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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 《빛나는 조국》, 《인민공화국선포의 노래》
인민의 뜻으로 서고 인민의 힘으로 전진하는 공화국은 억년 무궁하리위대한
건국시대에 태여난 기념비적조국송가들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 《빛나는 조국》, 《인민공화국선포의 노래》에 담겨진 력사적사연들을 더듬으며
《로동신문》2023.09.05
우리 민족의 5천년력사와 인류의 사회주의국가건설력사에서 거대한 의의를 가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국대업은 그 위대한 시대를 당당히 상징할수 있는 세편의 기념비적인 조국송가들을 낳았다.주체36(1947)년에 창작된 우리 공화국의 국가와 《빛나는 조국》, 주체37(1948)년에 태여난 《인민공화국선포의 노래》만 가지고도 우리 공화국의 건국사를 하나의 대음악서사시로 엮을수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새조국건설시기에 나온 좋은 노래들은 인민들속에서 활화산같이 터져오른 해방의 기쁨과 부강한 조국을 건설하려는 인민들의 철석같은 의지를 반영한것으로 하여 새조국건설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을 힘있게 고무하였습니다.》
건국의 주인공들의 탄생과 성장과정, 그들의 공적이 집약되여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와 《빛나는 조국》, 《인민공화국선포의 노래》의 창작과정자체가 곧 공화국건국사의 축소판과도 같다.이 건국시대 3대명곡은 수십년간의 일제식민지통치에서 갓 해방된 이 땅에서 단 몇해동안에 이룩된 우리의 건국대업이 무슨 힘으로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어떤 요인으로 하여 우리 공화국이 75년세월이 흐른 오늘까지도 불멸, 불변의 력사를 자랑스럽게 새기고있는가를 후손만대에 실증해주는 위대한 력사의 교과서이다.
이 세편의 국보적인 명곡들이야말로 반만년력사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인민의 국가를 일떠세운 건국세대의 비상한 애국열이 낳은 건국대교향곡이며 공화국의 75년력사를 줄기차고 억세게 떠밀어온 전인민적인 애국합창곡이다.
새 인간, 새 인민탄생의 고고성
나라가 서면 그를 상징하는 노래인 국가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것은 건국의 하나의 공식이여서 어느 나라에서든 국가창작은 건국대업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군 하였다.나라를 대표하는 음악인 국가의 창작은 응당 그 나라의 가장 걸출한 창작가들이 해야 할 몫이지만 세상에는 인재가 없어 부득불 남의 나라의 노래를 가져다 국가로 정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동서고금의 국가건설력사에서 그 례를 찾아볼수 없는 전설적인 일화들로 충만된 우리 공화국의 건국사에는 음악학교의 문전에도 가보지 못하고 초보적인 음악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이 국가를 작곡한 놀라운 사실이 기록되여있다.그가 바로 김원균선생이다.
후날에는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를 창작한 조선의 음악대가로, 김일성상계관인, 김일성훈장수훈자, 로력영웅,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인민예술가로, 인생의 말년에는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고문, 조선민족음악위원회 위원장, 유네스코국제음악리사회 명예위원으로 세계에 명성떨친 예술계의 저명한 활동가였지만 해방전에 식민지청년 김원균은 특별한 재능도, 똑똑한 일자리도 없이 먹고살수만 있다면 닥치는대로 품팔이를 하던 막벌이군이였다.
점점 쪼들려가는 가정살림때문에 화장품장사, 상점심부름군노릇도 해보았고 가죽이기는 일, 뼁끼통을 들고 간판을 그려주는 일도 하였다.왜놈광산의 오소리굴같은 갱속을 목숨걸고 기여다니기도 하였고 수용소나 다름없는 병기소에서 왜놈장교들에게 얻어맞으면서 식민지노예의 뼈아픈 눈물을 삼키기도 하였다.
그가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된것은 어느한 악기점의 간판을 그려주고 값대신 기타를 얻어가진 다음부터였다.그후 남의 집에서 피아노를 좀 배우다가 그것마저 돈이 없어 그만두었다.
