인물성격형상에서의 예리성, 섬세성을 안받침한 생활묘사의 생동성과 현실반영의 진실성 등으로 사실주의풍속화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림송이

우리의 민족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들과 그 유산(9)

신사임당은 조선봉건왕조시기 이름있는 녀류화가이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글짓기, 그림그리기, 수놓이, 바느질 등을 다 잘하였다.

그가운데서도 그림을 뛰여나게 잘 그렸는데 어릴 때 벌써 안견의 그림을 본으로 하여 산수화와 포도를 잘 그려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냈으며 새와 물고기, 꽃과 풀, 나비와 벌, 메뚜기 등 자연에서 체험하게 되는 모든것을 화폭에 담았다.

당시 녀성들이 문밖출입도 마음대로 할수 없을 정도로 심한 차별을 받고있었던 실정에서 그의 그림소재는 집의 안뜰이나 뒤울안에서 볼수 있는것으로 한정되여있었다.하지만 당시에는 누구도 관심을 돌리지 않던 사물현상들을 세밀히 관찰하고 진실하게 그린것이 오히려 이채로왔으며 그것은 하나의 개성적인 화풍을 이루었다.

대표적작품으로는 《쏘가리》, 《가지》, 《포도》 등을 들수 있다.

그가 그린 《가을풀》은 당대의 화단에는 물론 궁중에까지 널리 알려져 궁중자수의 밑그림으로, 궁중도자기의 문양원본으로 리용되였다. 특히 《쏘가리》는 그의 아들 률곡 리이의 글이 씌여져있어 더욱 가치있는것으로 되고있다.

《가지》에서 화가는 보들보들하고 길둥근 열매들이 달린 가지 두포기를 화폭에 담았는데 활짝 핀 패랭이꽃과 꽃을 찾아 날아드는 벌, 가지포기밑으로 기여가는 메뚜기 등을 함께 그려넣었다.밝은색으로 윤이 나고 연한 가지의 질감을 잘 나타냈으며 거기에 붉게 핀 꽃과 벌레들을 같이 그림으로써 보다 생기있고 생활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그림에는 주위의 모든것을 무심히 대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찾아낼줄 안 화가의 안목과 창작태도, 개성적인 생활감정과 녀성다운 정서가 담겨져있다.

신사임당은 풀과 벌레들을 잘 그렸는데 그가 그림들을 해볕에 쬐려고 마당에 내다놓았을 때 닭들이 달려들어 쪼았다고 하는 이야기도 전해지고있다. 이를 통해서도 솔거의 황룡사 소나무그림이야기와 더불어 화가의 뛰여난 재능을 알수 있다.

신사임당은 회화의 소재령역을 넓혔을뿐아니라 봉건통치배들의 취미가 반영된 묵화에 대치하여 선명하고 생동한 채색화를 그림으로써 사실주의적인 조선화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하였다.

또한 신사임당은 자녀들을 잘 가르친것으로도 널리 알려져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녀성들의 지조를 찬양하는 시들도 많이 지었다고 한다.

봉건륜리도덕이 녀성들에게 집요하게 강요되고있던 당시의 환경에서 신사임당과 같은 재능있는 녀류화가, 시인이 배출된것은 실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우리의 민족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들과 그 유산(10)

심사정은 18세기를 대표하는 재능있는 화가의 한사람이다.

그는 이름있는 화가 정선의 지도밑에 선배들의 유명한 그림들을 연구하고 좋은 점들을 배우면서 화법을 꾸준히 련마해나갔다.

이 과정에 심사정은 조화롭고 정교한 필법으로 묘사대상을 그려내는 사실주의적화풍을 이룩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 풍경화에서 대표작의 하나로 되고있는 심사정의 《여름의 산막》은 수묵담채화로 산골마을의 여름풍경을 생동하게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갖가지 나무들이 우거진 산골짜기를 따라 맑은 물이 감돌아흐르고 기묘한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선 아늑한 숲속에 참외막같은 다락이 서있는데 그안에는 자연에 도취된 한 선비가 앉아서 시상을 무르익히고있는 모습이 그려져있다.그리고 그옆 담장안에서는 한쌍의 백학이 거닐고 담장밖에서는 나무단을 안은 두 인물이 서로 무엇인가 정답게 속삭이며 걸어가고있다.

