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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위업의 한길에서
2013년 51호 《음악세계》중에서
애국위업의 한길에서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한품에 안아 믿음을 주시고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 영원한 동행자로 내세워주시였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멀리 있는 자식들을 더 생각하고 걱정하는 다심한 어버이의 정으로 수난의 세월 얼음판에 떨어진 씨앗과도 같이 차디찬 이국의 대지우에 뿌려져 버림받던 재일동포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시고 그들의 운명을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하기에 그들은 자기들에게 참된 삶의 길을 열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그 뜨거운 은정을 천만년 세월이 흘러도 잊을수 없다고 하면서 수령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의 목소리를 터치고있다.
영원히 충정의 노래를
《해외동포들치고 저같은 행운아도 많지 않을것입니다. 저는 어버이수령님 앞에서 무려 10번이나 노래를 불러드리는 행운을 지니였습니다. 지금도 수령님을 모시고 첫 공연을 하던 그날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총련 금강산가극단 고문 홍령월녀성이 격정속에 터놓은 말이다.
그는 주체63(1974)년 4월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한 재일조선인예술단의 첫 공연에서 독창 《조국을 노래하네》를 부르는 영광을 지니였다.
북받쳐오르는 격정에 목이 메여 도간도간 끊기는 그의 노래를 들어주시는 수령님께서도 자주 손수건을 꺼내드시여 눈굽을 닦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홍령월녀성의 예술적재능을 높이 평가해주시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를 조국에 불러주시였다.
어느해인가는 일본땅 한복판에서 독창회를 열도록 해주시였고 또 어느해인가는 공연이 끝난 후 사랑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시였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하고 화려한 무대를 꿈꾸었지만 이역땅에서 자기의 희망을 꽃피울수 없었던 그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의 품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가 김일성상계관인, 인민배우로서 인생의 절정에 올라설수 있었겠는가.
하기에 그는 오늘도 심장으로 웨친다.
《나의 인생길은 어버이수령님의 손길을 떠나서 결코 생각할수 없습니다. 나는 수령님과 장군님따라 불러온 그 노래들을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따라 영원히 부르고 또 부르겠습니다.》
신념과 의지의 노래춤무대
미덥고 끌끌한 총련 조선대학교 학생들이 부르는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의 합창으로 막을 올린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탄생 100돐경축 재일동포들의 예술공연은 말그대로 애국의 신념과 의지를 보여준 노래춤무대였다.
전인민적송가 《충성의 노래》의 선률이 숭엄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조국을 방문한 재일동포들을 한품에 안아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태양상이 무대배경에 모셔지자 관람자들은 뜨거운 격정의 눈물로 옷깃을 적시였다. 독창 《나에게 소원이 있다면》, 녀성2중창 《곁에 계시면》, 혼성중창 《변이 나는 내 나라》, 《그이의 리상》, 합창 《총련의 창창한 미래를 향하여》 등으로 이어진 공연은 동포들에게 커다란 감명을 안겨주었다.
일본 각지에서 펼쳐진 경축의 무대들도 다 대성황을 이루었다. 총련 히로시마조선초중고급학교 교직원, 학생들을 비롯하여 히로시마현의 각계층동포들은 음악무용서사시 《김일성대원수님께 드리는 충성의 노래》를 무대에 펼쳐놓았다. 시와 무용 《재일동포들의 친어버이》, 노래와 무용 《강성대국 향하는 길에서》, 합창 《나가자 조선아》 등의 종목들에서 그들은 절세위인에 대한 자기들의 열렬한 충정을 피력하였다. 취주악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네》, 노래와 무용 《조국의 사랑은 따사로워라》, 남성중창 《수령님 모시고 통일만세 부르자》 등으로 엮어진 교또동포들의 경축공연과 후꾸오까와 이바라기, 아이찌, 효고현 동포들의 동포대축전, 도호꾸지방 조청원들의 공연 《계승 앞으로》도 마찬가지였다.
공연들을 통하여 출연자들과 관람자들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단결의 중심, 령도의 중심으로 높이 받들어모시고 총련애국위업을 더욱 힘있게 전진시켜 영생하시는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자랑찬 승리의 보고를 드릴 신념의 맹세를 더욱 굳게 다지였다.
그 은정 못 잊어
태양절을 맞으며 일본 각지의 동포사회들에서는 재일조선인운동을 승리와 영광의 한길로 이끌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업적과 재일동포들에 대한 그이의 한없는 사랑과 은정에 대한 칭송의 목소리들이 높이 울려나왔다.
재일조선사회과학자들의 모임에서는 박사들인 김화효, 변재수, 공훈배우 리승옥동포들이, 총련작가, 예술인들의 모임에서는 문예동중앙 고문들인 박종상, 김아필동포들이 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은정속에 자기들이 성장해온 나날들을 격정속에 회고하였다.
총련 가나가와현본부에서 진행된 회고모임에서는 여러차례나 어버이수령님의 접견을 받고 기념사진까지 찍는 영광을 지닌 표의수동포와 40년전 총련 요꼬하마조선초급학교 음악무용소조원으로서 태양의 품에 안기였던 김유의동포들이 자애에 넘친 미소를 지으시던 수령님의 존안을 영원히 잊을수 없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였다.
한없는 그리움의 목소리는 총련 금강산가극단 예술인들의 회고무대와 총련 사이다마현본부 고문들의 모임에서도 세차게 울려나왔다. 회고자들은 한결같이 어버이수령님께서 자기들에게 돌려주신 사랑과 은정은 아마 천만자루의 붓이 다 닳도록 쓴대도 못다 쓸것이라고 목메여 웨치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동포들은 어버이수령님의 품속에서 애국의 키가 자라던 못 잊을 나날들을 감회깊이 돌이켜보았다. 무대와 객석을 눈물로 적시며 울린 한없는 그리움의 목소리들은 가장 진실하고도 뜨거운것이였다.
못 잊을 태양의 미소
주체61(1972)년 8월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총련 요꼬하마조선초급학교 음악무용소조와 도꾜조선중고급학교 축구소조학생들을 접견해주시였다.
그 영광의 자리에 현재 총련 히로시마조선초중고급학교 교원으로 사업하는 서석희동포도 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국땅을 처음으로 밟은 그들을 자애로운 한품에 안아주시였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그들의 소박한 공연도 보아주시였다.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 학생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이야기를 나누실 때였다.
한없이 소탈하고 자애로우신 그이의 풍모에 어려움도 잊은 한 학생이 문득 자기 앞에 놓인 과자를 들어 수령님께 드리였다.
일군들은 뜻밖의 일에 어찌할바를 몰라하였다.
하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고맙다고 말씀하시며 그가 올린 과자를 허물없이 드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품에서 떨어지기 아쉬워하는 학생들에게 다시 꼭 만나주겠다고 말씀하시였고 그 약속을 지켜 며칠후에 사랑의 연회를 마련해주시였다.
오늘까지 근 30년동안 성스러운 교단에 서있는 서석희교원은 못 잊을 그날에 간직한 수령님의 태양의 미소가 자기 인생의 근본으로 되였다고 격정속에 이야기하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