낳아준 부모밖에 누구도 그 이름을 모르던 불우한 식민지청년이 세상에 두번다시 태여나는 날이 마침내 다가왔다.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조국을 찾아주시였다는 소식에 접한 즉시 시내로 달려나간 김원균선생은 해방의 환희로 물결치는 사람들속에 섞여 《김일성장군 만세!》, 《조국해방 만세!》를 목청껏 웨쳤다.너무도 크나큰 감격과 흥분으로 가슴이 벅차오르고 무엇인가 소리높이 웨치고싶은 충동을 억제할수 없었던 그의 머리속에 불현듯 하나의 선률이 떠올랐다.샘처럼 거침없이 솟아나오는 선률을 김원균선생은 단숨에 악보에 옮기고 제창 가사를 지어내려갔다.그리고는 기타를 타며 불러보았다.
꽃동산 삼천리 새동이 튼다
새로운 아침에 광명이 왔다
…
김원균선생은 큰 종이 두장에 먹으로 악보와 가사를 적어 자기가 살던 세집의 울타리에 붙이고 마을사람들에게 노래를 배워주었다.이 노래가 새 조선의 첫 노래 《조선행진곡》이였다.
해방된 다음해 어느날 김원균선생은 한편의 가사에 대한 작곡을 의뢰받게 되였다.작곡가도 아닌 자기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게 되였는지 알리 없었지만 김원균선생은 그 희한한 가사를 흥분속에 받아쥐였다.제목부터 숨이 꺽 막혔다.
《김일성장군의 노래》!
음악학교란 문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작곡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초도 상식도 없던 김원균선생은 다름아닌 민족의 영웅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노래를 작곡하면서 새 조선음악의 심원하면서도 명백한 리치와 법칙을 깨닫게 되였다.주체34(1945)년 10월 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전체 조선민족에게 새 조선이 나아갈 길을 환히 밝혀주신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을 처음 뵈올 때 만장을 들끓게 하던 감격의 열광이 그대로 불멸의 혁명송가의 선률이 된것이다.
김원균선생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창작한 공로로 하여 난생처음 나라가 주는 표창장을 수여받았다.
《표창장
북조선음악동맹 김원균 1917년 1월 2일생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작곡하여 인민대중을 민주주의적으로 교육하고 민주주의민족문화건설에 있어서 우수한 성과를 가져왔으므로 이를 표창함
1947년 5월 1일
북조선인민위원회》
그때를 추억하여 김원균선생은 자기의 수기에 이렇게 썼다.
《나는 몇번이고 그 글을 되풀이해가며 읽었다.…
(내가 과연 작곡가란 말인가.)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기를 작곡가라고 생각도 안했고 또 그때까지만 해도 자기의 어려서부터의 꿈이며 희망이였던 미술가가 되리라는 념원을 버리지 않고있었다.
(그런데 국가에서, 당에서 나를 작곡가라고 불러주고 만사람들앞에 선포하지 않았는가.)
그리하여 나는 자신의 여생을 작곡가로서 당과 국가와 인민을 위해 바치리라는 굳은 결심을 다지였다.》
영생불멸의 혁명송가와 함께 새 조선의 젊은 음악재사가 또 한명 태여났다.그후 김원균선생은 미구하여 창건되게 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창작사업에 망라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취해주신 조치에 따라 광범한 군중이 참가하여 짧은 기간에 창작된 무려 1, 000여편에 달하는 곡들중에서 일군들과 전문음악가들, 대중의 엄격한 합평회를 거쳐 당선된 두편의 곡을 놓고 주체36(1947)년 6월 27일 시청회가 열리였다.공화국의 국가를 선정하는 뜻깊은 모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참석하시였다.
노래들을 주의깊게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첫번째 노래를 한번 더 연주하게 하시고는 두번째 노래도 한번 더 들어보자고 하시였다.두 곡을 거듭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정된 두 노래가 다 좋다고, 두 노래중에서 먼저 들은 노래가 더 마음에 든다고, 선률이 장중하고 무게가 있다고 교시하시였다.그러시면서 이것을 애국가로 하고 두번째로 들은 노래도 곡이 좋으니 제목을 고쳐서 그대로 부르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하시였다.그 첫번째 곡이 바로 김원균선생이 작곡한 노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늘 드디여 우리 인민들이 바라는 애국가가 나왔다고, 이제는 당당히 자기의 국가를 부르게 되였다고 만족해하시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는 이렇게 세상에 태여났다.국가를 작곡한 공로로 김원균선생은 공화국의 첫 공로메달을 수여받았다.
