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日本朝鮮文学芸術家同盟

인민배우 태을민의 한생

주체112(2023)년 2월 3일

인민배우 태을민의 한생

사람들속에서 자기의 이름보다도 예술영화 《흥부전》의 역인물인 《놀부》의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운 태을민선생은 개성이 뚜렷한 보기드문 성격배우였다.

1916년 11월 서울의 시계수리공가정에서 태여난 그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살에 당시 서울동양극장에 들어가 대본필사공을 거쳐 배우가 되였으며 해방후 서울의 여러 극단들에서 배우생활을 하였다.

해방후 서울의 여러 극단들에서 배우생활을 하던 그는 1948년에야 공화국의 품에 안기였다.

해방후 극단배우들과 함께 거리에 나가 해방만세를 목청껏 부르던 그는 해방된 조선에서 새롭게 태여난 백성이라는 뜻에서 김중배라는 이름을 태을민으로 고치였다.

조선연극사와 영화사에 깊이 새겨진 태을민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지어졌다.

그는 새 조국건설의 나날 본격적인 창조활동을 벌리였으며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전선과 후방에서 공연활동을 진행하면서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을 전쟁승리에로 적극 고무추동하였다.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시기를 비롯하여 생의 마지막까지 다양한 주제의 연극과 영화에 출연하여 참신하고 개성적인 역형상을 수행하였다.

공화국의 품속에서 그가 처음으로 출연한 영화는 예술영화 《내 고향》이였다.

이 영화에서 그는 맡은 지주역을 손색없이 수행하여 깊은 인상을 남기였다.

그가 더욱 유명해지게 된것은 예술영화 《흥부전》에 출연해서부터였다.

영화에서 인정미없고 심술많은 놀부역을 맡은 그는 역형상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입에 틀이를 물고 연기를 하였는가 하면 제비의 다리를 우정 꺾어놓고 실로 동여매는 동작만도 수십번이나 반복하여 익히였다고 한다.

그는 예술영화 《량반전》에서도 자기의 개성을 특색있게 잘 살리였다.

뚱뚱한 몸으로 량반흉내를 내는 역형상, 석쉼하면서 특이한 목소리는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그의 매력이였다.

이밖에도 그는 《조국산천에 안개개인다》, 《심청전》, 《그들은 대지우에 서있다》, 《금화의 비밀》을 비롯한 많은 영화와 연극들에서 사람들에게 지울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태을민선생에게 인민배우칭호를 수여해주시는 뜨거운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한때 일부 사람들의 편협한 견해로 무대를 떠나게 되였을 때 그 동무야말로 우리가 아껴야 할 둘도 없는 보배라고 하시며 연극배우가 아니라 영화배우로 창조활동을 계속하도록 하여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믿음은 그의 예술적재능이 더욱 활짝 꽃펴날수 있게 한 자양분으로 되였다.

위대한 스승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하여 지혜와 열정을 바쳐가던 그는 1969년 경희극 《보람찬 우리 생활》의 공연도중 쓰러져 끝내 숨을 거두었다.

그가 사망하였다는 비보를 접하시고 애석함을 금치 못해하시며 장례식장까지 찾아오시여 주실수 있는 은정을 다 안겨주신 절세위인의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와 더불어 태을민선생은 오늘도 영생의 삶을 누려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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