깊은 산속의 경치를 생동하게 그려 가만히 귀기울이면 돌돌 흐르는 시내물소리와 청아한 새소리가 금시 들려오는것만 같다.

화가는 화면구성의 치밀성과 부드럽고 우아한 선의 효과, 먹선과 채색의 조화로운 구사, 세련된 필치로써 오래전 우리 나라 산간지대의 향토미를 민족적정서에 맞게 훌륭하게 묘사하였다.

정선에게서 그림을 배웠다지만 활달하고 힘있게 그려진 정선의 그림과는 달리 부드럽고 섬세하게 그려진것이 심사정의 산수화가 가지고있는 특징이다.

심사정은 산수화뿐아니라 동물, 꽃과 새 등도 잘 그렸으며 산좋고 물맑은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경치를 묘사한 그림들을 많이 남기였다.

그중에서 《꿩과 매》, 《꽃과 나비》, 《석류와 금계》 등이 대표적이다.

《꿩과 매》는 화면중심의 바위우에 내려앉은 매를 크게 그리고 그 아래에는 겁에 질려 움직이지 못하는 꿩을 그린 수묵담채화로서 자연속에서 벌어지는 동물들의 세계를 실감있게 보여주었다.

심사정은 인민들의 생활을 현실그대로 반영하지 못한 제한성을 가지고있지만 조국의 자연풍경을 선명하고 간결한 전통적화법으로 생동하게 그린 작품들을 적지 않게 창작한 우리 민족의 우수한 화가이다.

림송이

우리의 민족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들과 그 유산(11)

김두량은 18세기 전반기에 실학사상의 영향밑에 발전한 사실주의적회화창작을 대표하는 화가의 한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외할아버지에게서 체계적으로 그림을 배운 그는 인물, 산수, 동물 등 여러 종류의 그림을 다 잘 그렸으며 인물풍속화에서 두각을 나타내였다.

《소몰이군》, 《사계절》, 《월야산수도》, 《개》 등은 그의 뛰여난 재능을 보여주는 명작들이다.

특히 한여름의 낮 쉴참에 버드나무에 소를 매놓고 나무밑에서 깊이 잠든 소몰이군의 모습을 형상한 조선화 《소몰이군》은 생활을 진실하게 형상한 명화중의 명화이다.

작품은 주인공의 형상을 통하여 당시 봉건적인 착취와 압박의 주되는 대상으로 되고있던 농민들의 고달픈 생활처지와 그속에서 억세여진 근면하고 소박한 인민들의 정신세계를 진실하게 보여주고있다.

작품에서 소몰이군은 버들가지가 실실이 늘어진 나무그늘아래의 풀판에 누워 온갖 시름을 잊고 깊이 잠들어있다.적삼 앞자락과 바지끈까지 다 풀어헤친채 배를 드러내놓고 세상모르게 곤히 잠든 모습을 보느라면 배가 가벼이 오르내리는것 같기도 하고 피곤이 실린 코소리도 들리는것 같아 한없는 친근감을 자아내며 저도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피여난다.

한편 화면중심에 배불리 먹은 풀을 조심스레 새김질하며 자기 주인이 깨여날가 두려워 커다란 눈을 굴리는것 같이 큼직하고 생동하게 그린 황소의 모습은 우리 나라 부림소의 온순하고도 힘센 기질과 특징을 잘 표현하면서 소를 아끼고 정성들여 거두는 소몰이군의 알뜰한 솜씨를 느끼게 하여주고있다.

《사계절》은 김두량이 그리고 그의 아들이 채색한 가로말이형식의 그림이다.

우아래를 잘라 화면을 함축함으로써 매 계절의 전형적인 환경을 집약적으로 묘사하면서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작품의 기본내용에로 집중되도록 하였다.

사계절의 농촌전경속에서 량반지주와 농민의 생활을 대비적으로 보여주고있다.이 작품은 아버지와 아들이 그린것으로는 유일하게 전해지고있는것이다.아버지 김두량이 그린 밑그림도 훌륭하지만 그에 채색을 잘하여 작품의 운치를 돋구고 가치를 높인 아들의 솜씨 또한 뛰여난것이였다.