아무런 음악교육도 받지 못한 청년이 새 조선의 최대의 음악걸작품을 한해에 한편씩 련이어 창작하였다는 사실자체가 공화국의 건국대업이 우리 인민의 운명에서 일으킨 거창한 변천의 생동한 증거였다.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를 작곡해낸 김원균선생의 뛰여난 재능의 원천을 그의 래력에서는 전혀 찾아볼수 없다.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밑에 반만년민족사에서 처음 보는 미증유의 창조적변혁을 일으키며 거행되고있던 공화국의 건국대업은 어제날 일제가 《렬등민족》이라고 멸시하던 조선인민들속에서 수많은 영웅들과 재사들을 배출시켰다.
인재는 건국의 골간이다.우리 공화국은 은금의 자원이나 대국의 지원이 아니라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건국호소와 더불어 태여난 새 조선의 인재들을 밑천으로 하여 일떠섰다.뼁끼쟁이로부터 음악재사로 혜성처럼 솟구쳐오른 김원균선생처럼 과학과 문화, 경제분야에서 뛰여난 인재들이 슬기롭고 지혜로운 조선사람의 재능을 남김없이 떨치며 건국의 주추를 하나하나 다져나갔다.
평범한 사람들을 건국의 앞장에 내세워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의 손길에 이끌려 어제날의 철도로동자가 자기 이름으로 불리우는 애국운동의 발기자로 명성떨쳤고 한뙈기 땅에 명줄을 걸고 살던 소작농이 애국미헌납운동의 선구자로 온 나라 농민들의 본보기가 되였으며 낫놓고 기윽자도 모르던 농촌아낙네가 우리 나라를 동방에서 문맹자가 없는 첫 나라로 만든 문맹퇴치운동의 불꽃을 지펴 건국사에 이름을 새겼다.
5천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로 자라난 슬기로운 인민은 전설적위인이신 김일성장군님의 이끄심따라 건국의 대업에 하나로 뭉치면서 새 인간, 새 인민으로 다시 태여났다.그 청청하고 힘찬 고고성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가 되여 세계만방에 울려퍼졌다.
우리 나라 음악교육의 최고전당인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무용종합대학의 청사앞에는 공화국이 낳은 음악재사 김원균선생의 반신상이 있다.음악학교문전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새 조선의 첫 수령송가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를 작곡해낸 이 걸출한 음악가는 사회주의교육제도가 문을 활짝 열어준 대학의 교정에 들어서는 새세대들에게 이런 첫 강의를 하고있다.
조선은 수령이 위대하여 인민도 위대하다.몸과 맘 다 바쳐 수령을 받들라.그러면 그대는 위대한 우리 공화국의 긍지높은 애국자가 되리라!
빛나는 인민의 애국, 빛나는 인민의 조국
앞으로 창건되게 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창작이 군중적으로 벌어지던 그 나날에 전국적으로 300여편이나 되는 가사작품들이 심의에 의뢰되였는데 그중에서 가장 우수한 두편의 노래가 최종시청회에 당선되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 높이 평가하신 두편의 노래중에 한편은 국가로 선정되였고 다른 한편은 《빛나는 조국》이라는 제목으로 불리우게 되였다.
이 두편의 명곡의 가사가 다름아닌 한사람의 시인 박세영선생에 의하여 창작되였다는 사실은 후세들의 놀라움을 자아낸다.
물론 박세영선생은 해방전부터 우수하고 진보적인 작품들을 많이 창작하여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시인이였다.해방전 진보적인 반일문학예술단체로 조직된 《카프》의 한 성원이였던 박세영선생은 착취없고 압박없는 세상 《별나라》를 그리면서 문학으로써 일제침략자들에게 항거하며 애국을 부르짖었다.일제에 의해 조선의 문학예술운동이 무참히 유린당할 때 누구보다 몸부림친 박세영선생의 피절은 애국의 절규는 그의 대표작인 시 《산제비》에 그대로 비껴있다.
벼랑끝에서 애처롭게 날아예며 피터지게 자유를 울부짖던 《산제비》에게 그토록 소원하던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주체35(1946)년 6월 27일은 시인 박세영선생의 인생에서 두번째 생일과도 같은 영광의 날이였다.이날 그는 오매불망 그립던 절세의 애국자 김일성장군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왔다.
조선민족의 진정한 조국을 찾아 어제날 《카프》의 《산제비》는 미제의 식민지가 된 남녘땅을 박차고 민족의 태양의 품으로 날아왔다.온 민족을 다 안은 위대한 그 품에 와락 안긴 시인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아뢰였다.
《산에서 왜놈들과 싸우시느라고 얼마나 고생많으셨습니까? 장군님께서 나라를 찾아주시여 이제는 온 겨레가 내 조국, 내 땅에서 자자손손 복락을 누리며 살게 되였습니다.》
자애깊은 시선으로 시인을 바라보시며 남조선에 조성된 정세며 그의 생활형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조선의 현실에 맞는 민주주의적민족문화를 빨리 건설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지금 있는 작가, 예술인들을 귀중히 여기며 그들에게 큰 기대를 가지고있다고 교시하시였다.그러시면서 앞으로 일을 잘하자면 우선 마음이 안정되여야 한다고, 가족들을 하루속히 데려오도록 대책을 취하겠다고, 생활에서 불편한 점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후에라도 제기하여야 한다고 뜨겁게 이르시였다.
(얼마나 위대하신 애국자, 얼마나 위대하신 인간을 민족의 령수로 모시였는가!)
첫 상봉에 위대한 수령님께 완전히 매혹된 박세영선생은 수령님의 건국로선을 높이 받들고 새 민주조선의 민족문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힘껏 일하겠다고 열렬한 맹세를 다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수봉기슭에 박세영선생의 집을 마련해주시고 서울에 남아있던 가족을 데려오도록 해주시였다.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옥백미 10가마니를 보내주시였다.그날의 감격을 박세영선생은 후날 이렇게 회고하였다.
《나는 자기에게 있는 힘과 정열을 다하여 펜을 쥐고 쓰러지는한이 있어도 어버이수령님께서 가리키시는 길에서 충직하게 싸우리라 마음다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9월 27일 혁명시인 조기천, 리찬선생과 함께 박세영선생도 불러주시였다.오랜지기를 만나신듯 매우 반가와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앞에서 박세영선생은 감격하여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뜻깊은 자리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인들에게 하루빨리 애국가를 창작하여야 하겠다고 하시며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였다.
우리 나라는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이다.세 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고 산들은 기세차고 장엄하며 전원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는다.우리 나라에는 지하자원, 금은보화도 무진장하다.우리 인민은 반만년의 오랜 력사를 가진 인민이며 찬란한 문화를 가진 슬기로운 인민이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조국과 슬기로운 투쟁전통을 가진 조선인민의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노래에 담아야 한다고, 인민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면 자기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더욱 솟아날것이라고, 인민들에게 하루빨리 이런 내용을 담아 애국가를 만들어주어야 하겠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가르치심은 인민이 기다리는 새 조선의 조국송가창작으로 고심하고있던 박세영선생에게 우리 공화국의 국가가 어떤 가사로 흘러나가야 하는가를 환히 밝혀주었다.삼천리강토의 아름다움과 반만년 오랜 력사, 찬란한 문화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절절한 애국의 토로를 시어로 엮었더니 훌륭한 가사의 1절이 나왔다.백두산기상을 안고 노도도 내밀 힘으로 5천년민족사의 가장 위대한 건국대업을 이루어나가는 인민의 뜻을 시어에 담으니 2절이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강령적교시가 열원이 되여 용암처럼 끝없이 끓어번지는 시인의 창작적열정은 한편의 가사로 성차지 않았다.박세영선생은 또다시 펜을 들었다.
절세의 애국자의 열렬한 건국호소를 심장으로 받들고 찬란한 인민조국을 일떠세우기 위해 창조와 로력으로 피끓고 무한한 자유와 행복으로 나래를 활짝 편 조선인민의 군상이, 그들이 분출하는 애국의 거창한 힘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조국의 모습이 주옥같은 시어들로 그려져나갔다.어제날 《산제비》의 가냘픈 울음에 피절은 애국의 웨침을 담을수밖에 없었던 시인의 심장에서 드디여 만방에 빛을 뿌릴 위대한 우리 조국에 대한 가슴후련한 칭송의 웨침이 터져나왔다.
새 조선의 조국송가 《빛나는 조국》의 작곡은 해방전부터 민족음악작곡가로 이름있던 리면상선생이 하였다.리면상선생의 해방전인생에도 박세영선생과 다를바 없는 설음과 비분의 곡조가 진하게 비껴있었다.
해방전 모진 가난과 천대를 피를 물고 견디여내며 고학으로 음악공부를 한 리면상선생이 작사작곡하여 내놓은 처녀작은 《들국화》였다.일제는 이 노래가 취입된 레코드가 나오자마자 《금곡령》을 내리고 레코드들을 모조리 짓밟아 박산내였다.처량한 들국화꽃잎처럼 리면상선생의 애국의 첫 노래는 무참히 짓뭉개졌다.