김두량은 도화서의 화원으로서 인민적립장에서 출발하지 못한 일련의 제한성은 있으나 농민생활에 가까이 접근하여 거기에서 묘사대상을 찾아 진실하게 형상함으로써 우리 나라 회화예술의 주제령역을 확대하고 사실주의적화법을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였다.

우리의 민족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들과 그 유산(12)

장승업은 19세기 우리 나라 화단을 대표하는 재능있는 화가이다.

그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종살이를 하며 고생스럽게 자라났으나 자신의 피타는 노력과 뛰여난 자질로 하여 도화서의 화원으로 되였으며 한때 감찰벼슬도 지냈다.

그는 오랜 기간의 창작체험과 진지한 탐구적노력으로 종래의 따분하고 무기력한 틀에 잡힌 구도와 화법에서 벗어나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는 생동한 형상을 창조하면서 민족적특성이 비교적 선명하고 독특한 화풍을 세웠으며 특히 동물화, 정물화, 화조화를 많이 그렸다.

더우기 그는 단붓질로 묘사대상의 특징과 질감, 운동감을 생동하게 나타내는 조선화의 기본기법인 몰골법을 당시 최고의 수준에로 끌어올림으로써 우리 민족의 회화유산을 풍부히 하는데 기여하였다.

《매화》를 비롯하여 《갈대와 게》, 《련못가의 물촉새》, 《매》, 《기러기》, 《군마도》 등은 그의 사실주의적화풍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10폭병풍의 긴 화폭에 한그루의 늙은 매화나무를 그린 《매화》는 그의 작품들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그림의 하나이다. 모진 풍상을 겪어온듯 늙은 매화나무에도 봄은 찾아와 설레이는 가지들에는 아름다운 꽃이 활짝 피였다. 대담하고 폭이 넓으면서도 섬세한 붓질로 그려진 매화의 형상은 종래의 일부 《사군자도》에서는 볼수 없었던 억센 힘과 생활의 열정을 느끼게 한다.

호탕한 그의 성품과 풍부한 생활체험은 화면에서 때로는 억센 기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조용하고 그윽한 서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련못가의 물촉새》, 《갈대와 게》, 《매》등에서는 고도의 집약적수법으로 물기찬 몰골법을 능숙하게 적용하고있다.

《련못가의 물촉새》는 갈대우에 내려앉은 한마리의 물촉새를 중심으로 하여 못가에 펼쳐진 가을풍치를 서정적으로 그린것이다.

힘있는 단붓질과 선명한 색조로 련꽃줄기와 잎의 부드러운 질감과 물속의 고기들을 노려보는 물촉새의 모양을 훌륭히 형상하였다. 세밀한 관찰력과 풍부한 예술적표현력으로 높은 형상성을 보장하여 화조화분야에서 독자적인 새 경지를 개척한 장승업의 재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수 있다.

갈대밑으로 무리지어 밀려가는 게들을 그린 《갈대와 게》는 《련못가의 물촉새》와 쌍폭을 이루는 그림이다. 물기찬 먹색과 담박한 밤색을 배합한 능숙한 단붓질로 무성한 갈대와 게들의 생김새와 움직임을 재치있게 그려냈으며 가을바람부는 갈밭의 계절미를 표현하였다.

일곱마리의 말과 두 인물을 그린 《군마도》는 화조화에서 적용한 함축된 수법과는 달리 가느다란 선을 써가면서 말의 특유한 기질과 동작을 실감있게 묘사하였으며 그 구도처리에서 화가의 대담한 시도를 잘 보여주고있다.

그림에서는 말떼와 인물을 화면의 한가운데 놓고 절반을 차지하는 화면밑부분은 텅 비게 함으로써 넓은 공간을 조성하여 말떼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강조하였다.

이밖에도 화가는 《백선도》, 《기명절지도》 등 여러폭의 정물화도 남기였다. 그리고 인간생활을 묘사한 그림대신 화조날짐승그림을 많이 그렸으며 거기에서 환상적인 소재들도 취급하였다.

장승업은 다양한 주제의 특색있는 회화작품으로 19세기 우리 민족의 화단을 빛내인 화가로서 우리 나라 회화사에서 일정한 자리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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