나라는 해방되였어도 양키의 더럽고 추악한 노래가락이 민족의 얼을 어지럽히고있는 남녘땅은 리면상선생에게 있어서 조국이 아니였다.그는 참다운 애국의 음악을 찾아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품에 안겼다.
《들국화》와 같은 서글픈 노래에 가냘픈 애국의 목소리조차 숨기면서 담아야 했던 리면상선생이 새 조선의 조국송가 《빛나는 조국》에 붙인 선률은 얼마나 숭엄하고 장중하며 위엄찼던가.
《빛나는 조국》!
그것은 한편의 노래이기 전에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의 품에서 반만년민족사에 가장 위대한 애국의 힘을 가지게 된 조선인민의 감격의 웨침이였다.
인민의 애국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시일야방성대곡》의 처절한 곡성과 눈물겨운 국채보상운동에도, 3.1인민봉기와 의병운동의 피절은 함성에도 나라를 위함이라면 정견과 신앙, 계급과 계층, 빈부의 차이와 남녀로소를 초월하여 궐기해나서는 조선인민의 남다른 애국심이 불물처럼 끓어번지고있었다.그러나 끝끝내 나라를 되찾지 못한 그 애국이 어떻게 되여 새 조선의 건국대업에서는 그렇듯 놀라운 기적을 낳게 되였던가.
만고절세의 애국자 김일성장군님의 위대한 혁명정신, 애국정신이 깃들자 이 나라의 모든것이 눈부신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사람도 자원도 로동도…
인민의 애국이 빛나니 인민의 조국도 빛났다.위대한 수령님의 애국의 호소대로 힘있는 사람은 힘을 냈고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을 냈으며 돈있는 사람은 돈을 냈다.그 누구의 도움이 아니라 바로 조선인민자신의 애국의 힘으로 터전을 다지고 기둥을 박고 지붕을 얹으며 나라를 세워나갔다.
침략자를 내쫓고 식민지통치에서 해방되였다고 하여 나라가 저절로 서는것은 아니다.해방의 만세는 함께 불렀지만 우리 조국의 남반부는 또다시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되고말았다.하지만 북반부에는 인민의 뜻, 인민의 힘으로 그 뿌리가 굳건하고 미래가 창창한 자주독립국가가 존엄높고 청신하며 기세찬 실체를 바야흐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황철로동계급은 왜놈들이 무참히 파괴한 용광로를 1년 10개월만에 복구하여 쇠물을 뽑아냈고 평양인민들은 일제가 수많은 공수를 들이면서도 끝내 해내지 못한 보통강개수공사를 단 55일만에 끝냈다.《일찌기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다시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고 예언했던 외국의 한 시인의 시구절처럼 위대한 수령이 불꽃을 지펴주신 인민의 애국의 힘이 거세찬 불길이 되여 우리 조국은 세계에 찬연한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공화국창건 40돐이 되는 뜻깊은 해인 주체77(1988)년 주체음악발전에 큰 공적을 세운 리면상선생의 생일을 맞으며 리면상음악작품연주회가 진행될 때였다.만사람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대에 오른 리면상선생은 자기의 영광의 한생을 이런 말로 총화하였다.
《인재도 때를 만나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슬기롭고 재능있는 민족입니다.하지만 조선사람의 재능이 오늘처럼 빛을 내여본적이 언제 있었습니까.어버이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를 높이 모심으로써 수천년동안 빛을 잃었던 조선사람의 재능이 비로소 때를 만나 오늘처럼 활짝 꽃펴나게 되였습니다.》
만약 박세영선생이 살아있다면 위대한 우리 공화국의 하루하루가 자신이 창작한 두편의 기념비적조국송가들과 더불어 눈부시게 밝아오고 빛나게 총화되고있는 오늘날의 현실을 두고 무슨 말을 할것인가.아마도 그 역시 자기의 한생에 대하여 리면상선생과 꼭같은 말로 총화할것이다.
《우리의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전민족이 단결된 위대한 애국의 힘에 의하여 만난을 뚫고 줄기차게 추진되던 조선인민의 건국대업은 마침내 빛나는 승리의 날을 맞이하였다.주체37(1948)년 9월 9일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시였다.
반만년력사에 처음으로 인민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자주독립국가를 가지게 된 민족의 감격은 하늘땅을 진감하였다.인민의 이 격앙된 흥분과 환희를 한껏 터쳐주며 온 나라 강산에 우뢰처럼 메아리쳐 울린 노래가 있었다.바로 이 위대한 력사적시각을 위해 창작된 《인민공화국선포의 노래》였다.
…
산천도 노래하라 이날의 감격을
조선은 빛나는 인민의 나라다
…
이 노래로 우리 인민은 온 세상에 대고 선언했다.어제날 만국평화회의장에서 발언권마저 잃은 민족적울분에 배를 가르며 원한의 피를 뿌려야 했던 조선사람들이, 침략자에게 나라를 강탈당하여 존엄과 이름마저 빼앗겨야 했던 식민지인민이 마침내 세계무대에 당당히 들고나갈 자기의 국호, 자기의 자주적존엄, 자기의 자랑스러운 이름을 가지였음을 조선은 목청껏 노래했다.
《세계여 들으라! 우리의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이다!》
이 환희의 웨침은 《인민공화국선포의 노래》를 작곡한 박한규선생자신의 심장의 웨침이기도 하였다.
태여나 한달만에 그는 부모의 등에 업히여 고국을 하직하는 불쌍한 조선사람들의 흐름에 실려 남의 나라 땅으로 이주하여갔다.그 타향에서도 조선사람들에 대한 왜놈들의 수모와 천대는 악착스럽기 그지없었다.망국민의 아들 박한규는 나라없는 민족의 설음을 안고 피눈물을 마시며 자랐다.
문학에 뜻을 품고 현해탄을 건너간 박한규선생은 우연히 사립음악학교에 들어가 음악공부에로 방향전환하게 되였다.굶주림과 고달픔은 참을수 있어도 왜놈들로부터 매일, 매 시각 당하는 민족적멸시와 모욕감은 참을수 없었다.
하루는 교무부장직에 있던 왜놈이 《왜 창씨개명을 하지 않는가?》고 박한규에게 따지고들었다.조선사람의 이름 석자마저 빼앗자고 달려든 지독한 왜놈을 향해 그는 분연히 소리쳤다.
《나는 조선의 박한규다!》
그 대답 한마디때문에 박한규는 학교에서 쫓겨나고말았다.음악을 포기할지언정 조선사람의 마지막얼만은 저버리고싶지 않았던것이다.애국청년 박한규의 음악공부는 이렇게 끝장나고말았다.
민족의 영웅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끄시는 항일빨찌산이야기를 전설처럼 들으며 해방의 날을 기다려온 박한규선생에게 해방된 조국땅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발기에 의하여 교향악단이 창립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박한규선생은 지체없이 조국을 향해 떠났다.
중앙교향악단(당시)의 바이올린연주가가 된 그는 음악으로 건국대업에 이바지하는 새 조선의 당당한 음악가 박한규의 이름을 건국사에 새기기 시작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진정한 인민의 국가가 일떠서고있는 벅찬 현실은 박한규선생의 피끓는 심장에 머지않아 맞이하게 될 공화국창건선포의 장엄한 메아리를 명곡의 선률로 쾅쾅 울려주기 시작하였다.그 메아리에 박한규선생은 왜놈들을 향해 피터지게 웨치던 《나는 조선의 박한규다!》라는 원한맺힌 절규도 합치였다.
《백두산천지에서 제주도끝까지》라는 구절로 시작되여 《해와 별 빛나라 조국의 앞길에》라는 장중한 후렴구로 끝나는 《인민공화국선포의 노래》의 가사에는 전민족의 한결같은 뜻과 의지에 의하여 이룩된 우리 공화국의 건국대업의 철저한 인민적성격이 마치도 국기를 들고 세계를 향해 행진해나가는 조선인민의 씩씩한 보무처럼 맥박치고있다.이렇듯 훌륭한 가사를 지어낸 사람은 작가 김우철선생이다.
해방전 《프로레타리아아동문학연구회》의 한 성원으로 활동하면서 문학창작활동을 벌리던 그는 일제경찰에게 붙잡혀 감옥생활까지 하고 나중에는 병을 만나 페인신세가 되였다.새 조선의 문예인들을 건국의 대업에로 부르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호소는 문학창작도 삶도 포기하고 세상을 등지고 누워있던 김우철선생을 공화국창건을 향해 노도쳐나아가는 인민의 힘찬 행진대오에 들여세워주었다.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평안북도위원회 위원장, 《문화전선》 편집부장 등의 직책을 지니고 활동하면서 김우철선생은 위대한 수령님의 품, 위대한 조국의 품에서 새 삶을 받아안은 자신의 희열, 인민의 환희를 열정의 서정시들로 노래하였다.
작가 김우철선생이 《인민공화국선포의 노래》의 창작을 새 조선이 안겨준 영광스러운 첫 임무로 스스로 받아들인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작가들을 만나신 자리에서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게 되는데 그날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노래를 하나 창작하라는 과업을 주신 때부터였다.그때부터 김우철선생은 공화국이 창건되는 날에 인민이 가슴후련히 부를 노래의 창작을 위해 혼심을 쏟았다.그것은 곧 자신의 모든 체험의 폭발이였다.
《인민공화국선포의 노래》로 김우철선생은 만고절세의 위인을 높이 모시여 온 세상에 찬연히 빛을 뿌릴 우리 공화국의 찬란한 래일을 힘차게 구가하였다.이것은 새 조선의 품에서 생명을 찾고 작가의 영광도 찾은 공화국공민 김우철이 건국세대의 이름으로 력사와 세계앞에 고한 공화국탄생의 선언문과도 같았다.
력사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탄생가라고도 불리워지고있는 《인민공화국선포의 노래》는 백두산천지에서부터 제주도끝까지 삼천만 인민이 새 기발 높이 들고 떨쳐나섰던 건국대업이 《우리의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라는 인민의 긍지높은 목소리로 결속된 총화의 선언이였다.그것은 또한 해와 별 빛나는 조선의 휘황찬란한 미래에 대한 인민의 절대적인 확신의 선언이였다.
지경넘어, 바다건너 우렁차게 울려오는 이 노래를 합창하며 해외동포들도 자신들이 다름아닌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끄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민임을 온 세상에 대고 당당히 선언했다.위대한 수령의 두리에 굳게 뭉친 인민의 뜻과 힘으로 일떠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탄생이 위대하여 력사도 위대하고 미래도 위대하다는 철리를 건국세대는 《인민공화국선포의 노래》로 후손만대에, 세계에 각인시켰다.
공화국창건을 위한 건국대업은 민족의 숙망이였던 위대한 자주독립국가를 세계무대에 출현시킨데만 의의가 있는것이 아니다.그 나날에 반만년민족사에서 가장 슬기롭고 강인하며 가장 애국적이고 영웅적인 인민의 한 세대가 탄생하였다.그들이 주력이 되여 조선인민은 전쟁도 이겼고 재더미우에서 복구건설도 하였으며 천리마를 타고 이 땅우에 사회주의를 일떠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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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결코 몇편의 음악작품이나 몇사람의 문예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이것은 후손만대가 영원히 잊지 말고 심장에 새겨야 할 공화국의 건국사에 대한 이야기, 위대한 전통과 계승의 진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광스러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 75돐을 맞는 뜻깊은 올해에 성대하게 거행된 전승 70돐 경축행사에는 공화국의 부강번영에 기여한 렬사들의 후손들도 초청되였다.그들중에는 위대한 우리 국가의 건국시대를 상징하는 세편의 기념비적인 조국송가를 창작한 김원균, 박세영, 박한규선생을 비롯한 공화국의 첫 세대 문예인들의 자손들도 있었다.
당과 조국은 어버이수령님을 받들어 이 땅우에 존엄높은 위대한 인민의 국가를 일떠세우고 우리 공화국이 력사의 모든 풍파를 꿋꿋이 이겨내며 사회주의강국에로 줄기차고 억세게 전진해나갈 활로를 열어놓은 건국세대의 공적을 언제나 잊지 않고있으며 그들의 애국정신을 공화국의 자랑스러운 전통과 더불어 값높이 내세워주고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와 《빛나는 조국》, 《인민공화국선포의 노래》는 영원불멸의 생명력으로 어제도 오늘도 우리 인민의 애국투쟁을 힘차게 떠밀어주고있다.
조선이 낳은 또 한분의 절세의 애국자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따라 우리 공화국을 온 세상이 우러러보는 천하제일강국으로 일떠세우기 위한 애국의 줄기찬 한길에서 우리 인민은 자기 세대의 이름으로 새로운 위대한 조국송가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줄것이다.